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6일 오후 9시 30분


재현과 여림은 도영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가커피 앞 벤치에 앉아 도영을 기다렸다. 중간에 도영이 나와 안 추워? 하는 말에도 재현과 여림은 고개를 저었다. 도영은 결국 자몽허니블랙티 두 잔을 타 각각의 손에 쥐여줬다.



" 사람 거슬리게 하는 데 뭐 있지? "



도영의 날 선 말에도 재현과 여림은 그저 헤헤, 웃으면서 도영을 올려다봤다. 도영은 그런 둘을 내려다보다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난 얘네밖에 없지. 곧 들어오는 손님에 도영은 후다닥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현과 여림은.



" 그 언니 그러면 이제 홍보대사도 안 한대? "

" 응. 아예 과도 다르니까. "

" 무용... 이면 진짜 마주치기는 힘들겠네. 예술관은 넘 멀어. "



여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블랙티를 한 모금 마셨다. 여림은 재현의 핸드폰 배경 화면에 깔린 에브리타임 시간표를 확인했다. 정재 시간표 좀 볼... 엥, 내 건데. 여림이 핸드폰을 한 번, 재현을 한 번 쳐다보자 재현은 여림을 쓱 쳐다봤다. 왜.



" 왜 내 시간표가 너 배경임? "

" 도영이 형 건데? "

" 아? "

" 내 시간표는 어차피 외우고 있으니까. "



마시기나 해라, 형 성의가 있지. 종이컵을 손에 쥐고 있는 여림에 재현이 괜히 핀잔을 주자 여림은 툴툴 대며 블랙티를 마셨다. 역시 김도영이 타주는 액상과당의 맛이란. 여림이 블랙티를 홀짝대며 콧노래를 부르자 재현은 입을 열었다.



" 그러면 나는 누나랑 진짜 마주칠 일이 없잖아. "

" 그 언니 지금 4-2인가? "

" 어. 코스모스 졸업. "

" 아, 딱 고백 각인데! "

" 나도 그렇게는 생각 하는데. "



생각보다 어려운 거지. 재현은 앞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짝사랑이라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건 난생처음 알았다. 블랙티를 한 모금 마시고 여림이 앉은 오른쪽을 쳐다보자 여림은 웃으면서 재현을 툭 쳤다. 아, 진짜 짜릿해!



" 뭐가, 또. "

" 진짜 정재현이 이렇게 여자한테 매달린다고? "

" 좋냐? "

" 어. 존나 좋아. 존나 짜릿해, 진짜. 니가 나 수학으로 발라버렸을 때보다 더 좋아. "



솔직히 나는 니 정도 인생에 짝사랑이라는 게 있을 거란 생각도 못 했거든. 쫑알쫑알 말을 늘어놓는 여림에 재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림을 쳐다보다 여림의 손에 들린 블랙티를 빼앗아 들었다. 여림은 또 아무렇지 않게 음료수를 재현에게 건네고는 말을 이어갔다. 니 고등학교 때 존나 재수 없었잖아.



" 내가? "

" 어. 니 생일 때 독서실 사물함 다 차 가지고 내 사물함 뺏고. "

" 아. "

" 니한테 고백하는 애들한테 존나 단호하고. "

" 그게 재수 없는 거야? "

" 완-전 재수 없었지. 게다가 졸업식 날 존나 우울한데 같이 사진 찍자고 지랄하고. "



아. 여림의 말에 재현은 결국 크게 웃었다.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입시 실패 이후 내리 우느라 연락도 되지 않던 여림의 눈이 반의반만 해져 등장한 졸업식. 사진 찍기 싫다고 바락바락 소리 지르던 여림의 어깨를 꽉 붙잡은 채로 찍었던 사진이 아직도 재현의 졸업장 사이에 껴있었다.

진짜 웃기긴 해, 그거.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크게 웃는 재현에 여림은 재현의 등을 퍽퍽 내려쳤다. 하여튼 존나 이기적이야, 이 새끼. 아! 그만 때리라고! 재현이 여림의 손을 붙잡자 그때 카페의 문이 열리고 도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 또 싸우지, 또. "

" 아니 김도 들어봐. 정재현이 먼저 졸업식 언급했어. 저 재수 없는 새끼! "

" 쟤가 재수를 해봤어야 알지. "

" 재수 못한 내가 죄인이네, 죄인이야. "



재현은 비워진 두 개의 종이컵을 길거리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고는 턱짓으로 골목을 가리켰다. 가자. 재현과 도영, 그리고 여림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 식당으로 향했다. 재현은 말이 없었고 도영은 여림에게 질문을 건넸다. 졸업식 얘기는 뻔하고, 뭔 얘기 하다가?

도영의 질문에 여림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 정잰 짝사랑 얘기 하다가! "

" 생각보다 오래 가네. "

" 그니까. 진짜 보는 재미 쏠... 아. 김도 얘기 하는구나, 오늘. "



도영의 이별 얘기라는 무거운 주제에 여림의 목소리가 차차 사그라들고 셋은 침묵을 유지한 채로 간이역 안으로 들어갔다. 늘 그들이 앉는 익숙한 자리에 앉고 도영은 태연한 얼굴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여림에게 내밀었다. 여림은 바깥쪽에 앉은 재현의 앞에 수저를 내려놨다. 재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주문을 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여림은 도영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기본 안주를 도영의 쪽으로 밀었다. 도영은 그런 여림의 행동을 쳐다보다 여림의 볼을 잡아 주욱 늘렸다. 너.



" 아아아. 김도. 아파 아파. "

" 빨리 얘기 듣고 싶어서 급해 죽겠지, 아주. 어? "

" ... 눈치 깠어? "



그러면 눈치 까지. 도영의 말에 여림은 히히 웃으면서 자신의 턱을 괬다. 눈치를 챘으면 빨리하란 말이야! 당당한 말과 다르게 테이블을 쾅쾅 치지는 못하고 톡톡 치며 도영을 쳐다보는 여림에 도영은 재현이 내미는 소주병의 뚜껑을 열었다. 술 좀 마시고.

도영의 말에 여림은 잽싸게 도영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빼앗아 들고는 세 개의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이런 건 또 막내가 해야죠, 오빠. 능청스럽게 구는 여림에 도영은 소주잔을 받아서 들고는 여림과 잔을 부딪혔다. 재현이 맥주잔 세 개를 가지고 와 여림의 옆에 앉자 도영은 입을 열었다.



" 어쨌든 누나는 칼 졸업이었잖아. 나는 군대도 껴있었고. "

" 맞지. "

" 누나랑 나랑 사귄 게 2019년 6월인데... 거의 4년 다 되어가고. 누나는 내 군대도 기다렸고. "

" 아니 근데 군대랑 로스쿨은 너무 다르잖아! 군대는 아예 못 나오는 거고. "

" 내가 지금부터 리트 공부하고, 근데 1년 안에 안 붙을 수도 있고. "

" 형 똑똑한데. "

" 고맙다? 암튼. 로스쿨 3년이면 내가 간신히 변호사, 그것도 신입따리인데... 누나 결혼 생각하면 갑갑한가 보지. "

" 언니는 결혼 생각이 있대? "

" 완전 있던데. "

" 헐~ "



여림은 감탄사를 뱉으며 도영의 비워진 소주잔에 소주를 채웠다. 하고 싶은 것만 있지 미래에 대해 영 고민을 하지 않았던 본인과 다른 도영에 대한 감탄도 있었고, 그 몇 년을 기다리지 못해 이별을 고했던 도영의 구여친에 대한 감탄도 있었다. 내가 소개해주지 말걸. 여림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자 도영은 어이없다는 듯 여림을 쳐다봤다. 야.



" 엉? "

" 우리가 좋아서 사귄 건데 왜 너가 죄책감 들고 난리야. "

" 아니... 뭐... 나 아니었음 언니랑 마주칠 일도 없었을 거고... 언니도 시티캣이었으니까... "

" 형, 지금 얘 책임감 미쳤어. "



동아리 유지야 우리 달아놨으니까 될거고... 이번주에 동아리 박람회 하지 않나? 도영의 말에 여림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내가 왜 회장 오키했지... 내가, 내가 미쳐가지고... 작년에는 여림을 돕는 선배나 동료가 있었지만 지금은 여림이 혼자 다 해야만 했다. 부담감이 작년의 2배 아니, 다섯배 정도는 되었다. 재현은 그런 여림을 쳐다보다 여림의 이마와 테이블 사이에 자신의 손바닥을 끼웠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소주잔을 쥔 채로 도영과 잔을 부딪혔다.

잔이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가 울리고 도영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번 내려다봤다. 아. 이거 누나가 사준 거네? 도영의 중얼거리는 말에 여림은 여전히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로 입을 열었다.



" 냉큼 받아. 언니가 찼잖아. "

" 돌려줄 생각도 없었거든? "

" 그럼 형은 조졸 할 거야? "

" 아니. 일부러 6학점 남겨놨어. "

" 왜? "

" 여림이 혼자 다님 심심하잖아. "

" 헐~ 김도 감동. "

" 그리고 뭐 4학년은 편하게 다니고 싶어서. "



도영의 말에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현이야 아직 졸업까지 2년이 남았지만 도영과 여림은 곧 졸업이었다. 3점 후반대의 학점을 유지하는 여림과 달리 도영은 4점 이상 나아가 과탑까지 거머쥐는 성적을 가지고 있었다. 조기졸업을 해도 도영에게 손해는 없었다. 그치만 이런 식으로 빠르게 대학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만큼 남은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것이 도영의 생각이었다.

사장님이 음식을 가져다주자 재현과 도영은 웃으면서 음식을 받아들였다. 야, 이제 먹어. 재현이 그대로 손을 올려 여림의 허리가 자동으로 세워지자 여림은 눈을 뜨고는 닭꼬치를 입 안에 넣었다. 그냥 동아리 박람회 하지 말까? 여림의 발언에 도영과 재현은 여림을 쳐다봤다. 여림은 도영을 한번, 재현을 한번 쳐다보더니 눈치를 보며 젓가락으로 김치우동을 저었다.



" 아니... 에타로 홍보글 동혁이가 꾸준히 올려줬고... 동아리 박람회는 거의 신입생 용인데... "

" 오디션 보는 거 귀찮아서 저러네. "

" 맞네. "



차례로 재현, 도영이었다. 여림은 둘의 반응에 양심이 찔린 듯 김치우동에서 손을 떼고는 과자를 입에 넣었다. 그러면 정우 시켜. 재현의 말에 여림의 표정은 삽시간에 밝아졌다. 하여튼 단순해.



" 그치. 아무래도 4학년보다는 3학년이 하는 게 낫지. "

" 어. 어차피 너는 이번에 졸업인데. 동혁이한테 넘길 거 아냐? "

" 응. 정우도 이번까지 활동하고 나갈 거래. "

" 동혁이랑 정우 보고 오디션 보라고 해. 동혁이도 배워야지.

" ... 내가 태일쓰가 하던 짓을 하고 있다니. "



여림은 고개를 저으면서 닭꼬치를 입 안에 넣었다. 입학할 당시에 동경했던 태일의 자리가 어느새 자신의 자리가 되었다. 여림은 갑자기 느껴지는 책임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만 3년을 사귄 연인과 헤어진 도영, 고백하지 못한 채로 짝사랑을 하고 있는 재현, 차라리 둘의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했다면 걱정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여림은 훨씬 무거운 자신의 고민에 한숨만이 나왔다.

여림의 고민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자 도영은 여림이 씹고 있던 꼬치를 빼앗아 들고는 말을 걸었다.



" 어머니한테는 얘기 했어? "

" 뭘? "

" 음악 하고 싶다는 거. "

" ... "



얘기 못 했지. 여림을 대신해 재현이 대답을 건네고는 술잔을 비웠다. 도영은 멍한 얼굴로 벽에 기대 있는 여림을 한번 보고는 비워진 재현의 잔에 술을 채웠다. 재현과 도영이 별 말없이 잔을 비우자 여림은 힘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저랑 부모를 바꾸실 생각이 없으신지... 주도영님. "

" 그럼 네가 김여림? "

" 이름 괜찮네. 주도영도 나쁘지 않아... 내가 동현 오빠 동생 돼서 열심히 살아볼게. "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여림에 도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도영이 닭꼬치를 입에 넣으며 얘기하자 여림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아직 취할 때는 아닌데. 재현은 여림을 한번 쳐다봤다. 주여림.



" 미국 갔을 때 확실해진 거 아니었어? "

" 근데 솔직하게. "

" 응. "

" 아직 잘 모르겠어. 내가 진짜 음악이 하고 싶은 건가? 나 그냥 태일쓰 짝사랑했어서 그러는 거 아닌가? "

" ...? "

" 걍 경영학도로 살기 싫어서 이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 엄마야 자기처럼 변호사 하길 바라긴 하는데... 난 이제 공부는 질렸고. 내가 음악에 막 미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미국으로 가는 것도 딱히 미래가 있어 보이진 않고. "

" 으음. "

" 뭐 어쨌든 우리 고딩때 담임이 한 얘기 있잖아. 대학이 칼은 못 되어도 방패는 될 수 있다고. "

" 어. "

" 일단 그 방패를 갖긴 해야지. 졸업은 해야지... "



존나 막막하다... 벽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히는 여림에 재현은 여림의 머리를 감싸 당겼다. 적당히 해. 재현의 말에 여림은 재현을 쳐다보다 자신의 잔을 비웠다. 하여간.



" 재수 없는 새끼. "

" 헐. "

" 이래서 3학년은 끼워주면 안돼. 그치, 김도. "

" 너 지금 꼰대 같아. "

" 알아. "



여림은 도영의 말에 웃으면서 잔을 부딪혔다. 도영과 여림의 잔이 만나 소리가 울리고 둘은 아무렇지 않게 잔을 비웠다. 깨끗해진 잔과 달리 도영과 여림, 그리고 재현은 각자의 사정으로 어지럽힌 머릿속을 한 채로 말 없이 잔을 비우기 바빴다.










2023년 3월 7일 오후 8시 50분


여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제노... 만나기 전에 봐야 하는데? 건축관에서 나와 두리번거리자 불쑥 큰 그림자가 여주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주가 위를 올려다보자 그제야 여주를 막은 사람의 정체가 드러났다.



" 안녕. "

" 어, 여림 언니... "

" 어. 걔 친구. "



다름 아닌 재현이었다.

너 담배 안 피지? 여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재현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번 내려다봤다. 딱 봐도 비싸 보이네. 8시 50분... 내가 딱 8시 55분까지만 쓸게. 여주가 무언의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재현은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올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 시티캣 회장 할 생각 있어? "

" 저요? "

" 응. 너. "

" 어... 근데 여림 언니가 회장인데. "

" 걔 2학기에는 못할 수도 있거든. "



재현의 말에 여주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회장일 되게 힘들지 않나? 휴학 기간을 제외하고 2년을 시티캣에 있었다. 코로나 기간으로 인해 굵직한 행사는 없었지만 작년 하반기에 오프라인 축제로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재밌었다. 재미는 확실히 있었던 것 같다.

여주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재현의 시선을 피하고만 있자 재현은 자신의 앞머리를 다시 쓸어올렸다. 미안한데, 대답 좀 해줄래. 3분 지났거든. 재현의 재촉에 결국 여주는 입을 열었다.



" 제가 회장 같은 건 생각을 안 해봐서요! 근데 시티캣이 좋긴 하고. "

" 흠. "

" 생각 좀 해보고 대답해도 될까요? "

" 그러면. "

" 네. "

" 그 대답 나한테 보내줘. 주여림 말고. "



폰 줘봐. 재현의 말에 여주는 순순하게 핸드폰의 잠금을 풀어 재현에게 내밀었다. 재현은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는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현의 손에 들린 핸드폰에 여주의 번호가 뜨고 곧 재현은 통화를 종료하고 여주의 핸드폰을 다시 여주에게 내밀었다.



" 내 번호 저장하고. "

" 네... "

" 꼭 주여림한테 얘기하지 말고. 꼭. 나한테 얘기해. 꼭. "



재현은 세 번이나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강조했다. 여주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림 언니 회장 힘든가...? 그런 것 치고는 여림은 작년에도 훌륭하게 회장 역할을 수행해냈다. 코로나 시기 이후의 첫 축제 무대도 꼼꼼하게 준비했다. 모르겠네... 여주는 자신의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건축관 안으로 들어갔다. 재현은 여주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2023년 3월 7일 오후 9시 05분


" 너 어디 갔다 와? "

" 잠깐 화장실. "

" 아. "



제노는 여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건설스1은 아래 맞아? 제노의 질문에 이번에는 여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노는 의식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학생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사각지대로 여주를 끌고 갔다. 여주는 아무 생각 없이 제노의 팔에 질질 끌려갔다. 뭔 얘기를 하려고... 참깨 라면 먹고 싶은데...

제노는 이윽고 사람이 없는 사각지대에 다다르자 주위를 둘러보고는 팔짱을 낀 채 여주를 내려다봤다. 넌 눈치챘어? 제노의 말에 여주는 의아한 얼굴로 제노를 올려봤다.



" 주어를 얘기해, 주어를. "

" 나재민. "

" 나재민 뭐. "

" 자퇴하고 싶어 하던데. "

" 엥? "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제노의 말에 여주의 눈이 점점 커지자 제노는 헛웃음을 짓고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짚었다. 너는 어떻게 알아?!? 곧 물어오는 여주의 말에 제노는 벽에 기댄 채로 말을 이어갔다.



" 보이잖아. "

" 엥. "

" 걔 원래 건축에 관심 없었고 그냥 성적, 취업 잘 될 것 같은 과 고른 거야. 근데 본인이랑 안 맞고 스트레스 받고. "

" 재민이가 얘기했어? "

" 같이 살면 많은 게 보여서. "



제노는 자신의 턱을 문질렀다. 여주는 제노의 발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재민이 없으면 나 친구도 없는데... 여주가 제노의 옆 벽에 기대 멍을 때리자 제노는 자신의 애플 워치를 확인했다. 애플 워치 화면에는 재민이 제노에게 전송한 카카오톡 메시지가 떠 있었다. 제노는 버튼을 눌러 화면을 다시 돌려놓고는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 괜히 나재민한테 티 내지 말고. "

" ... "

" 재민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 "

" 어... 어어. "

" 걔 생각보다 그런 거 없어서. "



그런 게 뭔데? 여주의 물음에 제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를 떴다. 나 간다. 쿨하게 떠나는 제노의 뒷모습에 여주는 얼굴을 구긴 채로 제노를 응시했다.

알려줄 거면 다 알려주던가! 여주는 신경질적으로 벽을 주먹으로 퍽퍽 치다 자신의 손을 감쌌다. 아파... 여주는 자신의 손마디를 문지르다 울리는 핸드폰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응, 재민아.



[어디야?]

" 나 3층! 2층으로 내려갈게. "

[어.]



전화가 끊기고 여주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딸기쨈이라고 저장되어 있는 재민. ... 근데 뭐, 자퇴해도 상관 없지 않나? 여주가 여태 봐왔던 재민은 모든 면에 특출나진 않았어도 성실했다. 성실한 재민이라면 건축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괜히 이제노 무게감 잡고 말이야... 여주는 툴툴거리며 자신의 에코백을 고쳐 맸다. 재민은 재민이고, 참깨라면은 참깨라면이었다. 지금은 재민보다 참깨라면이 중요했다.











2023년 3월 7일 화요일 오후 9시 20분


" 강의 늦게 끝났어? "

" 어? 어어. "

" 씨유 가자. "



재민은 태연한 얼굴로 여주 옆에서 걸었다. 여주는 머릿속으로 참깨라면 생각을 안은 채로 씨유를 향해 걸었다. 물론 제노가 얘기했던 재민의 자퇴 건에 대한 생각도 있었지만 티 내지 말라던 제노의 당부에 최대한 그 생각을 고이고이 접어 구석에 밀어 넣고 있었다.

학교 앞 씨유에 도착하자 재민은 여주의 몫인 참깨라면과 자신의 몫인 햄버거, 그리고 물 두 병을 결제했다. 여주는 씨유 앞 파라솔 아래에 앉아있다 다가오는 재민에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 역시 재미니 최고~ "

" 이제는 쫌 해라. "

" 싫어어. 나는 평생 재민이 끼고 살래. "



재민은 뻔뻔스러운 여주의 태도에 맞은 편에 앉아 물통을 열어 여주에게 내밀었다. 여주는 재민이 준 젓가락을 컵라면 위에 올려두고는 턱을 괬다. 재민아. 여주의 부름에 재민은 입을 벌려 햄버거를 먹으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 왜. "

" 2학년 되신 소감이 어떠세요~ "

" 이럴 거면 휴학 안 하고 비대면 한 번 더 할 걸 했어. "

" 으엥? "

" 상대평가 아찔하다... 애들이 오티부터 첫 수업까지 칼같이 출석해. "



비대면 시절로 돌아갈래... 재민은 햄버거를 한입 물었다. 재민은 조용히 햄버거를 씹고 여주는 컵라면 뚜껑을 뜯어 면발을 풀었다. 재민은 여주가 라면을 먹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 넌 좀 어때? "

" 으엉? "

" 3학년이잖아. "

" 말하는 감자야... 5학년인 게 차라리 나은 것 같아. "

" 왜? "

" 내가... 이렇게 못 해도 다행인 느낌...? "



여주가 해탈한 표정으로 말을 잇자 재민은 웃으면서 햄버거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하나 더 먹을까... 재민은 햄버거 봉투를 요리조리 훑어보다 영양성분표를 발견하고는 웃었다. 이거 이제노한테 혼나겠다.



" 그러면... 라면 먹고 있는 나는... "



양심에 찔린 여주의 말에 재민은 웃으면서 자신의 물병을 열었다. 재민은 물을 마시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여주에게 질문을 건넸다.



" 시티캣은? "

" 으엉? 나 먹고. "

" 어. "



여주는 입에 있던 라면을 삼키고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 좀 살 것 같네, 강교수 진짜 싫어. 여주는 물병을 탁,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 시티캣 원래 친목 동아리였대. "

" 진짜? "

" 어. 무슨 태일...? 들어오고 나서 약간 밴드부 된 것 같다던데. "

" 새 멤버 뽑지. "

" 아무래도...? 박람회 때 새내기 위주로 뽑지 않을까? "



왜?

여주의 물음에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먹어, 아이스크림 사 올게. 재민이 자리를 뜨고 여주는 컵라면 안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쟤 시티캣 들어오려고 그러나...? 사진 동아리 하지 않았나?

재민이 아이스크림을 결제해 다시 여주 앞에 앉자 여주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 너 시티캣 들어오게? "

" 아. "



재민은 누가바의 포장을 뜯고는 코팅 초콜릿을 한입 물었다. 왜 대답 안 해주는데... 여주가 자신의 몫인 누가바를 뜯으며 툴툴대자 재민은 눈가를 살짝 찌푸린 채로 말을 이었다.



" 이동혁이 시티캣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해서. "

" 아...? "

" 근데 시티캣 인기 많지 않나? 그, 회장님이 꾸준히 유튜브에 동혁이 녹음 영상 올려주던데. "

" 엥. "

" 몰랐어? "

" 어. 나는 일렉이니까 녹음 할 일이 없었지. "



그런 게 있는 줄은 몰랐네...? 여주는 어벙한 얼굴로 누가바를 한입 물었다. 재민은 그런 여주를 쳐다보다 여주가 뜯은 포장지를 집어 들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재민이 금세 다시 나오고 여주는 한 손으로는 누가바를 쥔 채로 한 손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뭐 보는데. 재민의 말에 여주는 인스타 화면을 재민에게 내밀었다. 여주는 고정되어 있는 게시물을 발견했다.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는 동혁의 말, 그리고 태그되어 있는 여림과 누군가. 여주는 망설임 없이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면 이거 동혁이 녹음 영상이 언니가 해준 거라고?



" 어. 인스스에도 올리잖아. 회장님 태그 걸어서. "

" 아, 인스스를 안 봐서... "

" 회장님하고 무슨 형 태그 걸어서 올리던데. 근데 회장님보다는 무슨 형이 주로 올라오더라. "

" 앞으로 좀 봐야겠네... "



여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동혁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한 번 눌렀다. 업로드한 스토리가 없는 지 동혁의 프로필이 어두워졌다 다시 밝아졌다. 여주가 가만히 핸드폰만 보고 있자 재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의 손에 들린 누가바를 입 안에 넣어주고는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어느새 끈적해진 여주의 손을 닦았다. 여주는 그제서야 손을 확인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 왤케 빨리 녹아... "

" 원래 누가바가 그래. "

" 손 잡으려는 핑계로 아주 누가바 산 거지, 이 요망한 나재민 같으니라고. "

" 뭐래. "



재민은 여주의 손을 닦아내고는 물티슈를 버리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주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자신의 컵라면을 들고 일어섰다. 여주의 핸드폰 화면은 여전히 동혁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이었다.





봉금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