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어야아? 이 썅 노무 새끼가 그냥! 이리 안 와?!”

“여보, 안돼요! 야, 이눔아! 너 아부지한테 잘못했다고 빌어, 얼른!”


   여기는 옆 동네까지 모르는 집이 없는 만석꾼 김 부자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들썩이는 이유는 장남의 한 마디 때문이다.


“어째 매일 이런댜... 이게 뭔 일이여...”


   어느 날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아침에 소여물을 주러 돌쇠가 외양간으로 들어가면 꼭 소 몇 마리가 픽 쓰러져 있었다. 더욱 괴이한 것은 쓰러진 소들의 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는데, 하나 같이 간이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가 소 간을 빼먹은 것이 분명했다. 아침마다 그 광경을 본 돌쇠는 아예 새파랗게 질려 어떻게든 외양간에는 들어가지 않으려 했고, 김 부자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발이 없어도 천리를 가는 이 말을 막을 재간은 애초부터 그에게는 없었다.


“그려, 나는 우리 아들내미만 믿겄어!”


   날마다 소들은 속절없이 쓰러져가고, 김 부자네 집 장남은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밤샘 보초를 자청했다. 며칠이 흘렀다. 김 부자는 자기 아들이 하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작 밤을 새고 말하는 것이 그거여? 이노무 새끼가 그냥?!”


   장남의 말에 의하면, 매일 밤 소의 간을 빼먹었던 건 뒷산 호랑이도, 앞산 늑대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김 부자가 아주 늦은 나이에 얻은 고명딸, 춘희였다. 깊은 밤, 보름달이 검은 구름 사이에 몸을 감추자, 슬며시 춘희가 방에서 나와 주방에 들어갔다고 한다.


   큰 오빠는 막내 동생이 뜬금없이 참기름 병을 들고 나오더니, 대뜸 그걸 양손에 바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괴상한 짓을 한 동생은 별안간 낄낄대며 소름 돋게 웃더니, 외양간에 들어가 소의 항문에 손을 쑥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의 생간을 씹어 먹는 건, 분명 사랑스러운 춘희였다. 이전에 보았던 순수하고 조신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소름 끼치는 미소를 띠고 만족스럽게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살랑거리는 꼬리는 춘희가 사람이 아니라,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몰래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장남은 그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다음 날, 김 부자가 한심하다는 듯 장남의 뺨을 때리며 깨우자, 그는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사실 춘희는 여우라고.


“아부지, 진짜라니까유? 왜 큰 형님 말을 못 믿으시는 거예유!”

“썅노무 새끼덜, 니들도 다 똑같어. 아니, 동생이 니들헌티 서운하게 한 것이 있다고 해두 그러는 거 아니여! 안되겄다, 꼴 보기 싫으니 다 나가라! 이노무 새끼덜아!”


   둘째 아들도, 셋째도, 넷째도, 모두 밤을 새고서는 큰 형님과 똑같은 걸 보았다며, ‘범인은 막내 동생’이라고 말했지만, 김 부자는 아들들을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네 명의 아들을 모두 내쫓았다.


“여보, 나 시방 아부지 댁에 갔다 와야겄어...”


   얼마나 지났을까? 흩어진 형제들은 가정을 꾸렸다. 첫째 아들은 문뜩 아버지와 어머니가 걱정되어 아내에게 본가에 잠깐 다녀와야겠다고 말하고, 짐을 꾸려 나섰다. 


   불안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을까, 고래 등 같았던 김 부자네 기와집만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폐허가 되어 덩그러니 남아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온데간데없더라.


- 작자 미상  ‘여우 누이’ -




   직장에서 가장 만나기 싫은 동료는 어떤 사람일까? 일을 잘 못하는 사람? 불평이 심한 사람? 눈치가 없는 사람?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마 최악의 동료는 의견에 아무런 반응도 없고, 믿어주지도 않으며, 업무에 협력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아니,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고장난명’이라는 말이 있다. 손바닥이 하나일 때는 소리가 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손뼉을 울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한다.


   손바닥만 그런 건 아니다. 때로는 어떤 일을 혼자서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바닥이 서로 마주쳐 소리가 나듯,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일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분명 첫째 아들과 나머지 동생들은 퍽 곤란했을 것이다. 날마다 죽어가는 소들을 그냥 볼 수 없어 밤잠을 참아가며 보초를 섰다. 심지어 범인을 알아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아들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큰 상을 주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역정을 내고 아들들을 내쫓은 김 부자 댁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소 다음에 쓰러졌던 것이 무엇이었을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불 보듯 뻔하다.


   아들들이 모두 떠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분명 김 부잣집은 비명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자식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으니, 이 사달이 난 거다.


   경악스러운 이 광경을 몸소 겪은 김 부자와 그의 아내는 그제야 깨달았을 것이다. 손바닥이 하나일 때도 소리는 난다는 사실을.


    그렇다. 고장난명은 틀렸다. 손바닥이 하나라도 소리는 난다. 다만, 그 소리는 더 이상 듣기 좋은 박수소리가 아니라, 분명히 끔찍한 비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삼성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이었던 이병철이 1979년 12월 20일 정례 사장단 회의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남의 충고를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참고할 줄 알아야 발전이 있다. 적어도 그렇게 한다면, 손바닥이 하나일 때 나는 비명소리를 들을 일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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