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부는 칼바람에 입고 있는 점퍼를 여몄다. 목덜미로 들어오는 찬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나뭇가지에 색이 바래 버석버석해진 잎들이 낙엽이 되어 바람에 날리며 시린 소리를 내었다. 걸을 때마다 바닥의 수분기가 없는 낙엽이 바사삭 스러졌다. 가을이었다. 

독서의 계절이고 천고마비의 계절. 그리고... 옆구리도 시린 계절이다. 강의동까지 이어진 그 낙엽길을 걸으면서 루카 카네시로는 다시 시린 옆구리를 팔짱을 끼며 달랬다. 가을이었다.

강의 시작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학부생의 시간표란 으레 빈 시간이 많은 법이었다. 평소에는 그냥 공강을 학생회관 구석에서 떼우곤 했는데 오늘따라 떨어지는 낙엽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천천히 교내를 걸으며 그 가을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랬다.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 외롭다 느꼈을 뿐이었다. 그렇다. 가을이었다.

길의 끝에는 이미 산처럼 쌓아둔 낙엽더미가 보였다. 다가가 살짝 발로 밟아보았다. 푹 하고 들어간 운동화 밑창으로 보도블럭의 모서리가 밟혔다. 잠깐 그대로 발로 휘저어보고는 이내 발을 빼내었다. 잘 정리된 것을 망쳐선 안될 것이다. 고개를 들어 자신의 바로 위에 가지를 드리운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거의 앙상해진 검은 나뭇가지가 쓸쓸해 보였다. 다시 쌀쌀한 제 몸을 꽉 껴안았다. 가을이었다.

고개를 돌려 근처에 있는 시계탑을 보았다. 강의 시작 전까지는 이제 30분 정도 남았다. 루카는 슬슬 강의실로 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다. 몸을 돌려 방향을 바꾼 순간이었다. 바쁜 모양인지 급하게 다가오는 한 사람과 서로를 보지 못한 채 부딪힐 뻔했다. 루카가 먼저 몸을 틀어 비켰지만 낙엽더미를 밟고 그대로 미끄러져 뒤로 주저 앉았다. 루카의 몸이 그대로 낙엽더미 속에 파묻혔다. 낙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급하게 다가왔던 사람이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죄송해요! 괜찮으신가요?"

루카는 그 사람이 뻗은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요."

별 일은 아니었다. 낙엽더미에 쓰러져서 아프거나 다치지도 않았다. 앞에 있는 사람이 넘어지는 것보단 튼튼한 자신이 넘어진게 나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일어나서 보니 자신의 시야보다 조금 낮은,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안경을 쓴 채로 전공책을 한 팔로 껴안고 있는 캠퍼스 내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의 사람이었다. 미안한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모습에 루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이네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그 사람은 벙찐 표정이 되었다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루카가 같이 웃고 있자 그 사람은 살며시 손을 뻗어 루카의 머리카락에 붙어있던 낙엽 하나를 떼주었다. 더 붙어있나? 루카가 손으로 제 머리를 더듬거리자 다시 앞에 있던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머리는 괜찮으니까 옷이나 털어요."

루카는 그 말에 한 손으로 자신의 옷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주위를 보았다. 정리되었던 낙엽이 주위에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unpog."

루카의 말에 다시 웃음이 터진 그 사람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루카에게 말했다.

"지금 도망가면 아무도 모를거에요."

그리고 루카의 손목을 잡았다. 루카가 반응하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했다. 

"아...?"

"미안해요. 제가 좀 바빠서... 강의 끝나고 사과의 의미로 커피 한 잔 살게요. 어디로 가요?"

가을 공기를 가르며 두 사람은 달렸다. 발 아래로 다시 낙엽이 바스러졌다. 이제는 적당히 오른 체온에 스치는 찬공기가 기분이 좋았다. 달리다 자신이 강의를 들을 강의동 근처에 도달하자 루카가 말했다. 

"전 여기요!"

두 사람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멈춰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살짝 달뜬 숨을 서로 내쉬었다. 

"전 옆 동인데... 오늘 강의 끝나면... 5시쯤?"

"저도 그쯤이네요."

"그럼 아까 거기서 만나요. 아, 자기소개가 늦었네요. 전 슈 야미노라고 합니다."

"...루카 카네시로라고 합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가을 바람이 불었다. 낙엽이 떨어지며 내는 가을의 소리가 이제는 시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웃으며 돌아 뛰어가는 슈 야미노의 흩날리는 포니테일을 보며 루카 카네시로는 아까 낙엽이 붙었던 제 머리를 한 번 쓸었다. 타이밍 좋게 낙엽 하나가 그 옆으로 떨어져내렸다. 가을이었다.





 




계절감 낙낙허니 졸려서 퇴근하고 싶단 기분으로... 호닥닥...

근데 이미 롱패딩의 계절이네요. 

이런건 썰로 풀어야하나 싶은데... 이젠 생각이 안나서 여기서 우선 드랍.


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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