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론,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헤라님에게 황금뿔 사슴을 선물했다지? 나한테는 뭐 줄 거 없어?"

"훗. 그걸 왜 줬는데? 원흉은 너야." 

"또 다프네 얘기야?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에로스가 장난으로 쏜 화살에 맞았거든. 미안하게 생각해."

"미안하다고하면 끝인가? 정말 쉽네. 너나 그분이나."


이 때, 두 신들의 눈에 시리우스와 포브스가 달려 오는 게 보였다. 아폴론은 시리우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다프네 죽은 거 아니었어?"

"다프네가 낳은 딸이야. 이번에도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면 가만 두지 않아. 동생이라도 활로 쏘아 죽일 거야."

"말했잖아. 그 때는 에로스의 장난에 넘어간 거라고. 근데... 정말 똑같네."


아폴론은 아르테미스를 만나러 왔다가 다프네를 보고 반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이미 다른 사랑에 빠져 있었다. 아폴론의 구애를 싫어하며 도망치다가 강의 신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나무로 변신했다.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포레이아의 님프가 아폴론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 소문은 제우스의 귀에도 들어갔다. 다프네는 개로 변신하는 능력으로 제우스의 접근을 한 번은 피했다. 그러나 바람기 많은 제우스를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던 헤라까지 따돌릴 순 없었다. 헤라는 다프네를 영원히 개로 만들어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제우스가 수캐로 변신해 다프네를 범했다.


이 모든 일이 아르테미스가 포레이아를 잠시 비운 사이에 벌어졌다. 아르테미스는 충격에 빠졌다. 당시 호위 님프들을 모두 파직했다. 쓸데없는 화풀이였다. 누가 제우스를 감히 막을 수 있을까? 


이후 다프네의 배는 점점 불렀고 시리우스의 자매들이 태어났다. 다프네는 산고 끝에 그만 세상을 떠났다. 아르테미스는 심한 자책감에 빠졌다. 그러나 다프네의 딸들만큼은 귀여워했다. 특히 시리우스는 애교가 많아 아르테미스에게 달라 붙었다. 그렇게 여신은 서서히 다프네를 잊었다.


저주가 반쯤 풀린 시리우스를 처음 봤을 때 아르테미스는 다프네가 부활한 줄 알았다. 윤기나는 검은 긴 머리와 하얀 피부, 그리고 지중해를 담은 듯한 파란 눈을 가진 시리우스는 누가 봐도 다프네였다. 

볼 때마다 가슴 아파 무시하려 했지만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목욕 시중을 들라고 불렀는데 시리우스가 그만 사고를 친 것이다.



여신님은 포와 나를 보시더니 손짓을 하며 부르셨다.

"오늘 사냥은 없어. 내일 다시 와."

"여신님, 그럼 저도 내일부터는 사냥을 할 수 있나요?"

여신님은 내 얼굴을 한참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내일부터는 너도 사냥해."

"정말요? 그럼 목욕은요? 목욕 시중 들러 가도 되나요?"

"... 그렇게 해. 근데 견녀..."

"네? 여신님."

여신님은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내가 준 옷 입었네. 많이 예쁘구나."


많이 예쁘구나. 많이 예쁘구나. 많이 예쁘구나...

내 머릿속에서 그 말만 끝없이 반복되었다. 얼마만에 들은 반가운 말씀인지.

나의 심장이 아플 정도로 빨리 뛰었다. 엉덩이가 또 씰룩거렸다. 나도 모르게 여신님에게 다가가 무릎 위에 앉아 버렸다. 그리고 여신님의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그걸 보고 있던 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시리...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다행스러운 건 이번엔 여신님이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그러기는커녕 가만히 한숨을 쉬시더니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이건 해도 되나 보다. 계속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너무 좋아서 이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났다. 그저 여신님이 나를 쓰다듬는 손길에 아직도 행복할 뿐이다. 나무 아래에 앉아 여신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포가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리... 혹시 지난번에도 그런 거야? 그래서 사냥금지 당한 거야?"

"응."

"시리는... 여신님이 아직도 그렇게 좋아? 이제 우린 다 컸어."

"그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

"뭐가 그렇게 좋아?"

"여신님이 고아인 우리를 거둬 주시고, 좋은 방도 주시고, 좋은 옷도 주셨잖아."

"그게 다야?"

포가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


"포... 무섭게 왜 그래? 또 뭐가 더 있어야 해?"

"시리는 이제 강아지가 아니잖아! 대체 그게 뭐하는 짓이야?" 

포의 얼굴은 붉은 머리처럼 붉게 물들었다.

"포... 왜 그렇게 화를 내? 여신님을 좋아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건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


그 때, 포가 나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나무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나의 입술을 덮치려고 했다. 

'아... 이게 덮치는 거구나.'

그제서야 나는 덮친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여기는 순결과 처녀의 여신이신 아르테미스 님이 다스리는 포레이아.

사기와 저주, 불륜과 근친이 일상인 그리스.


GL 레즈 백합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첫 소설은 엘.컴플렉스이고, 사랑에 서툴고 관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연재 중 갑자기 새 소설이 떠올라 아르테미스의 견녀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재소설과 단편소설을 꾸준히 올릴 예정입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은유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