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학문적 고증과 장르에서의 약속을 착각하고 있다. 장르소설에서 고증은 틀려도 된다. 장르에서의 약속은 틀리면 안된다. 무협에서 제 발등을 밟아 오르는 것은 나오는 것은 물리적 고증을 어긴다. 하지만 장르에서의 약속은 어기지 않는다. 이것은 장르소설에서 허용된다. 학문적 고증은 창작물에서 중요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미파에 여승 외의 남자 승려도 있었다는 건 학문적 고증을 어긴다고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최근에 와서는 장르에서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장르소설에선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분명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존재할 것이다). 물론 학문적 고증과 장르에서의 약속은 일치할 때도 있다. 이를테면 소림사의 개파 조사가 달마라는 사실은 학문적 고증과 장르에서의 약속 모두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고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소설 속에서 개연적으로 달마가 아닌 제3 자를 내세워(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이라던가) 학문적 고증을 어기더라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많은 장르들은 이러한 문제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편인데(SF조차도), 가장 첨예한 것은 대체역사 장르이다. 작가는 학문적 고증과 장르에서의 약속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한다. 이 장르는 학문적 고증이 곧 장르에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테크노 스릴러, 밀리터리 장르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더 많은 소장르를 쓰는 작가들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물리 트릭을 사용하는 밀실살인 추리소설, 지역 민담설화에 기대고 있는 공포소설 등도 그 레퍼런스가 실제 세계에 기반하고 있고 거기에 기대고 있다. 항상, 작가는 자기가 무슨 장르를 쓰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단편 「미궁에는 괴물이」가 네이버 ‘오늘의 문학’란에 실려 첫 고료를 받았다. 이후 여러 지면에 장르소설 단편을 게재하고 웹소설을 연재했다. 소설집 『백관의 왕이 이르니』, 웹소설 『슬기로운 문명생활』을 썼다.

위래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