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버릇



w. Marlin



오랜만의 여유로운 주말은 소파 위에서 하루종일 뒹굴 거리는 걸로 시작되어 여전히 같은 자세로 끝이나고 있었다. 대학시절 우연히 한 기획사 캐스팅에 덜컥 붙어버리고, 그 곳에서 시작된 그룹 가수 활동으로 석진이는 말도 못하게 유명한 가수가 되어 있었다. 전세계에서 그 그룹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단순히 한국이 아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덕에 나도 내 나름대로 어릴적 부터 아역 배우로 유명한 삶을 살았지만 석진이에게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것 같았다. 



방송에 광고에, 종종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석진이의 얼굴이 강남 거리를 한가득 채우고 있기도 했다. 카페에 앉아있다가도 손님들 사이에서 '김석진'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는건 일상 다반사였고, 그 외에도 의도치 않은 곳에서 석진이의 팬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건 자주 있는 일이였다.




석진이가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건 여자친구인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였지만, 다만 고등학생 때 처럼 석진이와 둘이 편하게 데이트하며 다니는건 아애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야 아역 배우 출신이었어도 그렇게까지 대중의 인기를 지닌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대학시절까지만 해도 우리의 연애는 순탄했었다. 하지만 석진이가 유명해진 이후로는 정말 불가능. 우리 둘 모두 공인이었기에 더 심했다. 가끔 우리의 사이를 알고있는 멤버들과 같이 엮여 만나는 것 말고, 단 둘이 밖에서 데이트를 한 건 석진이가 가수로 유명해지고나서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거기에 바빠진 석진이의 스케쥴 역시 한몫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나도 같은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짜증나는건-.



ㅡ 케이씨 이번 공연도 전국 매진이라고 들었어요!

ㅡ 모두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이번이 처음 전국 순회 공연이라 걱정도 많이 했는데, 너무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다름이죠.

ㅡ 팬들 사이에서는 케이씨가 여자가수로는 BTS다음으로 케이팝 신드롬을 일으키지 않을까 한다던데요. 어때요 자신있으신가요?

ㅡ 정말 너무 큰 칭찬이여서 감사할 다름이죠. 저도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해서 먼저 세계의 무대로 진출하여 길을 닦아주신 선배님들 뒤를 꼭 따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ㅡ 실제 케이씨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게 개인적으로도 방탄 소년단의 엄청난 팬이라고 하시던데요?

ㅡ 네 맞아요. 특히 진님의 목소리를 정말로 좋아하는데요. 에피파니라는 진님의 솔로곡을 듣고 정말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하루종일 그 노래만 들었었어요!! 제 완전 이상형이에요, 진님!! 보고계신가요!!언젠가 꼭 같이 무대를 꾸릴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여자 뭐야? 윙크나 날리고, 아 짜증나!!!"



소파 위에서 옆으로 누워 채널만 돌리다가, 우연히 먹통이된 리모콘 덕에 잠시 이 채널에 멈추었는데, 귀에 들리는 '김석진'이라는 단어에 화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저 여자 요즘 핫한 가수인걸 알고 있었는데 자꾸 그 입에서 석진이의 이름이 나오는걸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상형이라니? 하- 내 남자가 너무 잘나가는 것도 문제였다. 여기저기서 이상형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덕에 이 나이에 때 아닌 질투에 사로 잡히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김석진 진심으로 신이나서 내 질투를 즐거워해서 요즘은 억지로 티도 안내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귀여워 죽겠다나 뭐라나, 당사자는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사실 이런 일은 한두번 있었던게 아니라서 익숙해 질뻔했지만, 은 무슨-,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는건 어쩔 수 없다. 다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물론 우리 석진이와 모든 추종자들이 얽히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석진이의 인기 덕에 우리의 연애는 필사적으로 비밀이 되어야 하는건 가끔 억울한 일이었다. 석진이가 연습생 시절, 내가 더 유명한 공인이었을때 석진이가 내 비밀유지에 투덜투덜거리는걸 지금 몇십배로 경험 하고 있었다. 잘나가도 이렇게까지 잘나갈줄은 몰랐지.



"아씨, 나도 방송에서 석진이가 이상형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친구 사이라는 연기에 이런말도 못하고!!!!"

"아이고, 뭘 또 보면서 투덜거리고 있어?"



리모콘을 부서질 듯 쥐어들고, 그 케이라는 자의 인터뷰를 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파 뒤에서 매니저 언니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미 내가 어린 아역 때부터 석진이와 친하게 지내는 걸 알고 있었던 매니저 언니였기에, 우리 둘의 상황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가끔 시상식이나 프로그램에서 석진이와 겹치게 일을 받아서, 우리 둘이 석진이의 바쁜 스케쥴로 만나지 못할 때 이렇게나마 얼굴을 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었다. 



"어라, 티비에 케이아냐?"

"뭐야, 잘 아는 인간이야?"

"아니 요즘 케이 모르는 사람이 있나? 내는 곡마다 빅히트잖아. 저 친구도 미국에서 은근 잔잔히 인기가 있다던데?"

"미국까지 벌써?"

"응, 그래서 다들 다음 케이팝의 열풍은 케이가 바톤 받을거라고 말하더라"

"우리 석진이랑 애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무슨 바톤터치는 바톤터치야!!!"

"에이 석진씨네는 석진씨네 대로 계속 핫한거고. 그 다음 타자라 하던데. 뭐야아, 지금 케이가 석진씨 이상형이라고 했다고 잔뜩 질투하는거야?"

"지...질투는 무슨!!! 저런 생판 모르는 남에게 질투따위 할 리가 없잖아!!!"



석진이를 못 믿어서라기 보단, 그냥 석진이의 근처에서 대놓고 찝적거리는 것이 마음에 안들었다. 일명 업종이 같은 가수이기도 하고, 나보다 자유롭게 석진이의 팬이란걸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으니까 부러웠다. 나는 오랜 소꼽친구라는 허울 아래 늘 털털하게만 우리 사이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저 사람 말고도 꽤 많은 여자 연예인들의 입에서 이상형이 석진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건 거의 격주에 한번씩은 있는 일이였다. 다행히 당사자는 아무 생각도 관심도 없는 것 같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아주 심장이 남아나질 않았다. 게다가 나와는 정반대로 늘씬 늘씬하고 길쭉한 타입의 케이같이 능력도 좋고 나보다 더 잘나가는 사람의 입에서 석진이의 이름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괜히 움츠려 드는 것은 당연지사인 일이었다.





"하, 석진이가 인기가 너무 많아도 문제네."

"하긴, 우리 석진씨가 어디 한군데 빠지는 곳이 없지. 차문남에 월드와이드핸썸에 부족한거 하나 없는 남자 아니야? 영앤리치. 대체 왜 너한테 죽고 못사는지는 내가 아무리 너의 15년지기 매니저라지만 대체 이해 할 수가 없다 정말."

"아, 몰라-"

"삐졌어? 야아아, 야아, "



남의 속도 모르고 석진이의 인기에 나란히 박수를 치고있는 매니저 언니의 말에 심통이나서 옆에 보다 내려둔 대본집을 얼굴 위로 덮었다. 석진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슬쩍 공개 연애를 하거나 하는 일도 생각해봤었지만, 그러기엔 유명해져도 너무 유명해졌다 내 남자친구는. 심지어 요즘은 너무 바빠서 얼굴보기도 힘들고,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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