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e forever 영원한 나의 것





내가 어리둥절하게 재민을 쳐다만 보고 있자, 한숨을 내쉬며 말해왔다.


“너 거기서 들켰으면..!!”

“…재민아. 너도 들었어?”

“….”

“네 술잔에 독을 탄다잖아..!! 못 들은 거야?!”

“들었어.”

“근데…!”


근데 왜 그렇게 태연해…? 나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대충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황제의 또 다른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아들. 척 봐도 재민을 견제해 죽이려는 속셈이었다.


”자주 있는 일이야.”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고?”

“안 마시면 돼. 그니까 걱정하지 마.”

“어떻게 그렇게 태연해…! 익숙해질 일이 아니잖아.”

“…일단 내려가자.”










사람들의 눈에 뜨지 않는 곳. 별궁의 정원. 그곳에서 재민과 나란히 걸었다. 천천히 걷는 동안, 재민은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얘기해주었다.


“나는.. 황제가 되기 싫어.”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 그저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으니까.. 우리 어머니는… 독에 당해 돌아가셨어. 범인이 누군지도 몰라.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거든. 아닌 척해도 알 수 있었어.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후인 우리 어머니를 견제하는 누군가가 저지른 일이었겠지. 그날 이후로는 그냥… 황위 때문에 누군가와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아졌어. 황위싸움에는 관심도 없지만 1황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그냥 내가 황자인 게 싫었어.


“생각이 많아질 땐 숲으로 자주 갔어. 거길 가면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돼. 마음이 편해지거든.”

“거기서 널 만났어 여주야.”


재민의 아픔을 알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이 아이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마음은… 그 누구보다 잘 알아. 나도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정말 살기 싫었었어.”

“그러다가 제노를 만났어. 그래서 나는 제노가 너무 소중한 친구야. 이제는 너도 그렇고.”

“그니까 내가 너한테 힘이 될 수 있는 친구가 돼줄게.”


재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재민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뭐냐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손을 맞잡아왔다.

역시나 차가운 손이었다.


“이렇게 잡아줄게.”

“응?”

“이렇게 서로 잡아주고 따뜻해지자.”


앞으로는 우리 이렇게 서로를 잡아주자. 힘들 때든 슬플 때든 서로 위로해주자.


마주보는 재민의 검은 눈동자가 일렁인다. 햇살같던 금발은 오늘따라 더 눈부셨다. 그게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 같았다. 한참을 조용히 서 있던 재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두렵다.”

“뭐가..?”

“언제까지나 계속 네가 내 옆에 있어 줄까.”

“계속..! 친구잖아 우리는.”

“그래 지금은.”


지금은 친구지. 맞잡고 있던 손이 더 꽉 쥐어졌다. 그런 재민을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피식 웃는다.


“누가 널 훔쳐 갈까 봐 두렵다.”

“응? 내가 물건도 아니고.. 누가 훔쳐 가겠어.”

“그러게. 네가 물건도 아닌데…”


왜 갖고 싶지.


살랑살랑 부는 바람 소리에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라 말했냐고 되물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어주었다.









다음날, 기대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마침내 미소를 지은 정우쌤이 고개를 들며 말한다.


“다 맞았네요.”

“헐..!!! 그럼 우리 축제 가요? 가는 거 맞죠?!”

“네ㅋㅋㅋㅋ 가요 우리ㅋㅋ”


어제 저녁에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었는지 축제를 가게 되었다. 오늘 가요?? 네 오늘 가요. 대박!!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우쌤과 만날 시간을 정했다.


“그럼 정우쌤! 이따 거기서 봬요~”

“여주씨.”

“넹?”

“저희 이따 축제 구경할 때도 그렇게 부를 거예요?”

“어…. 그럼 어떻게…?”

“그냥 정우라고 불러요. 그게 더 편해요.”

“…진짜요? 근데 쌤은 귀족..? 그거 아닌가..”

“그런 건 상관 없잖아요.”


그니까 그냥 정우라고 불러줘. 말도 놓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나도 반말이 편했으니까.


“알겠어 정우야!”


내가 힘차게 대답하자마자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터지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으며 정우가 말해온다.


”그래도 바로 이럴 줄은 몰랐는데..”

“나도 이게 더 편해..!!”

“응ㅋㅋㅋ 알겠어 여주야 이따 보자ㅋㅋ”







이따 축제에 갈 생각에 신나하며 별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옷은 뭐 입지? 생각해보니까 내가 축제에서 입을 옷이 따로 있긴 한가..? 옷장에 무슨 옷이 있었더라… 옷장 속을 떠올리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억!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한 걸 누군가가 빠르게 어깨를 잡아줘 금방 중심을 잡았다. 


“괜찮으십니까..?!”

”어….! 기사님?”


그 때 재민의 방에서 봤던 기사님이었다. 이름이 김도영이었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다칠 뻔 했잖아요.”

“아… 죄송해요…”

“저한테 죄송할 게 아니라…. 다치면 아픈 건 여주씨잖아요. 조심해요.”


저번부터 느꼈지만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따뜻한 성격이신 것 같았다. 기사님은 내 옆으로 서더니 자연스럽게 에스코트를 하며 걷기 시작했다.


“별궁 생활은…어때요. 괜찮습니까?”

“네!! 완전 편해요.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사용인을 물리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불편하게 했던 점이라도..”

“아니에요..!! 제가 원래 혼자 지내와서 그런가.. 누구 손길 받는 게 어색해서 그런 거예요..!! 괜찮아요!”


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자 그런 나를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린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정색을 하며 대답해준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나란히 얘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별궁까지 도착했다. 내가 뒤를 돌아 김도영 기사님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기사님은 그런 나를 보며 당황한 기색이 보였지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해주었다. 그제야 흔들던 손이 아차 싶었다. 너무 버릇없게 굴었나.. 생각하던 중에 뒤에서 제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주야!”

“어..? 제노..?!”


오랜만에 마주한 제노에 반가워서 재빨리 달려갔다. 요새 검술 수업을 아주 제대로 배우는지 도통 마주칠 시간이 없었는데..


“제노 너 지금 수업 가 있을 시간 아니야?”

“오늘 하루 쉬기로 했어! 우리 오랜만에 놀러가자. 내가 아까 들었는데 마을 축제 같은 걸 한다나 봐.”


마을 축제는 이따 정우와 가기로 했었기에 전혀 예상치 못 한 상황이라 눈만 데구르르 굴렸다.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제노가 이어서 말해온다.


“이미 가기로 했구나. 누군데?”

“아.. 티났어?”


그러자 내 미간을 검지 손가락으로 툭 치며 말해온다.


“너 곤란하거나 당황하면 눈 요리조리 굴리잖아.”

“아…. 미안해. 그 정우가 데려가 주겠다고 해서..”

“..정우?”

“그 글 알려주시는 분 있잖아. 그 분 이름이..”

“그 사람 이름이 정우야? 근데.. 반말까지 해..?”

“그게 더 편하다고 해서 오늘부터 반말 쓰기로 했어..”


날 바라보는 제노의 표정이 어딘가 안 좋아 보여서 뒷말을 흐리게 됐다. 많이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제노도 오랜만에 쉬는 날이 생긴 건데.. 그런 날에 내가 다른 약속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서운할 법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곤란해하던 참이었다.


“아..! 그러면 셋이 같이..!”

“아니야. 괜찮아 여주야.”


다음에.. 다음에 가면 되지 나랑은.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쉴게. 재밌게 조심해서 다녀와.


“…진짜로? 그냥 셋이서 가면..”

“그게 괜히 더 불편하지.”

“미안해..”


그러자 제노가 웃으며 머리를 조심스레 헝클여주었다. 괜찮으니까 표정 좀 펴~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떨쳐지진 않았다. 아마 축제를 구경하는 내내 제노가 걱정될 것 같았다.










“맛있어?”

“응!! 진짜 미쳤어 진짜 진짜로..!!”


마을 광장을 거닐며 정우가 사준 닭꼬치를 한 입 와앙 먹었더니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이게 길거리 음식 퀄리티라니.. 미쳤다.


”근데 우리 이거 먹고 어디 갈 거야?”

“어디일 것 같아?”

“음…. 빵집?”


내 물음에 정우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쭈, 먹을 거 생각밖에 없네?”

“애초에 네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으니까..!!”

“아쉽게도 먹으러 가는 건 아니고..”


공연 보러 갈 거야.





그렇게 목적지에 다 와 갔을 땐 들려오는 큰 함성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공연을 보러 가자길래 극장 같은 데를 들어갈 줄 알았는데, 길거리 공연이라니. 오히려 새롭고 더 신나는 것 같았다. 주위에는 우리 말고도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있었다.


“신기하다.. 진짜 축제 같아.”

“축제 맞다니까~”


신나서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춤을 추던 무희 중 한 분이 무대 아래로 내려오시더니 나에게 다가와 손을 건넸다. 주위에는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뭐지? 내가 어리둥절하며 아무 짓도 못 하고 있자, 옆에서 정우가 말해주었다.


“즐기고 와. 같이 춤추자는 걸 거야.”


그렇게 얼떨결에 건네받은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고 있었기에 떨려서 몸이 경직되어버렸다. 어떡하지…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자 사람들의 야유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방황하는 눈동자가 정우에게 닿았다. 정우가 입을 벙긋거리며 입모양으로 말해왔다.


‘괜찮아. 그냥 즐겨.’


그 말에 무슨 용기라도 얻은 거였을까. 아무리 문외한인 춤이라도 그 분위기 자체가 즐거웠기에 관중들은 무엇을 하든 환호해주었다. 옆에 있던 예쁜 무희분이 리드를 해주며 나란히 아름다운 공연을 만들었다. 그 분위기에 점차 취해갈 때쯤이었다.


끼익— !!!!


옆에 달려있던 조명 하나가 기울더니 쨍그랑 깨져버렸다. 그걸 시작으로 하나둘씩 조명들이 순서대로 깨지더니 어느새 소음과 비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숲속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넘어져서 굴러오는 커다란 돌에 부딪힐 뻔 했을 때. 나재민이 대신 부딪혀 크게 다쳤을 때를. 귀에서 이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는데도 터질 것 같은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허억..! 몸이 낚아채지는 감각과 동시에 깊은 어둠이 시야를 감쌌다. 눈을 번쩍 뜨고 있는데도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정우의 외침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그 안에서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의식은 점차 깨어나는 것 같았을 때, 귀에 몇몇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이 년만 팔면 저희 떼돈 버는 거 맞죠?”

“아 그렇다니까~ 얘 머리색이랑 얼굴을 봐라. 높으신 분들 취향이라니까?”

“얼굴도 얼굴인데 아까 보니까 눈동자 색도 호박색이더라고요. 어디 귀족인 거 아닙니까?”

“야 귀족이 그런 평민들이나 노는 공연에서 무희 짓이나 하고 있었겠어? 뒤탈 없을 테니까 걱정 마.”


점점 격해지는 어조에 살며시 눈이 떠졌을 땐, 나무로 된 바닥에 쓰러져 양손과 발이 묶인 채였다. 고개를 살짝 드니, 건장한 남자 넷이서 테이블을 둘러싼 채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날 향해 하는 말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어. 형님! 이 여자 깼는데요?”

“뭐?”


그러자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순식간에 내 턱을 잡고 치켜 들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확실히 눈동자 색도 그렇고 반반하니 별종이네.”

“..놔.”

“뭐래 이년이.. 상확 파악 안 됐어?”

“놔..!! 놓으라고..!!!!!”


짝!!  어쩌면 익숙한 감각이었다. 있는 힘껏 내리쳐 맞은 뺨이 세차게 돌아가는 감각. 그때도 그랬었다. 분명 그땐 제노와 재민이 걱정이 앞서서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너무 아팠다. 아파서 눈물이 나오다 못 해 울부짖을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이런 짓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지. 내가 왜..


“조용해지니까 한결 낫네. 하여간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야 얼굴은 때리지 마. 흉 지면 어쩌려고.”

“근데 진짜 너무 아까운데? 이걸 그냥 판다고?”

“그럼 뭐.. 한 번,”



쾅!!!



큰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보인 광경은. 순식간에 하얀 연기에 휩싸인 채 문이 떨어져나가있었다. 이내 연기가 걷혀졌을 땐, 머리까지 덮혀지는 망토를 쓴 누군가가 서있었다.











“…아직도 이딴 짓이나 하고 있고.”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터벅터벅 부셔져버린 문을 밟으며 걸어들어온다.


“내가.”


한 놈의 머리통을 칼로 찌르고,


“저번에.”


다른 한 놈의 심장을 칼로 베고,


“경고하지 않았나.”


도망가려는 한 놈의 다리를 총으로 쏴버린 다음.


터벅터벅, 내 바로 앞에 있던 마지막 남자의 대가리를 향해 발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떨어져나간 남자를 향해 미련없이 총을 겨눴다. 탕. 마지막 총성이었다.

총을 맞은 남자의 피가 가까이 있던 나에게 튀겨 얼굴 일부를 감쌌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몸이 벌벌 떨렸다. 나도 죽이려는 속셈일까. 순식간에 사람 넷을 죽인 살인마라면 아마 나도..

터벅터벅. 그 발소리가 이제는 나를 향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살며시 눈을 떴더니 망토를 쓴 남자가 내 앞에 앉아 시선을 맞춰주고 있었다.


”허억..!”


너무 놀라 등을 벽에 바싹 붙이자 앞에 있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


뭔가 깨달은듯 자신의 망토를 벗는다. 짤랑. 벗는 동시에 검은 머리칼과 수려한 얼굴, 그리고 목에 걸려있던 은색 목걸이가 드러났다.

그 동시에 내 눈에 들어온 목걸이에 적혀있는 이니셜. 얼마전부터 정우한테 죽도록 배우던 글자들이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Mark 라는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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