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준 스물일곱. 오랜만에 백이재를 만났다. 곧은 자세의 이재는 변함없이 고아하고 격식 넘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준은 표정의 변화 없이 머리만 조아려 “안녕하세요.” 인사했다. 우직하고도 울림이 깊은 목소리에 이재가 우뚝 발길을 멈추었다. 이내 거만하고 의뭉스러운 눈길이 제 키만큼 장성한 청년을 느릿하게 훑어보았다. 그제야 강도준이란 인물을 인식한 듯 느지막한 반응이었다.

 

보통 같으면 짧은 대답이나 눈웃음만으로 지나칠 그가 유난하다는 생각하는 찰나, 이재가 싱긋 입매를 올렸다. 호의적이지 않은 미소였다. 도준은 내심 긴장했지만, 티 내진 않았다. 예의 덤덤한 얼굴로 그와 눈을 마주했다.

 

잠시간의 정적 후, 이재가 입을 열었다.

 

“울리면 눈알을 파버릴 거고.”

“...?”

“걸레같이 굴면.”

 

이재의 시선이 향한 곳은 도준의 다리 사이였다.

 

“그거. 잘라버릴 거야.”

“...”

 

허.

 

그 이상의 말 없이 돌아서는 이재의 뒤에서 도준은 처음으로 포커페이스를 잃었다.

 

‘씨발,’

 

욕을 삼킨 도준이 어깨를 접어 킁킁거렸다. 

 

‘섹스한 건 어떻게 알았지.’


작게 중얼거린 그는 침대에서 늘어져 있을 하얀 몸뚱이를 떠올렸다. 그에게 밤새 혹사당하느라 겨우 잠이 든 시우였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제가 없는 새에 일어나기라도 하면 온갖 투정을 부릴 것이다.  


발길을 재촉한 도준은 이재의 경고를 쉽게 잊었다. 그딴 것이 무서웠으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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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쓰다가 잠깐 휘갈겨 봤습니다.

원고에 넣을지 말지는 고민 중.



벨작가 모르페우스/블러드포커/차사태신전/원웨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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