어릴 적 나는 온갖 낭만적인 짓들이 하고 싶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혼자 남겨진 시간이 많아서 그랬다. 나중엔 의식적으로 현실적인 가치관을 견지하려고 애쓰다 좀 염세적이기까지 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어릴 땐 그랬다. 좀 영화처럼 살고 싶었다.

 

김원필이 나를 맡아주는 것은 퍽 낭만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김원필은 생판 남이었는데 그는 그런 내게 너무 잘해줬으니까. 얼굴 성격 목소리 몸집 뭐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는데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대해줬다. 자길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던 점을 빼면. 새파랗게 어린 내 앞에서 적지만은 않은 제 나이를 부끄럽게 느껴 그랬던 거라고 짐작은 한다.

 

나는 열네 살이었다. 아빠가 나를 그 앞에 세웠다. 옆집 사는 건 알았지만 이름이 원필이고 아빠랑 아는 사이라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인사해, 아빠 친구. 아빠 출장 간 동안 너 봐줄 거야. 김원필은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겁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를 빤히 보다 말없이 목례했다. 그 사람도 나를 따라 내게 허둥지둥 손바닥을 흔들어 보였다. 둘 다 말이 없었다. 확장된 시선만 오갔다. 아빠가 헛웃음을 지었다. 울 아들 굶겨 죽이지 마라. 김원필은 어설프게 따라 웃었다.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마지못해 웃는 것 같았다. 열네 살이면 다 컸지 뭐. 나지막이 떨어지는 목소리로 읊은 말은 그 날 김원필이 나 있는 자리에서 발음한 가장 긴 문장이었고 나는 그를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그가 좀, 외로운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때 김원필은 갓 대학교를 졸업한 취준생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은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보냈고 집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책상 앞에 앉아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거나 핸드폰으로 폰게임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가 나를 봐주기로 아빠와 약속한 시간은 일주일이었는데, 그나마도 처음 며칠은 굳이 그에게 스스로를 부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내가 그에게 연락도 없이 우리 집으로 가있는 바람에 함께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다. 아빠 없는 집에서 혼자 잠들었던 사흘째에 나는 무려 1교시가 30분이나 지난 시각에 잠에서 깼다. 연락을 받고 집으로 건너온 김원필은 애써 웃음을 참는 것처럼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동그래진 두 눈 아래로 양 뺨이 홀쭉해졌다─지침사항을 알려줬다. 늦잠 잤다 하지 말고 아파서 병원 갔다 왔다 그래. 학교 가는 길에 병원 튀어가서 진단서 받아 가. 말하며 김원필은 잠이 덜 깬 내 몸 위로 언제 챙겼는지 모를 교복 마이를 껴 입혀 주고 있었다. 가서 뭐라 그래요? 그냥 머리 아프고 현기증 난다 그래. 대충 둘러 대. 많이 해봤어요? 그는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어깨를 으쓱 했다. 미간은 일그러뜨렸으면서 입꼬리는 웃고 있었다. 뒤통수가 까치집이었다. 그 사람도 늦잠을 자고 있던 게 분명했다. 넋을 놓고 저를 쳐다보는 나를 그가 문 쪽으로 돌려 세웠다. 얼렁 가, 이 애기야. 엉덩이를 툭툭 치며 나를 떠밀었다. 뛰어가!! 이따 우리 집으로 와,

 

도운아

 

뭐 좋아해? 식탁에 나를 앉혀두고 그가 물었다. 가스 레버가 툭툭 소리를 내며 돌아가구. 기름 두른 프라이팬을 사선으로 기울이는 모습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말하면 다 해줘요? 그러자 눈이 가늘어진 그가 나를 돌아봤다. 까불지 말라고 쏘아붙일 것처럼 뒤돌아 보더니 순순히 뭐 해줄까. 그러는 게 어이 없었다. 아저씨 먹고 싶은 거 해서 드세요. 지가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으면서 내가 그러니까는 풉,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입가를 가리더랬다. 세상 모든 진미를 맛보게 해줄 수 있을 것처럼 호기롭게 뭐 해줄까 묻더니 정작 프라이팬에 계란 두 개를 깨 넣는 게 웃겼다. 외로움을 타는 것 치곤 장난기가 많아 보였다. 티비에 나오는 셰프처럼 먼 허공에서부터 소금을 흩뿌려서 조리대를 다 어지럽혔다. 우린 불 꺼진 식탁에 마주 앉아 간장밥에 케찹 두른 계란후라이를 올려 먹었다. 이게 음식이냐. 애새끼 굶겨 죽이지 않으려고 용쓴다 싶어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근데 그 사람은 은근 맛있게 먹고 있는 것 같아서 더 기가 막혔다. 또 그러다 저를 꼬나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면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묻기라도 하는 듯 천진하게 눈썹을 치켜 뜨는 거. 고개를 저으면 금세 눈을 접으며 미소 지었다. 눈꺼풀이 가만히 내려앉아. 시선은 내게 잠시만 머물다 다시 제 밥그릇이나 찾아갔다. 밤에 배고프면 치킨 시켜줄게. 그 말은 순수하게 들리지 않았었다. 지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시켜주곤 한 조각 먹고 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릴 줄 몰랐다. 고작 간장밥이나 처먹고 만족을 느끼는 후진 미각이 그의 마른 몸을 설명했다. 

 

나는 손님 방에서 지냈다. 학기 중엔 기숙사에 산다는 동생이 방학 때 와 있기도 하고 가끔 아들들 보러 올라오시는 어머니가 묵기도 한다는 손님 방. 김원필 방과 거실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어서 그가 거실로 나와 인기척이라도 내지 않으면 누군가 집에 함께 있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김원필의 집에서도 틀어박혀 영화나 봤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과 조숙한 어린이가 나오는 영화라든지. 무료하기 짝이 없는 내 일상과 상반의 짝을 이루는 위험천만한 모험 얘기나. 액션 영화. 스릴러. 블록버스터. SF. 그리고 이따금 침대에 엎드려 영화를 보다 그대로 잠들었다. 그런데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거나 새벽에 깼을 때 내가 어김없이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은 채 반듯이 누워 있었다. 그런 날에는 견디려고 했던 혼자의 느낌이 조금 무마되는 기분이 들거나, 김원필이 좋았다. 그래 그걸 자각한 순간부터 그가 조금 좋았다. 아직 스스로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출장에서 돌아와 어땠냐고 묻는 아빠에게 그가 좋다고 말했다. 그 뒤부터는 좀 더 상습적으로 그에게 맡겨졌다. 얘가 네가 좋대. 볼 때마다 그 전보다 조금씩 작아져 있던 그에게 그랬다. 눈높이가 가까워질수록─그러니까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부터─그에게서는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가령 자신에게로 돌아온 나를 보는 눈가에 서린 피곤함, 내 아빠에 대한 선망, 나에 대한 측은함, 그의 아름다움.

 

언젠가부터 김원필을 생각하면 그냥, 아름다운 것들이 떠올랐다. 위대한 유산의 기네스 펠트로나, 책 읽어주는 남자의 케이트 윈슬렛. 바스켓볼 다이어리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클로저의 주드 로. 취향을 막론하고 아름다워 인상 깊었던 것들. 열여섯 되고부터는 꿈에 나왔다. 불가항력이었다. 그 나이엔 누구나 꿈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본다고 그랬다. 나의 몸은 마를 날이 없었다.

 

그 시기에 아빠의 출장은 조금씩 길어지다 못해 심하게는 세 달, 네 달씩 끌어 김원필에게 내 몫의 생활비까지 부쳐주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김원필은 거의 제 집에서 같이 살게 된 내게서 도어락을 여는 보조키를 회수해가고 대신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그렇게 된 걸 탓할 생각도 없는지 아빠에 대해서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딱 한 번 묻고 말았을 뿐이었다. 그 자신은 10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직을 다니다가 퇴사해서 한두 달 놀고 먹고 다시 일을 구하러 다니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항상 나를 깨웠지만, 그때는 종종 문을 잠그고 있게 된 내 이부자리까지 챙겨주지는 못했다. 여전히 아저씨라고 부르면 돌아봤다. 조금씩 끝도 없이 작아졌다. 언젠가는 알약에 집어넣고 씹을 수 있을 것처럼. 그러면서 왜 내게 이렇게 빨리 크냐고 물었다.

 

 

 

나의 유년기는 충분한 가정교육의 과정을 결여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내게 누군가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집에 안 들어왔고 김원필에게는 배울 게 없었다. 사람의 인생은 대학교를 다니면서 어느 나름으로 설계된다고 믿고 있었는데 김원필의 인생에는 모양이랄 게 없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집에서 거의 항상 누워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누워서 방 문도 안 닫고 잠에 들었다. 매일매일 피곤하다고 그랬다. 눕고만 싶다고 그랬다. 씻지도 않고 자냐고 다가가 물으면 인상을 찡그리며 뒤척이다가 억지로 일어나거나 무시하고 잠든 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씻었다. 생활습관이 그 모양이니 면역력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 계절도 멀쩡히 못 넘어가고 아팠다. 계절의 통과의례로 앓아 눕는 그가 있었다. 나는 배운 것 없이 아픈 그의 시중을 드는 일만 잘하게 됐다.

 

식은땀이 내린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두면 새우잠을 자느라 모로 누운 몸에서 물기가 마른 수건이 흘러내렸다. 꼭 벽 쪽을 보고 돌아눕는 그의 턱을 잡아 돌려다가 정면을 보게 하면 열이 오른 눈꺼풀이 느릿하게 점멸했다. 고개를 몸이 따라오면서 침대에 올라 앉은 나와 누운 그의 몸이 반의 반절 겹쳤다. 그는 눈동자만 틀어서 이쪽을 쳐다봤다. 막 이런 소리를 한다.

 

도운아 내가 꼭 너 아프면 똑같이 해주려고…

너 아프기만 벼르고 있는데

너 진짜 튼튼하다

 

그럼 나는 헛웃음이 났다. 낫기나 해요. 하고 물수건을 끌어내려 눈두덩을 덮어버리자 그가 열없이 웃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씬 젖었는데 입술만 말랐다. 갈라진 틈이 있었고 그 주위로는 부르텄다. 그 와중에 각질을 뜯어 없애려고 했었는지 세로로 길게 피딱지도 졌다. 그의 외투 주머니에 있을 립밤을 가져다 주려다 말았다. 눈이 반강제로 가려진 그는 잠잠하다 그대로 잠들었다. 

 

무엇이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냐면 그와 나 사이에 이렇다 할 서사가 자리 잡지 않은 것. 서로에 대한 설명에 공백이 많고 부연이 없는 게 우리를 계속 남으로 묶었다. 가족처럼 녹아 드는 것 같아도 결국 그 사람은 혼자고 나는 아빠를 기다리는 옆집 새끼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의 태어나는 것부터 죽는 것까지 볼 것 까진 없었고 이미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 영화처럼 주제에 맞게 인생의 어느 한 단면에서만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 어떤 두드러지는 주제가 있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관습에 기대어 주제를 설파하는 대중영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굳이 영화에 대한 비유를 계속하자면 해체성이 짙은 작가주의 영화. 예술 영화가 생각났다. 이름이 이니셜로 대표되고, 두 시간 내리 아무 의미도 없는 동작을 반복하는, 그럼에도 얼굴은 아름다운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 말이다. 김원필은 남자 같기도 했고 여자 같기도 했다. 쟝 폴 벨몽도와 안나 카리나의 얼굴이 함께 보였다. 나는 그에게 머리로 행동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쓸 수밖에 없었다. 지낼수록 더욱 그랬다. 지낼수록 더 남이 돼갔다.

 

나는 침대 맡에 팔꿈치를 얹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김원필의 따끈한 한쪽 손을 잡고. 아직도 열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만져 봤다가 놓지 못한 것이다. 김원필은 손이 작다. 학창시절 악기를 만지느라 굳은 살이 배서 투박해졌는데 잡으면 한 손 안에 감긴다.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따끈하다 못해 뜨겁도록 느껴지는 열기가 눅진하게 배어 있었다. 깍지를 끼고 싶어 손을 잡은 그대로 팔오금을 접어 올렸다.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약 때문에 어느 때보다 깊이 잠들어 있었다. 삼류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이 키스신으로 이어진다. 곤히 잠든 입술에 몰래 도둑 키스를 하는 것이다. 그럼 거짓말처럼 그 순간 자고 있던 인물이 눈을 뜨고 마음들은 무방비하게 교차로에 내몰린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만 보다 불순한 충동이 자꾸만 내 마음을 파고 들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의 손을 그러쥐고 있던 내 손가락들을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찔러 넣고, 다른 한 손은 기어코 내 바지 속으로 집어 넣었다. 이미 조금 딱딱해져 있었다는 걸 깨닫자 소름이 돋았다. 뒷덜미가 짜릿하게 섰다. 김원필을 잡은 손에도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바지 허리춤을 손목으로 늘려 자지만 꺼내 흔들다 차오른 성감에 그의 손등을 손끝으로 꽉 눌러 버렸을 때는 너무 놀라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죽은 듯 자는데. 나는 자꾸만 그가 나를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좆을 잡고 흔드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자극은 오히려 저쪽 손에서 오는 것 같았다. 손끝에서 손목까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우글거림이 들끓었다. 입에서 자꾸만 밭은 숨이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김원필이 만져주는 상상을 하며 자위하다 눈앞에 잠든 김원필이 보이는 게 싫어 눈을 찍어 감았는데, 눈을 감아도 김원필이 보였다. 도운아 도운아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되감겼다.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이 그의 목소리로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됐다. 또 본 적 없는 장면들. 그가 내 밑에 있는 거. 옷을 다 벗은 채 나를 기다리는 거. 울거나 웃거나 좋아하는 표정들. 열이 올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얼굴들. 손 잡아 달라고 말하던 거. 손 잡을래? 하고 말하는 거. 알아서 손을 끌어오는 거. 목을 당기고. 내 귓가에 입술을 묻고. 가슴을 만져주는 거. 내 밑에서 흔들리는 거. 보고 싶은 장면들이 내가 아는 모습의 얄팍한 변형으로 형상화됐다. 죽고 싶었다. 힘들었다. 그게 열여섯에서 열일곱으로 넘어가던 겨울. 한겨울. 나는 이미 충분히 아프고 있었다. 

 

 

 

내가 열여덟 살 되었을 때 김원필은 서른이 됐다. 그때까지도 나이를 듣지 못했다는 자각조차 없었는데 1월 1일 12시 지나 그가 대뜸 내게 말해줬다.

 

이제 진짜 아저씨야.

갑자기 뭔 소리 해요.

이제 진짜 아저씨라고. 나 이제 서른 살이야.

 

우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고 핸드폰으로 생중계를 보며 대기 타고 있었는데 그가 별안간 밖에 나가자고 그랬다. 지금 무슨 밖에 나가요, 어디요. 묻자 어디 갈 덴 없지만 열두 시 땡 치고 해가 바뀌는 순간에 밖에 있으면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알고 싶댔다. 왜 월드컵 골 넣으면 시간차로 함성 들려서 골 들어가기도 전에 골 넣은 거 알게 되고, 안 보고 있었어도 길 가다가 와아! 그래서 ‘골 넣었구나’ 알아 버리게 되는 거 있잖아. 그러니까 시계를 보지 않고 걷고 있다가, 새해가 넘어가는 순간도 그렇게 알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거야. 조금 궁금하지 않아? 응? 도운아. 내가 안 간다고 하면 혼자 갔다 오면 될 것을 내가 함께 가는 게 절실한 것처럼 눈을 밝히며 물었다. 애 같이 구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다. 그래서 편의점에 따라 갔다. 자정으로부터 한 십 분 전. 편의점에는 쓸쓸한 알바생과, 새해 첫 복권을 긁으러 온 아저씨들, 새해고 나발이고 늘 그렇듯 간이 테이블에 친구들과 앉아 노상을 까는 할아버지들. 그리고 나랑 그 사람. 내일 아침에 먹을 라면을 고르는 나와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며 냉장고에 코를 박고 탱크보이와 폴라포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 사람. 계산을 기다리는데 우리 앞에 있던 아저씨가 알바생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하고 나갔다. 김원필은 그게 썩 마음에 들었는지, 계산하고 나서며 그에게 똑같이 인사했다. 나는 그냥 목례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가게 밖으로 천장형 티비가 나와 있는 치킨집이 있었는데, 내가 집에서 보고 있던 제야의 종 생중계 프로그램이 틀어진 채였고 바깥 테이블에서 치킨에 술을 마시던 몇몇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근데 마침 가만히 서있는 제야의 종이 클로즈업되고 자막으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아이스크림을 지금 먹을까 집에 들어가서 먹을까 고민하던 김원필이 그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티비 앞에 바짝 다가가서는. LED 화면에서 새어 나온 빛으로 그의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원래 하얀데 더 환해졌다. 눈동자는 티비에서 쏟아내는 역동적인 빛으로 일렁였다. 언뜻 입이 벌어질 정도로 넋을 놓고. 원래 무음이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치킨집 사장님이 나와서 리모콘으로 소리를 키웠다. 그래서 타이밍 좋게 종소리가 울리고, 자막으로 해피뉴이어가 지나가고, 바로 옆에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연신 주고받았다. 테이블에서 테이블로. 자리 없이 서 있던 사장님에게로. 김원필만 말이 없었다. 패딩을 입어도 조그만 그 사람을 왠지 안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뒤에서 다가가 살포시 어깨를 감싸며 아저씨, 해피 뉴이어

 

그러자 김원필이 돌아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걸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하긴 내가 그에게 그토록 간지러운 짓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맨날 뒤에서 음흉한 짓이나 했지. 반응이 영 별로니 머쓱해져서 손을 떼려는데 그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귓가로 따끔한 숨결이 퍼졌다. 도운이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나만 들리게 말해줬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간을 울리는 함성 같은 것은 없었다. 모든 집에서 일제히 제야의 종소리 생중계를 틀어놓는다고 해서 그 종소리가 주택가를 왕왕 울리는 것도 아니었고, 순간이 시작되는 순간에 맞추어 사람들이 떼지어 박수를 쳐대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날을 위한 고유의 챈팅 같은 것도 없었고, 캐롤 같은 상징성 강한 노래도 없었다. 하지만 김원필은 비로소 아무래도 상관 없어진 사람처럼 계속 계속 스스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무술년이 개띠 해라며. 나 개띠거든.

좋아요 그래서?

어 좋아.

 

몇 번째인지 모를 퇴사를 앞두고, 이번 겨울에는 여행을 좀 다녀오고 싶어서 네가 혼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가 서른 살밖에 안 먹었다는 생각과, 저 사람이 서른 살이나 먹었다는 경이가 함께 차올라 그가 말한 중 몇 마디는 제대로 듣지 못 했다. 여행 어디로요? 그냥 일본. 아니면 필리핀이나 베트남. 캄보디아도 괜찮고. 나도 따라가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말 못 했다. 머릿속으로만 그 말을 뱉은 이후의 대화가 계속 시뮬레이션처럼 펼쳐졌다. 가장 유력한 상상도는 어떤 느낌이냐면, 너 여행 갈 돈은 있어? 그가 눈을 흘기며 물으면 내가 아빠한테 말하면 주지 않을까요, 아님 알바를 하거나… 하고 말을 얼버무리는 거다. 한심함이 다분하지만 어쨌든 웃고 있다. 그 상상 안에서는 또, 같이 여행을 가는 상상에 젖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2월 끝자락에 캄보디아로 여행에 다녀온 그가 가장 처음으로 내게 건넨 말은 아빠에게 이제 나를 맡기지 말아달라고 할거라는 거였다. 너는 이제 너무 커. 지가 작은 거면서 내 탓을 했다. 너 이제 아빠 없어도 혼자 있을 수 있잖아, 고2면. 그리고 어차피 옆집이니까 내키면 놀러 오면 되고. 물론 내가 조금 부담스러워 할거지만.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수습할 새도 없이 굳어버린 내 표정을 살핀 김원필이 눈썹을 구부려가며 웃었다. 너 나 그렇게 좋아했어? 그 동안 내가 저를 두고 어떤 짓을 해왔는지 완벽하게 모르는 눈치였다. 아저씨 아플 땐요? 김원필 표정이 오묘해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별걸 다 걱정한다는 식으로 입술을 모았다.

 

나 너 있기 전에도 똑같이 아팠었어.

그래서요?

그냥… 나 혼자 있을 수 있다고.

 

그 날 처음으로 집에 안 들어갔다. 우리 집도 아닌 집에 안 들어갔다고 하면 좀 웃긴데 김원필에게 연락 없이 외박을 한 게 처음이었다는 말이다. 어차피 나는 가정교육을 좀 덜 받았으니까. 1학년 때 이미 술을 뚫어본 애들이랑 모텔에서 소주를 깠다. 놀이터에서 먹을까 했는데 김원필이 찾으러 다니다가 나를 발견할 것 같았다. 자의식과잉도 이만한 게 없었다. 나는 조금 들떴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가 역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먹다 보니 맛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윤도운 뭔 일 있냐? 각 1병씩 마셨을 즈음에 누가 물었다. 중학교 땐 친했지만 고등학교 들어가며 노는 무리가 달라져 멀어졌던 녀석이었다. 녀석이 대답을 종용하던 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김원필이었다. 하 씨발 그러며 전원을 껐더니 걔는 뭘 알았는지 아아 그런 거야? 하고 내 몫의 종이컵에 술을 채웠다. 나는 그 방에서 자고, 나머지 애들은 집 가고… 나만 다음날 학교에 늦었다. 학교에 늦는 것은 계획에 없었기 때문에 교복도 없었고 결국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운동장에서 노가리를 까다가 그 전날 같이 술 먹은 그 새끼 체육복을 빌려 입고 들어갔다. 뭐하다 늦었다는 변명거리를 지어내기엔 내게서 술 냄새가 너무 많이 났지만, 결석보단 지각이 나으니까 출석 체크하려고 교무실로 들어가던 순간에 현기증 난다고 거짓말 치고 진단서 끊으라던 스물여섯 살 김원필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렇게 교무실 한 가운데, 담임 자리 맞은편에 서서… 이 시기가 중요하다는 잔소리를 귀가 물리도록 들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할 거라고 믿겠다는 말과. 딱 한 번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겠다는 말이 되풀이됐다.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물어 보지도 않겠다고 그랬다. 물어보면 다 말해줄 수 있었는데 쓸데 없는 배려였다. 근데 교실로 돌아오니 날 버리고 간 새끼들이 아침에 전화했었다더라. 그 때 아직도 핸드폰을 다시 켜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도운 개새끼야. 

 

김원필은 눈을 감고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더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물고. 아빠가 오고 있다고 그랬다. 그러니까 짐 챙겨서 나가라고. 심장이 철렁 했다. 

 

아빠가 갑자기 왜 와요?

내가 불렀어, 너 없어진 줄 알고.

 

우는 김원필을 보는 게 처음이었다. 막연히 조용하게 우는 듯 마는 듯 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본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다. 코 끝이 빨개지고 미간을 다 우그러뜨리고, 눈물은 제어가 안 돼서 온 뺨을 적시고도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그 눈물이 속눈썹과 입술을 죄다 적시고… 손으로 가리려 그러는 것 같았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나니까 눈가를 훔치랴 뺨을 훔치랴 정신이 없어서 속상한 얼굴이 다 드러났다. 나는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루 연락 안 한 게 그렇게 울 일이냐고. 사과랑 위로 중에 어떤 걸 먼저 건네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속이 탔다. 둘 중 무엇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차마 그에게 무슨 짓도 할 수가 없었다. 김원필은 거기 똑바로 서 있는데 나는 어쩐지 그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가 내 옷깃을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그에게 닿았는데 그가 먼저 내 두 팔 아래로 제 팔을 집어 넣었다. 당황해서 버티려고 하자 눈을 홉뜨고 나를 노려봤다. 울어서 빨갛게 된 눈동자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홀린 듯 그의 몸 위로 팔을 둘렀다. 김원필은 훌쩍거리며 내게 안겨왔다. 그 뒤엔 어떻게 해야 하지.

 

잘못했어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니까 그가 내 어깨에 대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코를 킁킁 거리더니 물기가 밴 목소리로. 너 술 마셨냐? 긍정의 대답에는 등허리를 주먹으로 쾅 내리찍었다. 억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무슨 돌덩이로 치는 것처럼. 그 반동으로 허리만 앞으로 쏠렸다 돌아왔다. 김원필은 나와 같이 흔들렸다. 숨이 골라지는 것 같아 흘금 내려다보자 그가 눈알을 굴려 나와 시선을 맞췄다. 저 얼굴에 물기를 훔쳐줘도 될까. 엄지를 슬쩍 가져다 대면 내칠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었다. 눈 아래를 문지르는 손의 감촉을 따라 눈을 감았다. 젖은 속눈썹이 손가락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필요 없는 거 맞아요? 묻는 대신, 더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이다.

 

나는 싫어. 너랑 더 있기.

…왜요?

너 때문에 힘들어.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은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김원필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을 피하지도 않았다. 어느 샌가 나는 상처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야말로… 라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이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수천 가지가 있었는데, 하고 싶은 말 뭐 하나를 눌러 담아도 계속 계속 새로 생기는 게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선뜻 내뱉을 수 있었던 게 하나도 없었다. 온통 낭만적인 말들뿐이었다. 이 말은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인 것 같아, 이 말은 너무 정제되지 않은 것 같아, 이 말은 너무 간지러운 것 같아… 거르고 거르고 거르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우는 거야? 그가 물었다. 울어도 소용 없어. 내가 먼저 울었어. 니가 먼저 울렸어. 그때 그가 내뱉는 말들 앞에서 내 고민은 정말 하잘것없게 느껴진다. 열여덟 살 먹어서야 삶이 마냥 영화 같을 수는 없는 거구나 깨닫는다. 나는 현실 속에서 영화적 허용을 꿈꿔도 될까?

 

좋아해요

…응,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 있기 싫어. 너랑.

 

나와 한참 동안이나 현관에 서서 실랑이를 벌인 김원필은 문을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계속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김원필을 그대로 벽에 밀어 넣고 입을 맞췄다. 그는 내 품 안에 들어오자마자 울음처럼 한숨을 떨쳤다. 제 양 뺨을 쥔 내 손을 저지하지 않고 내 허리춤의 옷깃을 손끝이 새도록 힘껏 그러쥐었다. 옷감이 그의 손아귀로 접혀 들어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개를 비트는 순간 입안으로 따뜻한 입김이 훅 끼쳐왔다. 김원필이 내뱉은 숨이었다. 너무 좋아서 입술이 절로 깨물어졌다. 내 고개가 옆으로 기울수록, 입술이 맞물린 모양이 십자에 가까워질수록, 우리 사이에 더 틈이 없어질수록, 그가 작게 작게 구겨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얼굴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려 목을 더듬고 팔뚝을 어루만지고 허리를 쓰다듬다 엉덩이를 꽉 쥐었을 때는 화드득 놀라 내 손목을 밀어내려고 했는데. 그새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억눌린 숨만 내뱉었다. 나는 그를 나로 다 덮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깨를 튕겨 고개를 바로 세운 뒤 눈을 맞추기 위해 몸을 아래로 기울이면 김원필이 서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나를 마주봤다. 아저씨, 부르면 눈을 질끈 눌러 감으며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 그랬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묻는데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걸 봤다. 입술을 깨물려 그래서 잇새를 혀로 훑고 벌어진 입안에 입술을 물렸다. 나 머리 아픈 것 같아, 말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한 번 우는 모습 보여주면 그때부터 자주 우는 타입인가.

 

머리 아프면 눕혀줄까요?

싫어, 미쳤냐?

왜요? 내가 이상한 짓 할까 봐요?

 

김원필은 말이 없었다. 체념한 듯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몸을 숙여 그의 두 허벅지를 확 끌어안아 들어 올리자 화들짝 놀란 그가 몸을 숙여 내 머리통을 두 팔로 감쌌다. 도운아, 제발…. 그를 그대로 들고 가 침대에 떨치자 그가 팔자눈썹을 하고 나를 끌어 당겼다. 두 팔 아래로 제 팔을 넣어 내 등을 안았다. 내가 놀라게 했으니 달래주라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왠지 그가 아직은 원하지 않는 실수를 하게 될까봐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내 팔 사이에 갇힌 김원필이 울멍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그림자를 잔뜩 드리우고. 앞머리를 쓸어 올려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추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래서 눈에도 관자놀이에도 볼에도 입술에도 다시 입맞춰줬다. 머리 아파요? 속삭이듯 물었다. 그러자 그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랑스러웠다. 

 

나는 조금 뒤. 잠든 그의 이불 안을 비집고 들어가 습관처럼 모로 누워 있는 등을 살며시 끌어 안았다. 상체만 일으켜 미동 없는 그의 옆모습을 내려다봤는데, 그 때 우연히 입술에 그의 귓바퀴가 닿았다. 또 열이 오르려는지. 뜨끈했다. 귀에 얕게 키스했는데 그는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 몰래 하고 싶은 말 하나를 생각해냈다. 그 사람도 많은 말을 돌려 말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원필아.

사랑해.

 

패딩을 입어도 조그만 그 사람을 왠지 안아 주고 싶었다. 김원필도 나를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따금 그가 나를 영화 보듯 바라보는 걸 알았다. 김원필이 모딜리아니 그림체로 그려지는 상상을 했다. 눈동자 없이, 왜곡된 실루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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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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