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고요한 골목 사이를 채우는 참새의 지저귐. 그리고 난호와 이도의 목소리. 아스팔트로 거칠게 포장된 길 위에는 아스팔트의 틈새에서 올라온 모래가 퍼져있다. 두 사람이 발자국이 나른한 시끄러움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시끄럽진 않은 소리로 이야기 하는 마주 보며 걷는 두 사람. 이상한 느낌에 멈춰선 이도. 막상 학교 멀어지기 시작하니 후회가 밀려드는 이도였지만, 이제 와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오늘처럼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아이들이 넘쳐나는 곳이라면 더욱. 이도는 왼쪽 운동화를 벗는다. 오른손으로 난호를 잡고 운동화를 뒤집어서 흔드는 이도. 작은 돌 하나가 떨어진다. 돌멩이가 없어짐과 동시에 마음속 거슬리는 뭔가가 사라진 것 같다.

두 사람이 맨 처음에 한 일은 일반적으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골목으로 버스정류장 까지 가보는 것 이였다. 미로같이 얽힌 골목들, 그리고 계속 마주하는 막다른 길은 두 사람을 점점 지치게 만들어갔다. 하지만 다행인 건 그만큼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시간이 길어져 두 사람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잘 몰랐던 혹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던 취향, 취미, 서로에 대한 궁금증 같은 걸 주고받다 웃고, 또 다시 주고받다 웃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난호와 이도는 서로에게 생각보다 더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어, 저기 버스정류장이다.”

 

“와, 드디어...”

 

“솔직히 매일 같은 길로만 다녀서 저 정도로 복잡할 줄 몰랐어.”

 

“지금 몇 시야?”

 

“어... 9시 다 돼가는데?”

 

“와... 그럼 우리 30분 넘게 골목에서 헤맸던 거야?”

 

“응.”

 

“...”

 

“왜?”

 

“넌 그게 괜찮아? 시간 아깝잖아...”

 

“어... 딱히?”

 

“...”

 

“아니, 우리 어차피 지금 시간에는 갈 곳이 pc방이나 편의점 밖에 없잖아... 시간 낭비가 아니라... 시간 때우기 였던 거지.”

 

“음...”

 

“아! 이도야 저기 버스 온다! 우리 저거 타야 돼!”

 

 

대뜸 이도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하는 난호. 이도는 뚱한 얼굴로 난호를 바라보지만 두 다리를 열심히 움직인다. 지쳐있지만 이 정도 거리를 뛰는 건 두 사람에게는 문제도 아니다. 아직 낮의 햇빛이 닿지 않은 바람이 기분 좋은 정도의 적당한 시원함을 두 사람에게 가져다준다. 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도가 미소를 짓는다. 난호는 아마 이도가 자신의 뒤에서 이렇게 다채롭게 표정을 바꾸는 것을 모를 것이다. 물론, 확신은 못하지만.

버스보다 정류장에 일찍 도착한 두 사람. 곧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버스에 올라탄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버스 안. 매일 봐 왔던 아침의 버스 풍경이 아니다. 이도는 조금 어색한 듯 자꾸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평소에 연습생 이라는 신분 때문에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학교를 많이 나와 봤던 이도였지만, 이렇게 이른 아침에 그것도 학교를 땡땡이 치고 버스를 탄 것은 처음이기 때문일까? 난호는 익숙한 듯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다 두리번거리는 이도를 발견하고는 이도를 바라보며 휴대폰을 툭툭 친다. 이도가 자신의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확인한다.



-이제 어디 갈 거야?

 

-?

-안정해 놨어? 


-응

-그래서 가고 싶은 곳 있어?

-?

-?

-?

 

-그만 보내 생각하고 있잖아

 

-.

-.

-.

-.

-.

 

-일단 우리 집부터 갈래?

 

-왜?

 

-아니.. 아까 너도 그랬잖아 어차피 이 시간에 따로 갈대도 없고..

-그리고 옷도 좀 갈아입고 싶고..

 

-아! 이도 너 이 시간에 교복 입고 다니기 민망하구나?

 

-아닌데?

 

-맞는 거 같은데?

 

-아니라고

 

-그래 알겠어

 

-아 진짜 아니라고 ㅡㅡ

 

-그래그래 못 믿겠지만 어쨌든 그럼 너네 집부터 가자



이도는 휴대폰에서 얼굴을 뗀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난호를 바라보는 이도. 난호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얼굴에 물음표를 잔뜩 띄우며 이도를 바라본다. 이도는 버스가 덜컹거리는 순간 지금 느끼고 있는 자신의 기분을 잔뜩 담은 주먹을 있는 힘껏 난호에게 날린다. 자리에서 떨어져 나간 난호. 쿵 소리가 남과 동시에 버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난호. 창밖만을 바라보던 버스 안의 얼마 없는 사람들이 난호를 바라본다. 난호는 엉덩이를 쓰다듬으면 천연덕스럽게 일어난다. 버스 기사의 걱정이 담긴 외침에 난호는 괜찮다는 답을 한 후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조금의 아픔도 창피함도 느끼지 않는 듯한 난호의 얼굴에 이도는 짜증 난다는 듯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미안!

 

 

… 

… 

… 

 

 

-내가 더


-빨리도 대답한다


-난호 넌 진짜 왜 그러냐?


-뭐가?


-됐어


-아 뭐가!


-됐다고 좀!




이도의 집을 가는 도중에도, 도착한 후에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난호 특유의 평범치 않음 덕분인지, 이도가 난호의 행동을 잘 이해해서 인지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소한 다툼들은 어떻게든 두 사람의 거리를 더 좁혀줬고 그 덕에 대부분의 일들은 적당히,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

이도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도는 다짜고짜 난호를 자신의 방으로 잡아끌었고 난호는 당황스러워하며 이도의 방으로 끌려갔다. 이도는 마치 인형에게 뭘 입힐지 고민하는 아이처럼 난호의 위에 자신의 옷들을 계속해서 대 보았고 난호는 그런 이도의 행동에서 천진난만함을 웃음을 터트렸다. 이도는 난호가 그러거나 말거나 눈앞의 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진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이 없어진 난호를 본 이도는 웃음을 머금은 채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난호의 눈빛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다 급하게 난호에게 옷을 건네주면서 방에서 내쫓았고, 난호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멍한 얼굴로 품 안에 옷을 든 채 거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옷을 갈아입고도 한참이 지났다고 생각될 때, 난호는 TV를 끄고 소파에서 일어나 이도의 방 앞으로 걸어가 방문을 두드렸다. 벽에 막혀 들려오는 이도의 뭉툭한 목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난호는 눈을 감고 방문에 귀를 댄 채 이도의 목소리에 집중 했다. 들려오는 이도의 목소리로 난호는 이도가 누군가와 통화 중이라는 것을 추측했는데 무슨 일 때문에 이도가 자신을 그렇게 세워둔 지 몰랐던 난호는 그냥 이도의 방문을 평소보다 조금 세게 두드렸다. 그러자 상의 입다 만 이도가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어깨와 볼을 맞닿은 채 방문을 열었고, 이도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난호에게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전했다. 난호는 그런 이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는데 아직 다 입지 않은 상의 때문에 드러난 이도의 깨끗한 피부가 머리에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디 갈 건데?”

 

“...”

 

“야, 너 뭐해.”

 

“어? 어. 아니, 그냥 뭐 좀 생각하느라.”

 

“갑자기 이상하게 왜 그래.”

 

“그냥...”

 

“그래서 어디 가려고?”

 

“어, 일단 효진이랑 자주 갔던 카페나 갈까? 그리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네가 정해.”

 

“어? 나?”

 

“응. 너도 평소에 바빠서 못 가본 곳 있을 거 아니야.”

 

“있긴 한데...”

 

“그럼 됐네!”

 

“네가 재미없어 하면 어떻게 하냐?”

 

“음, 난 딱히 대부분에 흥미를 안 가져서...”

 

“... 자랑이다.”

 

“그럼! 그래서 웬만한 건 안 싫어하거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난호와 말이 안 통한다는 듯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이도. 하지만 난호를 싫어한다는 느낌은 없다. 난호의 휴대폰이 울린다. 난호가 휴대폰을 확인한다. 효진에게서 온 X톡이다. 난호는 효진에게서 온 X톡을 확인하지 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아직 낮에 닿지 못한 하늘이 평화롭다.





교실 문 앞에서 서 있는 이도. 막상 현실을 마주해야 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막막하다. 어제 학교를 땡땡이 친 것도, 반 아이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도 모두 감당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자꾸만 이도가 교실 문을 열지 못하게 만든다.

이도는 하루하루가 어제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어제 난호와 학교를 땡땡이 치고 다녔던 것을 떠올린다. 소속사 실장에게서 받은 꾸짖음도 아이들의 시선도 모두 신경 쓰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하루. 이도는 가능만 하다면 어제로 시간을 되돌려 영원히 어제에 갇히고 싶지만 그런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가 현실에 일어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문에 손을 올린다. 이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마주해야 할 때다.

어제와 같은 웅성거림, 따가운 눈초리들. 하지만 이도는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시선들을 피하지도 않는다. 이도는 눈이 마주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떨떠름한 표정이지만 이도의 인사를 받아주는 아이들. 이도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도는 그만두지 않는다. 평소보다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걸어간 이도. 난호를 때리고 있는 효진과 그것을 막아내고 있는 난호가 이도를 맞는다. 이도는 웃고 있지만 벌써 지친 기색이다. 역시 어제 그 잠깐의 일탈 정도로는 많은 것들이 감당하기 힘들다.

 

 

“이도야,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너 때문이잖아! 이난호.”

 

“뭐가!”

 

“어제 네가... 아니, 너희가 한 일은 불난 집 옆에 나무로 집을 하나 더 지은 거라고.”

 

“... 알고 있는데?”

 

“...”

 

“그래도 말이야! 친구가 힘들어 하면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싶은 게 친구 아니겠어?”

 

“그럼 나도 데려갔어야지! 이 치사한 놈아!”

 

“아, 너는 반장이랑 어디 갔었잖아. 그리고 이도랑은 약속한 게 있어서.”

 

“약속?”

 

“응.”

 

“뭔데?”

 

“안 알려주지. 둘만의 약속 이었으니까.”

 

“... 이난호 재수 없네?”

 

“평소에 이상하다는 소리 듣는데... 재수 없는 것 쯤이야! 감사합니다, 효진씨.”

 

“아, 짜증나 이난호!”

 

 

마치 시트콤이나 코미디처럼 짜인 각본이 있는 걸까? 난호와 효진은 서로에게 듣기 좋지 않은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도는 그런 둘을 보면서 자신을 조금 진정 시키지만 여전히 자신의 등 뒤로 자신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느껴진다. 무겁게 한숨을 내뱉는 이도. 순간 난호와 효진의 말이 멈춘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이도를 위로하고 싶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말 할 수 없기에 서로 이도의 눈치만 보고 있다.

종이 치고 교실 문이 열린다. 담임인 기현이 들어와 조례를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도 이도에 대한 눈초리들, 수군거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조금 작아질 뿐. 이도는 상상한다. 지금 자신이 폭발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교실을 나가거나,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아이들을 잡아 저 멀리 던져버리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자신에 대한 수군거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을 잘 알기에 아니, 오히려 자신에 대한 수군거림이 더 커질 것을 알기에 이도는 그저 멍한 상태로 최대한 그 수군거림을 무시해본다.

 

 

“이난호.”

 

“네.”

 

“장이도.”

 

“...”

 

“장이도.”

 

“...”

 

“이도야... 야, 장이도...”

 

“어?”

 

“장이도?”

 

“네, 네.”

 

“너흰 조례 마치고 따라와.”

 

“네.”

 

“네...”

 

 

난호가 이도를 치지 않았으면 이도는 아직도 자신의 상상 속에서 계속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난호가 이도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이도는 아직 조금 멍한 상태로 난호를 바라본다. 난호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뻐끔거리며 이도에게 말한다.

 

 

“우리, 입 맞춰야 돼. 알지?”

 

“...”

 

“혹시 뭐 떠오르는 거 있어?”

 

“... 아니.”

 

“어쩌지... 어쨌든 조례 끝나기 전까지 생각해보자.”

 

“... 응.”

 

 

난호는 다시 기현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이도는 아직도 난호를 바라본다. 자신과는 역시나 다른 모습. 비록 상황이 다르더라도 아마 자신은 난호처럼 행동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 여전히 수군거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 밖에 자꾸만 이도의 마음에 무게를 늘리는 것들이 이도의 속에서 점점 뒤엉켜진다. 이도는 고개를 돌려 기현을 바라본다. 오늘 하루는 왠지 자기 생각보다 더 힘들어질 것 같은 이도는 애써 올라오는 한숨을 삼킨다. 지금 당장 누군가 나타나 자신을 죽여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이도. 하지만 아까도 그랬듯 그런 일은 불가능하기에 이도는 씁쓸함을 삼키며 계속 들려오는 수군거림을 애써 무시한다.



?

이제 내일이면 설 연휴 시작이네요!

푹 쉬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우리 한 번 열심히 쉬어 봐요 ㅠㅠ

그리고 제발 바라는데 연휴 끝나고 코로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았으면 합니다 ㅠㅠㅠㅠ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오타 지적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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