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덕하고 불경한 소재를 사용하였습니다.
  •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 카즈사토 커플링의 성별 반전입니다. 둘 다 성별 반전되었습니다.
  • 피드백은 다음편 창작에 도움이 됩니다.(^^)
  • 결제창 이후는 미사포/베일의 의미와 본 글에서 신이 가지는 설정에 대해 간략하게 풀었습니다. 보지 않으셔도 본 글을 이해하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주님의 은총안에 행복한 한주 되십시오.”

  마이크를 타고 퍼지는 목소리에 주변은 감사합니다. 하고 답했다. 여자들은 머리에 뒤집어 쓴 미사포를 끌어내려 정리했다. 펼쳐 놓은 성가책을 덮고, 꺼냈던 전례책을 다시 가방에 넣는 사람들의 손이 분주했다. 사토코는 그저 멍하니 책을 덮고 가방에 넣을 뿐 미사포를 벗거나,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며 가볍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사토코는 그저 목만 까딱여 인사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당 안을 빠져나갔다. 사토코와 마찬가지로 미사책을 정리만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지나치며 사토코의 가방을 건드렸다. 가방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살짝 흔들려 아래 두었던 휴대폰이 보였다. 무음으로 설정해놓은 휴대폰의 화면은 반짝였다. 전화를 수신하고 있는 화면에는 지겨운 번호가 떠올라 있었다. 사토코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가방을 끌어와 화면 위를 덮은 사토코가 양손을 꽉 모아 쥐고서 눈을 감았다. 난 전화가 온 줄도 모르고 기도했던 거야. 아픈 아버지를 위해 간절히 빌고, 또 빌고 있던 거야. 전화를… 일부러 안받은 게 아니야.


  고요함 속에서 신을 찾아 빌고 비는 사토코의 얼굴은 여느 신자와는 달리 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사토코의 머릿속은 신이 아니라 그녀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갑작스레 쓰러진 아버지로 인해 사토코의 인생은 꼬일대로 꼬였다. 거의 유일하던 수입이 아버지의 병환으로 인해 막혔다. 어머니와 오빠는 당연하다는 듯 사토코에게 손을 벌렸다. 사토코는 아무런 반항 없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어머니와 오빠의 요구를 수용했다. 아픈 아버지의 간병 또한 사토코의 몫이었다. 소변과 대변을 받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수시로 아버지의 몸을 들어 닦아드려야 했으며, 밤새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고 가슴 졸이는 것 조차도 사토코가 해야할 일이었다. 이것이 매우 불합리하고 사토코 혼자 감당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토코는 어머니나 오빠에게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다. 사토코는 천천히 지쳐갔다.

  사토코의 속이 썩어 문드러져 더는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그녀는 신을 찾았다. 부처, 하느님 외에도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신이란 신은 전부 찾아가 빌었다. 그렇게 신을 찾아 비는 동안에도 사토코는 자신의 안위와 행복이 아닌, 아버지의 건강에 대해 빌었다. 사토코는 순진했고 멍청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병을 털고 일어나면 당연히 전부 해결 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사토코는 기댈 수 없는 것에 기댔고, 절대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을 여러 신께 빌었다.

  아무리 빌어도 아버지의 병환에는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더는 차도가 없을거란 의사의 말에 사토코는 아버지의 핏기 없는 손을 붙잡고 펑펑 울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토코는 신을 찾아 매달리는 일을 그만 두지 못했다. 이미 바스라진 희망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놓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겠다고 합장한 손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바스라졌어도 사토코의 손에 있는 것은 흩어지지 않은 희망이었다.


  사토코는 아버지와 앞으로의 걱정들을 하릴 없이 떠올렸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생각들을 그저 떠오르는 대로 두었다. 억지로 지운다고 지워질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참 멍하니 생각하던 사토코가 이내 간절히 바라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낫게 해주세요.”

  중얼거리는 입술은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환을 떨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다 문득, 사토코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정말 내가 바라던 일이던가? 사토코는 고개를 들어 높이 매달린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축 늘어진 예수는 자비롭지 않았다. 사토코는 손에 쥐었던 희망이 흩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아무리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해도 결국은 손을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은 희망이었다. 사토코는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을 쥐고 다시 간절히 바랐다.

   “신이 있다면, 정말 신이 있다면. 날 가엾게 여겨주세요.”

  모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나를 가여워 해주세요.

   “나도 당신의 백성이 아닌가요? 내게 내린 시련을 거둬주세요. 나를 시험하지 마세요.”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떨었다.

   “나를 구해주세요. 그렇다면,”

  사토코는 눈을 떠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제가 뱉을 말은 참으로 불경한 말이 될 테니.

   “그렇다면 그게 누구든 신으로 섬기겠어요.”

  말로 뱉고 보니 더 불경했다. 사토코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사토코는 속으로 속삭였다.


  그렇게 또 수 분이 지났다. 누군가 사토코의 어깨를 건드렸다.

   “얘.”

  사토코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분명 밝았던 성당 안은 어두컴컴했다. 당황하며 주춤주춤 일어선 사토코는 제 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꽤 예쁘게 생긴 얼굴이었다. 사토코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아무도 없는 성당과 어둑한 바깥. 문을 닫을 시간을 훌쩍 넘긴 것 같았다.

   “아, 어, 죄, 죄송해요. 지금 나갈게요.”

  사토코의 말에 여자는 다시금 웃었다. 허둥대는 사토코의 어깨를 꾹 잡아 다시 앉히고는 눈을 마주했다.

   “카즈코란다.”

  사토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짜고짜 이름이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않는 그녀에게 카즈코는 천천히, 그리고 나긋하게 말을 건넸다.

   “나는 널 내보내려고 온게 아냐, 사토코.”

  제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란 사토코는 카즈코의 손을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다. 얇은 팔뚝과 작은 손에서 나온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에 사토코의 몸부림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카즈코는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겁먹지 마렴. 네가 날 찾았잖니.”

  

비뚤어진 베일을 다시금 바로 씌워주는 손길이 퍽 다정했다. 가만 서서 사토코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고쳐 씌워준 미사포에서 여전히 손을 떼지 않은 카즈코가 낮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엾게 여겨달라고 하지 않았니? 널 구해달라며.”

  사토코는 입을 다물었다. 제가 중얼거리며 기도한 내용을 읊는 카즈코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며 침을 삼켰다. 꽃이 수놓인 베일의 끝을 매만지던 카즈코가 헤어라인에 맞게 씌여 있던 것을 조금씩 끌어내렸다. 카즈코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의심의 빛이 깃든 눈동자가 저를 바라보자 카즈코는 허리를 숙였다. 사토코의 귓가를 가린 베일 살짝 걷어내고 속살댔다.

   “널 구해주면 누구든 신으로 섬기겠다며.”

  사토코는 파드득 놀라 몸을 떨었다. 귓가에 닿는 숨이 어색했고, 온기가 낯설었고, 자칫 입술이라도 닿을까 걱정이었다. 몸을 뒤로 빼려는 사토코의 얼굴을 붙잡은 것은 베일을 쥔 카즈코의 손이었다.

   “내가 널 가여워 해줄게. 그러니 날 섬겨.”

   “그게 무슨,”

  카즈코는 숙인 허리를 폈다. 살짝 걷어내었던 베일을 다시금 씌워 주었다.

   “지쳤잖아. 힘들었을테고.”

   “….”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삶을 끝내고 싶지 않니? 혼자서 간호하는 것이 지겹지는 않고? 네가 아니면 노력도 하지 않을 네 어머니와 오빠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아?”

  사토코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카즈코가 내뱉는 말은 사토코의 욕망이었다. 저 밑바닥에 숨겨 놓은 추악한 본심이었다. 사토코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착한 딸, 착한 동생이어야 했던 제가 숨긴 것을 전부 드러내는 것이 그 어떤 치부를 들킨 것 보다 더 부끄러웠다. 카즈코와 마주했던 눈동자가 옆으로 굴러가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았다. 주님, 도와주세요. 사토코가 눈을 움직인 만큼 카즈코도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네 주님은 널 도울 수 없어.”

   “….”

   “그도 그럴게,”

  카즈코가 쥐고 있던 베일의 끝이 얼룩진 듯 조금씩 검게 물들어갔다.

   “네가 섬겨야 할 신은 이제 나 뿐이니까.”

  하얗던 베일은 점차 까맣게 변했다. 카즈코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나는 네가 원하는 자유를, 행복을, 구원을 줄 수 있어.”

   “…저는 그런 걸 바란게 아니에요.”

   “거짓말. 신 앞에서 그런 눈에 보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

   “그러니, 사토코. 나를 섬겨. 나를 네 신으로 받들어.”

  베일은 완전한 검정으로 물들었다. 하얗던 부분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다. 카즈코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베일을 놓았다. 카즈코는 두려움과 의심의 눈을 한 채 다시금 카즈코 뒤의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의심하고 있니? 의심하지 말렴, 사토코.”

  카즈코는 사토코의 턱을 쥐고 제 쪽으로 향하게 했다.

   “넌 이제 저자의 백성이 아냐. 십자가에나 매달려 있는 신이, 네 욕망을 들어 줄 수나 있겠니?”

   “…아니에요.”

   “이런, 사토코. 한때나마 섬겼던 신의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겠다 말하는 게 불경스러워서 망설이는 거야?”

   “….”

  카즈코는 웃었다. 검은 베일을 더욱 깊게 눌러 씌워주며 속삭였다.

   “괜찮아. 이미, 네가 섬겼던 주님은 죽어서 장례를 치루어 주었는데 무엇이 두려운 거야?”

  카즈코의 눈이 번쩍였다. 욕망과 욕정, 탐욕과 같은 더럽고 질척이는 무언가로 점철되어 있었다. 카즈코는 사토코의 손을 쥐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번쩍이는 눈으로 휘어지게 웃었다. 사토코는 여전히 두려웠다. 그럼에도 카즈코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해서 사토코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내가 널 구원할 거야. 너는 나의 유일한 신자이자, 사랑하는 백성이 될 테지.”

   “…네.”

   “네가 날 믿는 한 나는 너를 배신하지 않을게. 네가 날 섬기는 한 나는 너를 언제나 구원해줄게. 네가 날 받드는 한 내 사랑은 오롯하게 너를 향할 거야.”

  사토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즈코는 눈이 부시게 웃었다. 사토코는 그렇게, 다시 또 신을 섬겼다.

  










이 이후는 본 글에서 가지는 미사포/베일의 의미와 신의 존재에 대한 설정을 풀어 놓은 것으로,

원치 않는 분이 계실까봐 소액 결제를 걸어 놓았습니다.

굳이 읽지 않으셔도 본 글이나 다음 편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세요? 포스트를 구매하고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해보세요.

  • 텍스트 800 공백 제외
1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