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잘 드는 창이 있는 전원주택. 매일 아침 일어나 풍경을 감상하면서 커피 한 잔을 타서 먹는다. 간단한 브런치를 먹고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즐긴다. 그러다 영감이 떠오르면 작업실로 가서 원고를 작업한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계획한 대로 쓸까? 아니면 조금 비틀어서 쓸까? 큰 줄기는 변하지 않는다. 글 쓰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이다. 독자가 남긴 댓글을 보며 하루하루 힘을 얻는다. 일하는 도중 스트레칭을 한다. 가끔 독자의 메일이 오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읽고 답장을 쓴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집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한다. 이웃과 인사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럼프가 사라진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때늦은 저녁을 먹는다. 밝은 내일을 기대하며 제시간에 잠에 든다.

내가 상상한 나현 작가는 이런 사람이었다. 잘 웃고 친절한 사람. 그런데 실물은 그렇지 않았다. 고급 아파트. 날씨가 좋든 나쁘든 절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커피는 무슨, 콜라를 물 마시듯 마시며 운동을 제일 싫어한다.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다. 연재를 제때 하는 걸 보면 작업을 하는 건 맞는데 확인할 수 없다. 도도하고 필요 이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상상과 정반대였다. 세상에 내가 존경하는 작가가 히키코모리 아웃사이더라니! 이런 환상을 품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평소 나현 작가 이미지 자체가 그랬다. 작가 인터뷰 내용도, 작가의 말에도, 상냥하고 조곤조곤한 말밖에 없었다. 누가 히키코모리인 걸 알겠냐고! 지금 인터뷰하러 오는 기자도 모를 것이다. 진짜 모습을 알아서 불안했다. 갑자기 기자의 질문에 말 없이 가만히 있다가 나갈 것 같았다. 당부의 말을 하려던 차에 기자가 왔다. 그때부터 소름이 돋았다. 면접 때 봤던 웃음을 지으며 아가씨가 기자를 맞이했다. 저게 바로 거짓 미소라는 거구나. 아니지. 어쩌면 인터뷰를 좋아할지도 몰라. 나한테만 그러는 걸지도 몰라. 문틈으로 안을 살짝 봤다. 의외로 기자와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진 긴장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가 끝났다. 하마터면 열리는 문에 얼굴을 부딪힐 뻔했다. 기자가 나를 보고 당황했다.

"저, 작가님? 이 분은?"

"그, 저,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제 비서세요."

기자가 의심의 눈길을 거뒀다. 다른 사람에게 비서라고 해주긴 하는구나. 막상 집에선 노예 취급이지만. 기자와 헤어지고 주차장으로 갔다. 아가씨 완전 딴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래도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긴 하는군요! 아가씨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피곤해. 맥이 빠졌다. 그럼 그렇지. 사회생활에 필요한 가면이었어…. 차에 타자마자 아가씨가 뻗었다. 겨우 두 시간 외출했다고 지쳐버리다니. 역시 운동 부족이야. 벨트를 메고 운전석으로 갔다. 집에 돌아가는 과정은 긴장과 불안과 소리 없는 비명이 가득하므로 생략한다. 도착해서 아가씨를 깨웠다. 집에 가서 주무세요. 아가씨가 힘 없이 비척비척 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들어가 현관문을 닫자마자 아가씨가 드러누웠다. 옷은 갈아입어야죠. 이대로 잘래. 어휴. 아가씨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넣었다. 씻을 때까지 안 열어줄 거에요. 한참 있다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옷 가져올까요? 문이 열렸다. 방에 들어가지 마. 문 열 힘은 있으시네요. 문이 쾅 닫혔다. 저녁 준비나 해야겠다. 카레 만들어야지. 채소를 썰고 있을 때 아가씨가 나왔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식탁으로 와 다시 엎어졌다.

"귀찮아. 왜 그런 걸 물어보지."

"뭐 물어봤는데요?"

"맨날 묻는 거."

"그게 뭔데요."

아가씨가 으으 하고 신음했다.

"연애…. 애인 있냐고 묻는 거 지겨워. 로맨스 작가면 다 애인 있는 줄 알어."

뜨끔했다. 난 절대 연애 안 할 건데. 작은 웅얼거림이었다. 목소리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세상에 절대란 건 없는데. 나만 해도 개인 비서…노예가 될 줄은 몰랐고. 괜히 마음이 쓰였다. 마치 자신한텐 연애가 허용되지 않는단 말처럼 들렸다. 오늘 힘들어서 그렇게 말했겠지. 하마터면 강황 가루를 적정량 이상 넣을 뻔했다.

잡덕인 만큼 여러 가지 많이 써요. 낡은 작가지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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