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주시면 고맙겠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가장 큰 차이 점이라면 시험 인듯 시험 아닌 시험 같은 모의고사를 일정 달 마다 치른다는 것이었다. 입학 해 학교 생활에 적응 할 무렵이면 앞으로 3년간 주구장창 치를 3월 모의고사가 코 앞으로 훌쩍 다가왔다. 처음에 다들 중간 기말은 뭐고 모의고사는 뭔지 헷갈려 하다가도 모의고사는 성적에 반영이 안된다는 말 하나에 금세 사그라 들었다. 모의고사가 중요치 않다는 속설이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이거는 변형이라 조금 어려울 수 있어.”


지금에야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모의고사는 3년뒤 치를 수능에 대비한 아주 중요한 시험이다. 명문대생 김도영을 오빠로 둔 김여주는 3,6,9월 마다 치르는 모의고사의 중요성을 진작에 깨달았다. 여주야 고등학교 들어가면 모의고사도 잘 챙겨야돼. 중학교 졸업식 이후 김도영은 전화로 그리 말했다. 특히 9월 모의고사가 중요하다는 말 또한 덧붙였다. 물론 처음 치르는 모의고사는 개차반으로 마무리 했지만 김여주는 틈틈이 오답 관리를 실시했다. 3월 모의 고사 풀이를 해주는 유튜브 인강을 돌려보기도 하고, 정 안되겠으면 이제노에게 물어보곤 했다. 나재민이나 이동혁은 모의고사 20분 만에 냅다 책상에 엎드려 잔 걸 알기 때문에 물어볼 사람은 이제노 뿐이었다.

이 문제는 기출이 변형 됐다며 어려울 수 있는거라 서두를 연 이제노가 차근 차근 문제 풀이를 가르쳐주었다.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니 이제노는 답을 낸 뒤 이해했어? 물어봤다. 세차게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정성스럽게 설명 해준 이제노의 노고를 반복 할 순 없었다.


“응. 이해했어.”

“그럼 풀어봐.”

“…응?”

“이해 못했네.”


이해했다 하니 풀어보라는 이제노. 당황해서 되물으니 앞에서 턱을 괸 채 다소 무료하게 지켜보던 이동혁이 픽 웃었다. 하도 얄미워서 들고 있던 샤프로 이동혁 머리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아 왜. 이동혁은 꼭 자기가 맞을 짓을 하고는 저 혼자 아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도 틀렸으면서.”

“난 맞았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이 어려운 문제를 이동혁이 맞았다고? 시험지 줘보라며 손바닥을 내미니 이동혁은 기꺼이 서랍에서 구겨진 시험지를 건넸다. 과목도 수학인데 이걸 맞았다고? 다른 애도 아닌 이동혁이? 믿기지가 않아 다급하게 종이들을 촥촥 넘겼다.


“내가 좀 운이 좋지?”

“………………….”


번호 위로 쫙 그인 김여주 시험지와는 달리 제 성격 처럼 크다 못해 옆 문제까지 침범한 동그라미가 여실히 드러났다. 풀이는 하나도 없고 오로지 운으로만, 찍기 신이 강림이라도 했나 이동혁의 3월 모의고사 수학 과목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동혁 면에서 보면 잘 본거나 다름없었다. 말도 안 돼. 세상의 이치라지만 썼다 지웠다로 가득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제 시험지와 빨간 동그라미만 아니었으면 새 시험지라고 해도 믿을 이동혁의 시험지를 번갈아 보던 김여주가 상실감에 빠졌다. 불공평한 세상.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그 공평하지 못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숨을 쉬고 살아간다. 제 아무리 꿀잠을 잔 이동혁보다 모의 고사를 못 쳤어도, 이상하게 사람들이 자신에게만 각박하다고 생각되어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숨을 쉬어야한다.


“이동혁 축구 하자~!”

“엉? 아 나 내일 할게.”

“나재민 너도?”

“응.”

“아 왜! 니들 없으면 재미없단 말야~ 다들 기다린다고!”


눈치가 없다고 유명한 사람도 묘하게 김여주 주위로 흘러가는 상황을 모를 수가 없다. 김여주를 자꾸만 힐끔 거리거나, 저들끼리 수군댄다. 삼총사는 묘한 이 상황에 아무 말도 얹지 않았다. 그저 더욱 촘촘하게 김여주를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쉬는 시간이며, 점심 시간에도 보통의 남자애들이라면 땀이 뻘뻘 흘리게 축구를 하거나 친한 남자애들끼리 사물함 뒤에서 이야기 꽃을 피울 텐데, 삼총사는 대체로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김여주와 함께 점심을 먹는 것도 모자라서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분 가량의 시간을 전부 김여주와 함께 보냈다. 또 하는 놀이는 어찌나 유치하고 단순한지. 어제는 알 까기를 했고, 그저께는 빙고 게임을 했다. 지금은 숫자 야구를 하는 중이고. 체육 시간 때 심상 찮은 이동혁과 나재민의 축구 실력을 보고 남자애들은 꼭 여름에 있을 축,농구 반 대항전에 이 둘을 껴 넣어야겠다 다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미리 팀워크 아닌 팀워크를 다져 놔야 되는데! 이놈들은 엉덩이를 뗄 생각을 안 했다. 옆 반 애들이랑 하는 축구에 이동혁과 나재민이 없으면 그대로 개발릴거라는 것을 확신해서 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아 가자고~! 축구공을 옆에 낀 체육 부장이 10분이 넘도록 징징 댔다. 그 옆으로는 짜증이 난 듯한 남자애들도 부추겼다. 야 좀 가자고.


“오늘 안 한다고 몇 번 말하냐?”


자고로 숫자 야구라 함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자꾸만 옆에서 들리는 징징 거림과 짜증에 이동혁 또한 신경질스럽게 답했다. 그러니 체육 부장 뒤로 있던 남자애들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시발 진짜 존나 여자애랑 허구언날 붙어 있어. 볼멘 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얘네 넷이 소꿉 친구 인건 알겠는데, 김여주라는 여자애는 무슨 친구가 없는 건지 맨날 삼총사랑만 붙어 있으니 같은 학급 남자애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가령 지금 같은 점심 시간이라던가.


“…하고 와.”

“엉?”

“나재민 너도. 축구 하고 오라고.”

“싫어.”


그 볼멘 소리가 김여주 귀를 타고 흘렀다. 얘들도 나름대로 참아준 거라고 생각한다. 삼총사가 김여주 소유도 아니고. 거진 일주일은 점심 시간 마다 제 옆에 붙어 있었으니 솔직히 얘들이 옆에 있으니 안심이 되고, 편했던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삼총사가 제 옆에 붙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위에서 이런 저런 불평이 들리니 당연히 마음이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볼펜을 닫고 종이를 내려놨다. 축구를 하고 오라는 말에 이동혁은 집중했던 미간을 피고 되물었고, 나재민은 시선도 떼지 않고 거절했다. 나재민 반응에 분위기가 더 싸늘해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이제노 나랑 도서관 가자.”

“나도,”

“너네 책도 안 볼거잖아. 그냥 축구 하러 가지?”


도서관이라면 치를 떠는 이동혁과 나재민이었다. 이동혁은 그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분위기에 소름이 끼친다고 했고, 나재민은 그냥 재미가 없다고 했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던 이제노는 중학교 때부터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렸다. 자리에 일어나 이제노를 데리고 나가 려니 이동혁과 나재민이 따라 일어섰다. 이제노와 함께 뒷문으로 향하며 책도 안볼거면서 축구나 하러 가라고 하자 체육 부장이 그래 그래 빨리 가자~! 라며 괜히 이동혁과 나재민의 맘이 바뀔까 그들의 등을 밀었다. 아 진짜 오늘은 날이 아니라고! 끌려가면서도 날이 아니라는 이동혁의 외침이 멀어지자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을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에 숨을 편히 쉴 수 없었다.


“책 뭐 빌리게?”


옆에 남은 이제노가 사근하니 물었다. 음. 그러게. 정말 책 때문에 도서관을 가는 게 아니라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가서 보지 뭐. 다소 충동적인 면모가 있는 김여주 였던 터라 만년 mbti j 성향의 이제노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김여주를 따랐다. 그래 그러자.




새학기라 그런가 도서관에 들어왔을 때는 사람은 5명 정도 뿐이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 또한 들어오는 김여주와 이제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조용히 컴퓨터로 할 일을 하셨다. 어째 사람이 없는데도 더욱 눈치가 보여 슬리퍼를 신었음에도 까치발을 들었다. 원래부터 경제학 쪽에 관심이 있던 이제노는 자연스레 경제학 서적 쪽으로 향했고 이동혁과 나재민 못지 않게 책이랑 거리가 먼 김여주는 그나마 접하기 쉬운 소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빼곡히 있는 책들을 쭉 둘러보다가 익숙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이 여기에도 있네. 손을 뻗어 해당 책을 꺼냈다.


<책만 읽는 바보>

중학교 시절, 한 때 매일 책만 읽는 이제노에게 이동혁이 책 하나를 선물해줬었다. 그게 바로 이 책인데 책 제목을 보자마자 김여주건, 나재민이건, 오죽하면 선물을 받은 이제노 또한 배를 잡고 웃었더랬다. 더욱 웃긴건, 저 책이 중학교 필독 도서였다는 것이었다. 아 그때 진짜 웃겼는데. 떠오른 추억의 잔상을 이제노에게도 말해주고파 조심스럽게 이제노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제노,”

“응? 골랐어?”


다가갔을 때 이제노는 답지 않게 집중한 표정으로 책을 고심하게 고르고 있어서 말을 괜히 걸었나 싶었는데 김여주를 보자 씰룩이며 웃었다. 이거 봐봐. 김여주가 책을 보여주니 이제노 또한 꽤나 놀란 듯하면서도 웃음을 지우지 않고 책을 받아들었다.


“책 골랐어?”


웃으며 <책만 읽는 바보>를 훑어보는 이제노에게 물었다. 이제노는 고개를 끄덕였고 뒤에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예비 종이 치기 5분 전이었다. 아 책 안 가져가면 김여주 너 도서관 간다는 거 거짓말이지, 라면서 툴툴 거릴 것 같은데. 책에는 무지한 터라 김여주는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이제노를 불렀다.


“나 책 아무거나 골라줘.”

“아무거나?”

“응. 근데 이왕이면 소설 책으로.”


아무거나라고 해놓고 소설 책으로 골라달라니. 이제노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책을 훑었다. 저가 있던 곳에 경제학 쪽인터라 이제노는 자연스럽게 김여주를 데리고 소설 쪽 코너로 발을 돌렸다. 책을 쭉 훑어 보던 이제노가 맨 위 쪽에 있는 분홍색 표지의 책 하나를 꺼냈다. 뭐야, 이제노도 표지가 예뻐서 골랐나봐. 이거. 책을 받아 들고 생각했다.


“이거 재밌어?”

“응. 재밌어. 되게 공감 돼.”


공감 된다는 이제노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책의 뒤표지 헤드 카피를 확인 했다. 헤드 카피를 읽자마자 어쩐지 아. 탄식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제노를 올려다 보기가….


“이제노 너는 무슨…”


때마침 종이 울렸고 뒤이을 말을 이제노가 되물었다. 응? 왜? 그러나 한번 닫힌 김여주의 입은 열리지 않았고 종이 쳤으니 얼른 가자며 이제노 팔만 이끌었다. 세상에 수많은 다양한 장르의 책이 존재하는 건 알지만.


“학생증 있니?”

“네, 여기요.”


이제노가 골라준 책 제목은 다소 을씨년 스러웠다.


“읽고 어땠는지 알려줘야돼.”

“…아, 알겠어.”


책의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 책의 제목은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괜스레 꼭 끌어안은 책의 뒤표지를 안쪽으로 두었다. 책 제목과 다르게 이 책의 내용은 꽤나 아련하고, 달달한 책이었다. 이 책이 공감이 됐다는 이제노. 이제노의 공감 포인트는 도대체 어디서 생긴걸까? 문득 궁금했다. 그리고 김여주는 그 날 꿈에서, 이제노가 골라준 책의 뒤표지에 있는 그 말을 듣고, 그 행동을 실행했다. 아. 미쳤네. 잠에서 깨자마자 이불을 한껏 끌어올렸다. 아침 댓바람부터 얼굴이 새빨개졌다.


‘괜찮아?’


꿈에서 이제노는 물었고.


‘괜찮아.’


김여주는 눈을 깜빡이고 답했다. 그리고 ‘입술이, 맞닿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 책의 독후감은 이제노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오빠동생들



고등학생이면 다 컸어! 이제 수능 치는거 아녀! 어른들은 열 일곱이 다컸다고 한다. 절대 아닌데. 아직 자라고 있다면 모를까 절대로 고등학생들은 성장이 멈춘게 아니다. 저런 말을 하는 어른 들은 대체로 나이가 지긋하신, 보낸 세월을 주름으로 확인이 가능한 조부모님들이다. 3월 모의 고사를 마무리하고 중간 고사 또한 어찌 저찌 잘 치렀다. 일년에 네번 있는 고사들을 착실히 챙겨야 3학년 수시 접수를 하기 수월하니 김여주를 시작으로 이동혁과 나재민 또한 중학교 때와는 달리 펜을 잡는 시간이 길었다. 본디 1학년이라면 놀법도 한데, 이게 다 김여주 효과인가? 죽어나는 건 그 넷 중 제일 공부를 잘하는 이제노 뿐이었다지. 중간고사를 무사히 끝낸 김여주는 일반 고등학생들과 똑같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맛있겠다. 전부터 계속 먹고 싶었던 마라탕 먹방을 보던 중이었다.


“여보세요?”


아이폰 특유의 벨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상단바 위로 긴 이름이 떴다. 원빈 현빈 그리고 이동혁. 이동혁이 바꿔놓은 이름을 여태 안바꾼게 아니다. 못 바꾼거다. 모의고사며 중간 고사며 하도 바빴어야지. 침대에 누워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들리는 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이동혁? 다시 상대방을 불렀다.


-“…김…김여주우우!!!”


평소와는 달리 잔뜩 상기된 목소리. 또 얼마나 우렁찬지 이상하게 휴대폰을 넘어 창 밖까지 들리는 듯 했다. 상체를 일으키고 휴대폰 볼륨을 줄였다. 야 너 왜이래 조용히 안 해? 볼륨을 줄였는데도 자꾸만 소리가 크게 들렸다. 뭔가 이상하다고 직감했다. 너 지금 어디야?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나,나… 지금…너네 집…”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지금 이동혁이 정확히 무슨 상태인지는 모르겠으나 말도 없이 제 집 앞으로 찾아와서 고래 고래 김여주 이름을 부른 다는 것 만으로도 김여주가 나갈 이유는 충분했다. 엄마 아빠가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고 해서 다행이지 진짜. 대충 겉옷을 입고 슬리퍼를 구겨 신었다. 야 거기 딱 기다려. 신경질 스럽게 말했는데.


-“웅!!!”


돌아오는 답이 상반되게 귀엽다. 이동혁 상태가 이상했다.


“…야! 이동혁!”


집 밖으로 나와 몇 걸음 가지 않아 이동혁을 발견했다. 정말 집 앞에 이동혁이 서서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 저 미친놈이 진짜. 아직까지도 통화 중인 휴대폰을 끊고 이동혁을 불렀다. 똑같이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던 이동혁이 불린 제 이름에 고개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김여주우! 겨울도 아닌데 볼이 새빨갛다.


“말도 없이 와서는 고래 고래, ………야 너 이거 무슨 냄새야?”

“웅? 뭐가?”


이동혁에게 다가가 한소리 하려고 했는데 이동혁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심상치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코를 찌르는 냄새. 금호 아파트 때 한번 맡아봤던 냄새. 설마하는 추측이 자꾸만 실실 웃는 이동혁으로 확신했다.


“너 술 마셨어?”


이동혁은 술을 마시고 현재 만취했다는 것을. 술 마셨냐고 묻자 이동혁은 코를 찡긋이더니 조금? 엄지와 검지로 조금이라며 표현하고는 또 실실 웃었다. 와 진짜 김여주 나왔다. 한 발자국 다가오니 술 냄새가 더욱 심해졌다. 아 진짜. 편의점에서 물이라도 사다줘야겠다 싶어 일단 자꾸만 비틀 대는 이동혁을 바로 옆 놀이터 벤치로 데려갔다. 진짜 넌 내일 죽었다. 이동혁 팔을 어깨에 두른 채 물에 젖은 솜 같은 이동혁 몸을 옮기며 생각했다.


“너 미쳤어? 아니 술을 어떻게 마신거야?”

“할아버지가…나…이제 다, 컸다고….”


눈을 질끈 감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 맞다. 이동혁의 할아버지는 옛 적부터 알아주는 쾌남이다. 사고를 치면 사고를 치는 대로, 담배를 피면 담배를 피는대로. 책임은 다 미래의 네가 지는 거니까 현재를 즐기고싶으면 그렇게 해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열 일곱 밖에 안된 미성년자한테. 손자에게 술을 먹인 할아버지를 탓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실실 웃으며 헤롱대는 이동혁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더 중요했다. 나재민이나 이제노한테 갈 것이지 왜 저한테 온건지. 별 수 없이 자신이 이제노나 나재민을 불러야겠다 싶어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야…!”

“아 잠깐 앉아바.”


이동혁은 딱 핸드폰을 키자마자 손목을 잡더니 그대로 자신이 앉아있는 벤치로 김여주를 잡아당겼다. 속절없이 끌려간 김여주가 넘어지려던 걸 겨우 중심을 잡고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잠깐만 앉아보라며 제 옆 자리로 이끈 이동혁이 제 옆에 앉은 김여주에 만족 스럽다는 듯이 씰룩 웃으며 손목을 놓았다. 미안. 내가 너무 세게 잡아따. 그렇게 세게 잡은 것도 아닌데 멋대로 손목을 잡았다는 것에 사과하는 이동혁이었다. 이상 행동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김여주가 몸을 고쳐 앉아 손을 집업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래서 나한테 왜 왔는데.


“……그냥.”

“그냥? 야 너 집에서 제일 먼 데가 우리 집이야.”

“…그냥 여기로 왔어.”


자꾸만 그냥을 덧붙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이동혁이라면 목적을 딱 말했을텐데 자꾸만 답지 않게 어물쩡하고 애매하게 굴었다. 술을 먹어본 적은 없으나 들리는 말이나, 엄마 아빠가 보는 드라마에서도 이런 비슷한 모습과 행동을 하던데. 이동혁이 술을 어지간히 받아먹었구나 싶었다. 그보다도,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곧 저녁 식사를 끝낸 엄마 아빠가 들어올지도 몰랐으니 이동혁을 얼른 보내야했다.


“이동혁 나 여기 앞에 편의점 다녀올 테니까 가만히 있어.”


티비에 나오는 막 술 깨는 약 같은거 뭐 있더라. 언뜻 봤던 광고들을 가물거리며 생각해내려했다. 그러면서 일어나려 엉덩이를 떼자마자 다시 앉아버렸다. 아 왜 자꾸. 이동혁이 이번엔 후드 집업 끝을 잡아당긴 탓이다. 여기서 밤 샐거야? 몸을 틀어 묻자 고개를 푹 숙인 이동혁이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그건 또 아닌가 보네. 이동혁의 정수리를 보고 있었는데, 번뜩 하고 이동혁이 고개를 들었다. 아 깜짝아. 갑자기 마주한 눈에 놀라 두 눈을 연속적으로 깜빡였다.


“…너, 우리… 안 피할거지?”

“뭐?”

“……나……안 밀어낼거지?”


눈은 풀리고 볼은 잔뜩 상기된 채로 하는 말이 꼭 인소에서나 나올 말이다. 후드집업 안으로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 얘 왜이래. 후드 집업 끝을 잡은 이동혁 손을 떼어냈다. 정신 차려. 정말 정신 차리라고 한 건데 이동혁은 자신의 손을 떼어냈다는 것과 정신을 차리라는 말을 듣고는 급격하게 시무룩해졌다.


“…밀어, 냈어. 나를… 밀어냈어…….”


그리고는 진짜 울 것 마냥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거다. 환장하겠다. 갑자기 어린 애가 된 이동혁을 감당하기는 참 어려웠다. 몇 번째 한숨을 쉬는건지. 곧 울겠다 싶은 이동혁의 얼굴을 마주보고 이동혁 손에 다시 자신의 후드 집업을 쥐어주었다. 됐지? 울기만 해. 우는 건 이동혁 답지 않고, 누군가가 울면 잘 달래주지도 못할 것이다. 제 손에 후드집업이 다시 들어오자 이동혁은 헤실 헤실 웃었다. 진짜 웬만한 육아인데.


“있자나…….”


또 무슨 말을 하려나 보다 싶어 고개를 돌렸다. 후드집업을 아직도 쥐고 있는 손등 위로 힘줄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웃는 이동혁의 시선과 김여주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전히 이동혁의 눈은 풀려있고, 두 볼은 잔뜩 상기되어 빨갰다. 또 무슨 어린 아이 같은 말을 할까. 두번 정도 눈을 깜빡일 때였다.


“진짜, 나 안 밀어낼거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는데 도돌이표다. 도대체 뭘 확인 받고 싶은건지, 지겨워져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 밀어내,”


 순식간에 당겨진 몸은 저항 없이 끌려갔고, 정확히 입술 옆, 입꼬리에 보드랗고 말랑한 게 맞닿았다. 지금 얼굴에 뭐가 닿은건지 깨달을 새도 없이 떨어지고는 그대로 어깨 위로 무거운 머리가 얹혀졌다. 무어라 중얼 중얼. 그리고는 새근 새근. 숨결이 목을 간지럽혔다.

이동혁의 손등 위로 도드라진 힘줄이 미리 예고 한 것이다. 내가 지금 너를 당길 거라고.


“…………………미…”


잠들어버린 이동혁 옆으로 김여주의 얼굴이 턱 끝부터 볼까지 단번에 달아올랐다. 만약 조금이라도 옆으로, 이동혁이 방향 감각을 잃지 않았다면 그대로… 정말 완전히… 그럼에도 맞닿아진 감촉과 순간은 생생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런 일을 저질러 놓고는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을 청하는 이동혁이 어이없고 황당했다.


“…………미친……”


아,


“미친 새끼야!!!!!”


내 첫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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