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6월아. 4월이다. Happy New Year.


편지 더 열심히 쓰겠다고 했는데, 새해가 되었다. 미안해. 너는 내가 편지를 쓰겠다는 약속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 약속한 걸 못 지킨 것에 미안하다. 그리고 축하한다. 2024년 새해와 함께 전역의 해가 밝은 것을. 편지를 못 쓴 지난 시간 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오늘은 미뤄둔 이야기를 쓴다. 음. 막상 쓰려니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많이 미뤄둔 이야기라서.


최근 이야기부터 써 보자면,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 성적을 받았다. 대학원 공동수강 과목을 포함하든, 포함하지 않든, 4.5점 만점에 4점 정도다. 지난 학기는 학석사 연계과정으로 대학원 공동수강을 시작하고 걱정이 많았고, 처음 해보는 예비 대학원생 과정에 과제 등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벼락치기처럼 하면서 많이 버거워했다. 같이 듣는 전공 과목과 교양 과목도 과제가 없는 편이 아니었기에 과제들 중 몇 개는 포기하면서라도 일단은 해보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랬는데, 4점이라니, 대학원 공동수강 과목 포함 15학점을 들으면서 한 것을 고려했을 때 잘 해낸 것 같지? 진심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 기쁘다. 학점 그래프도 다행히 휴학 이후 상승세여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졸업 후 대학원 석사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마지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제 외할머니가 전화하셨는데, 할머니는 내가 대학원 갈 거라서 졸업 안 하는 줄 아셨대. 휴. 듣고 보니 내가 갈 길이 참 멀다. 학부 졸업해도 학교라니. 이전 편지에서 안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사 졸업 후, 예술대학 예술문화영상학과에 석사 과정을 진입할 예정이다. 대학원 학석사 연계과정을 하겠다는 건 7월에 다큐멘터리 일을 하고 있을 때 결정했지만, 대학원 진학은 이전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바라, 갈 길은 멀어도 그 선택이 후회될 것 같지는 않다. 대학원을 인문대 같은 과가 아닌 예술대학으로, 단대를 옮겨 가게 된 건. 이거 쓰려니까 좀 울고 싶은데.


지난 번에 빙 둘러 얘기했지만 내 삶에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같은 방과후 수업을 다니던 동생들의 살해 소식, 아직도 생생한 학교 폭력의 기억, 시험 기간에 목격했던 창문이 녹을 정도의 거센 불길, 작년 시험 기간에 들려 온 믿고 싶지 않던 중학교부터 응원했던 가수의 부자연스러운 부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쓰고 나니 소설보다도 믿기지 않는 허구 같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내 삶을 지켜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예술 쪽이었어. 나는 힘들 때 늘 글을 썼고 음악을 들었고 영화를 봤고 여전히 그렇다. 아이러니하다고 표현하는 건, 첫째로, 의식주에 포함되지 않아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문화예술이 나를 살게 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렇게 나와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준 문화예술계에는 너무 빨리 삶을 떠나 버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믿겨져? 누구보다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은 불행처럼 끝내야 한다는 게. 그 사람들에게는 그 끝의 선택이 최선의 행복이었다는 게. 그래서 나는 되려 이 쪽 길로 계속 가고 싶었어. 왜 우리 삶을 아름답게 해주는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그토록 아프고 힘들게 살아가는지, 문화예술이 뭐길래 다들 생사를 오가면서도 예술가가 되는지 궁금했고, 내가 좀 더 예술하기에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오래도록 생각했거든. 나에게 살아갈 희망을 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도 문화예술을 공부하면서 글로, 영화로, 음악으로, 응원과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다시 말해서, 그래서, 예술대학 대학원으로 가기로 했다. 국어학과 국문학을 다루는 학부 전공보다 좀 더 넓은 분야를 보고 싶고, 그 세계의 사람들을 알고 나도 그 세계의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실 학석사연계 할 대학원 지원 과정에서 국어국문학과, 심리학과, 예술문화영상학과 전공 고민을 좀 했었는데. 일단, 국어국문학은 앞서 말한 대로 순수 학문이다 보니 조금 좁은 분야인 감이 있어서 제외하고. 지도교수님의 말씀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 '왜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힘든지, 예술의 실용적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해서 사람의 심리를 알아보고 싶다면 심리학 전공, 그것보다는 뭔가 문화예술계 일원으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게 하고 싶다면 예문영 전공을 하면서 따로 심리학 등을 공부. 그 말을 들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게 명확해지더라고. 대학원은 실습을 하는 곳이 아니라서 문화예술 작품을 만들 실습 기회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영상학이나 미학을 공부한 후에 창작자나 제작진의 일원이 되는 등의 방법으로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심리학 전공을 하면 탐구에만 그치고 뭘 할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렇게 예술문화영상학과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고 무사히 학석사연계과정 1학기를 마쳤다. 영미미학연구랑 미학문헌연구라는 과목을 공동수강했는데, 미학문헌연구 수업에서 배운 것 중에 흥미로운 게 있었어. 'The Pardox of Painful art.' 고통스러운 예술의 모순이랬나. 일상에서는 불쾌의 감정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슬픈 드라마를 보는 등 예술에서는 모순적으로 불쾌의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 일상에서는 '오늘 나 슬퍼야지!' 하지 않지만, '슬픈 드라마 봐야지' 하는 건 있다고. 그걸 배우고 나니 본래 예술은 모순적이구나, 싶더라. 그것 때문에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더 고단한지도 모르겠어. 음악이나 영화 작품에 참여하고 있을 땐 삶의 불행도 하나의 영감이 되지만, 일상에서는 그저 하나의 불쾌라는 거니까. 그 감정에,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찾아오는 공허 같은 것이나 극악한 환경이 가져오는 불안이 섞여서 더 무거워지고 나면 그걸 못 견디게 되는 게 아닐까. 알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지만, 아직은 해결 방법이 안 보이는 것 같다. 그래, 아직 부족한 내가 나 하나가 상황 하나를 바꾼다는 건 무리겠지. 그래도 해보려고 해. 학교 축제 때 서포터즈면서도 축제운영팀 팀장으로서,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선착순 팔찌 및 자리 배부를 하되 이전처럼 공연 직전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게 하는 게 아니라, 예약처럼 자리나 입장 번호를 미리 받아두고 입장 마감 시간 전에 오기만 하면 자리가 있도록 입장 방안을 제안하여 결국에는 목적을 달성했던 것처럼.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제안할 수 있는 자리에 간다면 뭐라도 바뀔 거라고 믿고 있어. 이전에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는 그런 믿음이 부재했는데, 지금은 그런 믿음이 생겼어.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아이들을 가르쳐주는 것도 계속할 거야. 아이들도 자신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어.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편지를 쓰지 않았던 작년 11월 14일에는 학교 상담원을 통해 단회기 1회기 90분의 상담을 받았어. 이 한 마디를 적기 위한 앞의 이야기가 참 길었다. 그 상담을 받기 까지의 과정도 길었지. 상담 한 번 받아봐야겠다고 느낀 건 2021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재택 수업에 참여할 때, 그때였거든. 그때 자고 일어나면 내가 겪었던 악몽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어. 그래서 휴학을 했는데,  휴학하고 좀 나아졌다고 여겨왔는데. 작년 4월 밤중에 혼자 있을 때, 이전의 일들로 상상해본 적은 있던, 내 가수가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부터, 그 잠깐의 휴학으로는 그 오랜 기간의 상처를 덮거나 치유할 수는 없었고 괜찮아질 수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나는 어떤 부분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담 받으면 확실하지 않았던 트라우마가 확실해지는 것 같아서 망설이며 그 복잡한 아픔의 감정들을 가라 앉히기 위해 상담 외의 방법만 찾았던 게 문제였던 거지. 그 상처를 자세히 보거나 제대로 치유한 적은 없었던 거야. 무의식적으로는 그래서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나아질 것 같지 않다면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낫다고 여겨왔던 것 같아. 그걸 4월 이후에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깨달았어. 학교 축제 운영팀 팀장, 다큐멘터리 리서처 작가, 독서지도 선생님, 그리고 예비 대학원생으로 바쁘게 지내면서 보람 있었던 한 해인데, 그렇게 지내는 동안 많이 울고 많이 아팠거든. 그래도 가만 있으면 그 아픈 게 더 생각나서 오히려 바쁘려고 노력했어. 10월~11월 정도에 차츰 덜 바빠져서 그런지, 그대로 지내면 내가 제대로 못 살 것 같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지더라. 계속 예민하고 서운하고 무슨 말 하다가 울고 너무 많이 울어서 다음날 두통이 심했던 적도 있고. 내가 평소면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것들을 못 넘어가고. 길가다가도 너무 울어서 미안해지는 날도 있고. 어느 날에는 요구르트 하나만 먹은 후 알레르기 약을 먹었다가 버스에서 식은 땀이 많이 나서 병원 가기도 했지. 빈 속에 그런 약 먹으면 안 되는데 먹어서 그렇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날 학교 가기 싫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서 피 뽑고 검사받고 집 온 게 다행이다 싶었어. 그 다음 날에 검사 결과 단순히 조금 저혈압이라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안 아픈 게 다행이면서 버스에서 너무 힘들었어서 차라리 완전 아파서 푹 쉬고 싶었다.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지. 아프고 싶다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상담을 알아보고 마침 학교에 딱 1회만 받아볼 수 있는 상담 프로그램이 있길래 신청해서 받았다. 정기 상담이 아닌데도 그 상담 받으러 간다고 결정하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 내 아픔을 공유하는 게 그렇게 힘든 거였는지 그제야 제대로 알았어. 사실 그 상황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 안 돼, 내가 아직 못 말했거든. 너도 이 상황은 나중에 알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속으로 그렇게 혼자 앓구나, 싶더라. 그냥 내가 내 상처를 보는 것도 힘든데 이 상처를 남에게 보여주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배웠어. 그래서 한 편으로는 감사했어. 내가 아팠던 만큼 타인의 아픔에 좀 더 공감해줄 수 있는 부분이 생긴 것 같아서. 


아무튼 그래서 상담은 어땠냐면. 상담 받기 전까지도 상담이 효과가 있을지 많이 의심했는데. 내 트라우마와 트라우마가 생겼던 계기로 보여지는 경험들을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꽤 괜찮아졌어. 그리고 감정 이완법, 마음 다스리는 법을 배워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 감정은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그냥 느끼는 것뿐이라던 상담 선생님의 말이 인상적이었어. 나는 왜 그렇게 감정을 파고들고 분석하려고 했을까. 그냥 느끼고 받아들이고 발을 바닥에 붙여 이완하는 과정을 거치거나 몸을 쓰다듬는 행위만으로도 몸이 느끼는 감정은 충분히 편안해질 수 있는데. 90분의 상담만으로 뭔가 바뀔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지금까지 괜찮아서 좋다. 어쩌면, 내가 괜찮고 싶다고 생각만 했던 걸 드디어 실천하려고 해서 그런 지도 몰라. 베란다에 있던 인형과 책들을 미련두지 않고 하루 날 잡고 정리한 것처럼,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하고 보니 생각보다는 큰 일이 아니었던 것 중에 하나가 상담을 받는 것 같아. 그렇지만 내 미래의 인생까지 생각했을 때 사소하다고 여겼던 시간들이 나에게 큰 트라우마가 됐던 걸 떠올리면, 그 별 거 아니었다 여긴 상담이 하나의 큰 위로나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네. 겨우 그 90분의 시간이 주는 효과를 알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고민으로 허비했다. 너한테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썼었고, 잘 지낸다고 많이 얘기해왔는데, 그게 거짓말이었다는 걸 아는 데도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질 거야.


추운 겨울이 끝나면 봄날이 오듯이, 안 괜찮았던 때가 있으면 괜찮은 때도 오겠지. 새해는 더 괜찮은 해가 될 거야. 몰랐는데 올해가 청룡의 해래. 나는 00년생 용띠인 만큼 작년에 용기냈던 행동이 올해 좋은 변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 너도 용기내지 못한 게 있다면 용기내 봐. 내 기운을 올해도 나눠줄게. 지난, 안 괜찮았던 시간 동안, 힘들 때 옆에서 기운을 북돋아 준 건 너이기도 했으니까 너에게도 좋은 기운이 가득 했으면 좋겠어. 너도 힘든 일이 있다면 털어놔 줘. 언제든 기다리고 있을게. 힘들 때 치킨 사주고 돌판 짜장면도 사줘서 고마워. 우리 둘 다 올해 힘찬 기운으로 잘 되자. 이 험한 세상에 너 같은 동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올해도 잘 부탁해.


글짓는 코끼리. 무지개빛 세상을 꿈꾸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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