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증권 거래소

La Vieille bourse


지난 글에서 소개한 구 증권 거래소, 라 비예이 북스 la Vieille bourse는 여신의 기둥과 함께 릴의 그랑 플라스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화려한 색체와 장식들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이들의 눈을 끌고, 토요일이면 언제나 복작복작한 내부에 저절로 몸도 같이 끌리게 된다. 17세기 중반 릴 스타일을 가장 과감하게 보여주는 구 증권 거래소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15세기에 현 벨기에 도시인 안트웨르펜에서 거래소가 처음 구성된 이후로 유럽에는 상업 위주의 거래소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다. 릴은 17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상인 거래소가 없어서 상인이나 환전가들은 그랑 플라스에 자리하던 '환전 분수 fontaine au change' 주변에서 장날마다 간이 판매대를 펼쳐 놓고 일을 해야만 했다. 릴에 와 보시면 아시겠지만 늦가을에서 초봄까지는 비가 자주 오고 날씨가 매우 변덕스럽다. 불편함 이외에도 힘이 나날이 커져가는 상단 부르주아들의 행동 반경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라도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돕는 건물이 필요했다.

릴이 스페인 령일 적에 지어졌지만 한 쪽 파사드엔 여전히 플랑드르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릴 시는 1651년에 릴을 지배하던 스페인의 필리페 4세에게 증권 거래소 건축 허가를 받는다. 오스피스 꽁떼스를 재건한 건축가 줄리앙 데스트레 Julien Destré의 주도 하에 1652년과 1653년 사이 웅장한 건물을 완성했다. 증권 거래소라고 하지만 정작 외부에서 보이는 모든 요소는 거래와 전혀 상관 없는 공간이었다. 오늘날 아이스크림 가게와 기념품 가게가 들어선 1층은 그때도 상인 혹은 장인들이 입점 가능한 가게였고, 그 위로는 2층 짜리 아파트였다. 이를테면 당시의 복합센터랄까? 이 가게와 아파트에서 거둔 월세로 증권소 운영을 했다.  

당나귀 귀를 단 미다스 왕. 미다스 왕의 황금 손은 부를 경계하라는 의미를 담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택 한 채의 너비를 알고 싶으시다면 상반신만 덜렁 있는 조각상들을 보면 된다. 조각상들의 아파트 한 채의 시작점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17세기 플랑드르 르네상스의 혼합 가옥에는 언제나 이렇게 한 집의 너비를 알 수 있는 장치가 세겨져 있다. 현재 이 집들은 모두 카페나 식당의 위층으로 쓰이고 있으며 사람이 살진 않는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거래소의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면 17세기의 나무 기둥과 대들보를 볼 수 있다.

릴에 아침에 도착하셨다면 거래소는 아직 닫혀있을 것이다. 점심을 드시고 한시 반 정도에 다시 오신다면 근사한 내부를 볼 수 있다.

외부처럼 내부도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알록달록하다. 화려한 부조로 장식된 아치형 회랑 밑에서 사람들은 환전을 했고, 많은 양의 곡식과 섬유가 거래됐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증권소 회랑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부유한 상업도시의 특권이었다. 상인들과 환전가들이 판매대를 펴놓고 일하던 이 자리에 이제 헌책 매대가 들어섰다. 여기 저기 옛날 책들과 오래된 만화책, 영화 포스터와 백년도 넘은 신문들이 놓여있다. 가끔 오래 된 맥주컵도 팔고 희한한 물건도 나와서, 수집가라면 한번 쯤은 들려봐야 할 곳이다.


회랑 바깥을 장식하는 무서운 얼굴들이 보이는가? 마치 우리나라의 도깨비 기와같은 이 그로테스크한 얼굴들을 마스카롱mascaron이라 부른다. 17세기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모티브이지만 사실 이 회반죽 장식들은 모두 1990년대에 와서 추가된 디테일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강력한 산업도시들의 중심이었던 릴은 60년대부터 탈산업 현상으로 인한 큰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도시는 더 이상 문화 유산을 유지할 예산이 남지 않아 많은 고건물들이 방치되고 허물어져 갔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건물은 놀라운 속도로 삭는다. 릴의 자랑이었던 이 건물의 대다수의 부조들이 이 시기부터 부식되기 시작한다.

80년대 후반에 와서 릴은 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종목 변경을 시도하고, 조금씩 안정되는 경제활동에 힘입어 여러 민간 협회들이 문화유산 복원 프로젝트 실행을 주도한다. 이때 구 거래소 역시 '구 증권 거래소의 친구들'이란 협회의 도움으로 새단장을 할 수 있었다. 이때 복원 사업에 투자를 한 은행과 기업들에게 감사하기 위해 원래 옛 부호들의 문장이 그려져 있던 원형 장식 안에 투자자들의 로고를 대신 넣은 것이다. 잘 보면 대형 슈퍼마켓인 Auchan과 우리나라 농협과 비슷한 Crédit agricole, 통조림으로 유명한 Bonduelle 등 여러 상표를 찾을 수 있지만, 이런 배경을 모른다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건물에 잘 녹아들어있다.


릴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의 눈길을 끄는 옛 증권 거래소는 결코 조용한 공간이 아니다. 페스티발 기간이면 어김없이 현대 미술 작품이 중앙에 설치되고, 여름엔 일요일 밤마다 사람들이 모여 탱고를 춘다. 그리고 주중엔 항상 안뜰 한 구석에 몇몇 사람들이 주변에 관광객들이 몰리든 말든 묵묵히 체스를 둔다. 하지만 마치 집에 들어와 창문을 닫은 것처럼, 오후면 더욱 소란스러운 그랑 플라스에 있다가 거래소 안으로 들어오면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거리의 음악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활기와 안정감 중간의 묘한 분위기를 가진 네 쌍의 벽돌벽은 아마 릴을 막 발견 중이던 내가 가장 자주 찾던 곳이 아닐까 싶다.

옛 거래소에 오면 종종 피규어 매대에서 스머프를 찾던 어머니와 프랑스어로 쓰인 김정일 생애 전집을 발견하고 나에게 보여주던 내 프랑스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대체 남의 엽서를 왜 파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삼십 분 동안 옛날 엽서 구경을 하던 열 아홉살의 나도 그려진다. 오래된 건물 안에서 오래된 책을 들여다보며 오늘날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이 공간은 언제나 따스하다. 몇 년이 지나 이젠 릴 구도심이 일터가 되버린 오늘날도 옛 증권 거래소는 매번 도심 속의 오아시스처럼 나를 반긴다.




구 증권 거래소 이야기 끝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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