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중간을 가르는 홈런! 이렇게! 또 한 번! 승부의 추가 기웁니다!”

 

 사람들이 열광한다. 정확히는 약 2/3에 달하는 사람들이 열광한다. 치어리더는 물론 응원단장까지 팔짝팔짝 뛰고, 더그아웃 밖으로 몸을 기울인 선수들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하다. 나는 절반쯤 가려진 내 세상 안에서 한껏 연기를 한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고, 팔은 한껏 돌린다. 뛰어요! 3루 코치에 감정을 이입한다. 실제로는 저 사람이 뛰어도 안 뛰어도 내 세상이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지만, 저 사람의 발끝에 내 세계의 흥망이 달린 사람처럼 군다.

 

 “아, 대단합니다! 대단한 집중력이었어요!”

 

 홈 플레이트를 밟은 선수가 모자를 집어 던지며 포효하고, 하늘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사람들은 그의 세리머니에 함께 소리높인다. 

 

 “얼마 전 출산을 하고 와서…. 사실 ㅇㅇㅇ선수의 복귀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어폰을 통해, 내가 보는 세상과 관점이 다른 곳의 이야기가 들린다. 

 

 “야구에서는 분유 버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게 남자 선수들에 국한되었다는 평이 많았는데, 지금 ㅇㅇㅇ 선수가 모든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피식 웃음마저 났다. 그래, 배가 이만큼 나온 타자만 즐비하던 시절이 있었지.

 

 “저기?”

 

 응원 단장이 다가와 내 머리를 가볍게 흔든다. 내게는 발언권이 없으니, 작은 구멍을 응원 단장 쪽으로 돌리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이벤트 가야죠.”

 

 아, 사람들은 이 맛에 직관을 오니까…. 벌떡 일어나던 중, 무거운 탈이 기운다. 안돼! 다급히 탈을 부여잡으려는데, 두꺼운 패드에 막힌다. 하지만 탈은 온전히 내 어깨 위였고, 응원 단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조심.”

 

 미처 말을 못 했네. 내 나이 스물다섯, 나는 취업 대신 이 탈 속에 숨었다. 그리고 나의 작은 세계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햇수로는 삼 년, 나는 이 속이 마음에 든다. 

 

 “이쪽으로….”

 

 평소 안내 요원의 손을 잡는데, 오늘은 응원 단장이 친히 나를 모시고 간다.

 

 “발 조심.”

 

 여자의 상냥한 말투와 달리, 목소리는 잔뜩 쉬어 끝이 갈라진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은가?”

 

 더위를 탓하고 싶다. 삼연전이 하필이면 해가 쨍쨍한 날이라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당신의 힘찬 발구름을 보다가 멍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인형 탈은 과하게 움직여야 조금 티가 난다. 여자는 나를 들여다보다 내 팔 부분을 잡았다. 

 

 “끝나고 회식할 거 같은데…. 올래요?”

 

 단 한 번도 참석한 적 없는데, 여자는 매번 묻는다. 가만 보면 거의 매일 회식하는 것 같은데, 내게는 일요일 경기에만 묻는다. 즉, 내일은 쉴 수 있다. 땀이 주르륵 흐르는 등으로 차가운 바람이 새어드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과하게 가로 젓자,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쉽네. 생각 바뀌면 알려줘요.”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 한 명이 내 배를 손으로 밀쳤다. 

 

 “마스코트 때리면 안 돼요!”

 

 안전 요원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응원 단장이 말했다. 

 

 “자, 오늘도 돌아온 함께 외쳐요!”

 

 아이를 지나쳐 외야 응원 단상에 서자마자, 응원 단장이 마이크를 건네받고 소리친다. 힘찬 목소리에 나까지 덩달아 기운이 난다. 이벤트는 별것 없다. 이닝 중간, 클리닝 타임에 지루하지 말라고 하는 작은 이벤트다. 선물은 로고가 그려진 모자나, 응원 도구, 경기장 내에 입점한 가게의 쿠폰 따위고, 특별한 경기가 있는 날은 사인 볼 등이 주어진다. 사람들의 반응은 반으로 나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대형 전광판을 보며 피식거리고 만다. 이곳에서 무관심은 존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축하드립니다! 나오세요!”

 

 언제나 신이 나 있는 저 사람 때문이다. 치어리더들은 저마다 팔을 흔들었고, 잘 정리된 겨드랑이가 그을려 있었다. 응원 단장은 늘 치어리더 중 하나 혹은 선수 중 누군가와 염문설이 돈다. 저 반반한 얼굴에 탄탄한 몸, 매력적인 성격과 달리…. 미혼이고, 연애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6개 구단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우리 응원 단장은 언제나 긴 머리를 질끈 묶는다. 지금은 그 머리카락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이거.”

 

 진행 요원이 건네주는 모자를 받아들고, 응원 단장에게 넘겼다. 여자는 나를 보고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에게 모자를 받은 아이는 카메라를 보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친다. 모두가 카메라에 담기는 아이를 보고 있지만, 내 눈은 응원 단장에게 꽂힌다. 아이는 내게 다가와 흥분을 식힐 듯 와락 안긴다. 어둡고 더운 이 세계 속에서, 나는 오늘도 유쾌한 마스코트를 연기한다. 탈 밖의 세상보다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

 

 매 경기, 나는 이 작은 세상을 시작하고 종료한다.

 

*****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응원 단장이 은퇴를 선언했다. 

 

 “저는 팬의 한 사람으로 이곳을 방문하겠습니다. 종종 뵐게요!”

 

 한껏 웃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응원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응원 단장의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펼쳐두고 손뼉을 쳤다. 

 

 “아쉬워요.”

 

 치어리더들은 자리에 앉는 응원 단장에게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넨다. 인파에 둘러싸여 손을 흔들던 응원 단장이 이쪽은 본다.

 

 “아, 마스코트!”

 

 응원 단장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채 식지 못한 열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응원석 구석에 퍼져있던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폴대에 기대었던 등이 뻐근하다. 

 

 “오늘은 회식 안 와요?”

 

 뭐가 좋다고 가요? 그리고 은퇴가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겠다. 그냥 한 번이라도 가볼 걸, 그까짓 회식…. 한 번이라도 더 가볼걸…. 가서도 구석이 아니라 저 사람 곁에 한 번이라도 앉을 걸…. 처음 들어온 뒤 참석했던 어색한 회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이야.

 

 “아쉽네.”

 

 정말 아쉬워요? 그런 사람이 은퇴해요? 이유도 명확하지 않고, 서운한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요? 나도 모르게 원망이 더해지는 걸 보면, 내가 스스로를 가둔 이 세상이 내 몸에 꼭 맞을 만큼 작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작고 어두운 인형 탈 속의 세계는 나를 옹졸하게 만든다. 

 

 경기가 끝난 경기장은 쇠스랑으로 바닥을 훑는 직원들과 롤러로 바닥을 다지는 직원들이 번갈아 오간다. 그라운드 클리어를 매단 작은 기계가 분주히 오가는 사이, 선수들은 진작에 인사를 마친 뒤에 퇴장했고, 지금은 수훈 선수 인터뷰마저 끝났다. 

 

 비어버린 경기장을 둘러싼 관람석, 그중 1루 뒤의 응원석, 이곳에는 응원 단장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팬들이 남아 안녕을 한다. 이 사람들마저 퇴장하면 이곳은 언제 그런 열기가 있었냐는 듯이 차갑게 식을 것이다. 

 

 가을이 왔다. 야구도 시즌이 끝났다는 뜻이다. 

 

 태양계의 태양 같던 응원 단장이 사라지고 나면,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나면 나의 궤도도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저 사람과 함께 매 경기 나의 세계를 이룩하고, 탈을 벗으며 다시 무너뜨리던 매일이 이제 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계를 탈출하기로 했다. 치어리더들의 헹가래를 끝으로 퇴장하는 응원 단장은 미련이 남는지, 연신 경기장을 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경기장 쪽 기둥에 몸을 기댄 채, 화려한 퇴장을 지켜본다. 

 

 잘 가요. 언젠가는 내 마음을 전할까 상상했는데, 응원 단상 위에서 당당하게 서서 나를 볼 때면 정말 나를 보는 것은 아닐까 착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낭만적인 상상 속 세상이 사라지겠네요. 

 

 행복하세요. 소문처럼 결혼하는지, 다른 곳으로 비밀리에 스카우트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당신은 어디에서든 주목받고 반짝거리기만 기도할게요. 

 

 기도는 불이 꺼지는 경기장에 버려졌다. 

 

*****

 

 “ㅇㅇㅇ 선수, 달립니다! 발로 만들어낸 2루타 아니겠습니까?”

 “지난 시즌보다 기량이 상승한 것 같습니다!”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다른 여자가 응원 단상에 섰고, 치어리더들은 나의 그녀를 잊기라도 한 듯이 새로 온 응원 단장에게 적응했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다시 이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은 전과 같이 뜨거운 열기를 뿜는다. 응원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새로 온 응원 단장의 응원법이 단상을 덮는다.

 

 이 작은 세계를 탈출하면 내가 정말 별것 아닌 사람이 될까 봐, 이 속에 갇히면 그래도 박수받으니까…. 여러 이유로 이 안에 남았다. 

 

 작은 목표는 있다. 급하게 관둔 전임자를 대신해 들어온 곳이다. 복귀 후, 500번째 경기를 마치면 은퇴하고 싶다던 ㅇㅇㅇ선수의 인터뷰에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나의 500번째 경기가 끝나는 날…. 이 세계를 떠날 예정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응원 단장이 떠난 뒤로 줄곧….

 

 즉, 이제 내가 이 세계를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이번 주 목요일, 평일 삼연전이 끝나는 평범한 날, 경기가 스윕인지는 상관없이 이 동그랗고 귀여운 마스코트와 말끔하게 이별할 것이다. 

 

 다른 세계를 찾아야겠다. 

 

 내가 나로 있는 곳, 두려움이 없는 곳, 보호 받는 기분이 드는 곳, 두꺼운 인형 탈을 대신할 세상을 찾아봐야겠다.

 

 앞에 선 진행 요원의 어깨를 잡고, 좁은 관람석 사이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내려갔다. 구단주들은 여기가 아니라 박스석에서 관람하니 모르겠지…. 사람이 앉으면 의자에 무릎이 닿는 플라스틱 의자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이겠지. 지금처럼 누군가 떨어뜨린 케첩에 미끄러지는 좁은 계단은 더욱 모르겠지? 미끄러지던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 부분을 부여잡았다. 탈이 벗겨지는 것은 인형 탈 세계에서 터부시되는 일이다. 터부시를 넘어 금기다. 아니, 일어나서 안 되는 재난에 가깝다. 그 재앙의 문턱에서 나는 반가운 목소리를 듣는다.

 

 “조심.”

 

 어? 그녀다. 

 

 “같은 분이네요. 잘 지냈어요?”

 

 응원 단장일 때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라면 나는 단연 지금이 더 좋아 보인다 말할 것이다. 무언가 홀가분해 보이는 응원 단장은 곱게 화장했던 때와 확연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무대 화장을 지워낸 배우 같다. 본 모습도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처음 갔던 회식에서 마주한 말간 얼굴이 이제야 떠오른다. 

 

 여자의 옆에 앉은 작은 아이가 테이블을 아래로 발을 동동거리다 말고 나를 올려다본다. 어린아이다. 아주 어린 아이, 이제 갓 말을 뗀 듯한 아이가 여자 옆에 나란히 앉았다. 어린이용 음료수를 쪽쪽 빨아서 마시던 아이가 음료수를 내려둔다. 하지만 그 작은 손은 정확하지 못해서 테이블 위로 음료수병이 넘어져 버린다. 

 

 “조심.”

 

 내게 건네던 말투로 아이를 달랜다. 아이가 내게 안아달라는 듯 팔을 벌렸다. 이 작은 세계는 아늑해서 포근함을 다른 이에게 선뜻 내어줄 수 있다. 성심껏 팔을 벌리자, 아이는 좋다고 웃는다. 이제 보니 여자를 닮았다. 여자는 입술을 달싹거렸고, 진행 요원의 무전을 통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동시에 귀에 꽂아둔 이어폰을 통해, 나와 다른 시야로 경기장을 보는 이들의 탄성이 들린다.

 

 “뻗어가는 타구! 담장! 담장! 넘겼습니다! ㅇㅇㅇ, 오늘도 홈런입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이는 이 소음이 익숙지 않은지 귀를 막았다.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두툼한 손으로 아이의 뺨을 감쌌다. 이 탈이 얼마나 지저분한가는 아이가 검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자 떠올랐다. 그리고 이 장면을 놓쳤다며 아쉬워하는 남자가 양손 가득 먹을 것을 들고 와서 탄식했다.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인 것 같다. 그래, 열애설에도 결혼설에도 흔들리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구나…. 잘 어울린다. 게다가 닮았어....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쓸쓸한 마음이 든다. 내 작은 세계는 여전히 굳건하고, 나는 다시 탈 속에 숨는다.

 

 연타석 홈런이자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승을 기록하는 경기, 오늘도 수훈 선수는 ㅇㅇㅇ 선수다. 인터뷰를 멀리서나마 지켜보던 나는 탈의실로 향했다. 늘 이곳을 쓰는 것은 응원 단장과 나 뿐이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외부에 대기실이 있었고, 치어리더들은 죄다 남자라 같은 곳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탈을 벗어내자, 형광등 빛이 부서져 내린다. 갑자기 들이치는 밝음에 눈을 꾹 감았다 뜨자, 내 눈앞에는 신기루가 보인다. 전직 응원 단장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가 쓰인 문에 기대어 서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땀에 절어 이마에 달라붙은 잔머리를 떼어내던 나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오늘도 회식은 안 가요?”

 

 말 없던 내게 다가온 그녀.

 

 “오해할까 봐 왔어요. 아까 우리 오빠랑 조카.”

 “네.”

 “오늘은 나랑 맥주 마시러 갈래요?”

 

 그 수 많은 팬이나 치어리더를 두고, 굳이 저랑요? 되묻기도 전에 그녀가 탈을 안아 든다. 

 

 “들었어요. 내일까지 한다고….”

 “네.”

 “그럼, 내일 마실까?”

 

 냄새날 텐데…. 탈을 쓴 그녀가 나를 보고 물었다. 내 세상에 뛰어든 여자를 멍하니 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탈 밖으로 나온 여자는 환하게 웃었다. 

 

 오늘, 내 499번째 세계가 종료됩니다. 내일도 이어지겠지만, 오늘은 더욱 중요하네요. 이제야 이해된다. 수훈 선수인 ㅇㅇㅇ의 인터뷰가….

 

 “매 경기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기분입니다. 매일 같은 경기지만, 저는 제 세상을 이곳에 두고 하루에 한 번씩 세우고 무너뜨려요. 그래서 이 곳에서 제 끝을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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