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9년에 써서 '임시저장'해두고 공개하지 않은 글을 2022년에 발견하고 공개하는 글입니다)

얼마 전, 2월 초로 확정된 <새벽 산책>출간 날짜를 받았습니다. 날짜로 따져보면 원래의 출간 예정일이었던 1월 말과 얼마 차이 나지 않는데도, 참 오랜 시간동안 이 날을 기다려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 산책>은 제가 작년 7월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정말 충동적 작업이었습니다. 

원래도 뭔가를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해서 요리나 공예 그리고 기계 조립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데,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첫 째는  아무리 막막하더라도 일단 착수하면 뭔가 그럭저럭 된다는 것이고 둘 째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한 소스를 최대한 활용하면 시간 낭비를 엄청나게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제가 소설을 한 번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캐릭터 조형 방법, 플롯 짜는 방법, 기-승-전-결 엮기, 소설작법의 법칙 등에 관해서 방법론을 많이 찾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소설가 분들의 블로그를 구독하고, 이렇게 하는 거구나, 어렴풋 틀을 짰을 때는 작법서를 여러 권 읽었습니다. 

(2022년의 첨언: 소설을 오래, 많이 읽으신 작가님들, 독자님들께 꼭 필요한 과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많이 읽으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지식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소설에 친하지 않았기에^^;  속성으로 요점정리하다시피 공부한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에게 필요하고 효율적인 방법이었으나 소설을 직접 많이 읽어가며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는 되지만, 깊이감엔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정윤이와 재리를 창조해내고...^^(소설가 분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배운대로, 인물의 바이오그래피도 적어보고, 어린 시절의 일기도 적어보고 에고그램도 부여해주었습니다) 혼자서 10편 가량을 써보았습니다. 딱 그 정도 쓰니까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때 조아라에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업로드 자격요건을 살펴보았는데, 다행히 아무 글 경력이 없는 사람도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더라구요.

포토샵으로 저작권 프리 이미지를 이용해 표지를 몇 장 만들었다 지우고 제목도 이 제목, 저 제목 지어보고 필명도 고민해보고. 그러면서도 '읽는 사람들이 있긴 할까?' 하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즐거워했습니다. 그런 것 있잖아요. 막연히 생각만 했던 것에 실제로 착수했을 때 느끼는 흥분감 같은 것.

그리고 하루에 한 편씩 올렸습니다. 조아라에 소설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데, 어떻게 제 소설을 찾으셨는지 읽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와… 진짜 신기하다. 와중에 4화에 첫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콩닥콩닥 심장이 뛰었어요. 내 글을 재밌다고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내 글을 재밌다고 해 주는 거 너무 재밌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고작 10편 정도 쓰고 소설쓰기의 동력을 잃었던 저는 독자님들의 반응을 마약처럼 섭취하고서 글 쓰는데 엄청나게 몰입하게 되었고 그 후 완결을 낸 11월 20일까지 제 안엔 소설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고깃집에 가서 익어가는 고기를 보면서 정윤이 재리 생각…. 샤워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물론 직장에서도요. 

소설 쓰기란 의외로 효율이 높은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깨어 있는 내내 소설에 대해 생각했으니까요. 가만히 앉아있는 출퇴근 시간도 소설의 전개를 생각하는 데 할애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2022년의 첨언: 소설에 정말 푹 빠져들어 있어야 이게 가능한 것 같아요. 다른 소설을 쓸 때 꼭이렇지는 않더군요) 

독자님들과의 교류는 점점 더 즐거워졌습니다. 소위 '뚱댓'이라고 불리는… 그냥 댓글이라 뭉뚱그리기엔 너무나 정성들인 글을 남겨주시면 뭉클했고, 또 기뻤어요. 우리는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왠지 글쓴이인 저 자신과 깊이 사귀어주는 기분도 들었고요.

그렇게 새로운 종류의 도파민에 중독되다시피한 한 철, 어느덧 소설이 착착 진행이 되고 소설의 <결> 부분을 쓸 때는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언제나 끝 매무새가 중요하잖아요. 이만큼 공들였는데 마지막을 날림으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완결 그거 어떻게 하면 잘 내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특별한 재주는 없고. 이렇게 써봤다가 저렇게 써 봤다가 원고를 폐기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아주 충분히 있지도 않았어요. 조아라 노블레스로 연재했기에, 독자님들이 유료로 소설을 보시는데 텀이 너무 늘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뭘 해도 원고가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으니까 당시 엄청 예민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에 완결은 아주 탁월한 생각이 갑자기 나서 몰아치듯이 썼다기보단,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는 느낌으로 써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초보 건축가가 이렇게, 저렇게 조형해가고 만져가면서요. 

상상으로는, 완결을 내고 나면 가뿐하고 행복하고 동시에 시원섭섭할 것 같았거든요. 압도적인 감정이 밀물과 썰물처럼 제 속에 드나들 것 같았는데요.

실제로 완결을 내 보니 놀랍게도 아무렇지 않았답니다ㅎㅎㅎ 그냥, '음… 이렇게 끝이 났구나. 두 사람에게 괜찮은 결말이야. 이제 외전 써야지.' 그랬던 것 같아요. 제 감정의 우물을 정윤, 재리에게 다 쏟아버려서 또 무언가에 감격할 만한 게 남지 않아서였을지도, 혹은 결국에 완성하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였는지도요(중간에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왔으니까요). 그만큼 무덤덤했던 것은 스스로도 의외였어요.

그러나 확실한 건 <새벽 산책>을 쓰기 전과 후의 저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일 수 없게 됐다는 것이겠죠. 저는 이제 '작가'라는 또 하나의 자아가 생겨났고, '정윤', '재리'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그들을 마치 오랜 친구처럼 사랑하게 되었고요. 글쓰기의 맛을, 독자님들과 사귐의 즐거움을 알아버렸고요.

그렇게 짧다면 짧지만 강렬했던 4개월 남짓의 시간을 보내고, 2개월 가량은 원고를 고치고 다듬고…. 그 과정을 거쳐서 받은 출간 날짜가 매일 매일 다가옵니다. 주변 작가님들께 들은 바로는 조아라에 연재하는 것과, 출간하여 진정 상업 독자님들께 선보이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던데요. 

처음이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릴 뿐입니다. 

어떤 기대감이나 불안 같은 것이야 있지만, 최종고를 편집부에 보내고부터는 이젠 정말 제 손을 떠났잖아요. 집에 있는 외투 중 가장 따뜻한 것 입혀서 정윤이와 재리를, 기차에 태워보내는 기분입니다.

부디 잘 도착하기를, 가서 환대까지는 아니어도 박대받지는 않기를 바라면서요. 

앞으로도 저는 글을 아마 계속 쓰겠죠? 출간도 계속하겠지만, 첫 출간은 생애 한 번만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이 순간을 잊을까 봐 몇 자 기록해 둡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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