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요괴들을 몰아내고, 약한 이들을 구해주는 선량한 도사님이 있데, 그 도사라는 양반은 몸에 깃든 양기가 아주 엄청나서 한입 배어물기만 해도 지금보다 세배는 강해 질 수 있다고 하더라구.

이 계곡의 주인이자, 양기가 깃든 간을 탐하는 여우 요괴인 하루미는 도깨비 상인에게 전해들은 대단한 도사님의 이야기를 듣고서 미소지었다. 그녀가 꼬리를 흔들면 어떤 사내든지 쓰러졌고,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양기를 맘껏 들이킬때 어찌나 즐겁던지. 물론 그녀에게 양기를 모조리 뺏긴 인간은 존재감이 흐려지고, 육체가 노쇠해져서 결국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채로 목숨을 잃게되지만, 여우 요괴인 그녀는 고작 인간의 목숨에 아랑곳할 정도로 배려심이 많은 편은 아니였다.

그러니 이 도사라는 작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그녀는 어림으로 짐작하며, 도사의 행적을 쫓아서 마을에 다다렀다. 꼬리와 귀를 숨기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훑고 있을 때 달콤하면서도 맛있는 향이 나는 것이 소문의 그 도사구나 싶었다. 소문에 비해서 나이도 어려보이는 대다가 칠칠지 못하게 이렇게 드러내다니 소문이 과장된게 분명하다며, 그녀는 항상 그랬듯이 그 자를 유혹했고, 자연스럽게 하룻밤을 보내려했다.

로이드,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사내는 순진해보이는 청년처럼 보였다. 그녀의 달콤한 말에 입고 있던 옷도 자연스럽게 벗으며 숨김없이 드러내는 어리숙한 사내. 그가 입던 속옷까지 거둬냈을 때, 그녀는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그녀의 코 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하고 향긋한 간의 깃든 양기라니. 그녀는 맘껏 들이키며 힘껏 뽑아먹었다. 그녀의 입 안에 담기는 양기는 끝없이 쏟아져 내렸고, 그녀가 배를 통통하게 채울정도로 들이킨 후, 그를 바라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고, 그것은 무언가 잘못됬다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보통의 사내는 그녀에게 양기를 빨아먹히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일텐데. 희안하게도 그는 쓰러져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그녀가 자신의 것을 맘껏 취하도록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마치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하는 로이드에게 그녀가 무어라 더 말할 수 있었을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했다.

소문의 여우요괴치곤, 너무나 약한데? 마을 몇개를 뒤집어 놓았다고 들었는데 이정도였다니 아쉬운걸? 내 안에 있는 양기의 반의 반도 못 먹었잖아. 역시 소문이 과장된 모양이야, 그렇지 않아?

오싹함. 순진한 사내인 줄만 알았던 존재에게 느낄거라고는 도저히 예상치 못한 탓일까? 그녀는 문을 열고 달아나려고 시도했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가 부술려고 해도 문을 만질 때마다 따끔거리기만 할 뿐 미동도 전혀 없었으니 이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도 한참은 잘못된 터였다. 그녀가 다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옷을 다 여미고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몸이 점점 답답해졌으며, 그녀 안에 있던 양기가 꿈틀거리며 그녀의 속을 뒤집어 놓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속에 있던 걸 개워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모조리 뱉어낸 것을 확인하고서야, 로이드는 그것을 자신의 호리병에 담아두었다. 도사로서 요괴 퇴치 일은 한두번 해본 것이 아니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쓰러진 요괴를 마주할 때마다 씁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쓰러진 그녀를 안았다. 그의 품안에 있는 건 작은 몸집을 가진 눈처럼 새하얀 여우였으며, 온몸 구석구석에 상처가 남아있는 걸 보니 요괴가 되기 전 인간에게 호되게 당했던 모양이였다. 아마 계곡에서 여우를 잡기 위한 대량 학살 같은 사냥이 벌어졌을테고, 그 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어린 여우가 증오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어 꼬리가 아홉개 달린 구미호가 된 게 분명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 짙은 탓에 결국 정도를 넘어서 버렸으며, 결국 사람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게 된 터였다. 여전히 콜록대며 옅게 기침을 뱉어내는 이 존재를 그는 손쉽게 퇴치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도사가 되기전 그는 마을에서 겉도는 존재였다. 뱀요괴의 알을 잉태한 어머니와 그 알에서 태어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질타를 받곤 했고, 그 때문에 그는 그르릉 거리며, 자신과 어머니를 해치는 존재들에게 해를 끼치곤 했다. 그것이 정도가 심해져서 결국 마을 하나를 없앨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의 작은 아빠가 나타나 그를 동굴에 가두고 봉인했다. 그는 봉인 안에 갇혀서 화를 냈고, 증오에 휩싸여서 그것을 부수러 들었으며-성공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서야 그의 안에 남은 감정은 한없는 슬픔과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움 뿐이였다. 그가 어머니를 지키겠다고 약속해서 기르던 힘은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까지 목숨을 앗아갔으며, 결국 그는 혼자가 되어버렸으니, 이것이 그의 힘에 대한 대가였다면 끔찍하기 그지 없는 결과일게 분명했다.

몇년이 지나서 그의 앞에 작은 아빠가 돌아왔을 때, 그는 봉인에서 풀려나는 대가로 작은 아빠와 약속을 했다. 도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를 닦으며 마음을 가꾸고, 사악한 요괴들에게 괴롭히는 인간 혹은 요괴를 퇴치하며, 그가 꺼뜨려버린 생명의 수만큼 구해야만, 모든 죄를 씼어낼 수 있을거라는 작은 아빠의 말에 따라 그는 이 기나긴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 그녀가 그가 구해야 할 마지막 영혼이였다. 비록 마을사람들에게 여우 요괴를 퇴치해달라는 의뢰는 받았지만, 그녀의 목숨을 쉬이 빼았지 못한 사유였다. 그는 그녀가 가지게 된 상처를 보고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으며, 그녀가 죽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길 원했다. 그는 잠든 그녀의 입을 벌려 자신의 피를 몇방울 떨어뜨렸다.

하루미가 깨어났을 때, 그녀는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몸에 있던 상처도 감쪽같이 사라졌으며 예전만큼 분노나 증오가 들끓지 않았다. 기이하다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꼬리를 보았고, 사라져버린 여덟개의 꼬리를 보고 로이드를 향해 그르릉 대면서 화를 냈다. 그녀가 몇년동안 공들여 모은 힘이 사라진 판이였으며, 그가 그녀가 빨아들인 양기를 모조리 빼았은 탓에 힘이 하나도 없는 꼬마 여우가 되어버렸으니 그녀의 분노는 정당했다.

로이드는 그르렁 대는 여우를 바라보더니 그것을 안고 목 밑을 살살 긁어주었다. 그르릉 거리며 화를 내던 그녀는 어느새 골골 소리를 내며 그의 품에 잠이 들었다. 그는 들고다니는 보자기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보자기 안에 있는 이공간은 작은 여우를 넣기에 부족하진 않았다. 그것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건 그밖에 할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곳의 여우 요괴를 퇴치했다고 말하고 가면 되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로이드가 이공간에 들어왔을 때, 그녀는 로이드에게 달려들었다. 로이드가 이공간 안으로 먹을것을 넣어주긴 했지만, 그녀가 겨우 목숨을 부지할 정도에 불과했으며, 약해진 그녀의 힘으로는 이곳을 도저히 탈출할 수 없었다. 그녀가 몸집이 커지긴 했으나 이전의 비해 한참 모질랐다. 그녀가 화를 내건 말건 신경쓰지 않는 듯 로이드는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그녀의 시선에 맞추어 말했다.

오늘 이 순간부터 넌 다시 태어나는거야. 사람을 해치는 사악한 요괴가 아니라, 약한 자를 돕고 사악한 자를 물리치는 신령이 되는거지. 네가 저지른 만큼의 업을 모조리 씼으면, 네 안에 있는 감정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너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될거야. 이전보다 훨씬 나아질 수 있는거지. 살기 위해 남의 것을 먹을 필요도 없을거야. 그러니 내 손을 잡아 줄래?

그녀는 그가 내민 손을 한참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보드라운 손인 줄 알았던 그의 손에는 갖은 굳은 살과 상처가 있었으며, 그의 눈은 평범한 인간의 것이라기엔 약간 붉었다. 어째서 처음 만났을 때 알지 못했을까? 그녀는 오래전에 붉은 눈의 존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 거대한 뱀 요괴와 사랑을 나눈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 마을을 부수고 재앙 그자체가 되었다는 전설속의 그 존재가 자신의 앞에 있었다. 인간치고는 이상하게 느껴졌던게 이것 때문이였을까. 저 초록빛 눈동자에 담긴 옅은 붉은 빛은 그가 뱀요괴의 피를 이은 혼혈임을 나타내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였다. 그녀는 결국 그의 손을 잡았으며, 도사가 된 뱀요괴의 자손 로이드와 죄를 씼기위한 여우요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여정이 어떻게 끝날지는 그들도 몰랐다. 그녀가 모든 죄를 씼고 열반에 오르게 되거나 아니면 중간에 틀어져 모든게 망가질지도 모르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미래라는 것이 알지 못하는데서 시작하는 법이니, 이런 시작이여도 나쁘지 않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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