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은 멈칫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잠시 후 뒤돌아서 유하를 보았다.

자신 앞에서 잔뜩 긴장한 채 뭔가 단단한 결심을 한 듯한 유하를 보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절한다고 말하려고 왔어요? 잔인하네요. 말 안 해도 저도 눈치껏 그 정도는 알아요.”

“…….”

유하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결을 빤히 올려보았다.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생겼다.

유하가 손을 뻗어 한결의 양팔을 살며시 붙잡았다. 한결의 까만 눈동자를 빤히 응시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한결은 유하가 뭘 하려는 건지 몰라서 당황해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두근두근.

처음 보는 낯선 유하의 기묘한 눈빛과 애틋한 표정에 온몸이 떨렸다.

그 순간 유하가 발뒤꿈치를 올려 한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유하의 돌발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던 한결은 너무 놀라서 혼이 빠진 듯 휘청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게 내 대답이야. 하던 거 마무리.”

유하가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서 발밑을 보았다.

한결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서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얏.”

너무 세게 꼬집은 나머지 뺨 한쪽이 빨개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몸도 떨리고 동공도 떨렸다. 정신을 차리고 유하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선배, 빨리 대답하지.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늘 애를 태워요. 너무 해요.”

유하를 품에 꼭 안았다. 한결에게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한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다.

유하가 그런 한결을 신기한 듯 보았다.

“뭐야? 왜 울어. 싫은 거야?”

유하의 어깨가 한결의 눈물로 젖었다.

“축축하다. 바보. 눈물도 많네.”

“너무 좋으니깐 어째서 눈물이 먼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입은 웃고 눈에서는 눈물이 나요. 저도 처음 경험하는 이상한 기분이에요. 크흐흑.”

“어…. 그거 엄청 위험한 건데…. 울다가 웃으면…. 크큭.”

한결이 유하를 품으로 더 바짝 꽉 끌어안았다.

“헉. 숨 못 쉬겠다.”

한결의 가슴에 푹 파묻힌 유하가 웅얼웅얼 말했다.

“선배.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잘 할게요. 사랑해요. 힛.”

“응.”

유하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한결의 뜨거운 눈빛을 보기가 민망했다.

부족하긴 내가 더 한참 부족하지. 이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결이 유하의 투명한 갈색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뺨을 부드럽게 손으로 쥐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쪽! 쪽! 쪽!”

유하는 멍하니 한결의 입맞춤을 받았다.

“아니. 그냥 한 번 하면 되지 뭘 이렇게 많이 해.”

“왜요? 하고 또 하고 싶으니깐 그렇죠. 크크흐흑.”

한결이 언제 울었냐는 듯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전히 입술을 쭉 내민 상태였다.

유하를 한쪽 벽으로 밀어서 팔 안에 가두었다.

“어휴…. 또 왜…이러는 건데.”

두근두근.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한결의 눈빛에 유하는 설레고 두려웠다.

“쓰읍. 가만히 좀 있어 봐요.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한결이 유하의 입을 다시 맞추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우읍.”

한결이 유하의 입 안으로 혀를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유하는 낯선 느낌에 당황하며 고개를 뒤로 빼려다가 유하의 뒤통수를 꽉 움켜진 한결의 손아귀에 걸려서 속수무책으로 한결의 혀를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살짝 놀랐지만 한결이 키스하기 시작하자 곧 기분 좋은 짜릿한 쾌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키스에 유하는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황홀하고 미칠듯한 느낌에 유하는 몸을 떨었다.

우웁. 한결이 키스를 너무 잘해. 머리가 녹아버리는 것 같아. 빙빙 돌아.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키스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쪼옥…쪽쪽.”

거실 안은 두 사람의 키스하는 야한 소리로 가득했다.

근데. 이 키스는 언제 끝나는 거야. 이제 한계다. 어지러워. 키스하다 죽겠다.

유하는 오랜만에 키스라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숨을 제대로 못 쉬었다. 눈을 뜨고 한결을 보니 눈을 감고 여전히 열중하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한결의 가슴을 두 손으로 급히 팡팡 쳤다.

“우웁. 떼! 떼! 어서!”

“쪼오옥!”

한결이 아쉬운 듯 유하의 아랫입술을 쭉 빨며 떨어졌다.

“왜요! 한참 달콤했는데. 좀 참아요. 얼마나 하고 싶었는데….”

유하에게 눈을 흘기며 째려보았다.

“나… 숨…. 숨을 못 쉬겠단 말이야. 헉헉.”

유하가 숨을 헐떡였다. 잠시 깊게 호흡했다.

“아. 숨! 코로 숨 쉬면서 그냥 하면 되는데.”

“말 안 했는데. 나… 비염 있잖아.”

유하가 부끄러운 듯 바닥을 보았다.

“그랬어요? 몰랐어요. 하던 거 다시 해요?”

“아니…아니. 이제 그만. 담에…. 담에. 좀 더 쉬어야 해.”

유하는 한결이 또 한다는 말에 등골에 소름이 끼쳤다. 숨을 못 쉰 것도 맞지만 더 중요한 건 몸에서 뜨거운 반응이 시작되려 했다. 그래서 급히 비염 핑계를 되며 한결을 떼 냈던 것이었다.

으악…. 괜히 좋다고 했나 봐. 얘는 뭐 에너자이저도 아니고 지치지도 않아.

한결은 금방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한결이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유하의 뒤통수를 손으로 잡으려고 했다.

“다음에 언제요? 마음 바뀌기 전에 많이 해둘래요. 선배는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잖아요.”

“아니야. 오늘 쉬고. 담에 또 하자.”

유하가 한결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아…알았어요. 싫다는데 어째겠어요. 어후. 또 나만 몸 달아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선배도 막 나한테 적극적으로 스킨십하고 애정 표현해주면 좋잖아요.”

“어. 할게. 천천히 할게.”

유하가 한결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한결이 입술을 얼마나 빨아댔는지 입술이 빨갛고 퉁퉁 불어 있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이래 가지고 나갈 수 있을려나. 쪽팔려.

유하가 불안한 듯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아참, 꼭 할 말이 있어. 이 바보는 말 안 하면 모를 거야.

“한결아, 꼭 할 말이 있는데. 당분간 우리 사이 비밀이다. 알지? 우리가 평범한 커플은 아니잖아. 일단 조심하자. 게다가 넌 유명인사잖아.”

“네? 선배 제가 창피해서 그런 거 아니죠?”

한결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아니야. 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 일단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유하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앞으로 험난한 길이 눈에 훤히 보인다. 한결의 마음을 받아들인 게 잘한 건지 잘 모르겠다.

유하가 역시 입술이 빨개서 퉁퉁 부은 한결의 입술을 보았다.

어휴…. 입술이 저러니깐 더 잘생기고 거기다가…. 섹시해 보인다. 크흡.

순간 한결이 자신의 생각을 읽을까 봐 유하는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도 유하는 여태껏 살면서 한결처럼 자신만 바라보며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늘 받기만 하다보니 어느새 마음 깊숙한 곳에 한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꿀꺽”

유하는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한결은 광대가 볼록 솟아있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다 손에 얻은 듯 웃고 있었다.

“이제 정말 선배 제 꺼예요. 그동안 이 말을 얼마나 하고 싶었는지 몰라요.”

한결이 신나서 유하의 손을 꼭 잡았다. 유하의 손을 볼에 대고 문질렀다.

그…그전에도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

유하는 한결의 말에 피식 웃었다.

“선배도 뭐 좀 마실래요? 키스를 했더니 목이 좀 타네요.”

“어? 난 콜라.”

한결은 비타민 음료와 콜라를 가지고 소파로 왔다.

“어 넌 맥주 아니네?”

“이제부터 몸 관리 해야죠. 언제 곧 힘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아, 선배 제 복근 한 번 만져 볼래요?”

한결이 유하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아…난 아직은 별로.”

한결이 억지로 유하의 손을 자신의 티셔츠 안으로 넣어 복근을 만지게 했다.

“아…. 됐어.”유하는 얼굴을 빨개져서 콜라를 마셨다.

한결은 유하의 손이 닿았던 복근을 문지르며 야릇한 눈빛을 보냈다.

“이 복근 선배한테 보여주려고 만들었는데 안 보면 섭섭해요. 칭찬해줘요.”

“와…. 개멋있다.”

유하가 어색하게 웃으면 물개박수까지 쳤다.

한결아, 속이 너무 훤히 보이잖니. 키스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

기분 좋아진 한결이 비타민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선배…. 저는 선배 처음 봤을 때 좋아했는데…. 선배는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유하는 한결의 해맑은 눈빛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얼마 안 된 거 아니였어? 동거하기 전부터네. 그럼….

갑자기 한결의 철두철미함에 유하는 등골이 오싹했다.

“나…. 잘 기억이 안 나네…. 하하.”

유하는 어색해서 콜라를 마셨다.

글쎄... 그게 언제부터였던가. 별로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흠.

“제가 좀 잘생기고 멋지잖아요. 선배가 반할 줄은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 훗.”

한결이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 바…반했다기 보다는….”

유하는 애매모호하게 말을 얼버무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느 순간 편해졌어. 정이 들었나 봐. 그리고…. 뭐 또 그렇게 된 거지. 크큭. 감정을 말로 표현하려고 하니 잘 안 되네.”

유하가 부끄러워하며 혀를 쏙 내밀었다.

“우윽.”

한결의 유하의 그 모습에 심장을 부여잡았다.

“왜? 어디 아파!”

“심쿵했어요. 방금 쑥쓰러워서 혀 내미는 모습. 제 앞에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잖아요.”

한결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유하는 민망해하며 한결의 어깨를 퍽퍽 때렸다.

“야이, 씨발. 그런 닭살 돋는 말 하지 마. 넌 뭔 입만 열면 그래.”

“너무 좋으니깐 그렇죠. 하는 저라고 좋은 줄 알아요? 그 말이 아니면 표현이 안 되니깐 저도 어쩔 수 없어요.”

한결이 유하의 두 손을 꼭 잡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쪽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두근두근.

유하는 한결이 또 입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한결을 밀쳤다.

“야, 그만해. 미친놈아. 틈만 나면 하려고 해. 그거 못해서 죽은 귀신 붙었어?”

“쪽!”

한결이 유하의 입술에 순식간에 입술을 겹쳤다.

“네. 뽀뽀 못해서 죽은 귀신 붙었어요. 크큭.”

끈적한 시선으로 유하를 바라보았다.

“어후. 아무래도 난 안 되겠어. 이런 게 적응이 안 돼.”

“들어올 땐 선배 마음이지만 나가는 건 안 돼요. 크큭. 저한테 붙잡혔으니깐 평생 저랑 함께 해야 해요. 힛.”

한결이 그런 유하를 귀여워하며 양 볼을 손으로 쭉쭉 잡아당겼다.

“아직 24시간 안 지났는데 그냥 무르면 안 될까? 아까는 좀 심신 미약 상태였어. 네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다고. 비에 흠뻑 젖은 유기견 같았어. 이건 순전히 동정이야.”

“…….”

한결이 팔짱을 끼고 싸하게 노려보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어요. 앞으로 쭉 함께 살아야 해요. 또 한 번 말하면 키스해야 되요. 아까보다 더 길게”

“…….”

유하는 입을 꼭 다물고 한결을 보았다. 눈을 깜빡거렸다. 억지로 한결을 달래듯 말했다.

“우리 천천히 하나씩 하자. 급할거 없잖아.”

한결의 손을 꼭 붙잡고 차분하게 설득하듯이 말했다.

“아뇨. 전 급한데요.”

“어. 아직 젊고 혈기 왕성해서 그래. 나 너보다 한살이나 늙었다. 배려 좀 해줘. 설마? 오늘 당장 덮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유하는 은근슬쩍 한결을 떠보았다.

한결은 깜짝 놀란 듯 몸을 살짝 떨었다. 눈빛에 실망이 가득했다.

“아니…. 아니요. 저 그런 짐승아…아니거든요. 키…키스한 것만으로 만족해요.”

“어.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유하는 그제야 안심하며 한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한결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덜덜 떨고 얼굴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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