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은 오히려 서현이 한번 달려든 후로 그가 자신을 해치진 않을걸 알았는지 경계가 옅어졌다. 도끼는 돌려받지 못했지만. 서현은 그제야 본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세한건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이 사태에서 보호받기 위해선 서쪽 끝, 해남을 따라 진도로 가야 한다고 했다. 훈련받은 군부대가 거기 있다고.

“그런 것들을 어떻게 다 알고있어요?”

서현은 어쩐지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다른건 술술 불면서도 그 질문에는 답할수 없었다. 한참 정적이 이어졌고, 동백은 답을 듣는 걸 포기하고 아까부터 자신과 함께하는 걸 확정지은 듯한 서현에게 말했다.

“해남이든 진도든, 내가 가기 싫다하면요? 너무 멀잔아요. 기다리다보면 거기서 구조대가 올 수도 있잖아요?”

“저것들은 아직 초기 상태에요. 곧 저 나무문정도는 부수고 나올걸요. 그땐 어쩌실거죠? 머리를 완전히 부수지 않는 한 저것들은 죽지 않아요.”

강요에 가까운 설득에 동백은 뾰루퉁하게 입을 쭉 내밀었다.

“‘초기 상태’? 그럼 최종적으론 뭐가 되는거죠. 합체해요?”

“...그런게 있어요.”

중요한 내용은 죄다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서현을 동백은 눈썹을 추켜올렸지만 다시 묻지는 않았다. 대신 고개를 휙 돌렸다.

“엄마가 수상한 사람 따라가지 말랬어요.”

“뭔, 몇 살이에요? 그것보다 저 아직도 당신 이름 모르는 건 알아요?” 동백은 대답하지 않고 도끼를 인형마냥 껴안았다. “날카로우니까 조심해요. 그래서, 안갈거에요?” “다른 방 사람들은요?” “그야 모여서 함께 가야죠.” “...” 

동백은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서현은 욱하는 마음에 그럼 가서 다른 사람들이랑만 같이 나갈거라며 괜히 큰소리쳤고, 곧바로 자기보다 한참은 어린애한테 휘둘리는 자신이 창피해 얼굴을 붉혔다. 동백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 건물안에 그것들은 얼마나 되죠?”

“제 화장실에 있는 사람이 알걸요.”

“..룸메이트?”

“아뇨, 걔는 나갔고, 밖에서 쿵쿵 두드리길래 열어줬는데 갑자기 달려들더라고요. 그래서 가둬놨는데 계속 저러네.”

“사람에 따라 잠복기가 있기도 해요. 그럼 내부에 제법 있다는 소린데-여기 구조가 어떻게 되죠?”

동백은 굳이 화장실 안에 있는게 ‘그것’이 아니란 소리는 하지않았다.

서현은 동백에게 기숙사내부 구조에 대해 설명받았다. 2층을 올라오는 계단과 문은 두 개인데, 하나는 바깥으로 나가는 문으로 연결되고 다른 하나는 여자기숙사와 남자기숙사가 연결되는 1층으로 가는 문으로 나뉘었다. 바깥으로 바로 나가는 문은 보통 안쪽에서 잠겨져있다고 한다.

“..나가게요?”

“뭐야, 걱정돼요?”

“당연하죠, 2층 창문으로 기어오를 수 있는 사람이 그게 되면 난이도가 갑자기 너무 올라가잖아요.”

서현은 그 말에 감동받을 뻔한 자신을 탓했다. 동백은 자신에 대한 걱정인지 그에 대한 걱정인지는 모를 이유로 도끼를 되돌려주었다.

복도 끝방이었던 동백의 방의 위치덕에 서현은 벽에 기대고 자세를 잡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진즉 서현을 인식한 그것들이 달려들었다. 서현은 빠르게 숫자를 셌다. 겨우 넷. 그에겐 행운의 숫자였다.

일자로 된 기다랗고 좁은 복도의 구조덕에 그는 한번에 하나씩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 서현은 도끼로 가볍게 머리를 두 조각 낸 그것을 치우고 동백의 바로 옆 방문을 두드렸다.

“구조하러 왔습니다.” 

한참을 있다가 느리게 문을 연 여자는 서현을 보고 창백한 얼굴이 되어 다시 문을 닫으려했다. 서현은 문틈사이로 발을 걸고 급하게 말했다.

 “잠시,잠시 얘기만 들어주세요!” 잡상인 같은 말이기는 했다.

 힘으로 이기지 못한 여자는 동백에게도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었고, 동백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게 낫지않아요?곧 구조대가 올거에요.”

닫힌 문을 쳐다보다 괜히 죽은 그것을 발로 찬 서현은 다시 동백의 방 앞으로 돌아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방안에서 동백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때요?”

“..정말 다 거절하더군요. 그렇게 허황되게 들렸나요?”

“뭐, 꽤?” 동백은 문을 빼꼼 열고 서현을 보았다.

“-그쪽 지금 되게 연쇄살인마같이 생겼어요.” 동백이 물러서며 말했다. 

서현은 그제야 자기 모습을 인지했다. 그것을 잡느라 피를 한껏 뒤집어쓰고 피로 염색한 도끼를 든, 인상까지 사나운 여자. 어쩐지 죄다 보자마자 하얗게 질리더라.

동백은 쓰러져있는 그것들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죽은 걸 확인하긴했지만 그것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동백에 서현은 괜히 걱정되어 그를 일으켰다.

 “나 대신 말해줄 수 없어요? 그래도 아는 사이일거 아니에요.” 

“같은 학과라면 몰라도 대부분 얼굴도 모르는데요.” “적어도 저보단 반응이 낫겠죠.”

아담한 체구에 딱봐도 어려보이는 얼굴과 목소리. 문을 아주 살짝 열고 눈만 보여주던 제 때와 달리 동백은 아예 그들을 방 밖으로 나오게 했다. 그야 자기들보다도 약해보이는 여자가 멀쩡히 돌아다니니 안심할 법도 했다. 동백이 등뒤로 도끼를 숨기고 있단 걸 알았다면 반응이 달라졌겠지만. 서현은 순진한 척 웃음 짓는 동백이 가증스러워 헛웃음지었다.

서현은 문 뒤에 숨어있다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한 동백의 눈짓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를 닦아낸 것때문인지 처음 볼때보다 여자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아는 사이였고, 나온 인원 대부분 같은 나이였기 때문에 말을 놓았다. 서현은 친해보이는 다른 여자들을 번갈아보다 동백에게 속삭였다. 

“당신은 친구 없어요? 어쩐지-” 다분히 놀리는 말투에 동백은 대꾸하지 않았으나 삐죽 튀어나온 입은 감출 수 없었다.

동백이 모았기에, 그가 자연스럽게 의장같은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 버틸거라면, 물이랑 먹을 건 필수인데. 각자 식량은 충분해요?” 동백의 말에 서현이 불만스런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동백은 그에게 시선도 주지않았다.

“아 내 방에 아무것도 없는데..나 다이어트 한 단 말야.”

“가람이 방에 상자째로 과자 쌓아두잖아, 걔 지금 없지.”

“아, 나 걔 방문 비밀번호 알아.” “오, 그럼 빨리 열어봐.” 

여자의 친구들이 반색하며 여자를 문앞으로 밀었다. 서현이나 동백이 그 방문을 두드렸을 때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경우 보통 상황은 두 가지였다. 아무도 없거나, 안이 그것들로만 차있어 문을 열지 못하거나. 후자의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게 2층 복도에 수가 적었던 이유이기도 했고.

그럼 지금 저 방은?

동백은 눈치채지 못한 것같지만, 서현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확실하진 않지만 안쪽에서 느껴진 위화감을 기억했다. “그 방문 열면 안될 것 같은-” 서현이 뒤늦게 한마디 했지만 이미 여자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은 열어버렸다.

그 안에는 목이 반쯤 끊어져나간, 눈가에 검붉은 핏줄이 튀어나와 시꺼먼 여자가 역류하는 피를 몸에 있는 모든 구멍으로 줄줄 흘리고 있었다.

문을 연 여자는 굳어버려 피하지도 못하고 달려드는 여자에 그대로 넘어갔다. 서현이 서둘러 그것을 떼어내고 동백에게 도끼를 넘겨받아 내려쳤다. 한번, 두 번, 움직임을 멈춘 그것에게서 떨어진 서현이 여자를 살폈다. 이미 여자의 어깨에 피가 줄줄 흐르는 커다란 잇자국이 남아있었다. 서현은 물러섰다.

 “으허엉 아파-” 고통에 생리적인 눈물을 흘리는 여자에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그것들에게 물린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있었다. 

“..다영아.” 물린 여자의 이름은 다영이었다. 

다영은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네 방에 들어가.” 

싸늘하게 굳어있는 친구들의 표정에 다영은 얼어붙었다. 다영은 억지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얘,얘들아,아냐,나 안변해, 나 멀쩡해-” 

“미친, 쟤 얼굴에 핏줄 올라온다” “빨리 들어가!” “너가 연거잖아! 우리한테 피해끼치지 말란말야-” 

다영은 이제 하얗게 질려있었다. 동백은 눈치를 보며 서현의 곁에 섰다. 서현도 당황한건지 눈만 굴리고 있었다. 더 이상 고통이 원인이 아닌 눈물을 흘리던 다영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던 한 여자가 그들의 앞에 섰다.

“아직 변한 것도 아니잖아. 얘를 방앞으로 민게 누군지 벌써 기억안나?” 여자는 다영에게 다가갔다. “다영아, 일단 상처보게 고개 좀-”

고개를 든 다영에 여자는 너무 가까이 다가온 자신을 원망했다. 다영의 눈은 이미 넘어가 그르렁거리는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내고있었다. 여자의 인간성때문인지 덕분인지, 여자는 다영에게 목이 뜯겨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사태가 일어나고 안전하게 방에 숨어만 있었던 그들은 피바다에 면역이 없었다.

 

서현은 비명을 질러대는 그들을 진정시키려 소리쳤다. “침착해요! 이정도는 제가-”

그때 패닉에 빠진 누군가 한명이 바로 뒷편에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수많은 새빨간 눈들이 겁에 질린 그들을 향했다. 한번 열면 자동으로 활짝 열리는 문이 벽에 부딪쳐 쿵하고 큰 소리가 났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지옥의 시작이었다.

서현은 동백의 손목을 잡아끌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예 번쩍 들쳐업고 뛰었다. 멀쩡한 다릴 두고 짐짝 신세가 되어버린 동백은 그들 뒤를 바짝 쫒아오는 그것들과 눈을 마주치고 있어야 했다. 서현은 재빠르게 반대편 문으로 향했다. 동백은 그것들을 피해 방안에 들어가려 성급하게 키패드를 눌러대던 여자가 번호를 틀리고 그것에게 잡히는게 보였다.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반대편 계단에는 그것들이 얼마 없었다.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 안쪽에서 잠겨있기 때문이었다. 서현은 동백이 넘겨준 도끼로 머리를 내려찍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이 쓰러졌다. 서현은 숨을 몰아쉬며 동백을 고쳐앉았다. 한 팔로 동백을 받쳐든 서현에 동백은 수치심에 귀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내려달라 말했지만 서현은 듣지못했다. 

그는 3층과 바깥 중 방향을 고민했다. 3층으로 올라가면 다른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 서현은 계단을 뛰어올랐다. “우리 올라가요?” 그것들이 계단을 메우겠지만, 사람들을 모으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반도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달려내려와야했다. 

“와-미친.” 감탄조로 동백이 중얼거렸다. 얼마 없는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3층 계단부터 그 위까지 빼곡하게 그것들이 들어차있었다. 서현과 동백을 알아챈 수많은 그것들이 서로 뒤엉키며 한 뭉텅이로 그들을 쫒아내려왔다. 동백은 그것들이 마치 흘러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1층의 문은 박살나 훤하게 열려있었다. 왜 기숙사 밖이 유난히 한산했는지 이유를 떠올렸어야 했는데. 서현은 도끼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달렸다. “날 내려놓으라니까?” 어차피 팔에 쥐가 나고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어디로-“저 오토바이 키 꽂혀있네요” 서현은 오토바이로 달려갔다. “이 말은 들려요?” 다행히 오토바이는 시동이 잘 걸렸다.

“....저기요?” 흔들리지 않게 동백을 고쳐안고 핸들을 잡았던 서현은 그제야 동백과 눈이 마주쳤다. 동백은 서현의 무릎 위에 앉아있었다. 동백은 자신이 인간인걸 잊어버리고 있었단 표정에 그를 흘겨보았다. 동백은 열기 때문에 뜨겁다못해 축축했던 서현의 품에서 그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서현은 동백의 툭툭 치는 손길에 “안가요? 저것들한테 뜯기면 먼지 될 것 같은데”서현이 어색하게 말했다.

“꽉 잡아요”

“그거야 익숙하죠.” 동백은 서현의 허리를 잡았다.

 

오토바이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그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났다. 이대로면 이 동네사람들 전부를 이끌고 피리부는 사나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들 때문에 동네를 빙빙 돌던 서현에게 동백이 방향을 제시했다. “한 바퀴 돌아서 방금 그 다리로 가요.” 서현은 그대로 따랐다. 다리 위의 그것들은 아마 그들을 따르는 줄의 맨 뒤 정도에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몰릴 때까지 안잡힌게 신기할 정도였다.

“혹시 카레이서였어요?”

“예? 아니 그것보다-다리를 건너간다해도 저것들은 따라올거에요. 저 건너에도 그것들이 있을텐데, 양방향으로 갇혀버릴거에요.”

“저 너머는 모르겠지만 저 뒤는 따돌릴 수 있을거에요, 아마. 어차피 기름도 없잖아요. 내려줘요. 나 돌아오면 바로 달려야하니까 준비하고,”

 

서현은 초조하게 뒤를 살폈다. 겨우 조금 떨어트려놓은 그것들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 가까워지면 물로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동백이 돌아왔다.

“달려요”

“뭐 한거에요?”

“일단 가요.”

서현은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안되어 동백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니 무슨-저것들한테 죽는 거보단 낙사가 더 편한거에요?” 다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기 싫으면 더 빨리 달려요.” 이미 기름은 빨간불이 들어와있었다. 서현은 이를 악물고 속도를 올렸다. 동백을 뒤를 돌아보았다. 가파라지는 경사에 그것들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역시 끈적한 스프같다고 생각하며 그는 부디 저 국에 그들이 조미료로 첨가되지 않길 바랐다.

 

그들은 날았다. 정확히는 조금 긴 추락이었지만. 동백은 그걸 비행으로 부르기로 했다.

 

바이크 타이어가 펑하고 터져버리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동백을 품에 안고 충격을 대신 받은 서현은 어깨가 나간 것 같긴 했지만.

반대편 다리위에는 그렇게 그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동백은 저 멀리서 큰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것들이 보였다.

돌아보니 서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멀리 보이는 기숙사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은 죄책감같은게 그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어쨌든 당장은 저것들이 더 모이기 전에 이곳을 떠야했다. 동백은 정신을 못차리는 서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새까만 눈에 동백이 비쳤다.

“-난 동백이에요.” 이 말을 하려던게 아니었는데, 후회가 되진 않았다. 너무 늦은 자기소개였다. 그는 원래 하려던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게-.” 서현은 동백을 끌어안았다. 동백의 몸이 경직하는게 느껴졌다. 그 ‘살아있는’ 반응에 서현은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커다란 품안에 갇혀 데굴데굴 눈을 굴린 동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을 것 같은데요. 뒤에 봐요.” 서현은 그가 가리킨 방향에서 다가오는 그것들을 보았다.

“절 따라와요.” 서현은 동백을 놓아주지도 않고 말했다.

동백은 작게 보이는 건물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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