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네? 출장이요?”


갑자기 팀장이 저를 자리로 부르기에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었더니. 아카아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출장이야 뭐 그리 놀라운 건 아니지만, 어떤 내용이기에 팀장 얼굴이 저렇게 심각하지. 뒷짐을 지고 있던 아카아시는 괜스레 긴장돼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도대체 어디로 보내려고 하기에 저런 얼굴을 하지. 마치 사형선고 내리는 판사 같은 얼굴이잖아.


“좀, 멀고 긴데…. 괜찮겠나, 자네?”

“…도대체 어디로 보내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팀장이 한숨을 작게 쉬었다. 일단 준비 기간 두 달 정도 줄 걸세. 그래도 사람이 말은 통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상부에서 간부들이 다들 자네 얘기를 듣더니 아카아시 군이라면 믿을 만 하지, 하는 말이 나오더라고. 어딜 가서도 열심히 잘 하는 거 아니까…. 뭘 저리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그런담. 오히려 저러니 더 불안하다.


“영국으로 2년간 장기출장을 가게 되었다네. 너무, 놀라지 말게나. 자네 미혼이었지?”

“아, 예….”


처자식이 없어서 다행이구먼. 팀장이 머쓱한 모양이었는지 일부러 소리를 내 껄껄 웃었다. 많이 놀랐냐며, 인제 그만 자리로 돌아가 봐도 된다는 그의 말에 아카아시는 다른 의미로 가슴이 떨렸다. 2년간, 영국이라니. 이 사실을 ‘그’에게 알리면 대체 얼마나 좋아할까. 

자리로 돌아가 읽고 있던 인터넷 창을 조심스레 열었다. 영국 배구팀 입단 3년 차. 동아시아에서 온 비상하는 스파이커 ‘보쿠토 코타로’에 대한 찬사가 가득 담긴 기사였다. 팀장은 갑자기 낯선 곳으로 뚝 덜어져 나가게 될 아카아시를 걱정했겠지만…. 아카아시에겐 이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심장이 떨린다. 당장 문자창을 켜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보쿠토 씨, 저 영국으로 2년간 장기출장 가게 됐어요. 지금이면 그는 쉬고 있을 시간이다. 시차가 12시간인가 나니까…. 그런데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안 자고 있었나?

아카아시가 뛰듯 사무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우와아악 아카아시!! 받자마자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카아시는 익숙하다는 듯 휴대폰 통화 볼륨을 조절했다.


-진짜!? 진짜야!?!?!? 2년 장기출장!?!?!? 정말이지?! 나 꿈 꾸나?! 으악! 뺨 완전 아픈데!!! 아니지! 꿈 아니라고 해줘!!!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댄다. 통화 볼륨을 낮췄는데도 스피커가 터질 것만 같다. 아카아시는 익숙하게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트렸다. 이렇게까지 흥분했으니 당분간 이러고 있어야만 한다. 2분 넘게 혼자서 난리 법석 발광을 하던 보쿠토가 이제야 드디어 진정했는지-그래도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와? 언제?


아까 팀장이 뭐라고 했더라. 준비 기간 두 달 준다고 했던가. 아카아시는 차분하게 말했다.


“바로 가는 건 아녜요. 준비해야 갈 수 있어요.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어학도 해야 하고….”

-그래도! 정해진 날짜는 있을 거 아냐.


과하게 들떠 있는데. 뭔가 묘하게 불안하다. 아카아시가 살며시 눈썹을 들어 올렸다. 왜 이렇게까지 신나있을까. 내가 가서 좋은 건 알겠는데…. 뭔가 또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거 같단 말이지…. 


“두 달 뒤입니다.”

-살 곳은?


아, 그걸 안 물어봤네. 아카아시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영국에 기숙사 같은 거라도 하나 얻어 주지 않을까.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어, 사택이나 그런 데에 살지 않을까요? 출퇴근해야 할 테니까요. 그러자 보쿠토가 훨씬 더 들뜬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아이고. 살살 말해도 다 듣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시끄럽게 말 하실 필요가 있나. 뭐, 그런 점이 귀엽긴 하지만.


-나랑 살자!

“…예?”


이건 또 무슨 뜻밖의 이야기람. 이 사람은 정말 날 놀래키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니까. 아카아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보쿠토는 여전히 신나 떠들고 있다. 나 영국에 집 있어! 내가 연봉은 괜히 받나 뭐. 일본에서도 나랑 사는데, 당연히 여기서도 나랑 살아야지! 년동안 나랑 살자. 그게 더 편하잖아. 우리 집에 다 있어. 토스터도 있고, 아카아시가 좋아하는 믹서기, 블렌딩 하는 거…. 다 샀다? 혹시 또 필요한 거나 갖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아카아시 오기 전에 전부 사 둘게. 응? 같이 살자아. 

조른다. 지금, 떼쓰고 있다. 이 사람…. 이미 이렇게 된 보쿠토를 말리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익히 알고 있다. 아카아시는 영혼 없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얏호! 보쿠토가 크게 소리친다. 아이고, 고막 터지겠어요. 보쿠토 씨. 제 귀도 좀 보호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아카아시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자리를 비운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곧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이 사람도 좀 재우고…. 그러던 찰나였다.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촥 내리깔더니 큼큼,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순간 침대에서 듣던 때가 생각나 아카아시의 뺨이 살구처럼 붉어졌다.


-나도 영어 잘 해.


…아. 그래. 그렇단 말이지.


역시 파트너로 오래 지내다 보니 눈치만 빨라졌나 보다. 아카아시는 금방 보쿠토가 제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회화, 자기한테 배우리 그거지. 여기서 거절하면…. A. 토라진다. B. 한동안 말하려 들지 않는다. C. 계속 꼬투리 잡으며 떼쓴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C가 가장 귀찮다. 


-매일 1시간씩 영어로 통화하면, 회화는 금방 늘어.

“…예. 알겠슴다.”


슬슬 사무실 복귀 해야 한다고 말하자 보쿠토가 여전히 텐션이 하늘을 찌르는 목소리로 굿나잇 인사를 했다. 이쪽은 한창 일 하는 시간이지만. 아카아시가 빙긋 웃으며 끊긴 전화에 대고 잘자요, 가벼운 인사를 했다. 보쿠토 뿐 아니라 아카아시의 마음도 두둥실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랐다. 2년. 늘 언제나 떨어져 지내야만 했던 두사람에게 2년이란 말도 안 되는 큰 시간이 주어진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무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볍다 못해 춤이라도 추고 싶을 지경이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국 장기출장, 저로 선택해 주셔서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 

경쾌하게 타자를 두드리던 아카아시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회화….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문법이야 학교에서 배우거나 회사에서 쓰는 비즈니스 메일 때문에라도 어느정도 할 수 있지만…. 아카아시 케이지의 일상회화는 지극히 교과서였다. 누가 자신에게 ‘How are you?’하고 물으면 곧바로 조건반사처럼 ‘I’m fine thank you. And you?’ 해 버리고 마는…. 전형적인 교과서 영어. 바로 내일부터 보쿠토가 전화 걸 텐데…. 대답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 거리면 분명 자존심이 상할 거다. 아카아시는 구O에 조심스레 ‘영어회화 책 추천’이라 썼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전혀 못 하진 않는다 그 말씀.


그리고 정말 너무도 정확한 때에 보쿠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출근 1시간 전. 아직 아카아시 케이지가 비몽사몽 정신이 없을 때다. 아카아시는 졸음에 가득 취해 퉁퉁 부은 얼굴로 더듬더듬 침대 위에 있는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네, 보쿠토 씨. 그러자 건너편에서 그립고 기분 좋은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보쿠토와 통화하는 건 매번 있는 일이지만.


[헬로, 스위티?]


…아.


맞다. 영어로 대화하기로 했지. 갑자기 등골이 쭈뼛 서며 정신이 바짝 든다. 아카아시 역시 헬로, 하고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음부터 교정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나 지금 일본식 영어 하는 거 아냐? 머리가 뱅글뱅글 돈다.


[스위티, 일어났어? 아직도 많이 졸려? 지금 일본은 몇 시지? 출근 시간은 아직 멀었나?]


빠르다. 이게 진짜 네이티브인가. 보쿠토는 귀국 자녀다. 영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때 후쿠로다니에 입학하며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이다. 문법은 분명 아카아시가 더 잘하지만, 회화에선 그를 따라잡을 수가 없는 거다. 빠르고, 자연스럽다. 무어라 말하는지 전부 알아들었지만, 입에 풀칠이라도 한 듯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하는 거지. 머리에 영어단어가 둥둥 떠다닌다. 이걸 잘 조합을 해서 말을….


[하하, 아직 어려워?]


어렵다. 솔직하게 그렇게 말할 뻔했다. 그러나 아카아시에게 남은 일말의 자존심이 그런 말은 하기 싫다고 빼액 소리쳤다. 일본어 할 때 보다 이상하게 좀 더 자극적이게 들렸다. 영국 영어라고 하지. 숨소리가 묘하게 섞인 발음이나 억양이 보쿠토와 지나치게 잘 어울린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돋보였다. 젠장. 섹시해. 아카아시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 보쿠토….”

[아니지, 코타로라고 해야지.]


전신의 털이 쭈삣 섰다. 관능적이다. 아침부터 이런 소리를 듣다니. 아카아시는 허벅지 사이를 살며시 비볐다. 지금 내가 선건 보쿠토가 야해서가 아니라, 아침이라 생리적 현상으로 인한 거다. 저절로 선 거다. 아래 신경 쓰랴 말 신경 쓰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코타로, 좋은 아침…이에요. 그, 음. 식사…. 식사는 하셨나요?]

[여긴 아침은 아니지만 말이야. 나는 자기 전이야. 오늘은 좀 일찍 자려고. 하하, 처음 통화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굳어 있는 거야? 내가 이제 나는 괜찮아 너는 어때 해야해?]


말문이 막혔다.


[너무 어려워? 좀 더 천천히 얘기해 줄까? 케-이-지-. 오늘 하루에 대해서 얘기 해 줄 수 있어? 회사에선 뭘 해?]

[그, 그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짜 한마디도 못 하겠다. 아. 일본 교육은 틀렸어. 영어를 그렇게 했는데 회화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니 그게 말이나 되냐고. 이래서 교과서와 시험 중심 영어는 안된다고. 사람들이 이러니 너도나도 영어 몇 마디만 해도 도망가고 그러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카아시는 휴대폰을 붙들고 낑낑거리다 결국 GG를 치고 말았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난다.


“…아, 아직 좀 더…. 공부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 하지만 알아듣기는 했어요! 전부 알아들었습니다! 마치 변명 같지만, 이 말은 꼭 해야 할 성싶었다. 그러자 건너편에서 쾌활한 웃음이 들린다. 바보. 바보 바보, 뭘 그렇게 웃어. 하지만 저도 보쿠토와 함께 웃음이 터졌다. 괜히, 기분이 좋다. 보쿠토는 여전히 영어로 말 하고 있었다. 아까보단 천천히.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이다.


[그럼 듣기라도 익숙해지게, 계속 말할게. 알아듣기는 하지?]

“네. 그럼요. 제가 이렇게 엉망인 줄 몰랐네요.”


초등학교까지 전부 영국에서 나온 사람과, 교과서만 본 사람이 실력 차가 나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젠 이래선 안 된다. 2년이라고. 2년 동안 회사에 가서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는데. 보쿠토에게 신세만 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심지에 화르르 불이 붙듯 의욕이 타올랐다. 바짝 긴장된다. 대답할 수 있는 것 중 쉬운 건 자신도 영어로 하려 노력했다. 30분 통화가 끝나자 진이 다 빠져 아카아시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하아. 어렵다 어려워….


그렇게 매일 반강제로 통화할 때마다 보쿠토와 영어로 대화하게 되었다. 처음엔 너무 어려웠는데 계속하다 보니 9:1 비율로 일어와 영어를 쓰던 아카아시가 어느덧 5:5에서 2:8 비율로 그와 영어로 대화하는 걸 더 익숙하게 여기게 되었다. 보쿠토는 원래도 영어를 더 편하게 쓰던 사람이니 아주 물만난 물고기처럼 일어를 할 땐 들을 수 없었던 많은 걸 들을 수 있었다.

낮게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래, 낯간지러운 애칭, 가끔 다른 팀의 선수가 반칙했다는 말을 했다고 할 땐 비속어도 쓰고, 어떨 때는 은어를 쓰기도 한다. 완벽한 일상언어. 가끔은 너무 비속어와 은어가 섞여 있어 아카아시가 웃으며 그런 말 회사에서 썼다간 잘릴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보쿠토는 네가 그렇게 잘 따라올 줄 알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확실히. 워낙 머리가 좋고 빠릿빠릿한 편인 데다 혼자 따로 공부도 많이 하고 그랬던지라 아카아시의 발음이며 어휘력은 매일 일취월장했다. 보쿠토가 하는 은어를 다 알아들을 정도면 말 다 했지. 전화로 농담 따먹기를 한다거나 줄임말을 쓴다거나 익숙하지 않은 숙어나 관용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레벨업! 이라는 건 이럴 때를 위한 말일까. 

게다가 아카아시는 영어를 할 때 목소리가 좀 더 낮아진다. 보쿠토는 그게 지나칠 정도로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저런 목소리로 말하면서 회사에 다니겠다고? 에잇. 그의 1분 1초라도 자신의 것이었으면 하는데. 괜스레 회사 사람들이 부럽고 그랬다. 


“짐 하나씩 도착하고 있어.”

“많이 보내진 않았는데…. 그래도 2년분이다 보니 꽤 나오더라고요.”


필요한 짐만 정리해서 영국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다 현지에서 사기로 했다. 그런데도 2년이란 시간 동안 필요한 건 왜 이렇게 많은지. 조금씩 정리해서 보쿠토에게 보내고 있다. 계속 목 빼고 우체부만 기다린다는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가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 안에서 아카아시 향기 엄청 나.”


마침 페이스타임 할 때 택배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가 박스를 열곤 사랑스럽다는 듯 책이며 이것저것 물건들을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마치 제 몸을 쓰다듬는 것 같아 아카아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 보고 싶다….”

“조금만 참으면 돼요.”


먼저 정리해도 괜찮았을 테지만, 같이 정리하고 싶어서 아직 손은 안 댔어. 보쿠토가 씩 웃으며 거실 한편에 쌓여있는 상자를 화면에 비췄다. 보쿠토 못지않게 저도 떨린다. 어서 만나고 싶다.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그와 한 침대에 누워 온기를 나누고 싶다. 이제 꿈이 아니다. 리그만 끝나길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2년간은. 조금만 참자. 보쿠토에게 하는 말은 곧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조금만, 참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참아요. 이제 내일이잖아요.”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다가오니까 더 못참겠는걸.”


보쿠토가 부루퉁하게 중얼거렸다. 참고, 참고 또 참았어. 나 진짜 많이 참았다고.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그가 커튼을 걷었다. 웬일로 영국에 해가 다 비쳐. 아카아시 온다고 날씨까지 좋은 가봐. 얼른 보고 싶어. 그가 화면 가까이 얼굴을 붙인다. 


“아카아시. 아카아시.”

“네, 보쿠토 씨.”

“나의 스위티. 나의 달링.”


아카아시가 빙긋 웃으며 영어로 대답했다. 이젠 익숙하게 영어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다 보쿠토 덕이다. 새벽 비행기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준비를 더 해야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지금은 고작, 전화지만. 곧,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제, 디데이다.




상쾌한 아침이다. 아니, 영국의 아침이라는 건 언제나 우중충 비가 오기 직전이거나 비가 오거나 안개가 껴 있거나 했지만 보쿠토의 가슴은 오늘 종일 맑을 예정이다. 드디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날’이니까.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니 정신이 없어 제때 연락이 되지 않을 수 있다던 아카아시에게 가타부타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 여권과 비행기표. 


아카아시 케이지가 2년간 보쿠토 코타로와 영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보쿠토는 창문을 열고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오늘은 감독과 코치에게 부탁해 평소보다 훈련을 일찍 끝마치고 나가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해 놓은 상태였다. 어제 어찌나 팀원들에게 자랑했는지. 고국에 있는 자신의 스위티가 2년 동안 영국에서 같이 지내게 됐다고 말했더니, 팀원들이 손뼉을 치고 샴페인을 터트려야 한다며 보쿠토의 등짝을 팡팡 쳐댔다. 


“코타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지나치게 시계만 보는 거 아냐?”

“아, 미안! 에릭!”


정신 집중할게! 뺨을 한 대 철썩 치고 다시 네트 너머에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면서도 계속 시계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훈련 종료 호루라기를 불자, 그는 날아가듯 뛰어가 탈의실에서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검은 반팔 티셔츠 위에 가죽 재킷을 걸치고, 핏이 딱 맞는 멋진 청바지를 입었다. 중간중간 워싱과 데미지가 멋들어진 청바지다. 거기에 선글라스와 캡모자를 쓰고 숨을 후, 몰아쉬었다. 저는 유명한 편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만약 파파라치라도 따라붙는다면…. 아카아시의 얼굴이 공개되는 건 절대 사양이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런던 국제공항까지 1시간 남짓 걸린다. 과속하지 않을 자신이 없지만, 딱지라도 붙였다간 아카아시가 보자마자 잔소리를 폭풍처럼 터트릴거다. 얼굴을 맞대자마자 잔소리 듣고 싶진 않으니까…. 도대체 얼마 만에 보는 거지. 정확하게 5개월 하고도 17일 만이다. 보고 싶어. 심장이 풍선처럼 자꾸 부푼다.

보쿠토는 평소보다 천천히 침착하게 운전했다. 아카아시가 도착하기로 한 시간은 저녁 6시 24분. 연착이 있더라도 하면 넉넉잡아 35분까지도 기다릴 시간이다. 보쿠토는 공항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댔다. 느리게 걸어야지. 그러나 발이 마음을 따라가질 못한다. 뛰어들 듯 공항 게이트에 가버리고 말았다. 휴대폰을 본다. 23분. 1분. 1분만 더. 전광판에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있다는 표시가 떠 있다. 어서. 어서. 어서.

전부 느리다. 슬로우 모션이 걸린 카메라 화면처럼 모든 게 느리다. 두근, 두근, 두근. 가슴 뛰는 소리만 들렸다. 게이트가 열린다. 깔끔한 체크무늬 롱코트를 입은 그가 캐리어를 밀고 들어온다. 오랜 비행에 지친 건지 눈 아래가 거뭇하다. 수염도 없고 앞머리도 살짝 젖은 게 비행기 안에서 세수는 한 것 같다. 어서 와. 비행 힘들었지. 많은 말을 기억했는데.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떠오르는 말은 단 한 마디 뿐이었다.


“아카아시!”


보쿠토가 캡모자를 벗어 던졌다. 빨간 캡 모자가 천천히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카아시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청포도처럼 영롱한 청록색 눈동자가 보쿠토를 담는다. 아. 아카아시. 내 사랑. 나의, 사랑. 드디어 만났다. 


“사랑해…!!”


그를 꽉 껴안고 다짜고짜 그리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 장면이 어찌나 애절하고 애틋하던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을 정도였다. 보쿠토가 입을 열었다. 자신도 모르게 영어를 중얼중얼 내뱉었다. 


“보고 싶었어, 진짜, 진짜 보고 싶었어…. 정말 보고 싶었어, 나의 스위티….”


내 사랑. 나의 사랑. 꿈에서도 아까운 나의 사랑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지금 사람들이 다 보고 있잖습니까…!”


휘익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린다. 박수 역시 마찬가지. 영원히 사랑하라거나 아름다운 커플이라고 칭찬하는 말까지 뒤섞여 정신이 다 하나도 없다. 게다가 매일매일 계속되던 통화가 도움이 많이 됐는지 보쿠토의 영어에 자연스레 영어로 답하는 아카아시였다. 시뻘게진 얼굴로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파고드는 팔과 뺨에 입술이 내려앉았다. 어휴. 못 말린다니까.

캐리어까지 한사코 자신이 끌고 가겠다며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손에서 짐을 낚아챘다. 밖으로 나가자 새파란 자동차가 두 사람을 위풍당당하게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 이거 스포츠카 아냐? 이 사람…. 아카아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축 좀 하라고 했는데 그건 잘 하는 건지.

짐을 트렁크에 싣고, 보쿠토가 손을 꽉 잡았다가 놓으며 배시시 웃었다. 저 미소가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 존재하다니. 이제 2년 동안 헤어짐도 이별도 없다. 새삼스럽게 그것이 제 가슴을 아프도록 후벼 파서. 아카아시는 함께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 가자.”


나 벌써 아카아시 서재도 다 정리해 뒀다고. 아카아시가 과장되게 놀라는 척한다. 그는 이런 걸 좋아하니까. 정말요? 보쿠토씨가 정리하신 겁니까? 그러자 보쿠토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론 머리를 긁적이며 도우미가…, 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머쓱하게 웃었다.

아. 정말로 설렌다. 자신을 기다리는 새로운 회사 생활도 물론 설레지만…. 아카아시는 운전하는 그의 얼굴을 살그머니 쳐다봤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그를 공항에 데려다줄 일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배웅하는 일도, 집에 돌아와 텅 빈 침대 위에서 그의 베개를 끌어안고 외로움에 지쳐 잠들 일이 없다. 적어도, 2년간은. 그러다 벅차오르는 그리움에 펑펑 눈물을 쏟아낼 일 역시도, 없다. 그렇다. 없다.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던 보쿠토가 갑자기 아! 하고 뭔가 떠오른 듯 핸들을 돌렸다. 아직 이곳 지리를 하나도 모르니 뭐 길이라도 잘못 드셨나. 고작 그 정도 생각이었는데.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데리고 간 곳은 커다란 대형마트였다. 


“오늘 아카아시가 우리 집에 왔으니까, 축하 파티를 해야지!”


와인? 맥주? 아니면 샴페인? 좋아하는 거로 마시자. 나 요리도 꽤 한다고. 양 볼이 발갛게 물들어 배시시 웃는 남자친구라니.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아카아시는 볼 안쪽을 꾹 깨물었다. 아니었다면 바보스러운 웃음이 새어 나올뻔했다.


“아카아시 연어 좋아하니까, 연어 까나페를 할까?”

“보쿠토 씨 좋아하는 것도 좀 담으세요.”


그렇게 이것도 담고 저것도 담다 보니, 둘이서 먹다 배가 터질지도 모를 정도로 장을 보고야 말았다. 햄이며 맥주며…. 이거 다 가지고 갈 수는 있는 건지. 캐셔가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로 카트 안에서 먹거리가 계속 나왔다. 

이게 다 보쿠토 탓이다. 치즈는 이게 맛있고, 햄은 이게 좋고. 크래커는 이 브랜드가 그렇게 좋더라 하는 얘길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아카아시에게 자극 아닌 자극을 주었으니. 전부 먹어보고 싶고, 죄다 먹여주고 싶어 했다. 아직 2년이나 남았다고. 오늘은 그중 하루도 안 지났다고 말했지만 보쿠토는 안된다며 이거 다 사 가야 한다고 떼를 어찌나 쓰던지. 이 사람이 저보다 연상이 맞긴 하는가, 수도 없이 고민하고 또 했다.


“차에 다 들어가긴 해요?”

“안되면 뒷좌석에 넣으면 되지.”


캐셔가 봉투에 담아주는 걸 빤히 바라보던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리곤 그의 귓가에 조심스레 속삭였다. 캐셔랑 대화해봐. 영국 오기 전에 나랑 내내 영어로 얘기하곤 했잖아. 응? 하며 씨익 웃는 게 아닌가. 뭐지. 지금 이 사람 날 시험해보려고 하는 거야? 승부욕이 스멀스멀 발동한다. 


“저 이제 그렇게 떨지 않습니다만.”


공항에서도 얘기 잘 했고요. 기내에서 얼마나 잘 했는지 녹음해서 들려드리고 싶을 정도군요. 보쿠토가 웃음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았다. 어쩜 저리 한치도 틀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반응할까. 귀엽기도 하지. 자신만만하고 낮은 목소리로 캐셔에게 미소를 짓는다. 보쿠토가 꿈찔, 눈썹을 움직였다. …웃긴 왜 웃어? 저 웃음은 내 건데.


“안녕하세요. 계산 해 주시겠어요? 여기 카드로요.”

“예. 알겠습니다.”


고작 세 마디였는데. 보쿠토 이외의 사람과 대화에 그리도 뿌듯한가. 마치 보란 듯 뿌듯한 얼굴로 제 연인을 돌아보는 게 아닌가. 아. 정말. 보쿠토는 가슴을 저도 모르게 부여잡고 말았다. 너무 귀여워서 숨이 멎어버릴 뻔했다. 미치겠네. 지금 당장 품에 안고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어 주고 싶은데. 하지만 참아야지. 파파라치에 찍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아니, 그런 걱정을 했다면 공항에서부터 하면 안 되는…거 아니었나. 에이 모르겠다.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낑낑거리며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않아 뒷좌석까지 밀어 넣은 짐을 잘 정리하곤, 옆좌석에 아카아시가 앉아 벨트를 매자마자 입술이며 뺨에 연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묻는 게 더 귀여워 결국, 주차장에서 찌인 하게 키스까지 해버렸다. 여기가 야외 주차장이라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차피 차 안은 선팅되어 하나도 보이지 않는걸. 보쿠토의 향기가 느껴진다. 체온이 만져진다. 입술의 감촉이 닿는다. 전화도, 페이스타임도 아니다. 만질 수 있고, 눈앞에 있다. 

보쿠토의 혀가 부드럽게 아카아시의 혀를 어루만진다. 기내에서 커피를 마셨나. 혀끝에서 쌉싸름한 커피 맛이 난다. 보쿠토가 그의 곱실곱실한 뒤통수를 어루만진다. 머리를 안 감았는지 손을 떼어내려 웅, 우웅, 하고 앓는다. 전부 귀엽기만 하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혀가 떨어졌다. 이어지던 타액 한 방울마저 아까운 듯 핥아 올리는 보쿠토에 절인 토마토처럼 아카아시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희 산 거, 상하겠어요….”


신선 식품도 있는데. 여기서 시간 끌다가 상하면 어떡하나요.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말하는 아카아시가 사랑스러워 보쿠토는 또 가슴을 붙잡았다. 1분 1초 가는 게 아깝기만 하다. 보쿠토가 방긋 웃으며 안전띠를 맸다.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자 차가 부드럽게 도로 위를 구른다. 

1시간 남짓 갔을까. 딱 봐도 고급스러운 아파트 앞에 차가 섰다. 경비원이 잠시 다가와 똑똑 창문을 두드린다. 운전자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살짝 문을 내리고 보쿠토가 고개를 까닥이자 가로막힌 정지선이 움직였다. 딱 봐도 멋들어진 아파트다. 이런 곳에 사시는구나…. 이제부터 시작될 2년간의 생활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카아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우리 너무 많이 산 거 같아….”

“제가 그랬잖아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캐리어와 장본 것을 모두 꺼내자 짐이 한 바가지였다. 낑낑거리며 엘리베이터까지 걸었다가 짐을 추스르고, 다시 걸었다가 짐을 추스르길 반복했다. 그래도 웃음이 터지는 건, 아마 둘이어서 그럴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 버튼을 누른다. 거울을 슬며시 쳐다보자 꼴이 말이 아니다. 집에 가자마자 샤워부터 해야 할 거 같다. 그리고 짐을 풀고…. 한참 생각에 잠겨있다가 보니 작은 벨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402호. 편지로만, 엽서로만 보던 B동 1402호다. 드디어 이 곳에 오는 구나.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문이 열린다. 보쿠토가 머쓱하게 웃었다. 어제 온다고 대충 청소해 뒀는데…. 그래도 좀 정리가 안 되어 있을지도 몰라. 나 아카아시처럼 정리정돈 잘 못 하잖아. 그래도 깔끔한 곳이었다. 방 안에 진득하게 고여있는 보쿠토의, 연인의 향기가 가득하다. 아카아시가 신발을 벗고 멍하니 거실에 섰다. 


“보쿠토 씨….”

“응?”


눈물이 핑 돌았다. 싸하고 편안하고, 햇빛 같은 그 만의 향기가. 이 공간 전부를 메우고 있다. 보쿠토가 캐리어를 들어 거실 끝에 두었다. 아카아시가 제 옆에 비닐봉지를 조심스레 놔뒀다. 운동화를 벗은 그가 짐을 들어 부엌 식탁 위에 봉투를 올려뒀다. 커다란 비닐봉지가 네 덩이나 되니 꽤 넓은 식탁임에도 불구하고 꽉 찼다. 아카아시가 체크 코트를 벗어 소파 위에 두었다. 

집 소개부터 해야 하나? 난 집에서 신발 신고 생활하는게 불편하더라고. 그래서 신발장을 만들었어. 보쿠토가 가까이 다가온다. 듣고 있어 아카아시? 


“와악!”

“-코타로 씨!”


왜, 왜 그래 아카아시, 응? 의아한 얼굴을 하던 보쿠토가 이내 아카아시를 꽉 안고 등을 토닥였다. 응. 알아. 우리 둘이야. 네가 날 보낼 필요도, 내가 널 보낼 필요도 없어. 이 집, 우리 집이야. 서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보쿠토의 입술이 아카아시의 목에 닿았다. 몸이, 달아오른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푹신한 카페트 위로 둘의 몸이 천천히 겹쳐 쓰러졌다.




*




“담요 덮을래?”

“네, 좋아요….”


씻고 나와 팬티만 입은 보쿠토가 웃으며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카아시까지 씻기고 나니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겨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늘 요리 해 먹긴 글렀네. 저거 정리도 해야 하는데. 몸이 나른하고 다 귀찮다. 아카아시가 몸을 웅크렸다. 보쿠토의 점퍼를 덮고 있다. 전신이 울긋불긋했지만, 왠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분이었다. 충만한 하루다. 보쿠토와 함께 목욕도 했고, 머리도 감겨주고 씻기는 것도 보쿠토가 전부 다 해줬다.


“짠!”

“…풉.”


우리 팀 전용 담요야. 이거 따뜻해. 촌스럽진 않지? 괜찮지? 이렇게 등 뒤에 두르고 응원도 할 수 있어. 보쿠토가 활짝 웃는다. 영국은 춥고 비가 내려 우울한 도시라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는 듯하다. 태양이 여기만 떠 있잖아. 보쿠토 코타로가 이렇게 큰 빛인데. 제 앞에만 떠 있으니. 아카아시가 웃으며 담요를 받아들었다. 


“누워있어. 나 짐 정리 좀 할게.”

“내일 해요.”


아냐, 냉장고 안에 넣는 거 정도는 나도 잘 할 수 있어. 믿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보쿠토의 말이 그렇다고 하니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지를 열고 냉장고를 정리하는데 끝도 없이 들어가는 거로 봐선 집에서 무언가 제대로 해 먹지도 않았던 게 틀림없다. 아카아시는 입을 다물었다. 이 집에서. 그도 아주 외로웠겠지. 적어도 저는 일본에라도 있었지. 그는 정말 낯선 도시에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연인도 없이. 지는 해와 떨어지는 달과 쉼 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겠지. 아카아시는 몸에 담요를 두른 채 침실로 걸어갔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 오랜만에 했더니 전신이 더 삐걱거리는 거 같다. 침대에 털썩 쓰러지듯 누웠다. 침구를 품에 껴안는다. 베개에서도, 이불에서도. 보쿠토의 향기가 난다.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아카아시가 이불을 품에 껴안고 몸을 웅크렸다.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전부, 보쿠토로 가득하다.



03


“스위티, 자?”


보쿠토가 부드럽게 아카아시의 어깨를 문지르며 물었다. 스위티. 쪽, 하고 어깨와 팔에 입술이 내려앉는다. 아카아시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와중에도 빛나는 황금빛 눈동자는 둥둥 뜬 보름달처럼 환하고 아름답다.


“안 자요,”


스위티라고 부르지 마세요. 부끄럽다고요. 아카아시가 눈을 내리깐다. 수줍음이 극에 다다르면 나오는 표정. 보쿠토도 잘 아는 얼굴이다. 흘긋흘긋, 자신을 훑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보쿠토가 킥킥 웃으며 이불을 열고 저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서로의 체온이 닿았다.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럼 허니가 좋아? 그러자 아카아시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것도 싫어요. 그럼? 뭐가 좋을까. 달링은 어때? 


“놀리는 거예요?”


보쿠토가 웃는다. 놀리긴. 누가 누굴 놀려. 그나저나 내일 일요일인데 뭐 하고 싶은 건 없어? 나 아카아시랑 같이 하고 싶은 거 진짜 많은데. 들뜬 연인의 뺨을 살살 쓰다듬으며 아카아시가 그에게 가볍게 몸을 붙여 왔다. 일단은 자요. 자고 생각해요. 우리. 저 피곤해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장가를 흥얼거리며 등을 토닥이는 보쿠토였다. 아카아시는 웃었다. 의식이 아래로 아래로 깊게 가라앉는다. 


피곤이 전신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분이다. 아카아시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보쿠토는 자리에 없었다. 로드워크를 나간 모양이다. 그의 온기가 남은 침구를 손으로 더듬는다. 아, 이제 첫날인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가 제 옆에 있단 사실이. 조금만 더 이불 안에서 뒹굴까. 아카아시가 몸을 웅크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 중에 둥둥 떠 있는 보쿠토의 체향이 제 몸과 코에 달라붙는다. 기분 좋다. 이게 피톤치드지 뭐가 또 있겠어.

밖이 어수선하다. 보쿠토가 런닝을 끝낸 모양이다. 현관문이 열렸다. 그는 통화하고 있다. 팀 동료인지 아니면 친구인지. 유창한 영어다. 


“미안. 내 스위티가 집에 있으니까. 어디 못 나갈 거 같아. 뭐? 소개해 달라고?”


아하하, 그건 좀. 일단 내 스위티에게 물어보긴 할게. 그래, 알았어. 월요일에 보자고. 멋진 주말 보내! 보쿠토가 전화를 끊는다.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한잔 마시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간다. 샤워기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들렸다. 아카아시는 꿈질꿈질 굼벵이처럼 몸을 돌렸다. 고개만 빼꼼 내밀고 욕실 쪽을 바라본다.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달칵. 문이 열리고 뽀얀 수증기와 함께 그가 나온다.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다 아카아시를 보곤 환히 웃으며 침대에 앉았다. 가볍게 닿는 모닝 키스. 그리곤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일어나 있었어? 아카아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요?”

“어, 나 팀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동료.”


널 소개해달라고 그러지 뭐야. 아카아시가 허리를 통통 친다. 뻐근했다. 보쿠토가 기가 막히게 그걸 알아챈 모양인지 그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절 소개하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염려 섞인 아카아시의 물음에 보쿠토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그저 누르는 손에 힘을 줄 뿐. 


“다들 내가 게이인 거 알아. 뭐…. 아무 문제 없어.”


아카아시를 일으켜 품에 꽉 껴안는다. 여기에선 괜찮아. 다들 그러는걸. 드러내놓고 연애해도 괜찮아. 반지를 끼고 다녀도 되고, 네가 나를 연인이라고 소개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아카아시. 그러니까, 케이지. 우리 여기에서 만큼은 자유롭게 있자. 머리며 어깨등 여러군데를 쓰다듬는 보쿠토의 손길이 다정했다.


“아얏!”


갑작스레 딱밤을 맞은 보쿠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아카아시가 날 때렸어? 날 때렸단 말이야? 그런 얼굴이다.


“여기는 뭐 보는 눈 없습니까?”


하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이다. 보쿠토는 입을 부루퉁하게 오리처럼 내밀며 이마를 문질렀다. 체, 아카아시 쩨쩨하다. 잠시 그가 머뭇거린다. 사실 아까 온 전화가 부부동반 모임 하자는 전화였다고 한다. 안그래도 씻고 난 다음이라 머리카락이 처져있으니 사람이 더 위축되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그렇겠구나. 팀원들끼리 연인동반이니 부부동반이니 할 때 마다, 이 사람은 늘 혼자였겠구나. 


줄곧, 혼자.


안타까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카아시는 그를 꽉 껴안았다. 혼자 남겨 둬서 미안하다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 뻔했다. 그런 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서로서로 위해 결정한 선택이고, 충분히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누군가를 동정하거나 안타까이 여기는 건 실례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이 사람은 계속 영국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결국 일본이란 나라로 돌아가야 하고, 그곳은 아직 여기보다 훨씬 보수적이다. 괜한 꼬투리 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지.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오늘 만은. 

아카아시가 침대에서 살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곤 두껍고 단단한 근육이 잡힌 보쿠토의 탄탄한 등에 조심스레 매달리듯 안겼다. 그리곤 귀 끝에 키스를 퍼부었다. 하얀 피부가 금방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아카아시? 조심스레 부르는 목소리엔 떨림이 묻어난다. 


“달링.”


헉. 숨을 들이켜는 소리. 등 근육이 부푼다. 조금씩 돌아보는 보쿠토의 귀여운 얼굴. 아카아시가 넓은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뜨겁고, 단단하다.


“오늘은 종일 저와 있어 주세요.”


단둘이.


일부러 액세트까지 실어 강조하듯 말하자 보쿠토가 옆에 있던 베개를 끌어안고는 얼굴을 거기에 푹 갖다 박았다. 목까지 빨개졌다. 아카아시가 살금살금 그의 등에서 몸을 떼어낸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카아시를 꽉 껴안는다. 놔버리면 사라져버릴 사람처럼.


“맞아. 네 말이 맞아.”


오늘은 나의 스위티와 함께 있어야지. 소개는 무슨 소개야. 나만 알 거야. 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귀여웠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뺨에 연신 키스를 퍼붓고 또 퍼붓는다. I love you….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엔 세상 모든 달콤함이 다 담겨있다. 그리곤 목덜미에 쇄골에 얼굴을 문지르는 게 마치 커다란 강아지 같기도 하다. 아카아시가 부드러운 은회색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이제 옷, 입을까 아카아시…?”


나 계속 있다간 슬슬 다른 게 힘을 얻을 거 같아. 우리 밥도 먹고 밖에도 나가야지. 내가 파스타 해 줄게. 그러며 침대에서 벗어난다. 아카아시가 멍한 얼굴로 보쿠토를 보다 풉, 웃음을 터트렸다. 파스타라니. 그런 걸 다 할 줄 안단 말이야?




*




무엇을 입을까 한참 고민 끝에 물을 뺀 연청색 바지에 헐렁한 흰색 박스티를 입기로 했다. 중간엔 기하학적인 무늬가 있어 맵시 있다. 보쿠토가 앞치마를 입은 채 여기 앉아있으라며 식탁 의자를 직접 빼주었다. 왠지 그가 새로워 보여 퍽 흥미로웠다. 아카아시가 턱을 괴고 가만 바라보고 있자니 그가 냉장고를 열어 양송이버섯과 토마토, 양파, 마늘, 치즈, 브로콜리 따위를 꺼내 들었다. 물을 끓이고 소금을 넣어 면을 익힌다. 그 사이 재료를 손질하고 후추와 소금을 섞어 볶는 손길이 어찌나 능숙한지. 눈을 다 비빌 정도였다.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커다란 팬에 면과 재료를 넣어 섞고 마지막으로 치즈 가루를 뿌린 다음 먹음직스럽게 접시에 올린다. 어제 마트에서 사 온 샐러드를 꺼내 볼에 드레싱을 넣고 섞어 그 위에 스페인산 생햄을 올리고, 방울토마토도 몇 개 잘라 안에 집어넣었다. 


“굉장하신데요…?”

“뭘, 이 정도로.”


어서 먹어 보라며 흐뭇한 얼굴로 웃는 보쿠토에, 아카아시가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쏙 집어넣었다.


“…맛있네요….”


놀라울 정도로 맛있다. 세상에. 파스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카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그릇을 남김없이 비울 정도로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난 뒤, 설거지는 제가 하겠다고 했으나 오늘 하루는 왕처럼 있으라며 설거지와 뒷정리도 모조리 보쿠토가 해버렸다.


“밖에 나갈래?”


물 묻은 그릇을 뽀득뽀득 소리 나게 닦으며 그가 물었다. 아카아시는 곰곰이 고민했다. 어쩌지…. 한참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보쿠토가 선수 치듯 말한다. 시계탑을 보러 가도 좋고. 나는 관광지도 보여주고 싶고, 우리 동네도 소개해주고 싶고, 또….


“으음….”


아카아시가 시큰둥하다. 아까까진 그래도 좀 버틸 만했는데 밥까지 먹고 나자 전부 다 귀찮아졌다. 13시간 비행도 생각보다 너무 피곤했고. 아카아시의 표정이 영 내키지 않아 한다는 걸 알자 보쿠토가 다급하게 설거지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뭘 저렇게 서두르실까.


“2년이나 있을 거잖아요. 천천히 하세요.”


그러자 보쿠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크게 외쳤다. 천천히라니! 천천히라니…. 보쿠토가 소파에 늘어 붙은 아카아시를 일으켜 껴안았다. 커다란 강아지 쓰다듬듯 보쿠토의 부드러운 뒤통수를 만지작대던 아카아시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뒤통수를 파고들었다. 가볍게 쓰다듬는 손길이 기분 좋다. 마치 보쿠토를 달래듯 한다. 풀 죽은 작은 목소리가 보쿠토의 입 가에서 새어나온다.


“나는 3년을 넘게 기다렸다고….”


아카아시만 기다린 거 아니야….


아아. 이길 수 없다. 역시. 아카아시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인데. 출근하기 전까진 그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일단 근처 공원이라도 나가 보기로 했다. 보쿠토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아카아시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여기는 새벽에 자기가 로드워크를 하는 코스고, 신나게 달리고 나면 목이 마르니 꼭 저 쪽 카페에서 매일 갈아주는 신선한 채소 주스를 마신다고 했다. 이렇게 좋을까. 아카아시가 빙긋 웃었다. 진짜, 귀엽잖아. 손을 꼭 잡았다. 매일 아침 그의 땀방울이 스며들었을 길을 걷고, 매일 그의 건강을 책임졌을 카페에서 커피와 채소 주스를 마셨다. 

혹시 누군가 보쿠토를 알아보진 않을까, 모자를 쓰고 턱 아래에 마스크도 함께 쓰고 있다. 선글라스를 아카아시에게 건넸지만 이건 좀 과하지 않냐 타박을 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보쿠토는 휘파람을 부는 척 하며 아카아시의 입술에 쪽, 가벼운 키스를 했다.


“보쿠토 씨!”

“헤헤.”


지금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왕녀의 세터였던 자가 내리치는 손바닥이 채찍처럼 보쿠토의 등에 감긴다. 아야, 야야, 우는 소리를 내며 아카아시 너무하다 외쳐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다음엔 뭘 할까? 보쿠토가 빙긋 웃으며 모자를 고쳐 썼다.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린다. 둘은 남은 음료를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국이 이리 날씨가 좋은 건 흔치 않은데. 네가 와서 그런가 보다.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보쿠토를 밉지 않게 흘기며 아카아시는 낯선 이국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괜찮아. 보쿠토가 있으니 전혀 무섭지 않다.

영화관이라도 갈까 했지만, 그냥 이대로가 좋았다. 오랜만에 하는 느긋한 데이트가 굉장히 기분이 좋다. 발맞추어 거리를 걷는 느낌이 좋다. 아카아시가 뒤를 돌아보면 보쿠토가 있다. 보쿠토가 앞을 바라보면 아카아시가 있다. 마치, 솜사탕이라도 먹은 듯 마음이 푹신푹신 달콤하게 부풀어 오른다.


“피곤해?”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자 아카아시가 소파에 기대 앉아 연신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모양이다. 마치 약 먹은 병아리처럼 꼬박꼬박 졸음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쿠토가 그의 곁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가슴에 코를 박고 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긴, 졸리긴 하겠지.


“많이 졸려?”

“…네….”

“그래도 지금 자면 엉망 돼버려.” 


조금만 더 참아, 응? 하지만 아카아시는 이미 잠에게 패배해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감은 눈을 뜰 줄 모른다. 원래도 잠에 약한 타입이긴 하지만…. 시차 적응이라는 건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이지. 이렇게 귀엽다니. 이마에 입을 여러 번 쪽쪽 맞췄다. 간지러운 듯 아카아시가 어깨를 움츠리며 피하려 들었다. 


“스위티, 졸려? 졸려요?”


낮게 귓가에 영어로 속삭이자 아카아시가 흐릿한 눈으로 보쿠토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Yes…. 졸려요…. 너무 졸려요…. 보쿠토가 더욱 낮게 속삭인다. 잘래요? 보드라운 입술을 만지작거리자 아카아시가 그의 손을 치우며 눈을 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 그래 잘 하고 있어. 이대로 잠들면 아카아시만 피곤하고 힘들어. 하지만 눈을 떴다가도 이내 다시 사르르 감기고, 그러다 또다시 눈을 부릅뜨려다 다시 스르륵 청록색 눈이 까무룩 잠긴다.

결국,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품에서 투정 아닌 투정은 실컷 부리다가,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시차 적응이 엄청 걱정되어 새벽에 혹시 깨진 않을까, 몇 번이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지만, 워낙 잠이 많은 편인 아카아시였다는 걸 보쿠토는 간과하고 있었다. 시차 적응을 하다못해 다음날 로드워크를 하고 오전 훈련 다녀올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아카아시 케이지를 보고 보쿠토가 손뼉을 다 쳤을 정도였다. 와, 진짜. 잠에서는 누굴 따라올 자가 없구만. 없어.



*


“아카아시-!”


보쿠토가 제가 더 설레 어쩔 줄 모르겠단 얼굴로 아카아시를 흔들어 깨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로드워크를 다녀온 뒤, 그를 위한 아침 식사까지 빠지지 않고 준비해 두었다. 오늘이 공식적인 영국 본부 첫 출근인데 빈속으로 보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그가 당황하며 영어 쓰는 법을 잊어버렸을까 보쿠토가 친절하게 영어로 말 걸었다.


“스위티! 출근할 시간이야!”


내가 시리얼도 준비했고, 빵도 준비하고 베이컨이랑 달걀 프라이도 해 뒀어! 그러나 아카아시는 미동도 없었다. 흔들어 꺠워야 하나. 보쿠토가 조심스레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예전엔 몰라도 지금은 아카아시가 저보다 훨씬 체력도 약하고 몸도 말랑말랑해졌다. 보쿠토가 신난다고 흔들면 분명 어깨에 멍이 들거나 멀미를 해버리고 말겠지. 다시 한번 목청 높여 아카아시를 깨웠다.


“스위티!”


시끄러웠는지 아카아시가 이불 안으로 폭 파고들며 꿈틀거렸다. 5분만요, 5분만…. 조금 더 자고 싶어요.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잠에 잔뜩 취해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보쿠토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이불을 잡아당겨 끌어 내렸다. 갑작스레 몸에 다가온 싸늘한 공기에 아카아시가 몸을 웅크리며 덮을 것을 찾아 팔을 뻗었다. 그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안아 올렸다. 아가야. 정말 아가가 따로 없어.


“스위티. 오늘 첫 출근이잖아. 영국 놈들 엄청 까다롭다. 응?”


조곤조곤 속삭이는 목소리에 아카아시가 부스스 눈을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꽉 잠긴게 아직 잠을 이기질 못하는 모습이다.


“일어날게요….”


그러면서 다시 눈을 감다니. 하여튼 이렇게 귀엽다니까. 보쿠토가 푸흐흐 웃으며 욕실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아직도 눈을 감은 그를 욕조에 대충 앉혀놓고 잠옷 단추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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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1,2,3편 합본입니다! 보배전 신간으로 나올 내용으로, 다음 이야기는 책으로 즐겨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그럼 선입금폼 공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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