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잘 지내요? 마음 같아서는 편지를 늦게 봤다고 하고 싶은데 사실 답장할 말을 고르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나는 언니 앞에만 서면 기름이 필요 없는 자동차가 되니까요

  나는요 한때 우리의 사랑이 세기의 것이기를 바랐어요 이 사랑이 사서에 적히고 설화로 남고 뭐 그런 걸 원했는지도 몰라요 우리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죽고 싶단 말에 위로할 줄 몰라서 같이 떨어지겠다는 나나 그걸 듣고 실없는 소리라는 듯 작게 웃던 언니나 그렇잖아요 우리에게 삶은 간혹 다정했지만 너무나도 처절했고요 때때로 행복했지만 대개는 불행했고요 그 시궁창 속에서 서로를 만난 게 운명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잖아요

  아직도 자주 생각나요 지는 것 같아서 생각하기 싫은데 무의식이 떠올리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내 기억 속에서 언니는 내가 사랑하는 걸 기꺼이 사랑해요 씹는 맛이 없다던 물렁한 복숭아를 맛있게 먹고요 이해할 수 없다던 외국 노래를 흥얼거리고요 내가 아홉 살에 가정통신문을 접어 만든 초라한 비행기도 열두 살에 읽은 괴짜 과학자가 나오는 책도 모두 좋아해요 이러니까 내가 언니를 어떻게 감히 잊을 수 있겠어요

  오랫동안 쓴 거라면서 말이 너무 두서없고 길죠?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이제 여름이 오는 게 기다려진다는 거예요 내 여름 속엔 언니가 있어요 여전히 삶은 간혹 다정하지만 너무나도 처절해요 때때로 행복하지만 대개는 불행해요 그래도 여름이 오면 이제 이 처절하고 불행한 시궁창도 버틸 만한 것 같아요

  나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내 인생의 모든 행운을 써버렸는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오늘도 아주 사랑한단 말이에요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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