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복도에 올라오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시끄럽다면 밑에서도 들릴 법했건만, 왜 여태 들리지 않았을까? 복도 끄트머리, 여러 명의 그림자가 분주하게 왔다 갔다 움직였다. 어두운 복도 안, 누군가가 쏘아 올린 불빛을 받아 모조 칼날이 희번뜩 빛났다. 나는 괜히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저 칼만 보면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린단 말야.


"여긴 이미 선배랑 싸우고 있었네."


 나유민 선배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김수진 선배는 물론이고 노란 머리카락이 얼핏얼핏 보이는 걸 보아하니 김혜린 선배도 있는가 보다. 그럼 나머지 선도부는 대체 어디 간 거지? 선도부원은 적어도 10명은 되는 거로 아는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먼 곳에서 누가 다다닥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앞에는 두툼한 털모자를 푹 눌러쓴, 흰옷이 얼룩져 엉망이 된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달렸다.


"야, 야! 잡아! 그거 잡아!"


 누구지? 복도를 지나다니다 몇 번은 본 얼굴이다. 적어도 나랑 동급생인 것 같은데. 그는 다급하게 앞에 달리는 귀신을 향해 삿대질했다. 아이 귀신은 눈구멍이 쑥 꺼진 데다가 입이 이상할 만치 쩍 벌어져 있었다. 저걸 어떻게 잡아? 내가 주춤하는 사이 양지원과 양우원이 동시에 나섰다. 아이 귀신은 깔깔 웃다가 제일 끝에 있는 교실로 갑자기 몸을 틀어, 문을 통과해 안으로 쑥 들어가고 말았다. 뒤늦게 달려온 그는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다 양우원을 보고 씩 웃으며 그에게 어깨동무했다. 양우원이 몸을 틀어 피하려고 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양우원을 자기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이건 뭐여?"


 그는 나와 청비 선배를 기분 나쁘게 위아래로 슥 훑었다. 나는 청비 선배의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뭐긴. 선배다."


 청비 선배가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는 큭큭 웃더니 어깨를 으쓱이고 귀신이 들어간 교실을 돌아보았다.


"뭐가 됐든…, 일단 들어가서 방금 놓친 거나 잡고 얘기하죠."


 그가 문을 박력 있게 드르륵 열었다. 캄캄한 교실은 아무도 없었다. 까만 창에 달린 눈알 하나가 우리를 응시하더니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시선 끝에는 다 낡아빠진 커튼이 있었다. 나유민 선배가 천천히 움직여 우리가 방금 들어온 문을 지켰다. 나유민 선배가 청비 선배에게 눈짓하자 청비 선배도 잽싸게 움직여 뒷문으로 향했다. 일단 나갈 수 있는 문은 다 봉쇄된 셈이다. 여기서 이제 이름 모를 동급생이 나서나 싶더니, 그가 양우원의 등을 가볍게 툭 떠밀었다. 양우원의 표정이 의아해 보였다.


"니가 함 가봐라."

"내가 왜."


 그가 양우원의 귀에 입술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잘 들리지 않았다.


"…… 잖어."

"……."


 양우원은 어떠한 답도 없이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그는 숨을 헙 참으며 어깨를 벌벌 떨었다. 양우원은 영 좋지 않은 표정으로 품에서 부적을 꺼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커튼을 향해 부적을 휙 날렸다. 부적이 소리 없이 허공을 가르고 나아가 커튼에 찰싹 달라붙고, 동시에 번개가 파지직 튀었다.


- 아아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이 들렸다. 커튼이 투두둑 떨어지더니 안에 숨어있던 귀신이 발버둥 쳤다. 번개는 마치 감옥처럼 커튼을 옭아매 점점 작아졌다. 커튼은 귀신이 들어 있는 게 아닌, 어떤 솜뭉치가 들어 있는 형태로 차차 둥글둥글해지고 작아지며 끄트머리가 계속 바스라져갔다. 마지막으로 양우원이 부적을 하나 더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빳빳해진 부적을 커튼의 정중앙에 휙 날렸다. 부적이 꽂히다시피 붙으며 세찬 바람이 불었다. 커튼은 물론, 안에 있던 것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로 저 귀신은 우리가 찾아 없애야 할 악귀가 맞았나? 어떠한 공격도 하지 않은 데다가… 귀신은 마치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우울한 표정으로 있자 어느새 다가온 청비 선배가 내 옷깃을 잡아끌었다.


"선배?"

"쉿."


 선도부 네 명이 커튼 자락을 들쑤시고 있을 동안, 청비 선배와 나는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선배는 복도를 둘러보더니 재빠른 걸음으로 3층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중간층 창문에 달린 눈 여덟 개 중 일곱 개가 벌써 감겨 있었다. 그중 하나도 감길락말락 하기 직전이다.


"선배!"


 청비 선배가 올라오자마자 외쳤다. 복도 가운데, 지현민 선배가 처참한 몰골로 뒹굴고 있고 수남쌤이 악귀에게 검을 막 찔러넣은 후였다. 마침 비형랑 선배가 계단 바로 앞에 있는 교실에서 불쑥 나왔다. 선배의 머리는 잔뜩 흐트러진 채였다.


"어…, 어. 콜록, 켁…. 으으……. 너희들 왜 아직 여기 있니?"


 비형랑 선배는 우리를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사레가 들려 기침을 연신 해대다 겨우 입을 뗐다.


"나가기 직전에 딱 갇혔지 뭐야~."


 청비 선배가 실실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비형랑 선배는 한숨을 짧게 뱉고 지현민 선배를 일으키는 수남쌤에게 다가갔다.


"이제 다 끝난 것 같죠?"

"그른 것 같다?"


 수남쌤이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어두운 창문에 떠오른 여덟 개의 눈알이 전부 감겼다. 이윽고 눈알이 사라지고, 까만 장막이 순식간에 걷히고 바깥의 세찬 빛이 복도 안으로 떨어졌다. 부유하는 먼지와 환한 빛, 어두컴컴하지만 불을 켜지 않아도 밝은 복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하고 조용한 학교.


"안 다쳤나?"

"아 뭐…, 예…."


 수남쌤의 시선이 당연하게도 청비 선배에게 돌아왔다. 청비 선배는 대놓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하더니 수남쌤을 지나쳐 우리가 어제까지만 해도 하룻밤 잤던 교실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그곳의 문을 열자 김명운 선배와 김귀신 선배가 보였다. 둘은 참 오붓하게도 칠판에다가 열심히 바둑을 두는 중이었다. 바둑 말고도 틱택토, 오목, 오셀로를 둔 흔적이 보였다.


"…하아."


 김명운 선배가 짧은 분필을 꺾었다. 김귀신 선배는 주먹을 꽉 쥐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다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분필 묻은 손가락을 턴 후 김명운 선배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래도 응? 나 상대로 이 정도 한 거면 충분히 잘 한 거야."


 김귀신 선배가 의기양양하게 핫핫 웃었다. 둘이 한참 그러더니 우리를 보자 칠판에 잔뜩 그린 동그라미니 가위표를 지우고 안부를 물었다.


"뭐 좀 어땠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창 보면 모릅디까?"


 지현민 선배가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자기 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김귀신 선배가 둥둥 떠 창문에 찰싹 달라붙었다. 12시 정각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햇빛의 세기가 더 강해져만 갔다. 김귀신 선배는 손 그늘을 만들어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보았다.


"그럼 우리 진짜 합숙 끝이야?"

"예예, 얼른 짐 싸서 가입시더."

"에에엥~."

"신 형. 얼른 가요. 선도부랑 마주치면 또 귀찮을라."


 김귀신 선배의 투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들 바삐 짐을 챙겼다. 그러고 보니 내 짐이랑 청비 선배 짐은 1층 현관에 그대로 있지 않나? 누가 훔쳐 가진 않았겠지? 내 걱정을 알아챈 건지 뭔지 다들 일사천리로 교실을 싹 정리하곤 문을 닫고 나섰다. 김귀신 선배만 혼자 투덜투덜거리다 비형랑 선배에게 조용하라고 따끔하게 혼났다. 3층 복도를 지나 1층으로 내려올 때까지 조용했다. 청비 선배와 내 짐은 햇빛이 들어오는 현관문 앞에 얌전히 있었다. 나는 후다닥 달려가 작은 캐리어를 붙잡았다. 누가 훔쳐 갔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참 다행이다. 어차피 이곳에서 훔쳐 갈 사람이라면 같은 동아리원 아니면 선도부일 테니…, 설령 누가 훔쳤다고 해도 범인은 잡힌 거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와, 올해는 진짜 조졌다."


 지현민 선배가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먼저 나섰다. 뒤따라 나선 김명운 선배가 입조심 하란 뜻으로 지현민 선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지현민 선배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불거렸다.


"뭐, 씨벌. 팩트잖냐. 선도부에다가, 뭐 해괴한 귀신에다가. 아니 물론 귀신이 작년에도 없었다는 건 아인데~."

"현민아, 제발 입 좀 닥치자."

"옙. 우리 도련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련히 아가리 닥쳐야죠~."


 두 선배가 사이좋게 나란히 먼저 내려가고, 청비 선배와 내가 뒤따랐다. 청비 선배는 나를 흘끔흘끔 보더니 뒤에 있는 비형랑 선배나 수남쌤에게 들리지 않게 낮게 말했다.


"밑에 아무것도 없댔는데… 이번엔 대체 뭘 본 거야? 괜찮은 거 맞지?"

"네, 괜찮아요."


 아마. 뒷말은 삼켰다. 사실 안 괜찮은 쪽인데 굳이 내가 본 걸 더 얘기했다간 뭔가 사연이 복잡하게 꼬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청비 선배는 내 거짓말을 꿰뚫었는지 손을 뻗었다.


"정말 괜찮은 거,"


 이건 좀 곤란한데. 내가 인식하기도 전에 청비 선배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찰싹, 찰진 소리와 함께 앞서가던 김명운 선배는 물론이고 지현민 선배도 나와 청비 선배를 돌아보았다. 청비 선배는 어물어물하다 손을 내렸다. 내가 대체 왜 그랬지? 나도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사고가 잠깐 멈췄다가 횡설수설하며 아무 말이나 막 뱉었다.


"어, 어. 정말 괜찮아요. 음…, 그건 죄송해요. 모란이 시켜서 했다는 말은 변명 같지만요…. 제가 모란을 말려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으응, 그래. 너 혼내려고 말한 건 아닌데… 혼내는 것처럼 들렸을 수도 있겠다. 안 그래도 예민할 텐데."


 청비 선배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는 대신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나도 어색하게 웃곤 앞을 보았다. 두 선배는 나를 안 본 척 저들끼리 헛소리를 하며 재빨리 내려가고, 나는 선배들의 눈물 나는 배려에 헛웃음을 삼키며 뒤따라 내려갔다. 그런 나는 청비 선배나 비형랑 선배, 그리고 수남쌤이 묘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하는 걸 보지 못했다.


"둘이 싸웠어?"

"네?"

"아냐?"

"아니에요."


 김귀신 선배가 불쑥 나타나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흠. 근데 너 좀 뭔가 달라진 것 같다."


 김귀신 선배가 둥실둥실 떠다니며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선배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선배를 눈을 보고 있자니 그 일이 떠올랐다. 아, 오늘 집에 가서 자면 분명 꿈자리가 뒤숭숭할 게 뻔하다. 간만에 가위에 눌릴지도 모르겠다.


"저는 딱히 모르겠는데……."

"그으래? 흠…."

"선배, 애먼 후배 괴롭히지 마십쇼."


 내려가던 김명운 선배가 뒤돌아봤다. 김귀신 선배는 금방 김명운 선배에게 쪼르르 달려가 툭탁거리며 이야기했다. 세 선배는 낄낄 웃으며 내려갔다. 사이에 낀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채 입을 꾹 다물고 철망까지 내려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교 현관 앞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그럼 우리는 신 형 데려다주고 갈 테니 먼저 가."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김귀신 선배는 동요를 흥얼거리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수남쌤과 비형랑 선배, 김귀신 선배는 학교 현관문을 능숙하게 열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나를 포함해 현관 앞에 덩그러니 남은 넷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선배! 태워다줘요!"


 청비 선배가 대뜸 말했다. 김명운 선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냈다. 이건 저번에도 겪은 것 같은데…. 근데 이런 분위기에 같이 타고 간다고? 숨 막혀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티 내지 않고 조용히 발을 움직였다. 버스 타고 먼저 가자….


"마, 어데가노. 타고 가자."


 지현민 선배에게 딱 걸렸다. 눈치도 더럽게 없는 선배 같으니. 나는 피눈물을 삼키며 지현민 선배에게 붙들려야만 했다. 교문 앞에서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익숙한 그 차가 보였다. 기사님이 내려 조수석 문을 열고, 친절하게도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다들 트렁크에 짐을 싣고 차에 올랐다.


"이번 합숙은 재미있으셨습니까?"

"예. 좀 아쉽기도 했어요. 마지막이기도 하고…."

"아……."

"맞네. 선배들은 이번이 마지막이죠? 뭔가 아쉽네."

"유종의 미를 제대로 못 거둔 게?"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선배들끼리 시시덕대며 웃을 동안 나는 어색하게 맞장구를 쳤다. 빨리 차가 도착하길! 내 마음에 보답하듯 차는 금방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내려 내 짐까지 내려준 후 나를 배웅했다. 청비 선배는 아무렇지 않은지 단지 입구로 향하는 내게 잘 가라며 인사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까딱거린 후 최대한 빠르게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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