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썰은 마도조사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전개됩니다.






원작과 달리 오히려 남망기의 자각이 느렸단 것으로 망기무선 보고 싶다. 


헌사 전에도, 헌사 후에도, 남망기는 위무선을 향한 제 마음이 단순한 지기애와 일말의 죄책, 그리고 평범한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굳게 믿은 반면, 헌사 이후 그 뜻모르고 끝모를 다정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린 위무선은 남망기가 저를 사랑한다 착각한 것으로. 


그러나 대개 이러한 어긋남은 오래 가질 못하는 법이니. 위무선의 무고와 결백이 밝혀진 이후 위무선은 이제 어쩌면 제 삶에도 그나마 볕 들 시기가 찾아왔구나, 여기가 내 어둠의 끝인가 생각하는데 남망기 역시 제 기나긴 여정 이로써 끝이구나 하는거..


위무선은 남망기와 함께할 미래를 꿈꾸는데 남망기는 둘 인연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닭 있어 제 삶의 방향이 지난 십삼 년간 지독히도 이 사람을 향해 휘었으나, 이제 서로가 서로의 길로 다시 떠나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일찍이 이 사람은 제 갈 길이 나완 다르다 하였으니. 


위무선의 삶은 이미 한 번 끝장 났었고 더는 걸을 여로가 남아있지 않단 걸 진즉 깨달았으면 그렇게 냉정으로 미래를 가늠하진 않았을 테지만, 남망기는 예나 지금이나 제 맘도 타인의 맘도 들여다보는 것엔 도통 재주가 없었다. 


미래는 남망기에게나 해당하는 단어지 위무선의 두 번째 생은 오로지 강제로 남의 소원 이루어주기 위해 불려나왔을 뿐더러 제 명예 복권하는 일도 우연찮게 타인의 계략에 휘말린 게 전부인데. 그 손 붙잡고 길 이끄는 이가 없으면 하릴없이 발걸음 멈추고 세월 흘려보내는 도리밖에 없는 이를, 남망기는 놓고 떠날 참이었더랬다.


서로 마음이 향하는 바가 다르단 걸 깨닫기엔 찰나면 충분하여. 일생을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위무선은 그 눈빛 하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남망기의 뜻을 알아채고 그만 창졸간에 바보천치 되고 말았으니. 



그렇다. 그러했다. 

네가 날 사랑할 리 없단 것 가장 잘 아는 이가 나였어야 했는데.



혼돈에서 돌아오는 길 너무 멀고 아득하여 그마저 잊었었는지. 혹은 둘 곳 없는 내 마음 너무 무거워 누구에게라도 좋으니 내려두고자 하는 욕망이 몹시 컸는지. 내 어찌 널 두고 그리 망측한 오해를 했을까. 지독한 정을 품었을까. 부끄러운 이기를 부렸을까. 네 헌신 이만하면 차고도 넘침인데.


그렇기에 위무선은 다시 저를 돌아봐 달라, 제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 붙잡는 것은 제 소관 아님을 재빨리 파악하고 예측도 대비도 하지 못한 갑작스런 이별을 웃는 낯으로 맺었다. 다시 만난 이래 네게 받은 것이 참으로 많아 그것으로 삶의 동력 삼으려 했다만, 이 웃는 얼굴 만드는 것에 그 다정을 죄 소모해버렸으니 나는 앞으로 무엇으로 살아갈까. 무엇을 향해 살아갈까. 내게 남은 게 무언지. 또 나를 바라는 이는 누가 있는지. 이 세상은 한 때 간절히 나의 죽음을 바랐었는데, 이제사 내 돌아왔단들 이 생에 걸쳐질 의미 있으랴.


그러나 이미 몸은 돌아섰고 등 뒤엔 벌써부터 그리운 이 떠나고 있으니. 눈앞에 펼쳐진 막막한 광야를 우선 걸어가는 것밖엔 방도가 없었다. 설령 비통에 무너지더라도 이 자리는 아니어야 했으며 애타게 붙잡더라도 그게 저이 발목은 아니어야만 했다. 


위무선은 남망기의 삶을 곱게 놓아보내는 것만이 제가 할 유일한 보은이라 믿었다. 고맙단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만, 기실 또 고마워 할 이윤 뭐란 말인가. 이제껏 있었던 일 가운데 내 바란 것은 단 하나도 없는데. 만일 내가 복수와 결백의 증명을 원했으면 진작 돌아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이 모든 것은 깊이 따지고 보면 후회를 물릴 평안을 바라는 남망기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었으나, 다만 그 주체가 위무선이기에 편치 않은 감사를 품을 수밖에 없었더랬다. 


이런 건 내가 원한 게 아니었어. 

그렇게 말할 수 없고, 


내가 정말로 바랐던 건 네 영원이었어. 

그 말도 할 수 없게끔.


위무선의 생은 늘 강요된 선택과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는 행동에 익숙해진 형태라 쓰라린 속이야 어떻게 짓무르든 나아가는 발걸음만큼이야 흔들림 없었다. 내 비록 갈 길은 잃었다지만 적어도 이번의 앞날은 삐끗하면 속절없이 추락할 외나무다리는 아니니 다행이구나. 그리 위안하며.


하여, 빠르게 빠져들었던만큼 잊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간절해 금세 또 그 전부를 잊은 위무선과는 달리 남망기의 두 번째 삶은 이제서야 마악 시작되고 있었으니. 남망기가 생각하기론 제 두 번째 삶은 헌사된 위무선을 만난 시점부터 출발했다 짐작했겠지만 진정한 전환점은 이 이별부터였다. 


당장 헤어진 첫날밤부터가 고비였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공허가 가슴께에 걸린 것 같은데 이 때까진 단지 줄곧 같이 다니던 동행이 사라진 탓에 그런가보다 여기고 가벼이 넘겼다. 마음이 쉬이 동요하는 걸 보니 아직 수양이 빈곤하구나 스스로를 책하며. 


그 빈자리가 사람 난 것이 아니라 마음 한 켠이 잘려나간 걸 눈치챘더라면 아직은 돌이킬 여지 있었을테지만, 누누이 말하지만 남망기에게 있어 위무선은 아직 사랑으로 이름 받지 못했기에. 배우지 못한 것을 홀로 깨달을 수 있을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남망기의 안일이 죄였다. 


사랑을 어디 책으로 배운단가. 심장 뛰고 숨 쉬고 감정 가진 인간이라면 때가 되면 자연스레 깨닫는 것이 사랑이란 것인데 남망기는 가르침 받은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무지한 것을 어찌 가슴 속에 품겠나.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방금 제 영원을 떠나보낸 것도 후회하지 못했다. 


따지고보면 이는 비단 남망기의 탓 만은 아닌 것이, 감정을 겉으로 표하는 것을 죄악마냥 책벌하여 다루는 집안에 태어난 것을 어찌 그의 잘못이라 할까. 그저 책임을 따지자면 그런 주제에 너무 귀하고도 중한 이를 자각 없이 사랑한 솔직한 어리석음이 잘못일 테지. 


차라리 팔다리라도 한 번 잘린 적 있었더라면 형편이 좀 더 나았으리라. 분명 있을 리 없는 게 지독히도 고통으로 존재감 뽐내는 것 겪어보았더라면 무에서도 유의미한 감정이 창출된단 것 진즉 깨우쳤을테니. 그러나 시간은 멈추는 법이 없기에 뒤늦게 돌이킨대도 그 전부는 후회로 남을 뿐이었다. 





운심부지처로 돌아온 남망기는 때때로 환상통에 시달렸다. 증상을 내세우면 환시나 환청으로 분류하는 것이 마땅하나 그 와중에 가슴팍에서 이름 모를 통증이 동반되어 무의식 중에 환상통이라 부르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지. 옛 벗을 떠올리는 일이 어찌 이리 고통스럽단 말인가. 


나는 더는 널 미워하지 않고 우리 이젠 제법 친해지지 않았느냐 묻는 네 말에 고개 끄덕여줄 다정도 제대로 갖추었는데. 훗날 더는 내 해준 것이 부족했다 자책할 일 없도록 네게 정성을 다하였는데. 지난 십삼 년간 곱씹어 새기며 마음먹었던 걸 모두 이뤄내지 않았던가. 


쏟아질 대상을 잃은 마음은 나날이 부풀어 고통을 호소하는데 설마 제 속에 몸 주인인 저도 모르는 것이 자라고 있음을 까맣게 모르는 남망기 역시 답답함에 무언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것은 네 얼굴이라. 


진정 참혹하고도 이상한 일이지. 나 어째서 네 얼굴을 떠올리면 숨이 막힐까. 삿된 사술에 휘말릴 정도로 경지 낮은 수사는 아닌데. 언제고 네 돌아오는 날, 그 곁을 지키기 위해 지리멸렬한 세월 공으로 흘려보내며 부던히도 수양에 매진하지 않았던가.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으리라. 이번에야말로 허무하게 떠나보나지 않으리라. 분명 그렇게 굳게 마음 먹고 무려 십삼 년을 버텨낸 나인데. 헌데, 어찌하여. 


그런 생각으로 잡을 수 없는 환상을 향해 안타깝게 손을 내뻗는 순간, 손아귀에 걸리는 것 없는 냉엄한 현실에 남망기는 일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방금 무어라 생각했나. 


놓치지 않으리라.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다시는, 너를. 

그렇게. 




아. 세상은 사계로 돌아가되 꽃이 피는 것엔 한철이면 충분하듯이, 이제껏의 무감은 전부 없는 일로 스러지고 이 순간엔 일생의 찰나가 여지 없이 사랑이었다 이름지어졌으니. 


흑과 백으로 나뉜 세상 속에 홀로 붉은 색채의 이름을 알지 못했던 것이 당연했다. 설마 사랑이란 것이 그토록 찬란할까 싶어 감히 부르지 못한 것 또한 당연했다. 다만 한 가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무지했단 것 역시 죄이기에.


지금 남망기에게 남은 것은 손에 쥘 수 없는 허공과 갈 곳 잃은 마음 뿐이었다. 


한 때는 이 손에 너를 잡은 적이 있었다. 

한 때는 이 눈에 네 웃음을 담은 적이 있었다. 

한 때는 너는 내 곁에 머물렀으며, 

한 때는 내가 네 곁에 있었다. 


차마 영원이 되지 못한 순간의 시간에, 네가 있었다. 


너는 나의 삶으로 찾아왔고, 돌아왔고,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내 손으로 다시 떠나보냈다. 이별을 먼저 입에 올린 것이 나였으니 뒤늦게 애통에 쓰러지며 발목을 붙잡고자 몸부림 쳐도 소용없는 것을 안다. 소식조차 모르는 너를 어찌 좇으랴. 이성으론 알고 현실마저 내게 그리 이르는데,


그러나 내 언제는 그런 운명에 굴복해 절망하던 사람이었던가. 


평생에 두 번은 못할 기다림이라 생각했지만, 평생에 한 번뿐일 사랑을 찾아 해메이는 일에 감히 횟수를 가져다 댈 수 있을까. 망설이는 것조차 무도하고 고민하는 일마저 사치스러워서. 


그리하여 마침내 남망기는 길 없는 광막함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일찍이 그보다 앞서 위무선이 웃으며 걸었던 길이었다. 발자국은 커녕 눅눅히 젖은 눈물자욱 하나 남지 않았을 황야를 어찌 다 헤집고 다닐까 막막하다가도, 



너는 기어이 그 혼돈을 건너 내게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나라 한들 이 상실의 허무와 타는 마음을 이겨내지 못할 리가 없다. 적어도 네가 해낸 모든 것을 나 역시 이겨내어야 너를 지키며 곁에 머무르겠다 말한 언약이 진실로 가름 되노니. 


그저 걱정되는 것은 혹여나 내게 상처 받았을 너인데, 

애당초 사랑받고자 너를 사랑한 것이 아니기에. 



나의 사랑은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너는 그저 받기만 하라. 


오직 그것만을 바라서, 내 너를 사랑한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모든 시간까지 네게 바치기 위해. 




나의 기다림은 언제나 사랑이었으므로 

너는 언제나 나의 영원이었다. 








2020년 1월 22일에 풀었던 썰

잔불의 기사 / 마도조사 (프로필 사진 - 배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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