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완전하다. 혹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조롱하는 자가 있다면 가혹한 벌을 내려라.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오만불손한 자는 철저히 짓밟아서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어린 아르테미스가 아버지 제우스에게서 끊임없이 들었던 말이었다. 


'하마터면 활을 꺼낼 뻔 했어. 만약 화를 이기지 못해 포브스를 쏴 버렸다면 시리우스가 많이 슬퍼했겠지. 그리고... 포브스는... 내 동생이기도 해. 이런 미친 족보...'


아르테미스 여신은 시리우스와 포브스가 자신의 동생이라는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변신하기 전에는 그들이 개의 모습이어서 그 사실을 잊었다. 변신한 후에는 시리우스가 다프네와 똑같이 생겨서 다프네 생각을 하느라 정신없어 그들이 동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신은 다프네와 얽힌 옛날 일이 다시 떠오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생각하지 말자. 쟤들은 아무 잘못 없어. 그리고 시리우스는 아버지가 누군지 관심없다고 하니 그걸로 된 거야.'




포는 내 뒤에 서서 나를 안았다. 나는 포의 팔을 풀고 뒤돌아 포의 눈을 보며 말했다. 

"포, 왜 그랬어? 위험했잖아."

"시리..."

"네가 죽는 줄 알았어..."

나는 포가 죽는다는 생각만 했을 뿐인데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화가 나서 그랬어. 시리가 당한 거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나."

"포, 그날 밤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 여신님 스스로 그만 두셨어. 정말 날 가지실 생각이셨다면 내가 여신님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또 나를 엄마로 착각하신 거야. 그때 술에 많이 취하셨거든."

"다 필요없어, 시리. 나와 함께 떠나. 행복하게 해 줄게. 나 시리만 볼 거니까." 

포가 내 손을 잡으며 애원했다.

"포, 이미 말했잖아. 난 포레이아를 떠나지 않아." 

"난 여신님이 미워."

"포, 그러지 마. 여신님은 고아인 우리 자매들을 거둬 주셨어. 여신님이 안 계셨다면 우린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굶주리고 천대받으며 살았을 거야. 그리고 여신님 덕분에 지난번 변신 때문에 심하게 아팠을 때 너와 자매들이 살 수 있었던 거야. 여신님을 미워하지 마, 포." 

"그건 그렇지만...시리, 이제 우린 다 컸고 더 이상 개가 아니야. 마을에서 사람들과 살 수 있어."

"우리끼리 뭘 해서 먹고 살 건데?"

"나... 돈 있어."

"돈? 돈이 어디서 난 거야? ... 근데 포, 대체 누가 너한테 그날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준 거야?"

나는 갑자기 포가 어디서 그날 일을 들은 건지 궁금했다.

".........."

"포, 대답해."

"...그건...히아님이 얘기해 줬어."

"히아님이? 너 히아님을 만났어?"

"시리와 함께 떠나라고 했어. 히아님이 여신님을 좋아한대."

"........ 포, 일단 터마부터 정리하자."


포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욕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에 네프님이 히아님에 대해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여신님이 날 예뻐하시니 히아님이 질투하는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쁜 님프가 아니니 히아님 때문에 속상해도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번에 히아님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셨다.  


'이건 그냥 넘길 수 없어. 하마터면 포가 여신님의 노여움을 사서 죽을 뻔했어.' 


일이 끝난 후 나는 포의 손을 잡고 히아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둘이 같이 온 거지?"

우리는 숙소 요정님의 안내를 받아 히아님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일을 보셨다고요?"

내가 말했다.

"응.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봤어. 그거 확인하러 왔니?"

"히아님한테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요."

"훗. 긴 말 할 거 없어. 내가 하라는 대로 여길 떠나. 돈은 충분히 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여신님을 좋아하신다면서요? 그래서 절 치워 버리고 싶으신 건가요?"

"잘 아네. 너 같은 애 딱 질색이야. 양다리 걸치는 거잖아. 동생 마음 다 알면서 그러는 거 나쁜 애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건 우리 일이고요. 전 절대 포레이아를 떠나지 않아요. 그러니 히아님은 앞으로 제 동생 불러 내서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그 말 하려고 왔어요. "

"뭐라고? 이게 건방지게 어디서..."

"가자, 포."

나는 포의 손을 잡고 나왔다. 포는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 나왔다.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감히 내게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를 내? 여신님이 좀 예뻐한다고 눈에 뵈는 게 없네. '

히알레는 방금 시리우스가 한 말을 곱씹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좋게 내보내려고 했는데 말을 안 듣네.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지.' 

히알레는 메데이아의 집에 다녀온 후 짧아진 머리가 얼굴 앞으로 흘러 내리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어. 히알레가 곧 날 찾아 오겠군.'


메데이아는 히알레의 은비늘을 손에 쥐고 웃고 있었다. 포레이아에서 벌어지는 일이 눈앞에 생생하게 보였다. 

'오만한 아르테미스. 나를 무시하고 내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했지? 이제 네가 당할 차례야.'  



메데이아는 콜키스의 왕녀였다. 그녀에게도 신의 피가 흘렀다. 할아버지가 태양을 운행하는 헬리오스 신이다. 그리스 영웅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얻으러 콜키스에 왔을 때 한눈에 반해 마법을 이용해 그를 도왔다. 그것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동생을 찢어 죽이는 비극을 초래했지만 메데이아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후 이아손과 결혼해 자식을 여럿 낳았지만 메데이아는 남편에게 배신당했다. 이아손은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멀어 부인 몰래 왕녀와 결혼하려고 했다. 남동생까지 죽이고 남자를 선택했는데 돌아온 건 차가운 배신이었다. 메데이아는 분노했다.우선 왕녀를 죽이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까지 모조리 죽여 버렸다. 하지만 남편만큼은 차마 죽이지 못했다. 에로스에게 맞은 사랑의 화살이 아직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메데이아는 여자들만 모여 산다는 포레이아에 의탁하고자 아르테미스 여신을 찾아왔다.


"포레이아는 정말 좋은 곳이군요. 저 메데이아는 여기서 살고 싶습니다. 여신님, 부디 허락해 주세요."

"흠... 여긴 처녀맹세를 해야 살 수 있어. 너는 남편이 있지 않나?"

"헤어졌어요."

"어쨌든 포레이아는 이성과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자들이 사는 곳이야. 넌 들어올 자격이 없어."

여신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도 이제부터는 여신님처럼 살고 싶어요. 독립적으로 살 능력은 충분히 있어요. 제 마법과 치료 기술은 최고랍니다. 여신님께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메데이아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너... 순결하지 않잖아?"

여신이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메데이아를 차가운 눈으로 보았다.

"네? 순결하지 않은 건 제 남편이었어요. 왕녀와 바람나서 절 버렸어요. 전 피해자예요."

메데이아가 항변했다. 

"글쎄... 네가 네 남편 이아손과 어떻게 콜키스를 빠져 나왔는지 그 과정은 올림푸스 신들의 입에까지 오르내렸어.  남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자를 포레이아에 들일 순 없어. 그리고 너... 최근엔 자식들까지 죽였다지? 미운 건 남편인데 왜 죄 없는 자식을 죽인 거야? 널 받아 줄 수 없어. 그만 가 봐."

여신은 메데이아를 경멸했다. 여신의 표정을 본 메데이아는 미소를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훗...그럼 처음부터 그것 때문이라고 거절하시지 왜 어렵게 말을 돌려 하셨을까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메데이아는 여신에게 공손히 인사했지만 뒤돌아 선 그녀의 얼굴은 무시무시했다.


'천지간 아무도 없는 나를, 갈 곳 없는 처량한 신세인 나를 이렇게 매몰차게 거절하다니.  당신만큼은  날 이해해 줄 거라고 믿었는데... 오늘 내가 받은 수모는 절대 잊지 않을 거야.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아.' 


메데이아는 스스로를 결혼의 피해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제우스 앞에서 비혼선언을 한 순결과 처녀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몸을 맡기고 의지하며 남은 인생을 살려고 했다. 메데이아는 스스로의 미모와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 때문에 여신이 자신을 쉽게 받아줄 것이라 예상했다. 기대와는 달리 지독한 경멸과 냉정한 거절을 경험한 메데이아는 여신에게 원한을 품었다. 






포와 나는 히아님의 숙소를 나와 우리 숙소로 왔다. 나는 먼저 씻었다. 그리고 전에 타야님이 주신 크림을 손에 바르려고 병을 열었다.

'이런, 이제 거의 다 썼네. 또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러고 있을 때 포는 침대에 앉아 바닥만 보고 있었다. 

"포, 안 씻을 거야?"

"...시리, 정말 괜찮아? 여신님 계속 볼 자신 있어?"

"포, 난 여신님이 무섭지 않아. 속은 따뜻하신 분이야. 어렸을 때부터 우린 여신님을 죽 봐 왔잖아."

"씻고 나올게."

포는 힘 없이 일어났다. 포가 씻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 일을 생각했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어... 근데 아까 신전에서 여신님이 뭐라고 하신 거지? 내가 뭘 시작했다는 걸까?'

포는 씻고 나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내 옆에 누웠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포, 잘 자."

"응. 시리도 잘 자."





다음날 여신님은 또 사냥을 취소하셨다. 돌아가도 된다는 네프님의 말씀에 신전 앞에 모인 우리 자매들은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 여신님 대체 왜 이러시는 거지? 사냥하고 싶다고."

"우리가 멧돼지를 한곳으로 몰면 여신님이 활을 딱 꺼내서 쏘는 거 보고 싶다고!"

"오늘도 우리끼리 무작정 달려야 하는 건가?"

"이참에 활 쏘는 걸 배워 볼까? 우리끼리 사냥하면 되는 거 아냐?"

"우리가 활이 어딨어?"

자매들은 투덜거리며 숲으로 들어갔다.


"시리우스, 포브스. 너희들은 안 가니?"

"네프님, 여신님에게 정말 아무 일 없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시리우스. 오늘은 약속 때문에 사냥 못 하시는 거니까."

"약속이요?"

"응. 그럼 나중에 터마에서 보자."

네프님은 우릴 보고 상냥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신전으로 들어가셨다. 




"여신님, 멜로디아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고 할까요?"

"멜로디아?"

"최고의 연애 전문가를 데려오라고 하신 거 잊으셨나요? 지금 여신님을 뵙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펠라이, 역시 일처리가 빠르구나. 빨리 들어오라고 해."


곧 멜로디아가 여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여신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엇, 뭐야? 술 잘 먹게 생겼네 ... 지나치게 평범하잖아. 진짜 연애 전문가 맞아? 술 전문가가 온 거 아냐?"

"역시 소문대로군요. 외모 엘리트주의자라더니... 아무리 그래도 보시자마자 제 외모 품평부터 하시다니 너무하십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우신 아르테미스 여신님."

"연애 전문가라고 하길래 외모가 어느 정도는 되는 줄 알았지."

"아름다움은 타고 나셨지만 에티켓은 갖추지 못하셨네요. 그래 가지고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하시기 어려우실텐데요. 무엇 때문에 절 부르셨는지 벌써 느낌이 옵니다."

"........."

"연애는 애티튜드. 여신님은 아름다움으로 상대의 시선을 쉽게 사로잡으실 수 있으시겠지만 연애는 그게 전부가 아니랍니다. 입만 열면 홀딱 깨는 소리를 하시면 누구라도 못 버티고 도망갈 걸요? 섹파를 구하시는 게 아니라 마음을 얻고 싶으신 거죠? 섹파를 구하시는 거라면 굳이 비싼 저를 부르시지도 않으셨겠지만."


멜로디아는 여신이 자신의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순식간에 견적을 내버렸다.  

"맞아. 마음을 원해. 물론 몸도."

여신이 말에 멜로디아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지금 반말하신 건가요? 전 선생이고 여신님은 배우는 입장인데요? 저 그냥 갈까요, 여신님?"

멜로디아가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지 마..세요... 하아..."

여신은 멜로디아를 존대하며 한숨을 쉬었다. 


"마음을 얻으면 몸은 자연스럽게 따라 온답니다. 그럼 어떤 분과 사랑에 빠지셨는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말씀해 보세요. 하나라도 빠뜨리시거나 숨기시지 말고 전부 다."

여신은 시리우스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멜로디아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말없이 듣기만 하던 멜로디아가 여신이 이야기를 끝내자 혀를 끌끌 찼다.


"아주 가지가지 하셨군요, 여신님. 게다가 억지로 그런 짓까지 하시다니... 사과는 당연히 하셨겠죠?"

"아니...내가 사과는 절대 못해...요. 신은 사과하는 게 아니라고 아버지한테 배웠거든...요."

"아버지라면 제우스 님? 그 소문난 레이피스트? ... 아...여신님, 용서해 주세요.평소 생각해 오던  걸 그만 입 밖으로 내버렸어요...부디 아버님께는 비밀로 해 주세요. 벼락맞아 죽기 싫습니다."

"그건 나도 원하는 바. 어디 가서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을 떠벌리고 다니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여신은 싱긋 웃으며 은활을 소환해 멜로디아에게 보여 줬다. 

"아.. 그럼요. 저는 의뢰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해 드립니다. 걱정마세요, 여신님.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일단 긍정적인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말과 행동이 상충할 때는 행동을 믿으세요. 그런 일을 당하고도 꽃을 가져오고 여신님의 몸까지 몰래 만졌다면 여신님에게 관심있는 겁니다." 

멜로디아가 입꼬리를 올리며 활짝 웃었다. 






여기는 아르테미스 여신님이 다스리시는 평화로운 포레이아. ^^


GL 레즈 백합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첫 소설은 엘.컴플렉스이고, 사랑에 서툴고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연재 중 갑자기 새 소설이 떠올라 아르테미스의 견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재소설과 단편소설을 꾸준히 올릴 예정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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