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단편은 2010년에 작성된 소설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검은 신사


*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마을에는 매우 기이하고 독특한 신사가 한 명 있었다.




*


똑. 똑. 또.......옥. 똑똑.

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아무도 이렇게 문을 두드리지 않으며 오직, 그 신사만이 할 수 있었다.

내가 세상을 눈에 담기 전부터 암묵적으로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그것은 모두의 예상대로 신사의 그림자와도 같았다.

똑. 똑. 또.......옥. 똑똑.

“문을 두드리고 있어.”

“쉿! 조용히 해.”

그러나 소리에 응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떤 이는 막연한 두려움에, 누구는 귀찮음에 그의 소리를 무시했다. 간혹 안타까움에 신사를 상대해주는 사람들이 있긴 했으나 그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신사는 문을 두드리고 계속 두드렸다.

검은 신사가 나타났어!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불렀다.


검은 신사.


그는 언제나 검은 모자와 그의 체고 보다 커다란 검은색 버버리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체격이 좋았기에 품이 큰 코트는 그를 위협적이라기보단 느릿하고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건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검은 신사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쨌든, 검은 신사의 노크에 응하면 그는 별 다른 말없이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질문을 했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질문에 대답을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그 사진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미는 사진은 너무 오래되었으며 심지어 너덜너덜 해지고 흐릿해서 도무지 무엇의 형체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검은 신사는 그 사진을 들고 질문 했다.

어떤 이가 너무 오래된 사진이라 알아볼 수 없으니 잘 나온 것으로 보여 달라고 해도 신사는 대답 없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아이들은 검은 신사를 저승에서 온 사람이라며 무서워했다. 온통 검은색인 신사를 그렇게 보는 건 당연했다. 이웃 마을에서는 소문이 와전되어 검은 신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 다리를 잘라 간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다.

그런 소문이 있건 없건 검은 신사는 마을에서 마을로, 계속 걷고 또 걸어갔다.

그가 얼마나 많은 마을들을 돌아다녔는지 정확히 헤아릴 순 없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바로 옆 마을에서의 이야기를 끝으로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


그 마을에 검은 신사가 도착한 시간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마을은 적막하고 고요해서 바람 같은 신사의 걸음 소리조차 뚜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똑. 똑. 또.......옥. 똑똑.

오랫동안 방치되어 빨간 색 페인트칠이 흉물스럽게 벗겨진 누군가의 집 앞이었다.

똑. 똑. 또.......옥. 똑똑.

두 번째로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인기척이 나며 불이 켜지고 빼꼼히 문이 열린다.

“무슨 일이세요?”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정면을 응시하던 시선을 떨어뜨리니 신사의 시야에 작은 아이가 말똥말똥한 눈을 굴리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눈에선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검은 신사는 오랜 여행으로 지치고 옷에는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보다 먼지가 가득 붙은 옷과 꼬질꼬질하고 거무튀튀한 아이의 얼굴이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검은 신사는 항상 그렇듯, 오래된 그 사진을 꺼내 아이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아이는 사진을 받았지만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이상하게 생긴 검은 물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검은 신사가 다시 말하자,

“나는 모르겠어요.”라고 아이는 대답하며 심드렁하게 사진을 건네주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가 꽤 따분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아이는 금세 흥미를 잃은 듯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하품을 했다.

“지금 가족들은 아무도 없어요. 다음에 엄마가 있을 때 와보세요.”

그리곤 문을 쾅 닫았다. 그는 실망하는 기색 없이 다른 집을 찾아 나섰다.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걷고 있자, 맞은 편 공원 의자에서 무언가 꼼지락 거리는 달빛 그림자가 보였다.

검은 신사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공원 의자에는 노파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노파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랐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았다.

새하얀 머리칼이 어둠 속에 가로등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그 긴 머리칼이 온 몸을 덮고 있을 뿐이다. 저 머리카락을 달빛 그림자로 착각한 모양이다.

머리칼이 너무 긴 탓에 노파의 얼굴도 모두 덮어버려 얼굴이 머리인지, 머리가 얼굴인지 커다란 코가 아니었다면 분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혀 놀라거나 무서운 기색 없이 노파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문을 두드릴 무언가를 찾는 듯 보인다. 문을 두드리고 상대방이 말하지 않으면 그는 질문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신사만의 규칙 같은 거였다.

그는 아쉽게나마 공원 의자를 두드렸다. 똑. 똑. 또.......옥. 똑똑.

“무슨 일이오?”

노파의 쉰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노파는 사진을 본 건지 안 본 건지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려.”

신사는 다시 발길을 돌렸다.

얼마 가지 않아,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남의 집 잔디밭에 뒹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아! 개가 아니라 사람이지 않은가!

온 몸이 털로 뒤덮인 사람인지 개인지 하는 것이 잔디밭에 앉아 열을 맞춰 행진하고 있는 개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검은 신사는 바닥을 두드렸다. 똑. 똑. 또.......옥. 똑똑.

“무슨 일인가?”

털로 덮인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역시 털로 덮인 얼굴인지 머리인지가 보였다.

실제로 본다면 매우 소름 끼치는 광경일 텐데, 검은 신사는 놀라지도 않고 사진을 내밀며 물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털로 덮인 손으로 사진을 보던 남자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그리곤 다시 개미들의 행진을 관찰했다.

신사는 이번에도 실망하는 기색 없이 다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에는 매우 작고 아담한 집을 방문했다.

그 집 앞 대문은 검은 신사의 허리 정도 밖에 오지 않는 높이였다. 누가 사는 집일까? 집 주변을 아름다운 정원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었다. 향긋한 꽃 냄새가 어둠 속에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듯했다.

똑. 똑. 또.......옥. 똑똑.

“무슨 일인가요?”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뜻밖에도 고양이 한 쌍이었다. 그들은 두 다리로 서서 심지어 옷 까지 갖춰 입고 검은 신사를 다정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누군가의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고양이 한 쌍은 조심스럽게 사진을 들여다보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네요.”라고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이 집 안에서는 깨지고 넘어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고양이 한 쌍은 집 안으로 들어갔고, 그들이 문을 닫자마자 더 크고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집 안에 있던 아이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가 뒤돌아서 거리로 나오자 그 작은 집 지붕의 굴뚝에서 이내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 비가 내렸다. 비를 흠뻑 맞은 꼬마 한 명이 검은 신사에게 모자를 내민다. 신사가 이에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꼬마는 매몰차게 뛰어갔다.

그는 이제 문을 두드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검은 신사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려 보내왔던 것이다.

그 때 검은 신사 옆으로 젊은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나간다.

“모든 게 끝났어!”

검은 옷이 비에 축축이 젖은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5층짜리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신사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똑. 똑. 또.......옥. 똑똑.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오두막집 앞에 도착했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빗소리만으로도 집은 무너질 듯 보였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온 남자는 집보다 먼저 무너질 듯 보였다.

“누구시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검은 신사가 사진을 건넸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종이 한 뭉치를 그에게 건넨다. 그가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내 그림을 살 생각이 없다면 당장 돌아가!”라고 화를 내며 검은 신사에게 종이 뭉치를 뿌리곤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렸다.

종이 뭉치들은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비를 맞으며 지나가던 한 남자가 주워 머리에 쓰곤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 때 건물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5층짜리 옥상에 검은 점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 보인다.

한 참을 오락가락 하는 그림자를 쳐다보던 사람들은 별 다른 일이 없자 금세 흩어졌다.

검은 신사도 건물을 지나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다. 등 뒤로 멀리서 메아리치듯 쿵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 여성이 공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로써 오백 번 째 원고를 탈고했다. 그러나 아무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좌절감에 빠진 여자가 비가 오는 공원으로 가 원고를 쓰레기통에 처넣는 모습을 검은 신사가 보았다. 하지만 여자는 신사가 말을 걸기도 전에 휑하니 공원을 빠져나갔다.

신사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원고를 주워 읽어보려 했지만 빗물에 번져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를 지나가던 청소부가 쓰레기봉투를 내밀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게 있습니다.”

그는 이제 두드릴 문이 없었다.

봉투에 너덜너덜해진 원고를 집어넣던 청소부는 검은 신사가 건네는 사진을 보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봉투에 집어넣었다.

당황한 신사가 얼른 봉투에서 사진을 꺼내자 청소부가 욕을 하며 신사를 밀치고는 지나갔다.

그는 계속 걸었지만 더 이상 집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검은 신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아까 보았던 건물 주위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구급대원과 경찰들이 모여서 덤덤하게 시체를 처리하고 있었다.

“내가 찾는 게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그가 사진을 내밀어보았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그는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는 이제야 모든 걸 포기한 듯 보인다.

얼마나 걸었으며, 얼마나 많은 곳을 지나쳐왔는지 그 자신도 모를 것이고 우리도 알 수 없었다. 터덜터덜 눅눅하고 어두운 거리를 걸어오자, 맞은편에 소란스럽게 밝은 빛을 내 뿜으며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신사가 먼저 다가가지 않았는데도 그것은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검은 신사는 운명적으로 이것이 마지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것은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였는데, 온통 하얀 것으로 뒤덮여 있었고 투명함은 속이 훤히 보일 듯했다.

“내가 찾는 게 있습니다.”

사진을 보여주자, 그것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는 그것이 인도하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옮겨갔다. 그리곤 한 동안 잊고 지냈던, 오랫동안 느끼지 못 했던 감정들을 쏟아내듯 펑펑 눈물을 흘렸다.

그곳에는 커다랗고 검은 호수가 있었다. 호수는 적막했고 검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의 별들은 어느 새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호수 위에 길게 물결치는 잡초들이 일렁거리며 미약한 푸른 빛으로 살랑거렸다.

이윽고 호수에 다다른 검은 신사는 소리쳤다.

“그래! 찾았어! 드디어! 내가 찾은 게 여기 있었구나!”

검은 신사가 호수로 들어가자 검은 물이 일렁거렸다. 신사의 모자가 검은 물 위를 동동 떠다닐 때쯤 해가 뜨고 호수는 안정을 되찾았다.

 




아침 일찍 호숫가를 산책하던 마을 사람이 물 위에 일렁이는 검은 모자를 보며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밑에 떨어진 사진 한 장을 발견했는데, 오래된 사진은 흐릿하고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누군가의 가족사진처럼 보였다.

사진을 발견한 마을 사람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찾고 있던 게 가족이었나 보군.”

그리곤 다시 호수 위로 던져 버렸다.



*



이것이 내가 아는 이야기의 전부다.




*후기?

아무래도 이거 쓸 당시에 상당히 우울했나 보군 ㅋㅋㅋㅋ

아무튼 검은 신사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며 지극히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설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를 도와주지 않았고, 관심도 갖지 않았다. 또한 그가 발 내딛는 세상의 모습이란,

모두가 비극적이며 암울하고 감춰진 고통과 슬픔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라는 배경인 듯.


옛날에 써 놓은 단편 읽고 나면 현재의 내가 얼마나 밝하졌는지 깨닫게 됨.

물론, 지금도 긍정적이다- 라고 말할 순 없으나 저 때에 비하면..흑흑.

그래도 예전 글을 읽으면 감회가 새로워서 좋음. 썼던 것 주에 괜찮은 소재들도 있고.


여러분들도 혹시 지금 글을 쓰고 있다면 단편이든, 미완결이든 버리지 말고 꼭 잘 쟁여 두세요.ㅋㅋㅋ

언젠가 쓸 날이 올지 모릅니다.




사나래=사도화 쓰고 싶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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