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풀고 결말까지 투표했던 썰(보러가기)입니다.


금방 써질 것 같았는데, 잘 안 풀리는 부분이 있어서 거의 한 달 붙잡았네요. 똑같은 부분들만 다섯번으 고친 것 같고, 결국 상하편으로 연작으로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려서 좀 어정쩡한데에서 끊어집니다. 반드시 언젠가 마저 쓰겠다는 결심으로 일단 올립니다. 요즘은 글 쓸 여유도 없고, 아예 쓰는 법을 잊은 것 같아서 일종의 재활치료도 있고ㅠㅅㅠ


조조와 유비가 전혀 다른 겉모습, 이름으로 환생했다는 설정입니다. 환생조조가 아예 자캐처럼 나옵니다....



大叫(대규)    上

크게 울부짖다.


불교의 팔열지옥 가운데, 지독한 아픔을 못 이기고 절규하게 되는 대규환지옥.








하늘나라의 선녀가 천년에 한 번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이때 옷깃으로 바위를 한 번 쓸고 간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동작이 반복되어 바위가 모래알만큼 작아지는 시간이 일 겁(一劫)이요, 일 겁이 거듭 되면 인연이다. 스승과 제자는 일만 겁의 시간이 걸려 형성된 인연이요, 형제는 구천겁의 시간이 걸린 인연이요, 부부는 팔천 겁이 걸려 만난 인연이다. 그런데 철천지원수는 어느 정도의 겁이 필요한 걸까?


아이들은 태어날 때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가 점차 세상의 자극 속에서 전생을 망각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종 망각이란 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망각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말인지는 알 수 있다. 정말 그럴까? 보고 들은 것을 완전히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율적이고 부러운 일인가. 학습을 할 때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터다. 망각의 신의 선물이란 말은 기억력이 나쁜 자의 자기합리화인가?


그렇지만 가정을 하나 해보자. 여기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사고로 갑작스럽게 잃어버린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이 자식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면 어떨까. 자식을 처음 품에 안았던 때, 아이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달려오던 때, 서툰 손으로 삐뚤게 사랑한다고 적은 편지를 주던 그런 모든 기쁨과 환희의 순간부터 손 쓸 수 없이 자식이 죽어가던 때의 처참함까지를. 평생 그 모든 기억이 뇌리에서 생생하다면, 상실 이후 삶을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까?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일이란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망각을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가 보다. 하지만 그는 기억들로 인해 아무리 고통 받더라도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절대 놓을 수 없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유별났다. 쉬지 않고 울어 부모의 넋을 빼놓았다. 배가 고픈 것도,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빽빽 울곤 했다. 부모는 화들짝 놀라 아들을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그냥 과민한 아기라는 진단을 받을 뿐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어렵게 얻은 자식이었다. 부모는 하나뿐인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아끼며 아낌없이 사랑을 퍼부었다. 흔히 그런 환경에게서 자란 아이에게는 사랑받는 자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절로 보살핌의 욕구를 이끌어내는. 아니, 아이라는 것이 모두 그렇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의 결정체. 하지만 그는 어딘가 달랐다.


기고, 걷고, 말하고,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울 때까지 정말 사랑스러웠다. 갑자기 발작적으로 자지러지며 펑펑 울거나 짜증내는 것을 빼면 보통 아이들과 똑같았다. 아니다, ‘보통’은 아니었다. 보육 선생님은 영재가 아니면 천재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이 아직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까꿍 놀이나 할 때, 아이는 금방 글자를 깨우쳐 어려운 전문서적들을 탐독했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었다. 아이는 비상한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점차 아이의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져갔던 것은.


자식의 변화를 이 세상에서 부모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는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외아들에게서 점차 지식인에게나 어울릴 법한 환멸 비슷한 날카로운 표정이 보였다. 아들의 얼굴에서 순수함 같은 것이 빠르게 사라져갔다. 가끔 아들이 부모를 물끄러미 보며 묘한 미소를 지을 때가 있었다. 불만스럽다는 듯 살짝 찌푸려진 눈썹,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는 듯한 묘한 눈빛, 살짝 올라간 입가에서 느껴지는 차가움. 어린 아이가 저런 표정을 지울 수 있는 걸까? 그럴 때 부모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껍질을 뒤집어 쓴 어떤 것이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오싹했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돌연 눈물을 흘릴 때는, 아, 입술을 꾹 다물고 조용히 눈물만 뚝뚝 흘리는 서러운 표정을 보면……. 아무리 달래도 이유를 말하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면 부모는 따라 울었다. 이따금 아들이 자기 방안에서 모든 물건을 던지고 부수며 화풀이를 할 때도 있었다. 부모가 온몸으로 날뛰는 아들을 끌어안고 말렸다. 품안에서 거세게 퍼득거리는 아들은 활어 같았다. 이럴 때의 아들은 눈까지 뒤집힐 정도로 흥분해 있다가, 이상한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내며 오열하기도 했다. 그런 자식이 무섭기도 했으나 제 새끼였다.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자식의 타고난 결함을 인정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정말 두려운 일이었다. 자신들의 명성이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는 그들에게 원인이 있을까 두려웠다. 유전자든, 양육방식이든. 그 두려움이 부모가 병원으로 가는 것을 오래도록 막았다. 될 수 있는 한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똑똑한 아들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싶었다. 모두 과도기의 문제라고, 지나친 영리함이 일찍 그를 조숙하게 만들어 생긴.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자 더는 그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아들의 정신적인 문제가 공격성이 되어 다른 학생을 다치게 만들었다. 그림, 겨우 그런 게 뭐라고 억지로 보려고 들던 학생 위에 올라타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가 여러 가지 검사 끝에 아들에게 우울증이 심하다고 했을 때 부모는 눈앞이 캄캄했다. 자신들의 양육방식을 돌아보고 육아전문가와 상담해가며 아들의 마음을 치유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간과 약의 도움으로 발작 같은 감정의 기복은 줄어들었지만, 아들은 이미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그런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자 더욱 말수가 줄어들고 차가워졌다. 신경질적인 성격이 엿보이는 날카로운 눈가에 푸른 그림자가 은근히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 사이의 벽은 더욱 커졌다. 우수한 학업 성적을 유지하는 아들을 다른 사람들이 칭찬할 때, 부모는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들은 항상 아들에 대해 말을 조심했다. 일부러 겸손한 척 하는 게 아니었다. 분명 자신들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지만, 어쩐지 남의 자식을 보듯 어려웠다. 아니, 아들이 과연 그들을 부모로서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엔 사랑이 없었다.


부모는 보편적인 사람이었다. 인간적인 마음이 아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그런 자신을 용납하지 못했다. 아들이 부모에게 싸늘할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과 믿음을 표현했다. 기나긴 사춘기를 겪는 중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아들은 분명 그들을 사랑한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게 부정하고 또 부정했지만……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겠지. 선천적으로 어딘가 잘못된 아들을, 시한폭탄 같은 그 상태를. 그래서 그랬던 게 아닐까? 경찰에게서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부모가 쉽게 수긍했던 것은. 분명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겠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가 흔히 말하는 ‘우리 아들이 그럴 리 없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게.





백주대낮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피해자는 가난한 막노동자였다. 병마로 아내를 일찍 잃은 뒤, 하나 있는 아들을 책임지고 고등학생까지 키워낸 선량한 사람이었다. 어느 때처럼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한 고등학생이 찾아왔다. 처음 보는 소년이었지만, 아들의 친구라고 하기에 피해자는 경계심 없이 반겼다. 소년은 무방비하게 자신을 대하는 피해자의 가슴을 숨겨놓았던 식칼로 찔렀다. 부검의가 혀를 내두를 만큼 정확하게 급소가 찔렸다. 피해자는 자신이 왜 죽어야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현장에서 금방 사망했다. 가해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주변 사람들에 의해 붙잡혔다. 그토록 잔인한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른 주제, 잡힐 때는 흉기를 들고 있음에도 반항하지 않았다고 한다. 죽어가는 피해자를 보며 그저 이를 보이고 웃었다고만. 목격한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섬뜩한 광경은 처음 보았다고 치를 떨었다.


언론 매체들은 앞다투어 사건을 보도했다. 가해자의 초등학교 동창에게 찾아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비정상적이었는지를 열심히 보도했다. 가해자의 우수한 학업 성적을 거론하며 중상류층의 인성을 도외시한 교육열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체를 확인한 피해자의 외동아들이 실신했다는 사실도 빠짐없이 알려졌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부자의 비극에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가엾은 아들을 위해 전국적인 모금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가장 관심 있던 화제는 바로 범인의 동기였다. 왜 범인은 학교까지 무단 조퇴하고 피해자를 살해한 것일까? 범인이 입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호기심이 더욱 자극되었다. 피해자가 죽을 때 소년이 웃었다는 것을 보면 원한 범죄일 수도 있지만, 정작 피해자나 그 아들 모두 전혀 모르던 사이였다고 한다. 흔히 하듯 게임의 잔인성 탓을 하기에는 가해자는 평생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한 적이 없었다. 부모는 아들에 대한 마지막 도리로 유명한 로펌의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소년은 변호사 앞에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나만은 당신의 편이니 믿고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그래야만 당신을 도울 수 있다고 변호사가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를 따라다니던 우울증이 이제 아예 그 인생을 망쳐버린 걸까? 재판을 기다리며 구치소에 수감된 동안 소년은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예민하고 까탈스럽지만 총기로 빛나던 두 눈이 빛을 잃었다. 식사조차 하지 않아 강제로 영양제를 맞춰야만 했다. 눈 밑의 그늘은 이제 완전히 선명해졌다. 그는 부모님과 변호사 모두의 접견 요청을 거부했다. 부모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지만, 아예 밀봉된 그대로 손대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흥미를 보이는 것은 그림이었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가 악몽을 꾼 듯 퍼득이며 일어나더니, 구치소에서 제공한 편지지와 연필 한 자루로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연필을 휘날리며 편지지 뒷면 가득히 사람들이 죽어가는 온갖 광경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같은 방을 쓴 수감자들이 그의 그림을 어깨 넘어로 보고 소름끼쳐 했다. 그림 자체의 잔혹성도 그랬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그들을 질리게 했다. 새빨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는 모습에서 어떤 병적인 집착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소년이 언제나 그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재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이었다. 그날 소년은 느릿하게 어떤 남자의 모습을 그렸다.가는 수염이 있는 턱선이 제법 수더분했다. 특이한 것은 귓불이 유난하게 컸다. 눈 코 입만을 비워둔 채 손을 멈췄다. 눈을 그리려던 소년이 곧 오뚝한 느낌을 손길을 주는 코를 우선 그린 뒤,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입가를 이어 그렸다. 마지막으로 다시 눈을 그리려고 연필을 댔다. 그렇지만 쉽게 완성하지 못하고 한참 끙끙 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눈을 그려나가더니,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화를 냈다. 여태 그린 그림을 모두 와락 구겨 방 한 구석으로 힘껏 던졌다. 이어 무릎걸음으로 급히 다가가 그 구긴 종이 뭉치를 피더니 쫙쫙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갑자기 손에 닿는 방안의 모든 물건을 던지며 패악을 부려 수감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방 안의 소란을 눈치 채고 교도관이 달려왔을 때, 소년은 방안의 수감자 한 명의 몸에 올라타 난폭하게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이 일로 수감자들이 거세게 반발해서 결국 방을 옮겨야만 했다. 새로운 방에서 소년은 다시 얌전히 방구석에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요주의 인물로 이미 찍힌 뒤였다.


다음날 소년은 또 접견 요청을 받았다. 변호사라는 말에 소년은 접견을 거부했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교도관이 찾아와 말했다.


“피해자 아들과 함께 왔다고, 꼭 만났으면 한다는데.”


초점 없이 멍하니 있던 소년의 두 눈동자가 천천히 교도관을 바라보았다. 교도관은 순간 흠칫했다. 요사스러운 것…… 일종의 광기 같은 것이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소년이 교도관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채 말했다.


“피해자 아들이…… 꼭 접견했으면 한다고…….”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끝내 목구멍 안쪽으로부터 앓는 듯한 소리가 나왔다. 교도관이 떨리는 시선으로 소년을 응시했다. 소년은 정말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교도관으로 일하면서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소년이 여태 그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 중 하나로 기억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 바로 저 눈빛이. 빙긋 웃는 눈에서 번뜩거리는 무서운 눈빛이…… 오늘 밤 그를 잠 못 들게 하리라.






접견실은 강화유리가 설치된 쇠창살로 수감자와 접견인을 구분하고 있었다. 과거 교도관이 수감자와 함께 입실했다지만, 이제는 어딘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녹음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유리 너머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며 고개를 든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눈이 몹시 크다. 무표정하던 소년의 입가가 순간 씰룩 거린다. 하지만 둘의 시선이 마주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피해자 아들이 시선을 피했다. 소년이 그 앞에 앉으면서 의자를 잡아 뺐다. 끼이익, 소음방지 커버가 떨어져 나간 의자 다리 끝이 바닥을 긁히며 나는 소리가 어쩐지 긴장감을 높인다. 소년은 피해자 아들을 뚫어져라 보며 의자에 앉는다. 그의 눈빛에는 이상한 감정이 넘실거린다. 표정은 차가웠지만, 눈빛은 이글거리는 듯 했다. 미움, 증오가 가득하다고 하면 적절할까? 하지만 희미한 기쁨 같은 것도 보이는데…….


역겹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해자는 저렇게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데, 피해자는 죄지은 사람처럼 하염없이 책상 바닥에 시선을 두고 있다. 언론 뉴스에서는 피해자 아들이 가난한 집안 환경에서도 얼마나 밝고 성실했는지, 그래서 그에게 일어난 비극이 얼마나 더 참담한지를 열심히 보도했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말해주듯, 마침내 고개를 든 그 얼굴이 참 탁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그 눈동자에 이제 절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쾌감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진 말에 그의 얼굴은 다시 굳어버렸다.


“우리 아빠…… 왜 죽였어.”


혈색 없이 하얗게 질린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 떨리는 음성. 소년이 애써 분노를 절제하듯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몰라?”


“몰라.”


소년은 가만히 그의 눈을 쏘아 보았다. 생기를 잃어버린 눈동자가 그 눈빛을 마주 받았다. 먼저 진 것은 소년이었다. 그가 유리에 얼굴을 최대한 가까이 가져가며 속삭였다.


“네 아비가 죽은 건…… 너 때문이야…….”


그리곤 그는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피해자 아들을 지켜보았다. 과연 그의 기대대로 생기가 조금은 돌아왔다. 멍한 눈동자에 드디어 초점이 맞았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에 소년의 얼굴이 와락 찡그러졌다.


“왜? 우리는 처음 본 사이잖아. 사는 곳만 가까울 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무엇 하나 같은 게 없었는데.”


“네가, 진짜 나를…… 모른단 말이야?”


쾅! 강화 유리가 쇠창살과 함께 파르르 진동했다. 그 장애물이 없었다면 소년은 정말로 상대의 뺨을 세게 내리쳤을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데 잡을 수가 없다. 그가 유리 위에서 공연히 손톱을 세우다가 돌연 동작을 멈췄다. 피해자 아들의 눈이 눈물로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보던 소년이 갑자기 이를 갈면서 손톱을 더욱 날카롭게 세웠다.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로 길게 자라났던 손톱이 마침내 투둑 부러졌다. 몹시 아플 텐데도 소년은 고통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신경 쓰지 않았다. 가뜩이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충혈되어 있던 눈이 이제는 아예 새빨개졌다.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눈동자를 크게 뜨며 피해자 아들을 노려보았다.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했다. 그 관계가 바뀌어야 정상이었을 텐데. 소년이 원한에 가득 찬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그 시절을, 나를 정말…… 잊었다는 거야?”


피해자 아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년이 분에 차 다시 물었다.


“정말 네가, 네놈이…… 나를 잊고, 혼자 편해졌다고? 나, 나는 절대로 잊을 수가…… 없는데……. 나를 이 악몽 속에 두고?”


마침내 눈물이 뚝뚝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눈이 새빨간데도 눈물은 맑았다.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피해자 아들을 보며 소년이 서럽게 울었다. 나는, 무엇하나 잊을 수 없어서…… 혹여 잊어버릴까 싶어서, 아니 놓을 수 없어서 그림으로 꼭꼭 그리며 어떻게든 되새겨 왔는데.


“혼자 다…… 잊었단 말이냐…….”


소년이 절규하듯 흐느꼈다. 너만은 잊으면 안 되지, 너만은……. 내가 이런 지옥에 빠진 건 너 때문인데, 나를 배신했던 너 때문인데…… 잊고 혼자 편해졌단 말이냐. 어떻게 네게 그 모두가 과거가 될 수 있느냐. 그가 머리를 감싸 쥐고 책상에 엎드려 꺽꺽 거리고 흐느낄 때.


“그렇군요, 그런…… 복수라는 건가요…….”


지금까지와는 미묘하게 다른 어조의 목소리가 그를 절망 속에서 건져 올렸다. 그는 퍼뜩 놀라 눈앞을 보았다. 눈앞의 사람이, 피해자 아들이, 아니 유현덕이……. 그 전혀 다른 외모 위로 자신이 알던 유현덕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소년이 조심스럽게 읊조렸다.


“유현덕?”


“예, 현덕입니다. 조공…….”


슬픔에 젖은 눈동자로 피해자 아들이, 전생에 유현덕이었던 남자가 숙적 조맹덕에게 응답했다. 눈물이 두 사람의 뺨에 모두 흥건했다.






작업곡 Fall Out Boy - Just One Yesterday (feat. Foxes) 


삼톡 유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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