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남수]One's youth

W. 와니


08






 점심 먹으러 가자. 나 먹기로 한 애 따로 있는데. 나도. 다운이랑 먹기로 했어. 이지훈이 나와 김선민의 대답에 예상 못했다는 듯 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소리를 냈다. 어쨌거나 나도, 김선민도, 각자 상대와 미리 약속했던 거라 말을 바꾸지 않고 있는데 갑자기 무심한 표정으로 되돌리고 나도 경민이랑 먹기로 했어. 하며 개구지게 웃었다. 장난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뭐여. 김선민은 퉁명스레 반응하고 그대로 이지훈을 지나쳐 앞문으로 향했다. 야, 같이 가. 같은 반이잖아. 강세야, 잘 먹어. 야, 야! 같이 가! 같이 먹어! 나한테 인사를 하든지, 김선민을 뒤쫓아 가든지. 둘 중 하나만 하지, 이지훈은 김선민을 뒤따라가면서도 뒤돌아 나한테까지 인사를 했다. 너도 잘 먹으란 뜻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 남수에게로 갔다. 며칠 전만 해도 이랬다.

 "너희 오늘 진짜 방송부 면접 봐?"

 남수, 나, 이지훈, 그 맞은 편에 김선민, 정다운, 김경민. 어느 순간부터 반도 다른 6명이 같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이지훈의 물음에 나와 남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방송부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는데 누나의 권유 아닌 권유에 반강제로 지원서를 넣게 되었다. 어차피 동아리 하나는 가입해야 하기도 했고. 나도 방송부 들어갈 걸 그랬나. 이지훈이 중얼거리자 방송부 얼굴 봄. 닌 안 됨. 맞은편에 앉아있던 김경민이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잘라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지.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이지훈에 대각선에 앉아있던 김선민이 왜 저래 하는 눈빛으로 한 번 흘겨보았다. 아, 근데 강세네 누나 진짜 예쁘더라. 이름이 뭐였지? 솔.. 솔현? 김선민이 말하자 옆에 있는 정다운이 맞아, 맞아. 하며 끄덕였다. 나솔희. 현으로 끝나는건 세현 누나. 정정해주자 아, 맞아.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큭큭대며 웃기 시작했다. 근데, 강세네 다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 완전 거푸집 수준. 그 말에 이지훈이 인정. 하며 같이 웃기 시작했다. 야. 내가 더 낫지. 정색하고 말하는데 남수도 따라서 미소를 짓고 조그맣에 웃고 있었다. 이응~ 하며 이지훈이 파래 나물 무침을 집어들었다. 아니, 근데 급식 왜 갈수록 맛 없어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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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사람이 이렇게 몰릴 일인가. CA 시간이 돼 느지막하게 남수를 데리고 면접 장소로 향했는데 교실 밖으로 줄이 벌써 서있었다. 언뜻 봐도 10명은 넘어있었고 약간의 신기함과 함께 어이없음, 그리고 귀찮음이 섞인 감정이 마음 속에서 살짝 올라왔다. 1분 쯤 지나자 종이 울리고 방송실 문이 열리면서 교실에 홍보하러 왔었던 낯익은 얼굴 하나가 나왔다. 세 명씩 들어오세요.

 한 팀당 약 5분씩. 10분을 넘기지는 않았고 남수와 소곤거리고 있으니 금세 우리 앞까지 왔다. 몇몇 애들은 나처럼 별 생각 없이 가벼운 얼굴이었고 또 몇몇 애들은 긴장한 얼굴로 종이를 보며 무언가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가만히 그 앞을 바라보다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우리 차례였다.

 들어갔더니 세 명이 앉아있었고 두 명은 뒤에서 종이뭉치를 탁탁 책상에 가볍게 치며 정리 중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아주 익숙한 얼굴이 보였고 무심하게 맞은 편의 우리들을 가로로 살폈다. 곧 오른쪽에 앉아있는 이름 모를 애부터 인사를 하며 소개를 시작했다. 면접관은 한 명씩 왜 방송부에 왔는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뭘 배우고 싶은지 등 공통 질문을 했고 소개를 했던 순서대로 그에 맞는 답을 했다. 답변을 듣고는 한 명씩 그와 연계된 개인 질문으로 심도 있게 나아갔다.

 "연출과 편집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배우긴 하지만, 저희의 주된 일은 그게 아닌데 괜찮으신가요?"

 "아.. 네."
 "…솔직히 말하면, 이미 프리미어를 다룰 정도면 저희 동아리에선 그 이상을 배우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오히려 저희 쪽에서 물어볼 수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나요?"

 "아.. 저도 조금만 아는 거라.."

 "…네. 알겠습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셔도 됩니다. 하는 말에 다시 반경례를 하며 문으로 나섰다. 기분 탓인지 앞전 팀들보다 살짝 오래한 느낌이었다. 질문들도 생각보다 전문적이고 날카로워서 내심 놀랐다. 우리가 마지막 팀이라 더 여유롭게, 더 예리하게 한 걸 수도 있겠지만. 옆에 있던 애는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표정이 살짝 좋지 않았다. 그렇게 남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게, 나도 떨어질 것 같아. 아직 종이 치지 않아 조용한 복도에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며 교실로 향하는데 뒤에서 "나강세!"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누나가 손을 아래로 해 손짓하고 있었다.

 "왜?"

 "가입은 남수한테 말했는데 너도 왔네?"

 "시비털려고 부른 거야?"

 "응."

 콧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발을 떼는데 잠깐만. 하며 남수 어깨 위에 올려진 내 팔을 잡았다. 또 왜. 시큰둥하게 고개만 돌리는데 요구르트 두 개가 보였다. 면접 고생 많았어. 누나가 엄지와 검지, 중지 사이사이에 하나씩 끼워놓고 빙긋 웃음을 지었다. 오. 팔을 풀어 받아들고 남수에게 하나 건넸고 남수도 감사합니다. 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응, 잘 가. 누나는 자기 할 말이 끝나자 바로 다시 문을 닫으며 들어갔고 우리는 뚜껑을 까며 뒤로 돌았다.

 "맞아, 나 오늘 약속 있어."

 응. 남수가 한 모금 삼켰다. 너도 같이 갈래? 뭐하는데? 몰라, 아마 피씨방? 노래방 갈 수도 있고. 남수는 무심하게 앞만 바라보며 병을 입술에 댄채 꼴깍꼴깍 삼키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그 옆모습을 바라보다 요구르트를 홀짝 입에 털어넣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남수가 모르는 애들도 있는데 안 오는 게 더 나았다.

 "너무 고민도 안 하고 거절하는 거 아니야?"

 "시끄러운 거 싫어."

 장난스레 말하는데 남수는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면서도 단호했다. 나랑 가는 건 괜찮고? 물으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너는.. 입을 뗐다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굴렸다. 너잖아. 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를 누르며 나도 가는데? 이해 못하는 척 되묻자 남수가 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혼자잖아. 그 말에 눈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진짜 안 가? 남수는 보지도 않고 바로 응. 답했다. 장난은 그만두고 웃음을 지으며 다시 어깨에 팔을 올리며 남수 머리에 톡 얼굴을 기댔다. 아쉽네. 뭐가 아쉬워. 내일 보는데. 그니까 아쉽지. ..15시간을 못 보는데. 말을 하다 몇 시간인지 세고 있으니 남수가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어. 넌 안 아쉬워? 시치미를 뚝 떼며 고개를 반대로 기울여 남수를 바라보니 남수도 지었던 웃음을 지워내며 답했다. 아쉬워. 그리고는 입가를 씰룩이며 참은 웃음을 다시 흘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두 팔로 목을 꼭 껴안았다.

 "안 되겠다. 핸드폰 사자."

 "무슨 핸드폰이야."

 "내가 사줄게."

 "네 돈도 아니면서."

 "연락 안 되니까 짜증난단 말이야. 갑갑해."

 실랑이 같은 장난을 계속 하다보니 어느새 중앙 계단을 다 올라와 우리 반 앞 복도였고 남수가 됐어. 웃으며 거절하다 잘 가.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응, 너도 잘 가. 내일 봐. 나도 인사를 하며 앞 문 안으로 들어가는 남수를 보고 뒷 문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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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여기 힐! 힐!!"

 키보드를 바쁘게 움직였다. 몇 초 후에 화면에 패배가 떴고 주변에서 "예-!" 환호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사이 곳곳에는 "하, 씨.." 욕이 섞인 한탄이 끼어있었다. 아, 나강세! 권태영이 헤드셋을 목으로 쑥 내리며 의자에 푹 몸을 기댔다. 아니, 너는 왜 갑자기 힐러를 해가지고 이러냐. 그 말에 뒤에 앉아있던 최유리가 의자를 돌렸다. 네가 잘했으면 힐도 필요 없었을 거 아냐. 맞아, 자기가 못해놓고 말이 많아. 옆에서 거드는 김선민에 권태영이 말 없이 둘을 흘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유리는 허. 접. 비웃으며 다시 의자를 돌렸다. 저…. 권태영은 어금니를 물고 김경민 하드 캐리~ 웃는 뒷모습을 노려보더니 한 번 깊이 숨을 내쉬며 의자를 돌려 컵라면을 들었다. 그러고는 후룹- 한 젓가락을 먹고는 아나, 다 불었네. 신경질적으로 다시 툭 책상에 내려놓았다. 나는 다 마신 콜라 잔에 얼음만 까드득 씹었다. 권태영이 몇 번 마우스를 움직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다. 야, 시간 다 됐어. 노래방 가.

 "나 못 갈 것 같은데."

 "헐, 왜?"

 최유리의 말에 김선민이 의자를 밀어넣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친구가 만나쟤. 최유리가 양손으로 핸드폰을 톡톡 만지다 남아있는 주스 한 모금을 삼켰고 그 말에 권태영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뭐여, 이중약속? 그 말에 발끈한 듯 고개를 들었다. 아, 게임만 하는 줄 알았지. 갈 건지 말 건지 의자 등받이에 기대 서서 관전하고 있다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럼 나도 빠질래. 뭐? 너는 왜? 한 칸 옆에 떨어져있던 이지훈이 목을 빼며 물어왔다. 그냥. 답하자 우리 부모님도 아니고 놉, 안됨. 하며 검지 하나를 올려 좌우로 까닥였다. 왜 안돼. 라고 받아치려고 했는데 김선민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더니 문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 해.

 몇 명 만나는 거야? 한 명. 꼭 가야해? ..그것까진 아닌데.. 최유리의 답에 김선민이 가만히 바라보다 흠-. 하며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솔직히 서운하다. 우리 개학하고 처음 보는 건데. 최유리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검지로 핸드폰 등만 긁적였다. 사이가 조용해졌고 이지훈은 이 상황이 머쓱한 듯 뒷목을 긁었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그럼 못 만난다고 말할게. 최유리가 팔을 올리며 핸드폰을 켜는데 김선민이 아니. 고개를 저으며 잘라냈다. 같이 놀아. 예상 못한 말에 권태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김선민이 난 걔만 괜찮으면 상관없어. 무심하게 말하며 우리 쪽을 보며 물었다. 너흰 어때? 뭐.. 우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이유정이야."

 검은색 장발, 눈썹을 덮는 앞머리, 끝에 살짝 들어간 웨이브. 동그란 눈에 흰 얼굴, 빨간 입술. 내 턱 쯤 오는 것같은 키. 그리고 최유리가 입은 것과 같은 베이지 색의 니트에 갈색 치마 교복. 최유리는 김선민의 말에 전화를 걸었고 몇 번 말을 주고 받더니 금세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근처에 있었는지 이유정은 금방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고 쑥스러운지 말끝을 살짝 늘이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 우리도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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