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얘기-영화관 얘기


 11일에 수면의 과학이 재개봉했다. 고등학생 때 처음 본 영화였는데, 극장에서 꼭 다시 보고 싶어서 피곤하지만 퇴근하고 이대로 갔다. 영화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봤는데, 대학교 안에 있는 극장이라 근처에 식당이 많아서 좋았다! S를 이대역에서 만났고, (사실 혼자 갔으면 잘 몰라서 대충 보이는 가게에서 때우고 말았을 텐데 S가 이대생(그리고 무려 6학년)이라 근처 맛집에 빠삭했다.) [프라이드 킹]이라는 핫도그 가게에서 수제 핫도그를 먹었다.

내가 먹은 건 핫BBQ 세트. 감자튀김 소스는 갈릭 뭐시기였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갈릭델리? 델리갈릭?내가 먹은 건 핫BBQ 세트. 감자튀김 소스는 갈릭 뭐시기였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갈릭델리? 델리갈릭?

 내가 시켰던 것도 괜찮았는데 '쉬림프로제'가 정말 맛있었다. 로제 쉬림프였나.

 둘 다 퇴근하고 만난 거라 밥만 먹고 카페 들를 시간도 없이 바로 영화관으로 갔다. 모모에서 손거울을 줘서 모모로 간 거였는데 이미 다 소진됐다고 해서 결국 못 받았다... (ㅜㅜ) 모모는 처음 가 봤는데 티켓이 예뻤다.

 2관은 생각보다 단차가 엄청 심했고, 스크린도 엄청 컸다. 그래서 F열이 딱 적당했다. 음식물/음료 반입이 안 된다. 음료 사서 들어가려고 했더니 물만 반입된대서 그냥 갔음.. ㅜㅜ 씨네큐브 처음 갔을 때 멋모르고 카페음료 샀다가 낭패 봤던 기억이 있어서 미리 전화해서 확인했다. ECC 안에 있는 영화관이라 작을 줄 알았는데 관도 엄청 크고 좋다! 대신 난방을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 관내가 너무 추워서 옷을 두르고 있었다. 어디서 자꾸 외풍이 드는지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영화 끝날 때쯤엔 너무 춥더라. 코가 다 시렸을 정도.



이제 진짜 영화 얘기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것 자체가 두근두근 했다. 고등학교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미셸 공드리에 완전 빠졌다. 옛정(...)이 있어 지금도 좋아하긴 하는데 예전만큼은 아닌 거 같다. 좋은 감독을 더 많이 알게 되어서 그런지. 그래도 어떤 감독을 제일 좋아하냐 물으면 미셸 공드리 얘기는 꼭 한다. 그리고 꼭 덧붙이는 건, 그가 좋은 스토리텔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 그리고 더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이 사람의 캐릭터들이 싫어진다는 것도.

 그래서 어제 <수면의 과학>을 봤을 때 이 영화를 계속 좋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많이 고민했다. 미장셴이 너무 좋고, 그건 부정할 수 없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제일 좋았던 장면은 스테파니와 스테판이 '메르'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서 부엌으로 달려가 물을 트는데 거기서 셀로판이 쏟아질 때. 그 때 그 스톱모션 때문에 홀린 것이다... 다시 봐도 역시 여전히 그 장면이 제일 좋았다.

 근데 사실 스테판이 내 이웃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크리피하다. 스테파니도 말하고 스테판도 말하는 부분이지만.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큐티뽀짝이지만 스테판은 좀.. 음 좀 그렇지. 주택 무단침입에 성희롱에 성추행에 그것만으로도 너무 싫다 못해 혐오스러운 이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좋아해야 하는지, 빻은 영화라고 싫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싫어해야 마땅한 영화인데 싫어하기가 힘들다.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지만, 사실 나는 이런 미장셴들을 사랑하지 않기가 힘들다.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건 <무드 인디고>를 보고 나서도 했던 생각인데, 이 스톱모션을 작업하려면 엄청난 인력이 들어가야 했을 텐데 그 작업환경은 어땠을지에 대한 것들. 재활용품을 사용해서 찍은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재활용품은 누가 어떻게 모았으며 어떻게 작업했는가에 대한 것들도.

 S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말했다.

 "막내 스태프들이 힘들었겠다. 저 골판지 다 오리고 붙이고 만들고." 그러게, 라고 짧게 대답했지만 나도 좀 궁금해졌다. 영화 작업환경에 대한 인터뷰 같은 걸 찾아보고 싶은데 모든 인터뷰가 불어일 것 같아서… 아무튼 후에 적당한 기사나 인터뷰를 찾는다면 링크를 추가하기로.


 분명한 건 이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수면의 과학>을 처음 보고 너무 좋아서 그 다음해에 집에서 엄마와 함께 다시 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이 영화를 별로 안 좋아했고, 심지어 보다가 잤다. 공드리 영화 자체도 별로 안 좋아한다. (최근에 <무드 인디고>를 같이 봤는데 그것도 안 좋아했다. '그나마' 재밌게 본 건 <이터널 선샤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이 영화의 분위기가 좋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가 모호하고, 그런 걸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고, 이상하고 어설프지만 그래서 좋은 것. 소품도 잘 사용했고, 조명도 좋고, 앵글도 좋고, 스톱모션도 좋고, 음악도 좋다. 처음 보고 나서 사운드트랙을 한동안 듣기도 했다. 그 중에 <Coutances>란 곡은 아직도 자주 듣는다. 그리고 <If you rescue me>도.

&quot;If you rescue me, i'll be your friend forever&quot;

 이 노래는 정말 당연하게도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노래다. 원곡을 좋아했기 때문에 듣자마자 수면의 과학 사운드트랙의 '최애곡'으로 꼽았던 곡이다. (After Hours: https://youtu.be/fND_Y6OgsDs) 지금은 의외로 <Making Certain>을 제일 좋아한다. <Golden the pony boy>도 좋아한다. 노래 부른 사람이 kimiko ono라는 건 그렇게 자주 들었으면서도 오늘 처음 알았다. 어지간히도 무심했구나.

 <수면의 과학>에 대해 얘기할 때 쓸 만한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다가 알았다. 영화는 공드리의 자전적 이야기이고, 영화를 제작하기 6, 7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것. 커다란 손이 달린 남자가 인터뷰하는 꿈을 꾸고 그걸 영상화하려고 했다고. 내가 영화에서 제일 싫어하는 '기'도 공드리가 달력회사에서 일할 때 만난 '기'라는 직장동료에게서 따온 캐릭터라고 한다. 음...

 지금은 더 쓸 말이 없는 것 같아서 마무리한다. 영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스테파니, 70살에는 나랑 결혼해 줄래? 그때는 잃을 것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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