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15.

박솔뫼 원고 쓰려고 앉아서 또 알리익스프레스에서 앰프 검색했다. 처음엔 진공관 앰프 보다가 마크레빈슨 jc2 같은 과거의 명품 앰프들의 회로도를 그대로 '복각'했다는 앰프들을 봤는데 말이 좋아 복각이지... 어쨌든 차이-파이 기준으로 대충 60만원 정도면 프리+파워 앰프 구성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이게 바로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오디오 중독이라는 건가? 그럴 리가. 60만원이면 오디오파일용 고급 USB 케이블 하나 살까말까 한 돈인데. 일단 <굿모닝 오디오>부터 읽어야지... 


21.11.16.

작업실 오니 뉴오더 라이브랑 엘가도 네그로 [이것이 네가 웃는 방식] 있었다.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금요일에 두꺼운 책으로 눌러놓았던 가죽 매트 꺼내서 엘가도 네그로 틀었는데 매트는 별로 펴진 것 같진 않고 가죽이면서 정전기는 왜 이렇게 많이 나는 건지... 확실히 LP로 음악을 듣는 재미는 있는데 관리하기가 너무 어렵다.

엘라도 네그로는 물론 좋았다. 겉비닐에 붙어 있는 문구 "...and a high amount of smile-inducing vibes"도 너무 귀엽고.

<굿모닝 오디오> 오늘도 계속 읽었다.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디오파일들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쯤 감을 잡을 수는 있었다. 그들이 어떤 환상을 쫓는지 대충은... 새로운 장비, 새로운 소리를 듣고 싶은 이런 불치병 불치병... 

집에 가기 전에 빈스 과랄디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들었다. 역시 빈스 과랄디의 피너츠 앨범은 하나 사야지? 했는데 품절이라 사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리미티드 호일 버전'이라는 게 새로 나왔길래 바로 샀는데 너무 기대 이하다. 이게 바로 리이슈로 마구 찍어대는 스테디 바이닐의 예인가? 재킷이 말 그대로 호일 재질인데 딱히 좋을 것도 없고 이너 슬리브는 그냥 하얀 구멍 뚫린 얇은 종이인데 가루가 떨어지고 레코드는 흐릿한 얼룩들로 지저분했다. 그래도 노래는 좋았다.


21.11.18.

*구입한 기기 
-올드첸 EL34 진공관 앰프
-캐슬 나이트1 스피커 

간밤에 <굿모닝 오디오> 읽다 잠들었다. 생각보다 일찍 깨서 씻고 나가지는 않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소파에 앉아 티비로 유튜브 봤다. 음성검색 한다고 리모컨에 대고 진공관 포노앰프 알리, 진공관 프리앰프 중얼거리며...

여러 영상들이 있었는데 녹음된 소리를 다시 TV 스피커를 통해 들으니 딱히 특색을 알기는 힘들었다. 평가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DIY 키트로 직접 만드는 영상도 있어서 나도 한 번?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그래도 언젠가 만들면 좋겠다. 기계식 키보드도. 

노브사운드보다는 올드첸이 나은 것 같고 이왕 사는 거 10만원대보다는 20만원대를 사는 게 낫겠지. el34? 대부분의 물건에 만족하는 막귀인 나로서는 아마 일단 사면 100퍼센트 만족할 것 같다. 험노이즈 나오는 하품만 걸리지 않는다면. 

버스 타러 가면서 새로 바꾼 아이폰에 블루투스 헤드폰 연결해서 듣다가 소리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일단 출력이 좋아졌고 해상도나 공간감도 덩달아 좋아져서 같은 헤드폰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이폰 X가 13이 된 것만으로 이렇게 좋아진다고?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다. 

  1. 아이폰에 기술적인 개선이 있었다. 출력이라거나 코덱이라거나...
  2. lte에서 5g가 되면서 스포티파이에서 높은 품질로 스트리밍을 하게 되었다.
  3. 드디어 병에 걸렸다 오디오병...

가볍게 생각하면 1이 맞겠지만 아닐 것 같고(그렇다면 홍보를 했을 테니까) 2일 수도 있겠지만 LTE가 노래 한곡도 풀로 스트리밍 못할 정도는 아닐 것 같고 그러니 정답은 아마 3번이겠지... 

작업실 앞에는 오늘도 택배가 쌓여 있었다. 라보엔드에서 온 너바나 [언플러그드 인 뉴욕]과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 [타이드], 메타복스에서 온 싸커 마미 [클린]과 카녜 웨스트 [예], 그리고 아마존에서 온 데이먼 알반 [분수가 더 가까울수록 더 맑은 물줄기가 흐른다]! 

문득 레코드 레코드라는 이름을 다른 걸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RB로 줄일 수 있으면 좋을텐데. Record Discord라는 이름이 떠올랐는데, Record Record 같은 반복도 아니고 RB로 줄일 수도 없으니 일단 보류.

일하면서 컴퓨터로 음악 듣는데 매번 느끼지만 어떤 지점에서 소리가 조잡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에는 잘 모르겠는데 포스트록 계열처럼 소리가 꽉 찬 노래는, 엠넷 같은 데서 무대가 너무 화려할 때 케이블이나 스트리밍이 그걸 받쳐주지 못해서 깍두기로 보이는 것처럼, 소리가 해상도가 떨어지고 얇고 지저분하게 들린다, 라고 쓰는데 나 정말 오디오병 걸린 거니? 한때는 나도 나만의 쿨에이드 리얼리티를 만들고 그것에 만족할 줄 알았었는데... 

상우씨가 오디오 테스트용으로 나온 음원을 보내줘서 들어보는데, 확실히 인티머스 미니와 PSB IMAGINE XB의 조합은 어딘가 부족하다. 앰프의 문제인지 스피커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예스24에서 마블발 [Loveless]랑 빅 띠프 [U.F.O.F] 왔다.

결국 새벽 4시까지 원고는 쓰는둥 마는둥 하고 눈이 벌개지도록 서칭하다가 올드첸 EL34 앰프랑 캐슬 나이트1 스피커 질렀다...psb xb랑 비슷한 급의 저렴한 입문기 스피커인데 성향이 다르고 진공관이랑 매칭하면 좋다고 하길래. 영국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하고... 이럴 거면 그냥 일찍 지르고 마는 건데 괜히 며칠 고민하며 시간만 버렸다. 그런데 정말 어떡하지. 8개월 무이자 할부가 너무 많아서 앞으로 8개월 동안은 가만히 누워서 숨만 쉬어야 할 지경이다... 정작 오늘은 LP를 듣지도 못했네.


21.11.19.

점심으로 레토르트 전복죽 전자렌지에 돌려 먹으며 어제 못 들은 엘피들 들었다. 먼저 알반의 뭐더라... 맑은 분수가 가깝게 흐르고... 아무튼 그거. 작년인가? 유튜브에서 아이슬란드에 머물던 알반이 혼자 피아노를 치며 팬데믹 라이브 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보고 그런 느낌의 미니멀한 노래들을 담고 있는 앨범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좋았다. 

다음은 카녜 웨스트 들을까 하다가 조빙 들었다. 중량반의 두툼한 느낌이 든든했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피커가 발송되었다는 문자를 보고 내가 또 뭘 사버린 건가 조금 자책했는데, 조빙을 들으며 스피커와 앰프를 산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소리가 어딘가 조금 부족했고, 새로 산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가 그걸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들어봐야 알겠지만. 

결국 카녜 웨스트까지 들었다. 엘피로 듣는 힙합 앨범이 좋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또 했다(근데 전에는 언제 했지? 했다는 기억만 있고 왜 했는지는 잘...). 그냥 싱글 커버에 종이 슬리브 그리고 레이블에는 아주 작게 원을 그린 카피라이트 정보만 있는 심플한 구성이었다. 심지어 A면 B면 구분도 없어서(내가 못 본 걸 수도 있고) B면부터 걸었다. 그래도 4만원에 사지 않고 26800원에 살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LP로 듣는 'ghosttown'은 역시 너무 좋고 프라임 마그낫원하고도 잘 어울렸다. 저음은 괜찮아. 전체적으로 그냥 좀 둔한 느낌이라서 그렇지(앗 또 병적인 발언을 하고 말아버려)... 

집에 가려는데 알라딘에서 오아시스 [네브워스 라이브] 와 있었다. 3LP라 두툼하고 좋아버렸다. 택배 상자에서 꺼내놓고 나와서 버스 타고 가면서 스포티파이로 [네브워스 라이브] 들었는데 왜 이렇게 심심하지? 라이브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지지는 않고 어딘가 맥빠지고 지루한 느낌이었다. 음원 자체가 그런 건지 헤드폰이 어제 너무 무리해서 오늘은 좀 쉬어 가려는 건지... 엘피는 어떨지 모르겠고, 이렇게 병은 깊어만 가고... 

그래도 오랜만에 듣는 네브워스 버전 '슬라이드 어웨이'는 좋았다. 후반부에 둘이 테잌미다운(리엄)~ 슬라이드 어웨이(노엘)~ 테잌미다운(리엄)~ 슬라이드 어웨이(노엘)~ 한참 반복하다가 4분 40초쯤 같이 지르는 부분... 늘 좋지만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워파? 

버스 안에서 <굿모닝 오디오>도 마저 읽었다. 오디오의 세계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잘 들을 수 있는 정도에서 만족해야겠다는 당연힌 생각을 다시 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이다. 비록 인티머스+psb xb 조합은 조금 아쉽고, 알리 진공관과 캐슬 나이트1의 조합은 아직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운전해서 안산 가면서 록발라드 플레이리스트 들었다. '퍼플 레인'이 특히 어울리는 날씨였다. 그런데 오늘은 차 스피커도 평소보다 더 별로인 듯한 이유가 뭐지? 공기 때문인가? 그러고 보면 오디오는 전기를 먹고 소리를 내지만(그래서 파워케이블이 음색을 두텁거나 얇게 만들 수 있고 나아가 수력발전인지 원자력발전인지가 소리의 질을 가르지만... 음 갑자기 손가락을 자르고 싶네...) 소리는 공기를 타고 전해지니 무엇보다 바꿔야 할 건 공기 아닐까? 

나윤이는 자고 있었다. 지은이랑 같이 [쇼미더머니] 보고 핸드폰으로 <레코드의 비밀>까지 마저 읽었다.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무언가에 걸린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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