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덧없는 울타리를 만들었지. 언젠가는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고도 안전하다 여기며 다듬고 보듬었어. 어쩌면 그곳에 홀로 남을 사람이 나일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울타리를 더없이 사랑했어. 슬픔을 딛고 만난 첫 온기였거든. 내게 주어진 이 사랑에 기한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무한한 마음에도 기한이 지나면 상하는 법이더라. 완벽하지 않아 아릿하던 우리의 울타리는 서서히 무너져갔지. 비가 새고 구멍이 나는 곳을 몸으로 막아가며 지켜봤지만 혼자 남는 건 피할 수 없었어.


이제는 무채색의 얼굴에서 마른 의지를 다질 뿐이야. 오랜 멍울이 점점 작아지길 바랄 뿐이야. 기억할 온기가 서서히 식어가길, 곱씹을 아름다운 미소가 잊혀지길, 이 울타리 안에서 서서히 미끄러지길. 삶에 누가 들어오는 건 쉽지. 누구에게 상처 주는 것도 쉬워. 나는 상처 받기 쉬운 사람이라 매일 상처를 다뤄야 해. 애틋하게 돌봐야 해. 날벼락 같은 끝맺음에 고여버린 연못이 넘쳐버리기 전에 먹구름을 지워야 해. 먹먹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면 고요한 새벽의 무게를 느끼며 버거운 하루를 시작해. 언젠가 다 잃게 되더라도 나의 아름다움을 너에게 줄게. 내 슬픔은 너야.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휘청이고 가진 사랑이 힘을 잃어, 나는 퍽 퍽퍽한 사람이 되어가. 지나간 일들에 아직도 일말의 애정을 두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완전한 이별은 없기에 그 또한 놔두려 해. 각기 다른 생각들이 초대장을 내미는 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요하지. 미결의 사건들이 너무 많아 내가 이렇게 꼬여버린 걸까. 아련하게 날 맞이하는 건 냉장고 속 잘 씻은 사과 하나. 아그작 씹어버리면 그만이련만. 입안에 조각 하나가 달콤하고 씁쓸하다. 

온 세상에 진하게 입맞추고 싶어 매 순간 사랑의 눈으로 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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