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토록 변치 않는 그런 기분 간직할래 
세월이 지나서 다 변해도 변치 않는 건 하나
이젠 뭘 하더라도 그 시절 같을 순 없으리오 
이젠 바쁘더라도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딱 생각나는 장면들은 노래와 이어져 있다. 조PD의 '친구여'는 갓 고딩이 된 내가 푹 빠진 노래 중 하나였다. 같은 라인으로 에픽하이의 '평화의 날',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가 있는데 이 곡들은 다음에 또 써보기로. 아무튼 당시 나는 힙합에 관심 많은 조금 음침한 애였다. 왜 음침이라고 했냐면 좋아하는 걸 보이는 곳곳에 써둘 만큼 갖은 티를 내면서도 취향 외에 나에 관한 얘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게 방어기제이자 자격지심이 만들어낸 태도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그게 갑작스런 변덕처럼 느껴졌다. 전부 내보일 듯 굴다가 갑자기 입을 꾹 다물고 벽치는 모습 말이다. 스스로도, 외부에도 아주 공격적이었고 그걸 표출하는 수단이 글이었다. 내게 글이 친숙한 건 이 탓이 가장 크다. 그렇지만 대체로 글을 아주 잘 쓰는 축에 들었다. 상을 받거나 외부에서 인정받는 활동은 없었는데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과 늘 쪽지를 쓰거나 편지, 문자를 주고받곤 했으니까(문자 무제한인 칭구 폰은 공용폰이라는 게 당시 국룰,,) 글로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를 한창 알아갈 때라고 할 수 있다. Y세대로서 너나없이 핸드폰을 사용하고 온라인 자아를 형성하던 사람들이라. 


다시 돌아가, 당시에는 조PD가 2CD를 발매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제2의 서태지라는 수식어로 불렸다는 걸 알고 있었고, 공교롭게 난 당시 서태지를 좋아하고 있었다. (네 저 매니아였서요) 그의 노래에 심취해 도서관에 갈 때면 그를 다룬 대중음악평론서를 읽곤 했던. 책에 언급된 가수로는 조PD도 있었고, 한국대중음악사에 미친 영향을 가늠했다. 물론 그가 처음 등장할 당시 나는 꼬꼬마였으므로 그게 기억나거나 체감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역사책으로 과거를 알아가듯 알게 된 거였지. 그러다 앨범을 냈다고 하니 궁금할 수밖에. 다만 그의 음악성이나 평가가 궁금해서는 아니었을 테고 타이틀인 '친구여'가 받아들이기에 적합했기 때문일 테다. 그맘때 '평화의 날'이 나왔그든요. '친구여'를 얼마나 좋아했느냐면, 핸드폰 벨소리와 노래 1곡 다운받느라 부가서비스 비용이 1만 원이 넘게 나와도 한 번 혼나고 말자고 마음먹을 정도였다. (쓰면 쓸수록 격세지감 느껴지네. 분명 그때도 mp3 있었는데)


계속 조PD와 에픽하이 노래가 교차하는 이유는 같은 시절, 한 사람과 이어진 노래라서. 첫 짝이자 절친과 이 노래를 테마로 오랜 시간 교류했다. 친구의 별명은 기린(키가 컸다), 나는 너불(보노보노의 너부리 맞읍니다. 추후 너굴로 보정된다). 우리는 동물농장을 표방하며 갖가지 동물 친구들을 늘려갔다. 사슴, 개굴, 사육사 등등,, 나중에는 담임이 자기도 끼워달라고 할 정도가 되었는데 예,,, 살펴 가세요,,, 

여기에서 오랜 시간은 절대적이자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고인 물이라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라떼는 겨우 0교시 없이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꽉 채워 보냈거든. (학년이 올라가면 야자 시간도 늘어났고) 그 시간 내내 바로 옆에 붙어 수업 듣고 밥 같이 먹고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쪽지도 허구헌날 주고받으며 지낸 사이니 각별하지 않고 배기나. 게다가 같이 노는 건 어찌나 재밌는지 학교 밖에서 만났다 하면 노래방 가서 이 노래를 불러제꼈지. 물론 내가 조PD 역할,,,

그때조차 가사를 빠르게 외면서 참 웃기다 싶었다. 십 대가 뭘 안다고 '세월에 무감각해져 가네 현실의 삶과 이상 속에 아련한 추억이 너무 그립네' '인생에 뭐가 더 있나 돈 명예 미래 따위야말로 영원할 순 없소 다이아몬드 같이' 같은 걸 부르고 있는지. 근데 어렴풋이 알았던 거지, 이걸 나중에도 부르면서 정말 이 순간을 추억하리란 걸.


2, 3학년이 되어 다른 반으로 갈리고,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서 전보다 서서히 뜸해져 갈 즈음에도 우리는 싸이월드, 이글루스 등에서 자주 '친구여' 가사를 소환하며 추억을 더듬곤 했다. 얼마 전 싸이가 다시 돌아온다는 기사를 봤는데 다른 건 몰라도 괜히 고등학생~대학생 시절의 친구들이 떠오르는 거다. 그때야말로 매일 같이 기록을 남겼으나 동시에 흑역사라서 다 갈아엎었으면서. 이제는 정말로 어찌 지내는지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때 친구의 꿈과 관심사는 또렷이 기억나는 게 신기하지.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난 기억의 미화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과오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순간이 있으니까. 그래서 종종 그 사람과 인연이 끊어지면, 또는 그 사람이 미워지면 기억을 통째로 날려버리곤 했다. 데이터만 지우면 어느 정도 그 기억은 달아나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살아오다가 몇 년 전에 그 기억을 잘 포장하는 법을 고민해보게 됐다. 좋은 순간마저 지우는 일은 좀 너무하다고 요즘에야 생각한다. 그냥 그 사람 자체를 날려버리려는 마음이 자꾸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좀 달리 살아보려고. 어쩌면 500자 에세이 시즌2는 그렇게 지우려 들었던 사람들을 조금씩 더듬어보려는 내 나름의 발악일지도 몰라. '영원토록 변치 않는 그런 기분 간직할래 세월이 지나서 다 변해도 변치 않는 건 하나' '이젠 뭘 하더라도 그 시절 같을 순 없으리오 이젠 바쁘더라도 우리의 추억을 기억해줘'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외면서 그 시절을 윤색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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