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등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 심지가 존재하는 한은 절대로, 그랬을 터인데.

 그럴 수 없을 일이 벌어지는 건 순간이었다. 세상이 어둡고, 살아있는 것들이 사라졌다 생각될 만큼 조용한 곳에서 눈을 뜬 남자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게 무슨."

 자오윈란은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일상이 되었던 고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엔 정신이 들지 않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미 그에게 현실은 진혼등 속이었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생소할 정도의 현실은 한참이나 몸에 정착하지 않았다.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자리에 누워 눈을 깜빡이던 남자는 차근차근 자신을 인식하는 것에 집중했다.

 어둠을 바라보던 눈이 제일 먼저 시렸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눈꺼풀의 느낌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타들어 가는 고통이 아닌 시린 고통은 사뭇 달랐다. 그의 몸은 이미 제 의사와 상관없이 현실에 돌아온 채였다.

 살아있어.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첫 마디에 이어진 말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빼고 몸은 멀쩡했다. 그저 잠들었던 것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으. 젠장."

 그러나 몸이 멀쩡하더라도 정신은 달랐다. 사람은 자극에 약한 편이었다. 끊임없는 고통에 멀쩡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 괜찮다고 물어본다면 절대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정신. 자오윈란은 몸을 일으키며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시야 속에서 제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손이 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위협을 느낄만한 것도, 위험한 상황도 아닌데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이 그리 두려워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떨고 있는 모습은 예전의 자신과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겠는데."

 무작정 이곳에서 버틸 수는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몇 번 두들긴 자오윈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지로써의 역할을 마쳤기에 다시 세상에 돌아온 건가? 그는 조금 멍한 머리를 흔들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계속해서 서늘한 바람이 앞에서 불어왔다. 긴장에 흘렀던 땀이 식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곳은 어딘가에 위치한 동굴인 것 같았다. 다시는 겪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서늘함이 피부를 훑자 문득 그는 자신이 밟고 있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흙을 밟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위에 누워있고 걸어 다니던 자신에겐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시각이 돌아옴에 따라 분명 후각도 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은 편이었다.

 물론 사지 멀쩡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애초에 육신은 자신을 대신하여 살아가도록 지상에 올려보냈던 걸 잊지 않았다. 영혼, 정신만이 돌아온 것보다 육체가 있다는 건 감지덕지인 상황에 가까웠다. 눈을 떴을 때 팔이 없다거나 다리가 없다거나. 그런 상황이었다면 지금처럼 쉽게 일어설 수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로. 후각 정도야 지금 상황에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괜찮다. 자오윈란은 괜스레 코를 찡긋거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윽!"

 쉬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가던 자오윈란이 커다란 돌부리에 걸려 휘청였다. 그는 섣불리 어딘가를 짚을 수 없어 팔을 휘적대다 결국 힘없이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거친 흙바닥에 쓸린 얼굴에서 정신을 확 일깨울만한 통증이 느껴졌다. 상처가 났구나. 자오윈란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프다는 건, 간단하게 말해 통각은 멀쩡하단 뜻이었다.

 "션웨이."

 얼굴이 쓰라린 와중에 기억난 이름. 엎어졌던 몸을 굴려 대자로 뻗은 자오윈란의 입에서 그리운 이름이 흘러나왔다. 자신은 어떻게든 현실로 돌아오게 됐다. 그렇다면 그는 돌아왔을까.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이 담긴 내기는 심지가 되어서도 잊을 수 없었다. 고통에 모든 게 사라지려 할 때 즈음, 그를 붙잡던 건 언제나 션웨이였다.

 자신과 달리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환생했을 것이다. 비록 추측에 불과했지만, 션웨이가 생전에 했던 모든 선행과 업을 생각하면 무조건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무려 그 흑포사 대인이 죽으며 미래를 약속했으니 더욱 그랬다. 빈말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던 사내가 한 내기였다.

 "그쪽이 여기에 있다면 좋겠네."

 어떻게 살아나게 됐는지는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솔직히 말해 자오윈란에게는 션웨이가 곁에 있던 과거의 안정감이 필요했다. 여전히 손은 떨리고 있었다.

 아아. 자오윈란은 가벼운 탄식을 내뱉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눈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며 아픔이 느껴지지만, 냄새는 맡을 수 없고 손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가 망가졌다고 인식하는 냉정함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남의 일을 말하는 것처럼 덤덤할 뿐인 태도는 비단 육체만이 망가진 게 아니었다.

 "거기 누구냐!"

 "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검은 허공을 바라보던 자오윈란에게 눈부신 빛무리가 접근했다. 발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빛에 자오윈란은 사정없이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는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그를 감싼 빛을 든 이들은 험악한 표정이었다. 평범히 모든 인간들이 입을법한 옷을 입은 그들이 등불 따위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전, 자오윈란의 목에 칼이 겨눠졌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냐! 여긴 위험 구역이다!"

 "위험 구역?"

 "이곳은 전 지군전이 있던 장소다. 해성인 따위가 멋대로 들어올 곳이 아니야!"

 "전? 하아. 뭐가 많이 달라졌구만."

 해성인? 자오윈란의 머리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렇다면 자신이 깨어난 이곳은 지상이 아닌 지성이 된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전이라는 건, 지군전이 위치를 옮기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니. 애초에 자신이 심지가 됨과 동시에 지성과 지상의 길은 끊겼을 텐데. 전혀 이어지지 않는 현재의 정보에 섣불리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하던 그는 곧 더 가까워진 이들을 알아채지 못했다.

 "끌고 가라!"

 "아야야. 살살해, 살살. 연약한 일반인은 다쳤다고."

 다친 건 얼굴이었지만 뭐. 돌아올 리 없는 답을 기다리던 자오윈란의 몸이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여전히 겨눠진 무기는 흉흉하게 금방이라도 목을 칠 기세였다. 한 번이라도 입을 잘못 놀렸다간 그대로 죽는다. 이런 놈들과 대치하는 건 그에게 평범한 일이었다. 지성인과의 대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것에 감사하며 자오윈란은 얌전히 이끄는 대로 몸을 옮겼다.

 동굴 밖으로 나와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난장판이 된 어두운 거리였다. 지성을 비추던 진혼등은 꺼졌다. 정확히는 꺼졌을 거라고 예상했다는 게 맞겠지만. 불을 밝히던 재료가 바깥에 나와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거니,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빨리 움직여! 느려터진 해성인이!"

 "어이구, 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문제가 많은데 어디서 온 거야."

 "바로 섭정관에게 넘기고 돌아가자고."

 맨 앞에서 무리를 인솔하던 남자가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그 욕설에 응하듯 다른 이들의 입에서 제각각 불만이 튀어나왔다. 한꺼번에 웅성대기 시작한 말에는 역시나 해성인에 대한 욕이 대부분이었다.

 자오윈란은 끊임없는 욕을 대충 흘려넘기며 주위를 훑었다. 멀쩡한 집이 없다. 다 부서진 지붕과 벽을 수리하기는커녕 살고 있다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빛이 없던 과거의 지성도 이렇게까지 생기가 없진 않았다. 마치 유령도시처럼 보이는 꼴에 집중하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앞에 나타난 익숙하고 거대한 건물을 한동안 인식하지 못했다.

 "너 따위가 섭정관님을 뵌다는 걸 영광으로 여겨라."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 없는 건축물은 웅장하게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주는 아니어도 션웨이와 함께 몇 번이고 왔던 장소. 어리석은 지군과 함께 자리를 지키던 덥수룩한 얼굴의 섭정관이 인사를 건네던 그 장소였다.

 섭정관은 쉽게 죽을 인물이 아니었으니 잘 살아있었을 것 같다, 라는 어설픈 기대감이 자오윈란을 설레게 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아는 인물을 하나라도 만나고 싶었다. 지군전 내부로 향하는 내내 입을 꾹 다문 자오윈란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어쩐지 정말 인간으로 돌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죄인을 잡아 왔습니다, 섭정관님!"

 "죄인?"

 이 목소리가 그리웠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리웠다는 게 사실이었으므로. 지군 쪽을 향해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작은 형체에서 변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오윈란이 심지가 되기 전 함께했던 때의 인물이 확실했다.

 "무슨 짓을 했길래 죄인이라고 여기까지 잡아 왔……."

 "오랜만인가? 다시 만나서 반갑네요?"

 "그, 그 얼굴은!"

 피곤한 듯 휘적거리며 몸을 돌린 섭정관이 자오윈란을 보자마자 경악한 얼굴로 손가락질을 해댔다. 덩달아 당황한 주변 남자들이 칼을 뽑았지만, 정작 논란의 장본인은 태연히 웃고 있었다. 정말로 예전의 섭정관이었다.

 "진혼령주가 어떻게!"

 "진혼령주요?!"

 알았으면 놔. 자오윈란은 여유롭게 잡힌 팔을 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혼령주라는 직함도 참으로 오랜만이다. 지성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이들이 알지 못할 존재를 알고 있는 존재와 만난 건 그에겐 썩 행운이었다.

 섭정관의 아는 체에 자오윈란을 잡아 온 남자들이 허둥지둥 팔을 놓고 도망쳤다. 금세 둘만이 남은 지군전의 내부는 조용히 횃불이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원래라면 둘이 아닌 셋이 이곳에 위치해야 한다. 그런데 섭정관의 뒤쪽, 지군이 있어야 할 장소는 비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부터 물어야 할까. 자오윈란은 반가움을 뒤로 밀어두고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살아났으니 세상이 망한 게 아닌가! 그런 거야. 심지가 없어지고 진혼등이 사라진 이유가 있었어!"

 "하? 오자마자 화려한 환영 인사에 아주 감사할 따름이군!"

 "자오 처장. 이 일을 어찌할 셈이야!"

 "미안하지만 나도 왜 깨어났는지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섭정관 나리께서 설명을 좀 해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치던 섭정관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렇게 소리를 질러봤자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진혼령주, 자오윈란이 돌아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라면 심지가 되었을 때처럼 다시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보다 해결책 논의하는 게 더 바른 일이란 걸 깨달은 섭정관이 그동안 벌어진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진혼령주가 심지가 된 지 수십 년이 흘렀고. 정확히는 한…… 80년쯤 됐으려나."

 "인간으로 살았다면 벌써 늙어 죽었을지도 모를 세월이 흘러버린 건가. 그쪽도 죽을 때 됐겠어요."

 "지성은 새롭게 만들어진 결계 덕분에 지하에서도 빛을 받으며 잘 살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재앙이 들이닥쳤다. 자오윈란을 무시하고 이어진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최근 알 수 없는 힘에 지상과의 경계가 무너졌고, 지상에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됐다. 시작은 지성의 빛이 사라졌다는 비명과 함께였다. 그나마 사람이란 존재가 살 수 있는 공간은 지성이 유일했다고 한다. 먼저 상황을 알아챈 특조처의 인도에 따라 해성인은 지성에 이주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지성에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소수뿐이었다.

 특조처의 기지로 지상과 이어져 있던 경계이자 입구는 얼마 버티지 못해 무너졌다. 경계가 무너진 것인지, 아니면 지상 자체가 무너진 것인지 알 수 없던 찰나 진혼등이 사라진 여파는 지성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전부 무너진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알게 된 것이었다.

 현재는 소식을 알 수 없는 지상이 그랬듯, 지성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갔다. 풍족하진 않아도 살 수 있던 땅이 모두 갈라지고 무너졌다. 예상치 못한 재앙에 사람들은 땅 아래 어둠으로 떨어져 죽어갔다.

 "그렇게 지성에 살던 이들이 반 이상이 죽었네."

 "반 이상이나?"

 "지군전을 옮긴 이유가 뭐겠나."

 지군전이 위치한 곳은 살아있는 생물이 살 수 있는 곳이다. 자오윈란이 동굴에서 나와 둘러본 엉망이 된 마을은 섭정관의 얘기를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물이었다.

 자오윈란은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위화감이 들었다. 떨리고 있는 손과 별개로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 여기서 홀로 의문을 고민해봤자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는 즉시 위화감에 대한 것을 꺼냈다.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질문. 나는 바로 몇 시간 전에 깨어났고, 진혼등의 불빛이 꺼진 건 몇 주 지난 이야기잖아? 심지가 없어졌다면 나도 몇 주 전에 돌아왔어야 시간이 맞는데."

 "정신을 잃고 있던 게 그 정도일 수도 있지!"

 "망할 영감탱이,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여전하긴."

 투덜거려도 섭정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혼만이 남은 것이 의문인 상황에 의식이 돌아오는 것조차 며칠이 걸렸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예전보다 훨씬 늙고 지친 모습의 섭정관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그가 생각해도 이런 말싸움은 소모적인 행동일 뿐이어서 그런 걸까, 다시금 둘 사이가 고요해졌다.

 자오윈란이 이내 자리에 주저앉았다. 멀뚱히 서 있는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서 있기엔 힘이 들었다. 예전만큼 힘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힘이 없는 몸은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상태는 사람의 틀에 돌아온 영혼이 적응하는 기간이라 할 수 있을 거다.

 "일단 쉴 곳을 마련해주겠네. 어찌 되었건, 늦었지만 돌아온 것도 축하하고."

 "질문 하나만 더. 얼굴은 여전히 그때의 자오 처장처럼 생겼나?"

 "아아. 생채기를 제외하면 너무 똑같아서 마치 예전과 같네."

 거울을 보지 못해 어떻게 돌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던 의문이 풀렸다. 허무맹랑하지만, 빙의라는 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힘 빠진 웃음을 지어 보인 그는 섭정관의 말에 들어온 남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자오윈란을 이곳에 끌고 온 겁에 질린 남자들이었다. 잘 부탁해. 남자가 짓궂은 인사를 건넨 건 일부러였다.

 눈에 띄게 공손해진 이들은 지군전 내부의 손님방으로 자오윈란을 데려갔다. 이 또한 언젠가 들려본 적 있던 곳이었지만, 청소를 하지 않은 것처럼 안쪽은 먼지 투성이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밝은 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벽 곳곳에 걸린 초는 거의 녹아내려 더는 빛을 낼 수 없는 수준에 가까웠다. 누군가 방문하지 않은 흔적. 자오윈란의 시선이 초를 향해 있단 걸 깨달은 남자 중 하나가 손에 들린 등불을 내밀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방문하지 않아서 초를 갈아두지 못했습니다. 일단 불을 붙인 다음에, 새 초를 가져다드릴 테니……."

 "지, 진혼령주님?"

 내밀어진 불에 자오윈란의 시선이 고정됐다. 먼지 낀 유리 너머로 일렁이는 작은 불꽃. 하필 들고 있는 것이 등불이어서.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심지가 되었던 자오윈란. 영혼을 태워 세상을 구했을 자오윈란.

 어떻게 돌아온 거야? 세상을 구한 척 한 뒤 망하게 했으면서, 뻔뻔하게 돌아오고 싶었어?

 "윽!"

 "진혼령주님!"

 "……괜찮으니까 나가."

 자오윈란의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 가슴을 찢어발기는 통증이 아찔하게 몸을 지배했다. 그의 눈치를 보던 남자들은 축객령에 어쩔 수 없이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건네받지 못한 등이 바닥에서 뒹굴고, 희미하게 빛을 유지하던 등화는 계속해서 자오윈란을 비췄다.

 그 빛은 마치 그 자신이 심지가 됐었을 때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이 아픔도 마찬가지였다. 잊을 수 없는 심지의 역할을 상기시키는 듯 불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망할. 전이라고는 해도 진혼령주의 체면이 있지."

 차마 등을 발로 찰 수는 없어 이를 악문 그가 비틀거리며 낡아빠진 침대로 향했다. 푹신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딱딱한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몸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그냥 바라보던 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어째서 지금에서야. 자오윈란은 휘몰아치는 아픔을 뒤로하고 떨리던 양손을 들어 올렸다.

 땀 범벅이 된 흐릿한 시야에서도 보일 정도로 손과 팔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멈추지 않는 떨림과 발작적인 고통. 자오윈란은 한참 동안이나 괴로움을 떨쳐내지 못했다.

 

 

*

 

 

 "일어나! 어디까지 잘 셈이야!"

 "으으."

 "처장이라는 게 맨날 널브러져 자기만 하고. 세상 참 말세다, 말세야."

 시끌벅적한 부름에 남자는 감겼던 눈꺼풀을 끌어올렸다. 전혀 어둡지 않은, 밝은 햇살이 방금 뜬 눈을 찌른다. 등에 닿는 푹신한 가죽의 느낌과 편안하고 가벼운 몸. 위화감 없이 아무렇지 않게 잘도 움직이는 팔과 다리까지. 멍하니 항상 보던 천장을 바라보던 남자의 곁에는 서류를 들고 험악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는 이들이 서 있었다.

 "오늘 점심은 션 교수님이랑 같이 먹기로 했잖아! 일어나라 좀!"

 "오랜만의 회식인데 빨리 일어나죠, 처장!"

 다칭, 그리고 린징이 남자를 들볶았다. 들볶는다 표현했어도 둘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다를 것 없는 평화로운 하루였다. 사건이 없는 날에는 느지막이 출근하거나 집에 늘어져 잠을 잔다. 종일 외근이라 이야기해두면 찾는 이가 없으니, 얼마나 편안한 일상인가.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급한 연락 같은 건 없었다. 퍽 중요한 일을 확인한 그는 팀원들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데나 던져두었던 지갑을 챙겨 들었다. 약속시간까지는 삼십 분이 남은 채였다.

 "걸어갈까? 귀찮은데."

 "자오 처자앙. 이 날씨에 걸어가는 건 좀 너무한 처사인데요."

 "저거 지금 자다 깨서 그래."

 "너희가 기름값 대주는 거 아니면 조용히 해라."

 퉁명스러운 말과 달리 남자의 손에는 차 열쇠가 들려 있었다. 어차피 약속 장소까지 시간을 맞춰 가려면 차를 타는 수밖에 없다. 각자 준비를 마치고 우르르 밖으로 나선 그들과 함께 차에 올라타자 평화로운 주변 모습이 지나쳐갔다. 느린 속도 덕분에 주위를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까지, 전부 웃는 얼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 장소인 룽청대 근처의 식당이 보이기 시작했다. 십 분 정도 걸렸을까, 식당 앞에 차를 멈춰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갑갑한 정장 차림의 약속 상대가 일행에게 다가왔다. 여름의 더위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단정히도 잠긴 정장 차림. 션웨이였다.

 "션 교수. 어떻게 딱 맞춰 오셨네요?"

 "그렇네요. 조금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션웨이가 자연스레 가게 문을 열자 안쪽에서 틀어둔 에어컨의 찬 바람이 불어왔다. 일행이 모두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바깥에 남은 건 션웨이와 남자 둘뿐이었다. 왜 들어가지 않냐는 말 대신 조용히 문을 잡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흐릿하고, 또 그리웠다. 정중한 행동은 충분히 봤으니 당신도 같은 표정을 하고 있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션웨이의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어둠에 갇혔다. 아니, 갇혔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았다. 깊고 넓은 어둠은 현실이었다. 꿈속의 소파와 달리 딱딱할 뿐인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린 자오윈란은 팔로 제 얼굴을 덮어 눈을 가렸다. 이런 꿈을 꿔봤자 기쁘지 않았다. 돌아갈 수 없을 과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에. 계속해서 떨리는 팔을 애써 무시하던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성에 머무는 자오윈란의 하루는 무료하게 흘러갔다. 언제 닥쳐올지 모를 재앙을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는 이미 한 번 죽음이란 걸 겪어봤다. 이조차 여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죽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마 이곳에서 그는 죽음을 제일 덤덤하게 받아들일 사람이었다.

 "나는 왜 살아났지?"

 "그걸 여기 와서 묻는 이유를 더 알고 싶은데 말이지……."

 "제대로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그쪽뿐이라서."

 섭정관 옆에 앉아있던 자오윈란은 뻔뻔한 태도를 고수했다. 애초에 섭정관이 봐야 할 일은 양이 적었다. 막말로 망하기 직전인 세상에 어떤 일이 있겠는가. 그가 보고 있는 종이에도 구체적인 방안이 아닌 사망자 명단과 피해가 난 구역에 대한 보고만이 적혀있었다. 그들은 피해 복구를 할 수 없는 지경인 게 확실했다.

 "그럼 다른 거로. 위쪽이랑 또 연결된 적은 없습니까?"

 "한 번도 없다네."

 "하아, 그냥 손 놓고 있는 건 취미가 아니라서. 우리 애들이 한 번 열었다면 다음 기회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이미 세상은 무너졌다. 그렇다면 위아래가 이어진 통로도 다시 생겼다는 뜻일 텐데, 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는가 의문이 들었다. 허나 의문이 있다고 해도, 출입구를 찾는다고 해서 지상에 신경을 쓸 정도로 넉넉지 않은 상황이란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일부러 인력을 파견할 여유 또한 없었겠지.

 인력? 그거다! 번뜩 자오윈란이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튀어 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을 인간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섭정관의 말을 무시하고 급히 지군전을 뛰어나간 그는 이곳에 온 이래로 가장 밝은 표정을 지은 채였다.

 "아. 죽겠네."

 물론 아무런 단서 없이 입구를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을 뒤로하고 외곽으로 나오자 울퉁불퉁한 지형이 그를 반겼다. 갈라지고 솟아오른 수많은 지반이 가파른 산과 같은 모양이었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은 얼마 못 가 바닥을 보였다. 자오윈란은 그나마 평평한 바위에 땀범벅이 된 몸을 뉘었다.

 눈을 돌리면 하늘이 나와야 할 부분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인공적으로 만든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멀리서 보이는 지군전의 빛이 아니었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마저도 다시 볼 수 없을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니 감지덕지였지만, 뭐.

 "당신은 이 상황에 뭘 어떻게 했을까. 알려줘."

 이런 상황일수록 그가 필요한데. 지혜롭고 현명하고.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랄 남자가 이럴 때 곁에 있어야만 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보다는 흑포사가 여기에 있는 게 훨씬 도움이 될 터였다.

 자오윈란의 꿈속에서 션웨이는 항상 웃는 낯이었다. 흐릿하긴 해도 참 자비로워 보인다 할 수 있을 그 웃음은 자오윈란에게 자주 지어 보이던 것이었기에. 우습지만,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여기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속으로 기합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난 자오윈란은 몇 시간 동안이나 단서를 찾아 헤맸다.

 "완전 쓰레기 같은 냄새나는데, 아무리 나라도 이건 좀."

 그로부터 몇 주가 흘렀다. 바깥에서 굴러다니던 그가 방에 들어오며 중얼거린 말엔 한탄이 섞여 있었다. 물로 씻어내는 것 정도는 가능했지만, 샴푸와 같은 현대문물의 편리함은 갖춰지지 않아 괜히 찝찝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대충 털며 탁상 의자에 앉은 그는 그동안 정리해둔 주변 지도를 펼쳐 들었다.

 지도라고 할 것 없이 대강의 위치를 적어둔 모양새였어도 충분히 쓰임새는 있었다. 매일 다른 곳으로 발 도장을 찍고 이상한 점이 있는지 체크해둔 부분을 훑은 그는 그대로 탁상에 머리를 박으며 엎어졌다.

 "이제 볼 곳은 얼마 남지 않았지. "

 [아니. 아직이야. 당신은 중요한 걸 잊고 있어.]

 혼잣말이 습관으로 굳어진 자오윈란의 말에 돌아올 리 없는 답이 들려왔다. 머리에 떠오른 말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생생함을 담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답을 준 목소리가 가장 필요한 남자의 것이었다는 거다.

 "셔. 션웨이? 내가 결국 미치고 만 건가?"

 [자오윈란.]

 "…… 젠장. 뭐냐고."

 아무리 션웨이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낀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자오윈란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추억에 파묻혀 환청까지 들릴 정도라면 정말 쉴 때가 됐다는 뜻이었다. 탁상에 박아 얼얼한 이마를 문지르며 표정을 구긴 그는 귀를 마구 후볐다. 그런다고 환청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당신의 눈을 믿어. 내가 보여줬던 것, 그리고 내가 갚았던 목숨을.]

 흐릿하게 사라진 목소리의 끝에 홀리는 건 본능에 가까웠다. 환청은 간절한 션웨이의 바람을 담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것들, 갚은 목숨. 자오윈란은 바로 션웨이의 환청이 한 말을 알아챘다.

 살아났을 때 하나하나 확인했던 오감 중, 제일 선명했던 건 시각이었다. 처음으로 함께 지성으로 오는 길을 보게 해주었던 날은 션웨이의 힘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것은 또 있었다. 성물의 힘 덕분에 멀었던 눈을 고쳐준, 목숨을 나누었던 그때의 일은 영원히 그가 품고 갈 일이었다. 기억처럼 들려온 목소리는 자오윈란이 혼자가 아니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곳에 있을 거야.]

 "션웨이!"

 더는 들려오지 않는 대답을 뒤로하고 남자는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는 알 수 없었던 일렁이는 힘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션웨이와 나누었던 생명은 이제야 새로운 힘이 되어 꽃을 피웠다.

 막연하게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흑능량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예전, 션웨이가 해주었던 행동 하나하나를 떠올려갔다. 어깨를 붙잡은 손에서 타고 들어오던 이능. 한 번 해본 적 있는 일을 홀로 해내야 했지만, 온전히 자신의 힘이 된 흑능량을 움직이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자오윈란은 눈을 감은 채로 밖으로 나섰다. 길게 이어진 복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었다. 보지 않아도 보인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인다. 유독 짙은 선이 모여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가자 그는 그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찾았다."

 지상으로 가는 길. 지군전에서 멀지 않은 마을의 한구석에, 션웨이가 기다리고 있을 위쪽의 통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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