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들은 허약했기 때문에 나쁜 것들에게 쫓겨 하늘까지 올라가야 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갈 수 있겠습니까?“ 좋은 것들은 제우스에게 물었다. 그는 좋은 것들에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되 한꺼번에 몰려가지 말고 하나씩 가라.‘고 말했다. 나쁜 것들은 가까이 사는 까닭에 늘 사람들을 공격하지만, 좋은 것들은 하늘에서 하나씩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드문드문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 이솝 우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 -



 '[00대] 합격을 축하합니다! 등록기간 2월 00일.'


 문자 한통에 가슴이 그렇게 뛰기는 처음이었다. ‘대학 가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야기하셨던 부모님의 이야기가 곧 현실이 된다. 시간표를 내가 직접 짤 수 있다니, 캠퍼스 생활은 또 얼마나 멋질까? 와, 나도 대학생이다!


 '어우 씨, 죽겠다 진짜.'


 언제 그랬냐는 듯 대학 입학 후의 나는 고등학생 때와는 또 다른 고민들과 생각에 둘러싸여서는 괴로워했다. ‘도대체 작년에 0교시부터 야자까지... 나는 어떻게 그 모든 걸 한 거지?‘ 생각할 만큼 아침 수업은 곤욕이었다. 물론, 교수님들은 내가 졸던, 레포트가 밀리던 아무런 말씀 없으셨다. 다만 내 성적표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이 되셨었지.


 어디 대학생활만 그랬겠나? 월급날 쇼윈도에 멋지게 전시되어 있던 옷을 보며 ‘이거 다 주세요’ 말하고 신나게 카드를 긁었다. 그때는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옷은 ‘질리는 옷’  ‘헌 옷‘이 되어 버린다. 유튜브에서 열심히 리뷰를 보고 비교를 해본 뒤 제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조건으로 최신 폰을 샀다. 일주일 정도는 행여나 흠집이라도 날까 싶어 만지는 것도 조심했는데, 어느 새 퇴근 후 옷을 갈아입으며 침대에 핸드폰을 휙 던지는 내 모습이 보인다. 

  

 "와, 왜 이렇게 힘들어? 계단 오르는 게 이렇게 숨찰 일이야?"


 일상에는 경고도, 티저 영상도 없다. 어느 정도 예상 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갑작스레 바뀐다. 14세기 유럽을 덮쳤던 그 병이 유럽 사회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처럼, 2020년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 19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 


 어딘가를 방문할 때는 출입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것은 물론, 맨 얼굴로 나갈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물론,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마스크는 일상과 뗄 수 없는 필수가 되었다. 그제야 우리는 깨닫는다. 맑은 공기를 마스크 없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런 것들을 보면 무엇이 좋은 것이고, 또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이 돌아서면 짜증과 우울을 부르기도 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없어지고 빼앗겨 봐야 ‘아, 그게 좋았던 거구나’ 깨닫는 일은 나와 당신, 사람의 일이다. 


 ‘매일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우리의 일상에, ‘오늘 잘 할 수 있어!‘ 아침에 세수를 하며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나에게 정말로 좋은 일들만 일어난다면, 그건 정말 좋은 일일까? 아니, 그걸 정말 좋은 일로 느낄 수 있을까? 


 "어우 야, 너 향수를 얼마나 뿌린 거야?"


 하루는 직장 동료에게 '향수를 너무 많이 뿌린 게 아니냐'며 핀잔을 들었다. 사실, 향수를 뿌린 나 자신이 맡기에 향이 평소보다 덜 나는 것 같아서 더 뿌리긴 했다. 알고보니 후각이라는 게 그렇다고 했다. 자주, 오래 맡으면 둔감해지고, 그래서 나는 ‘향이 안 난다’고 생각하고 과하게 뿌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찌뿌리게 만들었다.


 '지이이잉!'


 요란하게 손목이 울렸다. 스마트 워치를 확인하니 경고 메시지가 떠있다. ‘현재 음량을 장시간 유지할 경우 청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볼륨을 높인 모양이었다. 조용한 곳에 가서 다시 재생을 누르고 나는 새삼 ‘스마트 워치를 쓰길 잘했다’ 생각했다. 음악을 한참 들을 그땐 주변이 시끄러워서 몰랐지만, 알고 보니 볼륨이 평소의 두 배가 넘게 올라가 있었거든.


 어쩌면 마음도 코와 귀를 닮았는지 모른다. '매일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생각하지만, 그것들로 오는 기쁨은 잠시, 향기를 맡지 못하는 코처럼, 시끄러운 환경에 맞춰 더 올라가는 볼륨처럼 우리는 무감각해지고, 행복한 일은 당연시 되며, 결국 또 우리는 불평하고, 더 원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는 생생한 감각이 필요하다. 과거의 것들을 그리워하는 일도, 미래의 것들을 기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생생하게 느낄 감각이 필요하다. 행복한 일들, 좋은 일들은 매일 없을지 모른다. 아니, 매일 없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좋은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들 속에서 혹시 행복을 찾을 수는 없을까?


 혹시나 오해가 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애써 감사하라’ ‘그래도 감사하라’는 말을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현재를 보다 더 생생하게 느끼고, 농밀하게 씹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슨 맛이 느껴질지, 어떤 감정이 당신에게 들어올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무감각한 것보다 낫지 않을까?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그게 더 좋지 않을까? 


 한번 뿐인 인생이라면, 거기에서 우러나는 모든 맛들을 조금이라도 더 농밀하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쓴 맛도 오늘을 보다 더 생생하게 살 수 있는 건강한 맛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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