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야 그녀는 오러의 색을 정확히 판별 할 수 있었다. 눈앞 가까이서 본 오러는 폴의 것보다 어두웠다. 베인 곳에서 피가 솟아 오르는 게 느껴졌다. 구리색 오러가 속을 헤집다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죽이려 찌른 것이었다. 뒤늦게 통증이 찾아왔다.

"너, 누구야."

그는 기우는 실버의 몸을 거칠게 옆으로 밀어냈다. 다시 로브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린 남자는 왕궁으로 뛰어갔다. 실버는 감겨가는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사라져버렸던 오러는 다시 생겨나지 못했다.

-

폴 아이작은 우울하게 죽음을 기다렸다. 브렉 리우드. 득과 실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인간이 계속해서 임무를 저버리는 저를 살려둘 리가 없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자유가 보장된 곳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행복했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지 않아도 하루 세끼 밥을 주었고 자유시간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실수를 했다고 개처럼 부리지도, 채찍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되려 목을 조여 오는 건 제 본 신분과 떼어 내려야 떼어 낼 수 없는, 하나 뿐인 피붙이 였다. 

"카터 아이작,"

폴은 형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곧 얼굴을 마주하게 될 테지만 그를 앞에두고 불러 볼 수는 없을 터였다. 목이 메여 목소리가 잠길 테니. 

폴은 후문을 통해 왕궁 밖으로 향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축제 안내를 맡은 것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었었다. 한창 진행되고 있는 축제의 밝은 기운이 등을 마구 긁었다. 그는 오늘 꽃을 사서 그녀에게 주고 싶었었다. 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 들었는데.

"하하, 당신은 싫어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한참 걸었다. 이쯤이면 적당히 며칠 뒤에 발견 될 것이다. 아름다운 파란 눈동자에게 너무 썩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는 그러니까 적당히 이 위치가 좋겠다고 폴은 생각했다. 뒤로 고개를 돌리면 왕궁이 보이고 앞을 바라보면 무성한 숲이 보이는 한적한 장소. 바람이 녹색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나뭇잎으로 착각한 듯했다.

그가 얼마나 서 있었을까, 왼쪽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얼굴이 좋구나 폴."

"아,"

폴은 고개를 돌렸다. 

"형."

검은 로브를 두른 남자가 몇 발자국 앞에 서 있었다.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

"형은 조금 말라 보이네, 살이 빠졌나봐."

"물론. 덕분에."

폴은 흉하게 여기저기 찢어진 로브 아래쪽을 응시했다.

"돌바닥에 구르기라도 했어?"

"네게 친구가 있는 건 예상 못해서. 그것 덕분에 좀 굴렀어."

폴은 멈칫했다.

"하하하! 나 친구없는데. 그냥 혼자 구른 거 민망해서 그러지?"

바람이 다시 불어와 로브의 모자를 걷어냈다. 폴의 것보다 조금 긴, 아주 조금 더 짙은 머리카락이 확 풀려났다.

"없기는. 네 친구 덕분에 죽을 뻔했는데."

깡!

순식간에 다가온 카터의 검과 단도가 맞붙었다. 구리색 오러가 밝은 금색 오러를 마구 찢었다. 폴의 구두가 밀려났다. 폴은 오러를 둘러 방어하지도, 터트려 공격하지도 못했다. 그냥 제 형을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형, 나 힘들어. 그만하자."

챙!

금빛 오러는 모두 부서졌다.

"내가 너를,"

끼긱-

"헤이론에 보낸 건,"

챙!

폴의 단도가 어디론가 날아가 꽂혔다. 폴은 그대로 미끄러지듯 넘어졌다. 카터가 거칠게 올라 탔다.

"네가 네 주제를 알고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난 알고 있," 

검이 폴의 복부를 스쳤다.

"아악!"

피가 흩뿌려졌다. 초록색 눈에 분노한 얼굴의 형제가 보였다.

"넌 모른다 폴. 넌 지금 네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지. 네가 무슨짓을 했는지도 말이야."

나는 우릴 고통스럽게 만든 놈의 명령을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폴은 그렇게 뱉고 싶었다. 형도 이곳을 경험하면 변할 거라고. 여기서 하루만 지내보면 변할 거라고 뱉고 싶었다.

"자라드 트위츠와 그 호위. 네가 데려간 것 모를 줄 알았나."

"뭐?"

"그때 그 둘은 죽어가고 있었어. 제국의 건설이 얼마 남지도 않은 순간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네가 모두 망쳤지."

폴은 움직일 수 없었다.

"너 때문에 브렉이 몇이나 죽였는지 알기나 해? 응? 궁인의 절반이 죽었다. 네가 주제도 모르고 날뛴 대가로 얼마나 많은 이의 목이 잘렸는지 넌 모른다."

닮은 두 눈이 서로를 담았다. 누구도 울지 않았지만 그들은 울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한테 화가 난 건데?"

"무슨 소리지?"

"나한테 화난 거 아니잖아."

조금 더 성숙한 녹안이 흔들렸다.

"날 지금 죽여버리고 얼마나 더 힘들어 할 거냐고 물었어."

"죽기 직전에야 입이 사나 폴."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구리색 오러가 잠시 멈추었다.

"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사람은 날 별로 안 좋아하지만 뭐 어때. 형이 전에 그랬잖아. 우리도 나중에 살만해 질 거라고. 난 지금 그래. 살아있는 거 같아. 예전이랑은 달라."

"…그만."

"왜? 나 죽으면 따라 죽게?"

"그럴 일 없어."

폴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위선자. 나보다도 뭐가 옳은지 모르지."

"닥쳐!"

햇빛이 검을 비추었다. 높게 들어 올려진 검이 정확히 폴의 심장을 겨누었다. 검 끝이 목적지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할 때, 

세상에서 가장 난폭한 검은 오러가 둘 사이를 갈랐다.







소설 [죽은 장작에게]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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