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한은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몇 번 깜박이자 이내 가득 차는 죠스케의 멋쩍은 얼굴이 보인다. 미안함다, 깨우려던 건 아닌데. 로한은 고개를 돌렸다. 됐어. 언제 잠들어버렸지. 초저녁이었다. 자꾸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이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신체를 자꾸 뒤흔들었다. 마감할 때를 제외하면 원래 칼 같이 자고 일어나는 로한이었지만 약은 그런 로한의 생활 습관조차 서서히 무너뜨렸다. 저릿거리는 느낌부터 불에 지지듯이 고통스러운 감각 때문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깼다. 머리에 달라붙은 질척이는 악몽의 흔적이 언제 습격을 개시할지 두려워 몸을 옹송그리고 뜬눈으로 밤을 지샌 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분명 아프다는 감각은 있지만, 아픈 곳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는 사고나 물리적인 절단 이후에 느껴지는 고통은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웃기는 일이었다. 분명 자신의 손은 키라 요시카게와 함께 사라져버렸을 터였다. 그런데 아직도 제 손이 붙어있다고 알고 있는 꼴이라니. 몸도 머리도 완전히 고장나 버린 모양이었다. 몇 번이나 지독한 맛이 나는 진통제를 집어삼키며 로한은 생각했다. 고통 대신 새까맣게 잠이 쏟아지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불에 끝없이 지져지는 통증보다는 끝없는 잠이 나았다.

그런 로한에게 죠스케는 익숙하게 대처했다.  걱정스레 로한의 땀에 젖은 이마에 손가락을 대어 가닥가닥 붙은 머리를 쓸어넘겼다. 섬세한 손길이었다. 뭐 써. 죠스케가 웃었다. 로한과...  나중에 같이 하고 싶은 일요. 죠스케의 열없는 웃음이 따라붙었다. 로한이 중얼거렸다. 뭘 하고 싶은데. 로한의 기분을 살피는데 도가 튼 죠스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음, 로한이 그걸 궁금해할 줄은 몰랐슴다. 그냥,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이요. 같이 산책을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그런 것들 말임다. 말하는 죠스케의 귀가 붉었다. 죠스케가 말하는 '같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뜻을 로한은 알고 있었다. 이런 꼴이 된 자신 곁에 있어주는 것도 그 감정 때문이겠지. 

"소박한 것들뿐이군."

"원래 소원은 소박해야 좋다잖슴까. 로한이랑 오래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는 건 로한뿐일검다."

웃기는 녀석. 로한이 짧게 웃었다. 죠스케의 귀가 더 붉어졌다. 아. 햇빛 쬘 시간임다, 로한. 내가 무슨 관엽식물이라도 되는 줄 알아. 넌. 로한의 타박에도 죠스케는 강경했다. 의사가 햇빛을 많이 쬐어야 된다고 했슴다. 로한은 냉장고에 붙은 삐뚤삐뚤한 필체가 가득한 포스트잇을 떠올렸다. 부도가오카 병원에서 퇴원한 날, 의사가 말하는 권고 사항이나 주의 사항 따위를 자신 대신 받아적은 죠스케의 작품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햇빛 쬐기, 균형 있는 식단, 팔과 다리의 마사지, 진통제의 적절한 복용. 그런 것들. 마감에 쫓겨서 삼 일 이상 밤낮을 새고 나면 반나절 내내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나 레토르트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자신에게는 이미 귓등으로 들을 법한 의사의 충고였지만, 죠스케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로한은 픽,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참았다. 알았어. 

햇빛이 드는 테라스에 로한을 앉혀놓고도 죠스케는 뭔가 체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일기도 꼬박꼬박 안 쓸 것 같은 놈이 뭘 메모하는 게 신기해 로한은 자꾸만 죠스케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싶은 욕망을 눌렀다. 가끔 저녁 메뉴는 이걸로 할 검다. 같은 것 따위를 말하는 걸 보면 아마 하루 스케줄인가 보지. 로한의 퇴원 후 죠스케의 일상은 거의 로한을 돌보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처음에야 로한도 하필 네놈이 얼쩡대냐며 문전박대에 대놓고 패악질을 하기도 했지만 점차 사그라들었다. 병문안을 온 코이치가 흘린 이야기 탓이었다. 말하지 말라고 했었지만요, 로 시작된 이야기는 만약 죠스케가 크레이지 다이아몬드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평생 갔을 정도의 흉터가 남았을 거라며 말끝을 흐리는 것으로 끝났다. 

로한은 멍하니 하늘에 시선을 주다가, 노을이 슬쩍슬쩍 비쳐드는 죠스케의 뺨에 시선을 줬다. 손 대신이라도 되려는 것인지 쓸데없이 예민해진 코 끝에 죠스케의 체취가 감겨들었다. 로한이 가장 익숙해진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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