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우주선 안에서 뭉친 분홍색 연기는 주변으로 확산됨과 동시에 옅어진다.


중심부에서 사람 두 명의 형체가 보였고, 연기가 걷히자 모습이 드러난다.


"아, 깜짝이야..."


츠바사는 놀라자빠졌고 고개를 올려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랄리온은 양손에 들고 있는 보라색 유닛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애들 상태는 좀 어떤가."


그랄리온은 다짜고자 츠바사에게 팀원 상태는 어떠냐 물었다.


"아... 네..."


츠바사는 떨떠름한 기분을 떨칠 수 없으며 말을 이어간다.


"자꾸 일어나려 하길래 다 눕혀놨습니다..."


아까 벌어진 생고생을 되짚으며 그것을 그랄리온에게 전달한다.


'탁.'


그때, 침상이 모여있는 방의 문이 열리더니 와카루가 나타난다.


"뭐야, 누가 온 거야?"


심지어, 다리에 석고붕대는 어디갔는지 깔끔하게 사라져있다.


"허억..."


"깁스는 또 왜 풀었대 진짜!"


츠바사는 정신이 나갈 것처럼 짜증을 부렸고, 와 카루는 제자리에서 뛰어 보인다.


"나 멀쩡해."


와카루는 제자리에서 뛰는 것으로 상태 이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어떻게 저리 단번에 나았데?"


그랄리온은 방금까지 아파했다 다 나은 와카루를 신기해한다.


"나도 몰라. 일어나니까, 사라진 감각이 돌아오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돌아온 신경에 와카루는 의문이 든다.


"와카루 씨, 놀라지 마시고 들어보세요!"


유쿠는 와카루 앞으로가 뭐가 그리 신났는지 그의 이목을 끈다.


"사이쿄 씨가 돌아와서 브레올을 물리쳤어요!"


"뭐?"


믿기지 못할 사실에 와카루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사건의 주인공인 사이쿄를 찾는다.


"그러면 걔는 같이 안 오고 어디에 있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사이쿄는 어디에도 없지만, 유쿠는 테이블을 가리킨다.


"저기요."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보라색 덩어리, 와카루는 영문모를 물체에게 사이쿄라 칭하는 유쿠가 이상하게 다가온다.


"기력을 전부 써버려서 잠시 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사이쿄 씨 덕분에 화성이 바뀌었어요!"


"그건 또 뭔 소리야?"


충격에 충격이 겹쳐 머리가 어질어질한 와카루, 그러나 유쿠는 활짝 웃고 있다.


"나가보세요,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해요!"


와카루는 유쿠의 말을 믿고 우주선 문을 활짝 열어 바깥으로 나간다.


'슥.'


문이 열리자 따스한 햇살이 와카루의 온몸에 닿았다.


"이건...!"


무릎 꿇어 싱그러운 잔디들을 손으로 한 번 쓸어보는 와카루.


"와..."


믿기지 않는지 몹시 감탄하며 잔디를 더듬는 걸 계속한다.


"이게 사이쿄가 한 거라고?"


"정말 따뜻하고... 편안해."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에 와카루의 입꼬리는 귀에 걸린 것만 같다.


"나도 그렇다."


"으악! 너 언제 와있었냐! 놀라게!"


불쑥 나타난 미치, 역시나 모든 붕대를 풀고 옷을 입고 있다.


"내가 그렇게 존재감이 없냐."


존재감이 없었냐며 탄식하는 미치, 그의 팔엔 아직 수액 선이 꽂혀있다.


"브레올도 없어졌고, 그 녀석도 돌아왔으니까, 여기서 소풍이나 즐기고 갈까?"


와카루는 이 푸른 대지에 매료됐는지 여기서 잠깐 시간을 보내자 한다.


"여기서 시간 허비할 생각이냐, 우리 앞엔 토성과 목성이 ..."


미치는 깐깐하게 핀드라이버를 얘기했지만, 와카루가 입을 막아버린다.


"지금 이순간과 앞으로의 미래를 축복하기 위해, 한 번 하자."


"..."


답이 정해져있는 건지, 뭔지 잘 모르지만 미치는 와카루를 째려보았다.


"야이 좋은 친구야."

"이봐. 일어나, 이봐!"


연구실 책상에 엎드려 자던 거대한 체구를 흔들어 깨우는 미치.


"... 너는..."


마쿠스는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미치를 바라보았다.


"넌 분명 온몸이 타서..."


"응, 다 나았어, 따라오기나 해."


미치는 일방적인 통보를 남기곤 연구실 문을 벅차고 나간다.


마쿠스 역시 미치가 왜 그러는지 궁금해 그를 따라 연구실을 나선다.


"무슨 일이냐..."


마쿠스는 우주선 밖으로 나섰고, 그가 느낀 기분은 와카루와 똑같다.


"화성이 원래 이랬나...?"


"놀랍지? 사이쿄가 죽었다 깨어나서 했데."


틀린 말은 하지 않은 미치, 그는 손짓으로 마쿠스를 부른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가이아리아의 모든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장면이다.


넓은 테이블엔 인원수에 맞게 의자들이 비치되어 있고, 그 위엔 식탁보가 올려져있다.


"우리 팀에 요리할 줄 아는 애가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미치는 고개 돌려 열심히 재료를 손질하는 카오리가 보인다.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서도 맛대가리 없는 비상식량이나 뜯고 있었겠지."


미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가, 숨을 크게 내쉰다.


"뭐, 아무튼 간에, 넌 우주선 안에 접시 좀 가져와라."


"인원수 많으니까 그냥 있는 대로 다 가져와."


"알았다."


풍경에 정신이 팔려있던 마쿠스는 정신을 다잡고 우주선 안으로 들어간다.


'탁.'


마쿠스는 바로 접시를 챙기려 향하려 했지만, 다른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그를 사로잡았다.


마쿠스는 그곳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문에 머리를 대고 귀 기울이며 듣는다.


"나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울먹이는 요이니의 목소리, 누구에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더 주의 깊게 들어보자.


"그래도 살았잖아요, 그럼 됐지!"


유쿠는 태평하게 살았으면 됐다 말하는데, 뒤에 들리는 목소리는 그렆지 않아 보인다.


"야!"


"악, 왜 때려요!"


유쿠가 고통에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가 그녀에게 잘못한 게 있는가.


"공감을 해줘야지! 공감!"


"아니 왜요!"


솔직하게 말하는 유쿠는 요이니의 말에 공감을 못 하는 것 같다.

"자, 마지막 나왔습니다..."


모두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거대한 요리가 담긴 접시를 올리는 카오리.


혼자 모든 걸 하느라 지쳤는지 그녀 두 눈동자 밑에 그림자가 져있다.


"와, 이게 다 뭐야?"


와카루는 차려진 진수성찬에 입꼬리가 귀에 걸리 한껏 들뜬다.


터덜터덜 자기 자리로 가 앉은 카오리, 그녀의 귀를 찌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우걱우걱!'


그랄리온은 벌써 닭 다리에 붙어있는 살을 뜯어먹고 있었다.


"너 뭐..."


미치는 형용할 수 없는 그랄리온의 모습에 두 눈이 튀어나온다.


"뭐, 내가 제일 나이 많다? 이길 놈 없다!"


그랄리온은 미치가 예절 이야기를 꺼내는 줄 알았는지 자기가 가장 연장자라며 떠든다.


"460년 살아본 애 나오라 해!"


걸신들린 그랄리온은 정신줄을 놓았는지 자기 나이를 460살이라 말한다.


"야, 드디어 미쳤네?"


와카루는 팔짱을 끼며 입에 음식을 잔뜩 가져가는 그랄리온은 지켜본다.


"아, 저녀셕 먹는 거 보니까 나도 배고파지네."


와카루는 자기 앞에 놓인 국수 그릇을 끌어당기며 젓가락으로 안을 파고든다.


"뭐? 늙었다고 놀리냐? 아직 창창하다고!"


"예!? 460살이시라고요!?"


저게 사실인지 모르지만, 유쿠는 그걸 믿었는지 화들짝 놀란다.


"내 고향에선, 이 정도는 그냥 넘기는 나이라고~"


그랄리온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음식을 입안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모두 자기를 못 믿는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랄리온은 이제서야 자기가 한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챘고, 입이 떡 벌어졌다.


"아, 아, 아."


"아휴... 그래, 나 사실 인간 아니다."


못들은 척 해주라고 말하기엔 이미 엎질러진 물, 그랄리온은 해명을 시작한다.


"니들 지식수준에서 외계인이 맞겠다."


그랄리온의 기분은 쭉 하강 곡선을 그렸으며, 머리가 터진 것처럼 고개를 뒤로 젖힌다.


"난 노피트족이고, 불화 때문에 행성을 떠나서 지구에서 살고 있었다."


그가 말하길, 그는 외계인이며 불화 때문에 고향을 떠난 듯하다.


"키도 너네가 고갤 올려다볼 수 있게 가장 작게 줄인 거야."


"원래 이름은 코다마도 아니고 그랄리온이야."


"신처럼 구는 건 싫어서 가명을 만들고 활동했건만... 내 실수로 다 까발려졌네."


모든 걸 실토한 그랄리온, 그러나 그에게 오는 말은.


"뭐, 그게 어때서."


"우리 팀엔 인간이 아닌 애도 있는데 뭘."


미치는 고개를 돌렸고, 그곳엔 보라색 유닛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야, 내 친구 외계인이다~"


와카루는 그랄리온을 자랑거리처럼 여기며 실실 웃는다.


그랄리온은 이걸 예상 못 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다종족 팀 아니냐, 이 정도면? 인조인간에, 외계인에!"


와카루는 그게 그렇게나 좋은지 입꼬리 한쪽이 솟아올랐다.


"여기까지 오는데 진짜 많은 일이 있었네요."


잠깐 정적이 흐른 사이에, 유쿠가 분위기를 깨며 말한다.


"그래... 힘들어 죽는 줄 알았지."


음식이 뱃속으로 들어오니 몸이 따뜻해진 와카루의 정신은 노곤해져간다.


"자기가 먼저 해치우겠다고 까불던 녀석이, 이젠 좀 어엿해졌어?"


와카루도 유큐가 막무가내로 움직이던 시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꽉 막힌 과학자 양반도 좀 마음을 열어줬으려나?"


고개만 움직여 미치를 본 와카루, 미치는 식기를 내려놓고 그에게 말한다.


"밥이나 먹어라."


냉담하게 와카루의 말을 잘라버린 미치, 그러나 와카루는 장난끼가 얼굴에 올라온다.


"얘가 옛날엔 안 그랬는데, 얘가 스무살 때 말..."


"읍읍!"


"밥이나 먹으라고."


와카루가 미치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나 본 지 그의 손이 와카루의 입을 막고 있다.


"푸하! 알았어, 말 안 할게!"


"아무튼 간에, 쟨 언제 깨어나냐?"


와카루는 화제를 바꾸어 유닛에 잠들어있는 사이쿄에게 궁금증을 표시한다.


"모르겠어요."


"두면 알아서 깨겠지."


유쿠의 말이 끝나자마자 침투하는 미치의 말.


"아 진짜...! 얘 또 그런다!"


와카루는 미치랑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고, 유쿠는 그들을 외면한다.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바로 오른쪽에 요이니가 있었다.


"요이니 씨, 왜 그렇게 멍하니 보고만 있어요?"


요이니는 빤히 유쿠를 보고 있었고, 그의 말에 정신을 붙든다.


 "아니... 그냥 신기해 보여서."


어색하게 둘러대는 요이니, 와카루는 요이니의 말을 들었는지 그녀에게 대답한다.


"얘 얼굴이 좀 신기하긴... 으악!"


"조용히해라."


미치가 양팔로 와카루 목을 조이며 숨을 막히게 한다.


"그래, 항복이다!"


와카루는 미치의 팔을 치며 항복을 선언했고, 미치는 놔준다.


"뭐 걸리는 거 있어요?"


유쿠는 요이니의 표정을 보곤 그녀에게 물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얼버무린 요이니는 고개를 휙 돌려 음식을 마구 입 안으로 우겨넣는다.


"혹시... 자는 건가...?"


츠바사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카오리를 목격했다.


"카오리!"


저멀리서 그녀를 부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카오리로 목소리에 반응해 정신이 깬다.


"에... 난..."


잠이 아직 덜 깬 카오리, 그녀의 뒤에 서있는 남자는 두 팔 벌려 껴안은다.


"카오리!"


남색 군복에 둘러맨 빨간 목도리, 그리고 길게 뻗은 은빛 머리카락.


"버, 버번!"


"살아있으면 말을 해줬어야지!"


감격에 젖어 카오리의 머리를 끌어 안은 버번.


"이게 꿈이람 생시람..."


와카루를 비롯해 모두 감동적인 상봉의 순간을 지켜본다.


"클라우스 버번? 네가 어떻게..."


화성에 그가 도착할 것은 들은 적 있지만, 어떻게 위치를 찾아왔는지 그게 의문이다.


"반갑습니다, 미치 씨."


버번은 미치에게 인사하며 미소를 지었다.


"저 말고도, 지원군을 데리고 왔습니다."


지원군을 데리고 왔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난다.


"니쥬 씨!?"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푸른 눈동자의 청년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허리춤에 맨 푸른 검, 그것 위에 손을 올리며 그들에게 말한다.


"지원군으로 오게 된 호세키 니쥬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유쿠는 그들의 등장이 반갑기도 하면서 황당하기도 했다.


"저 사람한테 들었다."


"저 사람이요?"


이야기를 이어가던 와중, 노란 섬광이 테이블 주위에 일어나며 모두들 놀란다.


그 섬광은 와카루 뒤에 멈추곤, 그에게 말한다.


"안녕, 파란 사슴?"


"으아악!"


까무러치게 놀란 와카루는 바닥으로 나자빠지고, 섬광 속에서 손이 나타난다.


"넘어지면 안 되지!"


와카루를 끌어올리는 손, 이내 그것을 덮고 있던 섬광이 사라진다.


"당신은...!"


유쿠는 벌떡 일어나 그를 잔뜩 경계했다.


무기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는 양주먹을 높게 든다.


"워, 진정하라고."


"나 이제 너네랑 안 싸워."


그 사람의 정체는.


"스냅 드래곤...?"


"어, 내가 바로 스냅 드래곤이시다!"


팔짱끼며 와카루를 향해 미소 짓는 스냅 드래곤, 전과 달리 얼굴에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저 자에게 물어보니 알려주더군."


"브레올은 이미 사라졌고, 세력도 해산되었다 들었다."


니쥬는 스냅 드래곤에게서 들은 것을 말했고, 버번은 그들을 본다.


"해내신 거군요!"


"정확힌, 사이쿄가 했지만."


"저게 사이쿄...?"


버번은 못 믿는다는 눈치로 테이블 위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보라색 덩어리를 보았다.


"죽은 건 아니라니까 걱정하지 마, 잠깐 쉰 대."


버번에게 걱정 말라며 말한 와카루.


"저 버번이란 사람한테 들었는데, 너희들이랑 합류한다며?"


"어, 그렇지."


스냅 드래곤의 말에 와카루는 끄덕인다.


"놀, 놀랍네요 "


버번은 사이쿄의 모습에 놀랐고, 미치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사랑하는 건 좋은데, 이제 진지하게 얘기 좀 해보자."


"아, 예."


버번은 포옹을 풀고, 미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직 해방시키지 못 한 건, 목성과 토성, 두 행성만 있어."


미치는 본격적으로 이야길 시작하려는지 버번을 쳐다보며 말한다.


"목성에 핀드라이버의 보스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우린 그 자를 쳐야 하고요."


"거리 면에서도 목성이 제일 가까워, 하지만 토성의 처분이 관건인데..."


미치가 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 버번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핀드라이버 보스가 당했다고 하면, 토성주는 순순히 물러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장담을 하지?"


"우린 목성주, 크루거를 꺾을 거니깐요, 혼자 남게 된 토성주는 알아서 항복할 겁니다."


목성주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버번, 그의 얼굴 표정은 꽤나 진지하다.


"그건 토성으로 가봐야 알겠지."


"다음 목적지를 토성으로 정하는 건,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야."


"목성을 비껴가는 도중, 어떤 공격을 당할지 몰라."


미치는 토성으로 가는 걸 무리라 말하며 다음 목적지를 정한 것 같다.


"우린 재정비를 마치고 목성으로 향한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미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모두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핀드라이버 보스는 만만치 않을 테니까."


"예예, 그러지요."


의자에 기댄 와카루는 미치에게 대답했고, 그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들 바쁘네, 내가 뭐 도와줄까?"


스냅 드래곤은 도와준다고 얘기했지만 와카루가 이야기한다.


"아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거야."


"넌 이제 네 마음대로 살아라, 우릴 도와줄 필욘 없어."


"내 일?"


스냅 드래곤은 '내 일'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미치의 우주선 안엔 버번 일행뿐만 아니라 스냅 드래곤까지 타고 있다.


"와, 엄청 크다!"


우주선을 탄 채로 화성을 누비던 도중, 거대한 철벽이 그들 앞에 보인다.


"우리 우주선이 조촐해 보이는데?"


와카루가 실눈을 뜨고 유심히 보아하니, 그것은 철벽이 아니라 우주선이다.


"저 안엔 여러분들을 위한 모든 게 갖추어져있습니다."


우주선은 비행을 이어가다 우주선 출입구 앞에 착륙했고,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곳 해치를 개방할테니 우주선을 안으로 넣어주세요."


버번이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찬 손목을 가슴까지 들었다.


손목시계에서 홀로그램이 띄워졌고, 버번은 능숙하게 화면을 두드렸다.


'덜컥...!'


무거운 소리를 내며 점점 개방되는 우주선 해치, 얼마 안가 완전히 열리게 된다.


츠바사는 조종대를 움직여 고도를 낮추었고, 무사히 버번의 우주선 안으로 착륙했다.


"야, 되게 번쩍번쩍하네."


천장과 모든 벽에 달려있는 하얀 조명에 츠바사는 감탄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작은 전투기들이 실려있다.


"우와..."


끝내주는 절경에 유쿠는 정신이 팔렸지만, 그것도 한순간이다.


'덜컥.'


우주선 문이 열리게 되고, 바깥공기가 내부로 들어오게 된다.


"자자, 어서 내리자!"


와카루가 가장 먼저 미치의 우주선에서 나왔고, 뒤이어 미치가 내린다.


"시동 꺼야 되니까 먼저 나가계세요."


스냅드래곤이 나가자, 츠바사는 우주선의 버튼을 누른다.


조명이 깜깜해지게 됨과 동시에 계기판에도 아무런 표시가 뜨지 않게 되었다.


'탁.'


츠바사가 우주선을 벗어난 게 확인되자,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여기가 제 우주선, 테세우스입니다."


버번은 미치 일행을 두 팔 벌려 환영했고, 그들이 타고 있던 것과 다른 으리으리한 내부에 시선을 빼앗긴다.


"스냅 드래곤, 혹시 수성으로 갈 생각은 없나?"


"음?"


"내 우주선엔 전투기가 많이 있어, 버번이 보냈다고 하면 모두 환영해 주겠지."


"목성을 치는 동안은 수성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혹여나 목성주가 화성을 침략할 수 있으니까."


"아니, 난 여기 남을래."


뒷짐지며 꽤나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경박한 그의 목소리가 차분해져있다.


"화성 어딘가엔 나 같은 녀석들이 많을 거야."


"브레올의 지배에서 벗어나서, 뭘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녀석들."


그 말을 들은 유쿠와 니치린의 머릿속에서 광장 안 핀드 무리들이 스쳐지나간다.


"난 걔네들을 찾아서, 새롭게 화성을 일으킬래."


"햇빛을 보니까, 뭔가 그런 자신감이 생겨나더라고."


스냅 드래곤은 화성을 비추게 된 눈부신 햇빛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그래, 응원한다."


"그럼 이만."


와카루의 격려의 말이 끝나자 스냅드래곤은 머리를 숙이는데.


"잠깐."


와카루가 우주선 밖으로 나가려는 스냅 드래곤을 멈춰 세운다.


"이제 코드명은 버리는 게 어때?"


"무슨 소리지?"


"네 이름은 이제... 하시리 다시다!"


"하시리 다시?"


영문모를 얘기에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웃어보인다.


"뭘 생각한 건진 모르겠지만, 좋은 이름이네."


"그럼 진짜 안녕!"


스냅드래곤은 검은 점퍼에서 로스트 스톤을 꺼냈고, 덩굴에 휩싸여 핀드가 되었다.


그는 빛보다 빠르게 우주선에서 멀어졌으며, 모두 그의 잔상을 바라본다.


"이제 다시도 갔으니, 목성으로 항해를 출발합시다."


버번은 홀로그램에 표시된 큰 버튼을 눌렀고, 그러자 우주선 내부에 경적이 울린다.


"삐, 삐!"


"비행 시작 신호이니 안심하세요."


큰 소리에 잔뜩 당황한 모두를 안심 시키는 버번, 그는 미소를 띄며 말한다.


"이 큰 우주선에 니쥬 씨랑 버번 씨만 있던 거예요?"


유쿠는 이 넓은 곳에 단둘만 있었는지 궁금해 그에게 질문한다.


"아니요, 얘네들도 같이 있었죠."


버번은 손목시계 화면을 바꾸었고, 또 다른 버튼을 눌렀다.


"철컥, 철컥!"


좌우 벽에 튀어나와있던 하얀 덩어리들이 튀어나와 공중을 비행한다.


"슈웅!"


검은 스크린이 탑재된 그것은 화면에 푸른색으로 웃는 표정을 띄운다.


"이게 다... 뭐야...!"


미치는 공중을 누비는 작은 로봇들을 보며 입이 떡 벌어진다.


"소개하지요, 타니달 입니다!"


그중 하나가 무리를 이탈해 버번 근처에 착지했고, 신나는 듯 기계음을 마구 낸다.


"귀엽네요!"


유쿠는 그 로봇이 마냥 귀여워 보이지만, 니치린의 생각은 다르다.


"요란하군... 이것들은 훈련용 허수아비인가?"


"아닙니다, 이 친구들은 무기를 제작하거나 보필을 도와주는 소형 로봇들이랍니다."


버번은 타니달이 허수아비가 아니라며 극구 부정했다.


"탁!"


모든 타니달이 바닥에 착지했고, 착륙 신호를 알리는 짧은 기계음을 내었다.


"이 친구들 덕분에 이 큰 우주선을 단기간에 만들 수 있었죠."


"그럼 각설하고, 안으로 들어가죠."


모든 타니달은 원래 있던 벽으로 돌아가 부착되었고, 버번은 그들에게 따라오라 말한다.

"첫 번째 방은, 식당입니다."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좌우로 열리게 되었고, 따뜻한 조명이 그들을 안으로 인도한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베이지색 방에, 안이 훤히 보이는 주방이 보인다.


"여기서도 타니달이 일하고 있죠."


주방 안에선 요리사 모자를 쓴 타니달이 반갑게 그들을 맞이한다.


"여러분들이 먼저 식사를 마치셔서 아쉽게 되었습니다, 타니달의 요리 솜씨도 출중한데."


버번은 타니달의 요리 실력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운 눈치다.


"저희 디저트는 안 먹었는데, 타니달 솜씨도 볼 겸..."


츠바사는 그 틈을 노리며 버번을 위한 듯이 말한다.


"지금 상황에 단 거나 먹으면서 놀 거냐."


미치는 츠바사의 말에 핀잔을 주자, 와카루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뭐 어때, 단 걸 먹어줘야 두뇌회전도 빨라지지."


와카루는 그대로 앞으로 걸어갔고, 뒤에서 환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도 동감입니다!"


유쿠도 방긋 웃으며 와카루가 있는 쪽으로 갔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하~ 잘 됐다!"


츠바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고, 미치는 자기 뒤에 남아있는 인기척을 감지한다.


나머지 사람들도 말없이 그들을 따라간다.


"이런... 나랑 생각이 맞는 건 당신 뿐인가."


"그런듯하군..."


니치린은 주방을 향해 달려가는 그들이 한심해 보이기라도 하는 듯 팔짱 낀 채로 중얼거렸다.


"안 드시겠다면 차라도..."


"사양하지, 목성까지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해."


버번의 제안을 거절한 미치, 니치린도 원하지 않는 느낌이다.


"동감이다."


"알겠습니다."


그들의 답변을 들은 버번은 주방에 몰려있는 무리들을 향해 걸어간다.


"이야, 이게 다 뭐람?"


츠바사 눈에 들어온 것응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음식들이 수놓아져있는 풍경이다.


"이건 에크나르프의 마카롱과 다쿠아즈."


버번이 음식의 이름에 대해 설명해 주며, 몸을 옆으로 이동시킨다.


"이쪽은 나파유의 타이야키와 미타라시 당고."


"그리고, 데티누의 민트초코와 일라티의 판나코타."


음식으로부터 올라오는 단 냄새가 식당에 몰려있는 모두의 후각을 자극한다.


"와!"


"마음껏 드셔도 되지만 절대 과식하지 마세요."


"네네, 알겠슴다!"


버번의 허락에 츠바사는 음식을 담을 접시를 찾기 시작했고, 미치의 눈쌀도 찌푸려진다.


"저 녀석 진짜..."


"왜 데려온 거냐."


니치린은 츠바사를 왜 팀에 합류시켰냐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운전 잘해서 데려왔는데, 이젠 필요 없겠네요~ 예."


"누가 저 불렀어요?"


"어, 니 얘기다.


"뭔 얘기요?"


"너 이제 필요 없다고."


미치는 당당하게 아까 말한 걸 되풀이해 돌려준다.


"허! 매정하시네!"


츠바사는 실망했다는 듯 짜증섞어 말하곤 몸을 돌린다.


"두 분은...?"


"다른 방은 어떤게 있나?"


버번의 질문에 미치가 다른 방에 대한 걸 물어보았다.


"윗층에 훈련장이 있긴 한데, 사용하실 건가요?"


"여기서 시간 낭비하는 것 보단 낫겠군."


니치린은 그곳으로 갈 생각인지 식당에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전투 실력은 키워보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준비해야겠어."


미치는 그동안 느낀 걸 말하며 니치린을 따라갈 것임을 밝힌다.


"너도 따라갈 텐가?"


니치린은 버번이 훈련장으로 갈 것인가 물었는데, 저 멀리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버번, 어서와!"


"음..."


카오리의 손짓에 버번은 결정을 내렸고, 두 사람에게 말한다.


"저는 남은 분들을 보고 있을 테니 타니달이 안내해 줄 것입니다."


'휘잉!'


타니달 2개체가 버번 주위로 이동했고, 그들이 훈련장까지 두 사람을 인솔할 것이다.


"몇 대를 만든 거야?"


"정확히 37대요."


미치의 물음에 답한 버번은 타니달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타니달, 이분들을 훈련장으로 안내해줘."


'삐빅!'


전자음을 낸 타니달들은 버번에게서 멀어졌고, 두 사람은 그들을 따라간다.


"나머지 분들은 어디 가시는 거예요?"


작아져가는 두 사람을 본 유쿠는 버번에게 그들이 어디로 가냐 묻는다.


"긴장을 늦출 순 없으시다며 훈련장으로 가셨습니다."


"아..."


버번의 답변에 유쿠는 고개를 끄덕였고, 들고있는 접시에 음식들을 마저 담는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셨다~"


"거사 치르기 전엔 즐길 수 있는 거 다 즐겨놔야 하는데!"


츠바사는 근처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들을 입에 넣기 시작한다.


아직 음식을 담고 있는 유쿠, 그 옆에서 요이니가 그에게 말한다.


"얼마 안 있으면 목성에 도착하겠네."


요이니도 그의 옆에서 음식을 담고 있었다.


"그렇죠, 한편은 기대돼요."


"뭐?"


"목성에 가까워지는 거야말로, 길었던 싸움의 종착점이니까요."


"어서 빨리 목성주를 쓰러뜨리고, 평화를 가져오고 싶어요."


전보다 뎌 노련해진 유쿠의 목소리, 요이니는 사뭇 다른 그의 목소리가 싫지만은 않았다.


"가서 무리하다가 다치지 말고."


요이니는 얕게 미소를 띈 채로 말했는데, 유쿠의 반응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걱정을 다해주시다니, 평소 같지 않은데요?"


"그냥 알아 들어!"


볼멘소리로 툴툴거리는 요이니, 그녀는 휙 돌아 유쿠에게서 멀어진다.


"예..."


요이니의 알 수 없는 태도에 유쿠는 주눅이 든다.


"야, 유쿠! 일로 와라."


"네, 와카루 씨."


유쿠도 테이블로 이동하고, 다른 테이블에선 다정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카오리는 타이야키를 베어 물고 오물거리고 있다.


버번은 자기 앞에 놓인 파란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뜨곤, 이야기한다.


"몇십 년이 지나도, 이 민트초코만큼은 계속 호불호 갈리는 음식이더라."


"나는 민트초코 진짜 좋아하는데, 치약이라 부르는 사람이 진짜 이해 안 가."


버번은 입 안으로 넣은 민트초코의 향을 즐기며 말한다.


"난 민트초코 별로..."


"아, 아무럼 어때. 이 민트초코가 우릴 갈라놓을 수 없어."


버번은 순간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대회를 이어나간다.


카오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목성을 보고, 버번에게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꼭 돌아와야해."


"비록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결국엔 다시 만났어."


버번은 카오리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크게 걱정하지 마, 난 무조건 돌아올 테니까."


그럼에도 카오리 표정은 굳었는데, 버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왜 이렇게 안색이 굳었어~"


"아, 입에 뭐 묻었다."


카오리의 입가에 묻은 앙금을 포착하고, 손으로 그것을 닦아준다.


"푸흡... 부끄럽게..."


버번의 손길이 볼에 닿자 웃음이 튀어나온 카오리.


"내가 어떻게 칠칠치 못 한 널 남기고 떠나겠어~"


'쾅!'


갑작스레 일어난 굉음에 모두 화들짝 놀라 천장을 올려다본다.


"무슨 일이지?"


버번의 손목시계가 화면을 띄웠고, 문자를 읽은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우주선 벽면을 두들기며 사라진 황금 팔, 버번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오 이런..."


와카루는 안 좋은 예감에 창문을 유심히 보았다.


"참 행차도 빠르시군."


그랄리온의 감각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파악했을 터.


"타니달들, 두 분을 안전한 곳으로 대비시켜."


'휘잉!'


어디선가 타니달들이 몰려나와 카오리와 츠바사를 일으켰다.


그것들은 그들을 어디론가 데려갔으며, 버번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리만 창문에 비친 걸 봐선, 거대한 녀석인 건 틀림없습니다."


로스트 스톤을 꺼낸 버번, 그러나 그랄리온의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산소 없어도 살 수 있는데, 너넨 어쩌냐?"


"밖은 우주...!"


황금 괴물의 크기를 가늠한 버번, 한 대라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만약 저 괴물 발길질에 당해서 변신이 풀린다면, 너희들은 분명 죽겠지."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뿐이야."


그랄리온은 복부에 양손을 가져다 대었고, 분홍색 빛과 함께 드라이버가 형성된다.


"버번이라고 했나? 우주선 빌려 탄 빚을 갚아주지."


"네?"


버번이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그랄리온은 벽 쪽으로 걸어간다.


'스르르...'


"어디 가신 겁니까? 설마 밖으로?"


벽을 통과해버린 그랄리온,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버번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외계인한테는 비밀이 참 많아..."


와카루는 그랄리온이 떠나간 자리를 보며 중얼거린다.

'스르르...'


벽을 통과해 밖으로 나온 그랄리온은 위에서 날개짓하는 황금 괴수를 목격한다.


"저녀석인가."


그것의 생김새는 드미트리가 보았던 거대한 크기의 만티코어 핀드.


"잠깐, 목성을 비껴가잖아?"


로켓의 추진력과 만티코어 핀드의 날개짓이 더해져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만티코어 핀드의 날갯짓이 가속을 붙여, 목성을 지나치게 되었다.


목성으로 향하던 그들의 우주선을 사로잡은 만티코어 핀드는 목성을 피해 어디론가 향한다.


"좋아, 어디 갈 때까지 가봐라!"


그랄리온은 씨익 웃으며 드라이버를 조작했다.


[I am a giant... I am the guardian of the world... And my name is Spriggan...!]


우주에 떠돌던 입자들이 뭉쳐 갑옷을 만든 다음, 그랄리온에게 입혀진다.


전사로 거듭난 그랄리온은 벽을 타고 올라 우주선 위쪽으로 향한다.


'탁.'


우주선 위에 발을 들인 그랄리온,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뒤덮는다.


"아주 커..."


그랄리온이 중얼거리던 순간, 황금 촉수가 날아와 그를 공격한다.


"뭐야!?"


그랄리온은 손날을 세워 그것을 절단했지만, 잘라진 부위가 재생되며 다시 활동한다.


"무기가 필요하겠군."


'휙, 휙!'


그랄리온은 줄기를 때려눕힐 무기를 상상했고, 허공에 손을 뻗었다.


'스르르...'


그러자 기다란 봉이 들렸고, 그랄리온은 날뛰는 촉수들을 때려눕힌다.


"안 지치냐?"


끈질기게 일어나는 황금 촉수, 그랄리온은 만티코어 핀드의 몸을 타고 올라간다.


황금 촉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 녀석, 속도만 높이고 내 신경은 안 쓰는데, 뭐지?"


만티코어 핀드는 그랄리온을 상대할 마음이 없는 건지, 촉수를 거두었다.


"잠깐, 저긴!"


그랄리온의 눈엔 목성도 아닌 토성이 보였다.


"이거 일 났네!"


큰 고리에 부딪힐까 봐 그는 어서 만티코어 핀드를 우주선에서 떼어놓으려 하는데.


'철컥!'


우주선의 덮개가 열렸고, 그 안에서 기다란 총구들이 고개를 내민다.


총구들은 푸른 에너지 탄환을 만들어 만티코어 핀드에게 먹인다.


'펑!'


그 충격에 만티코어 핀드는 발을 놓아버리며 허우적거렸다.


"버번이 그랬나? 이런 건 처음 본다."


순식간에 원래 속도로 돌아오게 된 우주선, 그렇지만, 고리와 곧 닿을 것 같다.


만티코어 핀드는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그랄리온을 위협한다.


"그렇게 하악질 해봐야 좋은 거 없다?"


"왜냐..."


그랄리온의 두 주먹이 분홍색으로 물들었고, 그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뒤로 당기는 시늉을 한다.


"운석이다!"


만티코어 핀드를 강타하는 수많은 돌덩이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만티코어 핀드는 발톱으로 그것들을 다져버린다.


'휙, 휙!'


만티코어의 전갈 꼬리가 늘어나 그랄리온을 찌르려 했지만.


"많이 어설픈데!"


모두 피해낸 그랄리온, 이내 주먹을 불끈 쥐며 분홍색 기운을 극대화한다.


몸집이 배로 불어나게 된 그랄리온, 만티코어 핀드를 제압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이다.


총구들은 더욱 큰 에너지 탄환을 발사해 만티코어 핀드를 공격한다.


"하!"


혼란한 틈을 타 그랄리온의 주먹이 만티코어 핀드의 꼬리를 붙잡았고, 곧바로 부러뜨렸다.


부러진 꼬리가 움직이며 잘란 부위에 그대로 붙어 결합한다.


만티코어 핀드는 그랄리온에게 돌격했고, 그는 힘껏 핀드를 치려한다.


'휭!'


주먹에 닿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진 만티코어 핀드, 그랄리온은 두 눈을 감고 핀드의 기척을 추척한다.


"여기군!"


자기만큼 거대해진 봉으로 허공을 쳤는데, 큰 타격소리가 들렸다.


 '휭!'


고통을 참은 만티코어 핀드는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그대로 그랄리온을 들이받는다.


"젠장, 이대로 가면..."


넘어진 그랄리온, 만티코어 핀드는 그의 얼굴을 잡아 뜯으려 한다.


"그렇겐 못하지!"


봉을 잡아 그 끝으로 만티코어 핀드를 밀어낸 그랄리온.


'휙!'


그랄리온은 봉을 한손으로 돌려가며 만티코어 핀드를 위협한다.


만티코어 핀드는 그게 위협이란 것도 인지 못 한 채 분홍 형체를 향해 돌진할 뿐이다.


'쾅!'


"윽..."


"움직이기 편하라고 지구처럼 바꿔놨건만, 더 힘들어지는 것 같네!"


자신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풀어버리고, 그랄리온은 봉으로 만티코어 핀드의 머리를 타격한다.


그랄리온은 아까처럼 운석들을 끌어와 만티코어 핀드의 몸에 충돌시킨다.


만티코어 핀드는 날갯짓을 해 날아오는 돌덩이를 떨쳐낸다.


"해보자는 거냐?"


"하!"


그랄리온의 봉이 한순간에 길어져 만티코어 핀드를 저멀리 밀어버린다.


'휙!'


봉이 원래 길이로 돌아옴과 동시에 만티코어 핀드도 맞기 직전의 위치로 돌아와있다.


"허..."


그랄리온은 양손을 펼쳤고, 손바닥 주위에 둥그런 분홍 연기가 맴돈다.


"하!"


그 연기들은 만티코어 핀드의 몸을 묶었고, 뿌리치려 시도해도 굳게 붙든다.


'스르르...'


봉의 윗면을 쓱 훑은 그랄리온, 그러자 분홍색 결정이 돋아나며 기다란 검이 되었다.


묵직한 수정 칼날을 그대로 휘둘러 만티코어 핀드의 얼굴에 꽂아버린다.


'펑!'


결정이 깨짐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으며, 그 여파로 연기 족쇄로 사라졌다.


"진짜 끈질기네...!"


어떤 부위 하나 손상 입은 흔적이 없는 만티코어 핀드.


그랄리온은 말도 안 되는 내구성에 놀란다.


만티코어 주위에 뾰족한 노란 가시들이 생성되었고, 그것들은 그랄리온을 향해 나아간다.


'휙, 휙!'


입술을 꽉 깨문 그랄리온은 이번엔 주먹을 쥐었다.


주먹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을 본 그랄리온은,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가시에 손바닥을 친다.


'스르르...'


빛이 그 가시에 깃들자마자 금이가기 시작하며, 이내 쨍그랑 소리를 내며 파괴된다.


'휙, 휘릭!'


하늘에 떠오른 상태에서 허공에 주먹질과 발차기를 시전하는 그랄리온.


횟수가 거듭될수록 양손의 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그의 팔까지 뻗어나게 된다.


"하!"


기합과 함께 오른 주먹을 만티코어 핀드 머리에 때려 박았고, 움직임을 멈춘 그것의 턱에 발차기를 꽂았다.


'휘릭!'


그랄리온은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고, 그의 몸을 휘감는 회오리 바람이 생성된다.


회오리 바람은 만티코어 핀드를 가둔 후, 겉면을 따라 회전시켰다.


정신을 붙잡은 만티코어 핀드는 입을 떡 벌렸고, 그 안에서 노란 액체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펑!'


그것들을 모조리 내뱉은 만티코어 핀드, 액체가 그랄리온 몸에 적중했다.


액체는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그랄리온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었다.


만티코어 핀드는 그랄리온이 움직일 수 없다 판단하고, 우주선을 넘본다.


만티코어 핀드는 다시 우주선 위에 앉아 모든 발을 고정시키고, 토성까지 운반을 시작한다.


"어쩌겠어, 이 상태로 가야지!"


그랄리온은 분홍색 섬광이 되어 만티코어 핀드를 추격한다.


'화르르!'


그랄리온 손에 피어오른 분홍 불꽃이 그를 감싼 노란 막을 불태운다.


그러자, 노란 막이 녹아내리며 다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휙!'


그랄리온은 우주선에 올라탄 만티코어 핀드에게 주먹을 날린다.


그런데, 만티코어 핀드는 우주선에서 벗어났고, 그랄리온은 어리둥절한다.


'휙, 덜컥!'


쇠붙이가 움직이는 소리에 그랄리온은 잽싸게 그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니!?"


토성 내부에서 튀어나온 굵은 황금 사슬이 우주선을 낚아챈다.


황금색 사슬에 묶인 우주선이 토성 안으로 끌어당겨지고 있다.


점점 누런 연기에 삼켜지는 우주선, 그랄리온의 심장은 빠르게 뛴다.


그랄리온에게 주어진 2개의 선택지.


괴물을 해치우느냐, 우주선을 구하러 가느냐.


조금도 고민할 수 없던 그랄리온은 만티코어 핀드에게서 멀어진다.


"어쩔 수 없지,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그랄리온은 토성으로 몸을 던지지만, 만티코어 핀드는 노란 액체를 토해낸다.


'펑!'


미처 확인하지 못 한 그랄리온의 몸은 다시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토성으로 끌려간 나머지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데, 그랄리온은 움직일 수 없다.


"제발 좀 내버려 둬라!"


만티코어 핀드는 그랄리온에게 다가간 다음, 발길질을 한다.


'퍽!'


"악...!"


그대로 그랄리온을 발로 찬 만티코어 핀드, 위력이 어찌나 컸는지 그를 토성 안으로 처박아버린다.


만티코어 핀드는 그랄리온이 토성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유유히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쾅!'


하늘에서 거대한 우주선이 사슬에 매달려 끌려내려왔다.


바닥을 긁고 멈춘 우주선, 충격이 심했는지 군데군데 무시하지 못 할 손상을 입었다.


준비라도 한 듯 우주선을 둘러싸는 금칠이 된 핀드들.


그들 중앙으로 흰 드레스를 나풀거리며 걸어오는 한 여자.


그들은 절도있게 한 번에 몸을 틀어 여자가 지나갈 길을 터준다.


'덜컥...'


굳게 닫힌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손목시계를 막 건드리던 버번이 보인다.


문이 전부 열리자, 버번 뒤에 모여있던 일행들도 바깥 풍경을 보게 되었다.


"핀드!?"


유쿠는 당장 로스트 스톤을 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째서 인지 핀드들은 공격할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토성에 어서 오세요!"


핀드들 가운데에 서있는 여자는 그들을 향해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주위에서 팡파르 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왔고, 모두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본다.


"저는 여러분들을 안내해 줄 일일 가이드, 뮤엘이에요!"


"다시 한번 환영합니다~"


모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유쿠를 비롯한 모두가 새로운 위기를 맞이한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 내용은 본편 41화가 아니라 [극장판 가면라이더 판게아 Chapter of Saturn]에서 이어집니다.

소설가인 청바라(활동명: 쿠도하루)입니다. 저서로는 '지知정情의意, 삼위일체'와 '글이 내 천성이긴 한데……'가 있습니다. 특수촬영 소설 '선견전대 커맨다이저'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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