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FOOL






너를 볼수 없는 내 눈동자는
아무것도 볼..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무것도 바라볼..가치가 없었으니까.

불필요한 소모는 접어두고
눈을 감는일이 일상이 되어버렸어.

눈을 감으면
잊혀지지 않던 너의 모습이
어느덧 환상을 만들어 내 앞에서 춤추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주 눈을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거야.
그렇게 라도 보고 싶었어.






어디든,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라고.



방안 가득 적막이 흐른다.
차갑게 내뱉은 진우의 말을 마지막으로 방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소리는 물론 이거니와 사람이 움직이는 인기척도, 먼지가 내려앉는 소리조차도.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숨이 막힐 듯,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다.


진우는 애써 시선을 외면한 채 민호의 어깨너머의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비록 그 숫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내 자신의 손을 떠났다. 물론 지금이라도 생긋 웃으며 장난이었다고, 깜빡 속았냐며 그의 어깨를 툭하고 건드리기만 하면 분명히 끝날수도 있는 적막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 간단하게, 아무 생각 없이 꺼낸 말이 아니다.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저도 모르게 깨물었다.


먼저 적막을 깬 쪽은 민호였다. 침대에서 스르륵 긴 몸을 일으킨 민호는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티셔츠만 대충 걸치고 아무말없이 욕실쪽으로 걸어갔다.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그의 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소리가 나지 않고 무겁다. 민호가 욕실로 들어가고 나자 또 다시 적막을 깨뜨리는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오래도록 들려왔다.



왜 아무말 하지 않는 거야.


진우 역시 몸을 움직여 바닥에 떨어져있는 자신의 옷을 하나 둘 입었다. 자신이 스스로 풀어내렸던 셔츠. 민호가 다소 급한 손길로 벗겨줬던 브리프와 바지. 그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의 끝이 이런 적막일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민호만.


바닥에 놓인 옷을 입고 매무새를 정리하는 데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민호와 나눈 사랑 때문은 아니었다. 자신의 안을 가득채워줬던 민호 때문은 아니었다. 사랑을 나눈 직후, 그렇게 모진말을 던진 자신의 잔인함에 대한 떨림이었다.



진우는 바닥에 떨어진 민호의 옷가지도 침대위에 올려주었다. 민호의 옷을 품안에 한번 안아본다. 그의 체향이 묻어난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의 옆을 가득 채우던 그 향기가.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만 같다. 잘못했다고 엉엉 울며 바닥에 주저 앉고 싶다.


그러지 않아야 하기에 진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샤워기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평상시보다 오래걸리는 기분.
진우는 혹시 하는 생각에 황급히 욕실 앞으로 걸어간다.

혹시, 나쁜일이라도 일어난건 아니겠지.

말은 그렇게 모질게도 뱉어놓고, 또 민호가 걱정되는 자신의 마음의 이중적인 모습에 스스로 욕지기가 나는것만 같다.


" 민.."


욕실 문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의 이름을 채 내뱉기도 전에 욕실 문이 열렸다. 진우는 자신의 손을 등 뒤로 숨긴채 아무일 없었다는 듯 다시 무심한 눈빛을 띄었다.



순식간에 표정 조절도 되는 구나.
정말.. 나란 녀석도 참.. 독하네.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이다.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아 젖어 있는 머리카락, 근사하게 드러나있던 그의 몸도 이제는 간편한 옷 뒤에 숨겨져 있다. 아까의 일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민호는 수건으로 머리를 툭툭 털면서 눈을 반달눈으로 만들어 웃음을 띈채로 나온다.


진우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민호가 웃으면서 나왔다.



“ 내가 오늘 너무 징징 거렸나봐. 내 방에 가서 잘게.”

“ 송민호.”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듯 일상처럼 말하는 그였지만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진우가 낮게 그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민호는 진우에게서 돌아섰다.


“ 야. 송민호. 너 내 말 들은 거야?”


진우는 다시 한번 말한다.
민호야, 라고 불러주고 싶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달콤함이라고 생각한다. 민호는 멈칫하며 제 자리에 멈춰 섰다.
뒤돌아 보지는 않는다.


“ 가라며. 그래서 내 방에 가잖아. 부끄러우면 그냥 부끄럽다고 하면 되지, 괜히 그렇게 차갑게 말할건 뭐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민호는.


여기서 '그래.. 부끄러워서 그랬다' 라고 말하면 게임이 끝나는 거였다.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갈 수 있다.
민호가 주는 마지막 기회.

아주 오래전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때 아쉽게 끝나면 늘 나오던 '계속하시겠습니까?' 라는 말처럼 민호는 진우가 계속 한다는 선택을 하고 동전을 넣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마지막 기회였다.
 진우가 다시 민호의 이름을 다정히 부르고, 그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균형잡히고 멋진 그의 몸과, 그가 자신을 가득채우던 그 순간의 환희와 쾌락을 다시 자기것으로 할 수 있는.
자신을 갖고 싶어하던 민호만큼이나 진우 역시 민호를 갖고싶다는 소유욕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그의 예쁜 눈웃음을 독차지 할 수 있는.
그런 마지막 기회.



하지만 진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계속한다라는 버튼을 누를 수 없다.


 여행을 떠나기전 아버지가 말해왔던 것과, 그로 인해 생각해보게된 두 사람의 불안한 미래. 그리고 언젠가는 닥쳐올 약간은 슬픈 그 나날들까지.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아직 진우는 민호의 몫까지 자신이 짊어지고 걸어나갈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 너도 자. 내일 어디로 갈건지는 내일 정해..”

“ 야, 송민호!”


진우는 그의 이름을 날카롭게 부르며 방문쪽으로 걸어가던 민호의 손목을 잡았다. 손이 빨갛게 될 정도로 꽉 쥔 그의 손.
민호는 물끄러미 진우의 손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 모른척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섰다.

낮은 그의 목소리가 심해에 잠긴듯 더 깊어졌다.


“ 왜."

“ 너야 말로 왜 그래.”


아무렇지 않은척 하던 민호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그런 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젖어있다. 여전히 진우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채, 손목은 진우에게 잡힌채 제자리에 멈춰서 있다.


“ 너 내 말뜻 알아 들었잖아. 왜 모른척 하는 거야. 우리는 아무데도 안가. 너는 집으로, 나는 다른 곳으로. 우리는 없어 이젠.”

“ 너야 말로 무슨말이야.”

“ 너 바보야? 왜 말을 못알아 들어?"


제발 민호야. 내가 더 이상 너에게 나쁜 말을 내뱉지 못하게 만들어줘.
자꾸만 외면하고 돌아서 버리려고 하면, 나는 더 너를 몰아 세워야 되잖아. 그러고 싶지 않아.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아.

민호는 뒤돌아 서며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진우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다. 눈빛이 매섭다. 화가 난 민호의 눈은 처음이었다. 으르렁거리는 맹수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우를 뚫어질듯 본다. 그럼에도 그 눈엔 눈물이 가득차 있다.


“ 알아 듣는게 뭔데..? 나 보고 어떻게 하라고!"


민호는 진우의 어깨를 꼭 쥐고 흔들었다. 성난 포효같지만 울음을 참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민호의 목소리가 진우의 심장에 쿡쿡 박힌다.


“ 어, 그래. 내가 어딘가로 사라져 줄게. 그러자. 이렇게 말하면 돼? 그런 거냐고.”

“ 못 알아 듣고 있었던 건 아니구나.”

“ 그래. 알아 들었어! 너무 잘.. 너무 잘 알아들어서 미치겠다고!”


빈정거리듯  말하는 진우의 말투에 민호는 그를 거칠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벽에 부딪힌 진우는 등줄기를 따라 고통이 밀려왔지만, 눈앞에 보이는 민호의 표정에 새겨진 고통에 비하면 느껴지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민호야. 내가 뭐라고 해야할까.

너에게 상처주지 않고 끝낼 수 있는 말은 없을까.

너의 그런 표정을 보는 내 마음이 갈갈이 찢어진다.

그게 나 때문이라는 사실때문에 더욱 더.





“ 넌 그렇게 말 내뱉으면 다야? 뭐야? 널 가지라고? 네 이름을 불러달라고? 잊을 수 없게? 왜 나한테 그런말을 했어!"

“ 송민호..”

“ 송민호. 송민호라.. 하하. 언제부터 네가 다시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 너 참 대단하네. 그렇게 마음대로 스위치 켜듯 이랬다가, 저랬다가 할 수 있어? 그렇게 일방적으로 네가 지껄이면 내가 알아듣고, 네네 해야 되는 거야?”


감정이 끓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진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게 아니었다. 다만 부정하고 싶었을 뿐.


자신의 앞에 서서 스트립쇼라도 하듯 느릿 느릿 단추를 풀어내던 손, 자신을 원하냐고 묻던 입술. 어깨를 끌어안아주던 손길, 파르르 떨리던 몸. 잊을 수 없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던 그의 목소리.


어째서 그런 소중한 시간들이, 기다려왔던 시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곁에서 사라져버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감정이고 행동이었는데 진우에게는 무엇이었을까. 왜 자신을 이렇게도 몰아세우는 걸까.



이미 감정이 이성을 삼켜버린 민호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다정한 표정을 자주 건네지는 않아도 늘 다정함을 행동으로 보여줬던 진우가 이렇게 매몰차게 말로 자신을 밀어내는 이유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꾸만 감정이 얽히기만 했다.


" 제..제발. 이러지마.. 나한테."


민호는 떨리는 손으로 진우의 얼굴을 매만지려고 했다. 진우는 그 손을 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은채 차가운 눈빛으로 민호를 보고 있다. 오히려 그게 더 상처가 되었다.


“ 마음대로 스위치를 켜고 끈 적 없어. 한번도 켜진 적이 없었으니까.”


진우의 그 말과 동시에 민호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굴러떨어졌다. 그 눈물은 흘러 진우의 가슴에 칼 처럼 꽂혔다. 그 눈물을 닦아 주고 싶지만 그럴 자격이 없었다. 진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 넌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

“ 김진우...”

“ 난 너를 사랑한다고 한 적 없어. 알아?”


믿을 수가 없다. 지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을.
자신을 꼭 안아주고, 잠든 자신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춰 주던 그의 모습.
민호야.. 라고 불러주던 그의 목소리.
자신과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손수 앞치마를 매고 이것 저것 요리를 만들던 그의 모습. 함께 영화를 봐주고, 게임을 즐기고, 여행을 위해 손수 자동차를 운전하던 그의 모습. 

그게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가 지금 말한다.


민호의 눈썹이 꿈틀한다. 진우는 일부러 더 차갑게 눈을 떴다.


“ 뭐?”

“ 난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다고. 그냥, 너를 그래, 널 갖고 논거야. 내가.”


그래.. 너는 나에게 한번도 사랑한다고 직접적으로 표현 한적은 없었어.
그러나, 나는 너의 모든 말투, 모든 손길에서 느껴왔었어.
너도 나를 사랑한다고. 나를 원한다고.
그런 믿음이 있었어. 우리 둘 사이에는.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어.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


민호는 다시 진우의 어깨를 붙잡았다.



“ 나.. 나를 갖고 놀았다고? 우리 둘 사이에 있었던 모든일이, 그거라고?


민호의 마음속에 쌓았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같다. 화도 나지 않는다. 공허함이 심장을 파고든다. 너무 충격을 받으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민호는 우주에 떠 있는것만 같다.


민호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나 이제부터 너에게 거짓말들을 할 거야.

너무 아픈 거짓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걸 사실로 믿어 주면 돼.

그냥.. 우리 그렇게 하자.


“ 그냥. 널 가지고 놀 수 있을 때까지 놀아본거야. 뭐, 어차피 너도 나랑 자고 싶었던거 아니야? 너도 나랑 자봤으니까 됐잖아.”

“ 뭐...? 그냥.. 그걸로 끝이라고?”

“ 그래. 시시했어, 송민호.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네가 나를, 세상 누구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김진우를 좋아한다고 해서 너를 가지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을 뿐이야. 근데 뭐.. 쉽네.”


이런말을 내뱉는 내 입이 저주 스럽다.
어떻게 몇백번을 연습한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을 움직이고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스스로가 싫어진다. 혐오스럽다.



“ 하아.. 그래.. 그래..”


어이가 없다는 듯, 텅빈 웃음을 늘어놓는 민호. 눈에 눈물이 그렁 한 채 마른 웃음을 뱉는 그의 얼굴 표정이 진우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 그래.. 그렇구나. 내가 병신 맞구나. 처음부터.. 나 혼자 시작했던 거였는데.. 그냥 그 마음 네가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았었는데. 그냥 그대로 있었다면 더 나았을 걸. 병신 같이 네가 조금 잘 해준다고 네 손길에 헤헤 거리고 웃었으니, 나 쉬운거 맞네. 그런거 맞네. 잘난 김진우, 네 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



자신이 진우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그 혼자만의 감정으로도 벅찼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진우가 사사건건 자신을 무시하고, 차가운 말을 내뱉어도 그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온갖 구박을 받아도 그의 옆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 만으로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늘 처음이라는 단어를 망각하기 마련이고, 자꾸만 욕심을 만들어 내기 마련인지라, 진우가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고, 그를 도와주고, 그에게 한 두 번씩 웃어주기 시작할때면 혹시 진우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기대 했던 건 사실이었다.


“ 너 왜 내 이름을 불렀어..?”



그때 부터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송민호가 아니라 민호야라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을 그때부터 그 기대가 점점 미칠 듯이 커지기 시작하고, 착각을 만들어 내었다.


그 때부터 더욱 자신을 챙겨대는 진우를 보며, 그 착각을 확신으로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 네가 좋아하니까.”



네가 좋아하니까.
민호야, 네가 좋아하니까.

얼마나 네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고 싶었는지 몰라.
혼자서 속으로는 네 이름을 얼마나 불러댔는지 몰라. 다만 그걸 입밖으로 낼 용기가 별로 없었을 뿐.

겨우 용기 내어 너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게 잘못이었나봐.
나 따위가 널 사랑하는게 아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내 마음 숨긴채로 그냥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었겠지?

다.. 내 잘못인가봐, 민호야.



그런 진우의 마음이 전해질리 없다.
민호는 헛웃음을 지으며 마른 세수를 한다.


“ 그래. 내가 좋아하니까, 내 이름 한번 불러주면 바보같이 웃으니까. 미친.. 다 착각이었네. 하아.. 그래.. 그거였구나.”


네 입술이 그렇게 잔인한 말을 내 뱉는데도, 그래서 내 심장이 지금 찢어질 것 같은데도, 어째서 너를 보면 두근거리는 심장은 멈추지 않을까.
그래서 피가 더 흐르는 데도.


“ 알았으면 됐어. 그러니까, 그만 가. 우리 이제 그만.. 원래 대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 원래대로? 그게 뭔데? 원래대로가 뭐냐고!! 그래, 너.. 너는 나를 사랑한적 없다고 치자. 아니 그랬다니까. 원래대로 가면 내.. 내 마음은. 내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건데?”

“ 송민호.”

“ 네가.. 지금 네가.. 그렇게 말하는 데도.. 나.. 나 심장이 찢어 질 것 같아. 네가 미운데.. 그래서 지금 이 주먹으로 너를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데 내 마음이 너를.. 아직도 너를 보고 있대. 근데.. 원래대로라.. 원래대로 같은 게 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민호는 진우의 어깨를 잡은채 그의 입술을 삼켰다. 입술을 빨아들이는 그의 힘은 슬픔과 분노가 섞여 아팠다. 진우는 민호의 가슴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밀어붙이는 민호의 힘을 당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피하려했지만 어깨에서 옮겨온 민호의 손이 그의 턱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강압적이면서도 슬픈 그의 입맞춤. 아무리 그를 달래려 혀끝으로 그의 입술을 쓸어도 진우의 입술은 단단히 다물어진채 받아주지 않았다. 민호는 천천히 입술을 떼며 진우의 가슴께에 고개를 묻었다. 민호의 넓은 어깨가 자꾸만 떨린다.



“ 진우야, 괜.. 괜찮아. 네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도 괜찮아. 지금 네가 나에게 못된 말들 내뱉어도.. 그래도 괜찮아.. 내 머리가 나보고 미쳤냐고 하는데 내 마음이 너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대..”

“ 송민호, 이거 놔.”

“ 나.. 난 괜찮으니까. 네가 날 안좋아 해줘도 괜찮아. 그래.. 그래 원래대로. 너에게 어떤 감정도 요구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원래처럼, 내가 네 옆에 서 있을게... 넌 그냥 너의 길에 서 있으면 되잖아.. 응?”

“ 왜이래.... 그럴 수 없는거.. 너도 알잖아.”


진우의 옷자락을 힙겹게 쥐고 있던 민호는 그 손을 스르륵 놓으며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민호야. 넌.. 정말 바보구나.
화를 좀 더 내지 그래. 나를 죽일 듯이 미워하고 말아.

그러면 내 마음이 더 가벼워질지도 모르는데.
넌.. 나를 자꾸 아프게 하는 구나.



“ 송민호. 어차피 네가 꿈꾸는 즐거운 미래 따위는 없어. 같이 장을 보고,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기다리고.. 뭐 그런 일상 따위는 너랑 나 사이에는 없어. 처음부터 그런걸 바랬던 게 잘못이었어. 우린.. 어차피 언젠가는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게 될 거고, 그리고 서로 남인 것 보다 못한 관계가 될테니까.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어차피 없어. 그러니, 지금 이렇게 서로 돌아서는 게 맞아. ”

“ 그런게 어딨어.”

“ 그런 생각 해본적 없어? 난.. 네가.. 나에게 미워한다고 소리지르고, 등 돌리는 모습을 몇 번이고 상상해봤어. 무서웠어. 그런 상상을 하면. 그게 조금 일찍 온거라고 생각해. 만약 너와 내가 이런 관계를 지속해 나가면 언젠가는 겪게 되었을 거, 미리 겪은 거라고.”



진우는 그동안 고민했던 속마음을 털어놓아보았다. 이미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너를 갖고 놀았다 등등 온갖 잔인한 말들을 그에게 뱉어 놓아서 그에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자신의 속 마음이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평생 못할말을 그냥 전해주고 싶었을 뿐.

안타깝지만, 이미 넋을 놓은 듯 멍해져 있는 그의 시선은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반사시켜 버리는 것 같다.



“ 아버지께 연락 해 두었어. 내일 아침에 너 데리러 이곳으로 오실거야. 집으로 돌아가. 그리고 어디론가 가 버려. 다시는.. 널.. 내가 볼 수 없게.”



다시.. 내가 널 보면.. 널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아 질테니까.



민호는 더 이상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태엽 장치가 풀려버린 인형처럼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이 진우의 마음에 낙인을 찍는다.



이제됐어. 너와 나의 관계.

어쩌면 나도 너와 함께 그런 행복을 꿈꿨을 지도 몰라.

아니, 분명히 꿈꿨던 적이 있었어.

그러나.. 그럴 수가 없어.


만약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많고, 조금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세상에 맞서 너를 지켜주고, 우리를 지킬 힘이 있었더라면, 너를 마음 다해 사랑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지금 나는 너를 내 마음 다해 사랑하고 있어.
그러나, 지켜줄 자신이 없어 너를 놓아주려고 해.

그러니, 나를 용서하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를 잊어버려줘.
나는.. 날 부르던 네 목소리만 기억하고 살아갈테니까.



“ 잘.. 지내."


진우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겼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마음에 새겨진 칼날들이 그제서야 진우를 찌르기 시작한다.
간신히 빠져나와 차의 시동을 걸었다.


" 하윽... 민호야.. 민호야.. 미안해. 나같은거 사랑하지 말지 그랬어. 미안해.. 미안해."



혹여나 민호가 달려나와 자신을 잡을까봐 진우는 눈물 때문에 앞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론가 달려 나가고 싶었다. 아무것도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속력을 높여 달리면 민호의 잔상이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 엑셀레이터를 깊게 밟았다. 그의 차가 굉음을 내며 도로 저 편으로 사라졌다.





미안해. 그런표정 짓게 해서.

하지만.......

너를 죽여버리게 될까봐 두려웠어.

그래서 이 저주받은 입술은 거짓말을 되뇌고 있었던 거야..

나는... 아무것도.. 원할 자격조차 없는... 겁쟁이니까...








그래.. 나는 겁쟁이였다.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가 잘못되는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모질게 말을 했다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스스로를 정당화 시켜왔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겁쟁이였다는 것 뿐.


앞으로 벌어질 일에서 도망가고 싶어, 이렇게 하면 괜찮겠지라고, 나 스스로 판단해 버리고서는 그게 최선이라도 확정지어버렸다. 나와, 내 감정을 정리하는데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의 나는.



“ 그래서.. 민호의 마음은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진우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 아니 그동안 잠궈 놓았던 자신의 속 마음이 들켜버린 기분이다. 마음이 착잡하다.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충동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크게 소리 치는 것 밖에 없다. 아무리 소리쳐도, 그 소리를 민호는 듣지 못하겠지만.



“ 답답해..”



진우는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민호의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 이 일들이 최근 자신의 모든 일상을 지배해버렸다. 짐을 정리하다가도 그가 자신에게 건네준 사소한 것들 하나에도, 머리를 식힐겸 들렸던 카페에서 무심결에 마셨던 커피에도, 수속을 위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거리에도 자신을 문득 멈추게 하는 그런 것이 있었다.


사이코메트리처럼 곳곳에서 민호의 잔상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에게 그렇게 모질게 말한 것에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지나면 나아질거라고.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잠을 잘 수도 없고, 무언가에 집중 할 수도 없다.


“ 바보같아. 그렇게 잡아달라고 울먹이는 녀석을 발로 차 보내놓고, 일 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녀석을 생각하는 내가.”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강원도에 그를 혼자 두고 내려오던 그날, 차 안에서 홀로 얼마나 울었던가. 쓰디쓴 모진 말을 내어 놓고도, 그 말이 도로 자신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채 이유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얼마나 화를 냈던가.


그 하얀 눈밭에 바퀴자국이 새겨지듯, 자신의 마음에 민호의 그 눈빛이, 자신을 붙잡으며 사랑해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옆에만 있게 해달라고 말하던 그의 말이 문신처럼 새겨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몇 번이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전화기를 꺼내 그에게 전화하려고 했었다.


미안하다고, 잠시 미쳤었던 것 같다고, 지금 다시 돌아가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일이었는데도, 그때 당시의 자신은 그 말이 가지는 무게가 참을 수 없이 무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짐을 내려놓고 도망 가버리는 어느 일꾼처럼, 자신은 민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그 겨울, 그 어느날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그 한적한 길에 그의 마음을 내려놓고 돌아왔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 정도를 방황했다. 


아니, 도망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법인지도 모른다. 서투른 자동차 운전 탓에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 갈 수 있는 데까지 멀리로 떠다녔다. 자신의 감정조차도 공기 중을 부유하는 듯 한 멍한 상태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느낌 자체도 희미해져갔으니까.



“ 하아..”


진우는 짧은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거울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았지만 머리와 마음은 함께 움직여지지 않는 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제 멋대로 흐르는 눈물에 화가 났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다.


“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야.. 젠장. 아무것도 아니라고. 김진우.”


마음대로 몸을 내버려 두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이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처음 그렇게 마음 먹은 것처럼, 자신은 당당하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번 심하게 앓고 난 열병처럼 그저 그런 것일 뿐이라고 세뇌시키듯 계속 읊조려보았다. 정말로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걸로 된거라고.


-지잉.....


얼마 전부터 반복적으로 울려대던 그의 폰이 또 다시 몸을 떨며 진동음을 냈다. 마음과 몸이 제 상태가 아니라 불규칙적이면서도 규칙적인 그 진동음을 진우는 그에 반응할 겨를도 없이 적응해 있던 터였다.


그러나, 방금의 진동은 어쩐일인지 그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스스로에게 아무일도 아니니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진우는 귓가에 거슬리는 그 소리를 없애보려 손을 뻗어 전화기를 집었다.


배터리가 거의 닳아 금방 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그의 전화.



-부재중 전화 74통
-부재중 메시지 137통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손끝이 저려 오는게 느껴진다. 진우는 통화 목록을 눌렀다. 한 화면 가득 하나의 이름뿐이었다.


마이노.


그의 이름이다. 왜 성까지 붙여서 이름을 저장해놨냐는 민호의 투덜거림에 바꾸었었던 그의 이름. 언젠가 전화기를 보여주면서 너는 나의 민호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었다.


“ 나의 민호..”


이젠 그렇게 너를 부를 일도 없겠지.


그의 입에서 민호의 이름을 내뱉는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내린다. 휴대폰 액정에 떨어진 한방울의 눈물이 돋보기처럼 그의 이름을 더 크게 보여준다. 메말랐던 감정이 또 다시 끓어오른다.


“ 아무렇지 않기는 개뿔. 김진우 병신.”


스스로에게 쓰디쓴 조소를 뱉어내었다.


끊겨버린 전화를 이을 용기는 없었다. 진우는 메시지 함을 열어 그의 흔적과 마주서기로 결심했다. 손가락이 떨리는게 눈으로도 보인다.



- 진우야. 전화 좀 받아.

- 김진우. 너 뭐하는 거야. 운전도 잘 못하면서 연락도 안 되고.

- 나 집에 왔어. 네 말대로 아버지랑 같이 집에 왔다고. 그러니까 너도 얼른와.

- 진우야, 네가 오해였다고 말해주면, 그거 믿을 께. 응?

- 진우야, 미안해.. 내가 미안해. 그러니까 전화 좀 받아.

- 진우야. 뭐가 정말로 진실인 걸까. 나 혼란스럽다.

- 뭐라고 한마디만 보내봐. 무슨 일 있는 건 아닐까 정말 걱정된다.

- 김진우..


감정 따위가 그려져 있을 리 없는 글자일 뿐인데도, 그 글을 읽는 내내 민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만 같다. 그것만큼 심한 고문도 없다.


민호는 혼자서 수 많은 전화를 자신에게 걸었고, 수 많은 메세지를 적어 보내었을 것이다. 바보같은 녀석이 자신의 방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서, 덩치에 어울리지도 않는 작은 전화기를 꼭 부여잡고.

어쩌면 울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이 문자를 읽고 있는 자신이 그러하듯이.


메세지는 계속 반복적인 내용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이 된다. 잘 지내고 있느냐. 오해였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런 그의 내용..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마음이 복잡하다는 등의 혼란한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문자들이 그의 문자 메시지 함을 가득 채우고 있다.


“ 바보.. 나 같은 거 걱정을 왜 하고 난리야.”


진우는 마지막 문자를 선택했다. 음성메시지라는 안내 문구가 화면에 떠 있었다. 진우는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는 연결이라는 메뉴를 선택한다.

전화를 손에 쥐고 귓가에 가져가 대었다. 비밀번호를 누르라는 안내목소리에 몇 번의 다이얼을 눌른 후에야 그의 목소리가 봉인에서 풀린다.


- 1개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삐...


차가운 기계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은 비프음 후에 한동안 정적이 찾아왔다. 전화가 끊기거나 한건 아니었다. 가늘게 들리는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전화기 너머에  있는 민호의 존재를 알려준다.



- 하아... 김진우.



조금은 오랜 공백 끝에 긴 한숨을 내쉬며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있었다. 오랫동안 망설인 듯, 그의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 모르겠다. 정말로. 집에 온 후로 계속 생각해 보았지만, 너에게선 아무런 말도 더 이상 들리지 않으니까.. 자꾸 나도 머리가 복잡해.


짧게 끊기는 그의 목소리.
진우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그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 너.. 부모님이 나 유학가라고 했던거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 당장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그렇게 모질게 말했던 거라고,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 아무렴 어때. 이제는 나.. 너라는 끈을 붙잡고 있을 힘이 자꾸 없어져. 받지 않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는 것도, 답장이 오지 않는 번호로 문자를 보내는 것도, 이젠 점점 자신이 없어지더라. 그래. 지금 나는 그래.


얼마나 많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을까. 그리고 오지 않는 답장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그 생각을 하니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는 것 같다.


- 나 내일.... 인천공항에서 시드니로 출국해. 4시 비행기라, 2시쯤엔 공항에 도착해 있을 것 같아. 네 말대로.. 나 네 곁에서 멀리. 멀리.. 난.....



- 다시 들으시려면 1번.. 이전 메뉴로 돌아가시려면.......


민호의 목소리가 채 이어지지 못하고 짧은 정적이 계속 되더니 이내 차가운 기계음이 되돌아왔다. 아마도 자신의 말을 마무리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 민호야.”



이름을 불러보지만 대답은 없다. 자신이 바랬던 대로, 민호가 멀리 떠난다.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민호가 떠나고 나면 자신은 집으로 돌아갈 거고, 자신은 합격한 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생이 되고, 집에서 독립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민호도 그곳에서 정착 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도와줄거고, 그는 그곳에서 멋진 삶을 다시 시작하면 될 터였다. 그러면 두 사람에게 모두다 좋은 일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 원하던 대로 되었네.. 김진우. 하하하하.”


진우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분명히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예외가 있다. 자신의 마음이.. 그의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회로도 하나가 끊어져버린 것처럼 자신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렇게도 무너져 내린다.


“ 좋니.. 좋냐고!!”


진우는 스스로를 책망하듯 아무도 들어줄리 없는 외침을 내질렀다. 되돌아오는 대답이 있을리 없다. 마음이 더욱 허무해 질 뿐이다.

소리없는 울음을 그렇게도 삼켰었다. 바보 같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소리 내지 않으려 일부러 그렇게도 삼켰었다.


무슨 기분일까. 스스로의 감정이 정리 되지 않지만, 이렇게도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진우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쳐 보았다. 그러면 답답함이 풀릴지 알았다.


더 이상 부정해 봤자, 스스로를 둘러싸는 변명따위 해 봤자 들어줄 사람도 없다.


“ 사랑해.. 민호야. 나도 너 사랑해. 흐흑."



진우의 감정이 막을 수 없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진우가 무너졌다.





시간 감각이 무기력해져 있었지만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어 얼굴을 간질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아파왔지만 무의식적으로 씻고, 옷을 챙겨입었다. 진우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그 행동을 수행하고 있을 뿐. 


준비를 마친 진우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네비게이션에 인천공항을 검색하였다.


-딩동, 안내를 시작합니다.


가벼운 터치로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묵직한 엔진음이 귓가에 들린다.



그래.. 민호야 너를 보러 갈게

내 마음, 바보 같은 내 마음이지만 그래도 들고, 너를 보러 갈게 .

너를 만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야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런건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 

일단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그저, 너를 보고 싶을 뿐.



진우를 실은 자동차가 미끄러지듯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다음편이 마지막편이예요. 같이 연달아 읽어주세요. 

  원래 한편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져서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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