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코시바는 간만에, 저번 주에 한정판 미연시 게임을 샀을 때를 뺀다면 정말 간만에 신이 났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에어팟을 산 것이었다.

 미코시바의 용돈 대다수는 차곡차곡 미연시나 피규어로 빠져나갔고,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기에 미코시바에게 그 외의 남는 돈은 아주 약간의 푼돈뿐이었다. 그 작디작은 남은 푼돈을 모아 에어팟을 산 것이다. 오타쿠짓이 아닌 일에 이렇게 큰돈을 쓴 게 얼마 만인지. 그 기간이 아주 까마득한 만큼 미코시바의 기분 또한 고양되었다. 색상이 흰색뿐이라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검은색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좋았다. 곧장 내일부터 차고 다녀야지, 어시일도 있으니 은근슬쩍 노자키한테 자랑해볼까. 미코시바는 기분 좋게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이전보다 상향된 음질, 기능,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채로 출시한 에어팟의 새로운 버전이 같은 가격을 유지하며 여러분 곁에 찾아왔습니다. 많은 소비자분들이 원하시던 블랙색상또한 이번...]




 "노자키... 역시 에어팟이니 뭐니 해도... 낭만은 이어폰이지. 안 그래?"


 미코시바가 씁쓸한 목소리로 노자키에게 말을 건넸다. 노자키는 이번엔 이어폰이랑 관련된 미연시 한정판이라도 놓친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작은 수첩을 꺼내었다.


 "그러고 보니 이어폰도 훌륭한 소재지."


 치요가 미코시바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그렇지~ 그와 내가 한쪽씩 꽂은 이어폰, 흘러나오는 음악의 설렘 같은 거."

 "확실히 정석적인 이벤트네. 사실 나도 이래저래 고민해보긴 했거든. 사쿠라, 괜찮다면 도와주지 않을래?"

 "어? 응? 나야 완전 괜찮지! 뭘 도와주면 되는데?"


 치요는 옆에 비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미코시바는 까맣게 잊을 정도로 흥분했다. 노자키랑 이어폰을 한쪽씩? 노자키라면 분명 엉뚱한 짓을 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고작 이어폰 가지고 얼마나 황당한 짓을 하나 싶기도 했고.


 "좋아! 내 생각엔, 줄 이어폰은 확실히 낭만적이지만 여러모로 불편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 한쪽 이어폰만 듣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또 상대는 원하는 곡을 들을 수 없게 되지."

 "응? 보통은 자기도 듣고 싶어서 나눠 꽂..."

 "그래서! 이 단점을 보완해 내가 생각한 새로운 나눠꽂기가 있어. 내가 사쿠라의 이어폰 한쪽을 내 귀에 꽂고, 사쿠라는 내 이어폰 한쪽을 꽂는 거야. 그리고 각각 남은 자신의 이어폰을 자기 귀에 꽂으면... 이렇게 2가지 곡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거지!"


 노자키는 치요가 말리기도 전에 신이 나 얼른 이어폰을 움직였다. 그 결과 치요의 이어폰과 노자키의 이어폰이 일정하게 엉킨 w자 모양이 되어 영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2가지 곡을 들을 수 있는 건 장점이라고 말했지만, 동시에 2가지 곡을 들으니 어느 노래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으며 낭만이라곤 쥐뿔도 없는 풍경은 덤이었다.


 "노자키... 다른 애들한테 소재를 얻는 편이... 좋지 않을까?"


 노자키도 그제야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았는지,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어폰? 그런 건 안 들고 다니는데."

 "그래, 너라면 그럴 것 같긴 하더라."

 "노자키!"


 치요는 노자키가 세오 앞에만 서면 신랄하게 말하는 것이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첫 만남이 그런 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저만치에서 봐도 노자키는 세오를 안 좋아하는 것이 보일 수준으로 노자키는 세오를 싫어했다. 세오는 그 와카마츠의 태도에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할 정도니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치요는 그렇지 않았다. 치요는 슬그머니 노자키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보러 온 거야...!"

 "...오제의 모델이니까."


 노자키는 작게 혼잣말했다. 치요는 아직도 오제의 모델이 세오인 줄 몰랐는데, 알리기엔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뭐? 내가 모델같이 생겼다고?"

 "아니..."

 "에이~ 쑥스러워할 거 없어. 내가 좀 모델같이 생겼긴 했지."

 "그러니까 아니라고."


 노자키는 우쭐해진 세오를 뒤로 하고 얼른 와카마츠에게 달려갔다. 어차피 오제의 모델인 세오에게서 소재를 얻거나, 와카의 모델인 와카마츠에게서 소재를 얻거나 비슷할 텐데. 노자키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노자키선배! 무슨 일이세요?"

 "별건 아니고, 이번에 소재로 이어폰을 써볼까 해서."

 "그렇군요! 선배의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평소에 이어폰을 자주 쓰는데 떠오르는 이야기 같은 거 없어? 뭐라도 좋으니까."

 "음... 글쎄요. 저 같은 경우엔 로렐라이씨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주 사용하죠! 이젠 이게 없으면 잠자리에 들지도 못하니깐요!"

 "오호. 근데 학교에 있을 땐 쓰는 걸 잘 못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잘 필요가 없어서 그런가?"

 "아뇨... 그건... 세오선배가 빌려 가는 바람에... 하지만 세오 선배도 일단 선배이니 거절할 수도 없어서... 사실 크게 필요하지도 않는데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는 건 좀 그렇잖아요... 하지만 가끔 고장 내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만 미안하다고 매번 또 새로 사주시고!"

 '적당히 거절하면 될 텐데...'

 "또 새로 사주시는 게 제가 전에 갖고 싶다던 비싼 이어폰이어서... 묘하게 거절할 수가 없어요! 차라리 뻔뻔하게 나오면 저도 편하게 거절하는데!"

 "어? 어. 그래. 힘들겠네. 힘내라. 와카마츠"

 "노자키 선배...! 감사합니다. 저, 힘낼게요!"


 뭔가 훈훈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지만 치요는 똑똑히 보았다. 노자키의 수첩이 빼곡히 채워지는 모습을... 그 후 아주 훌륭한 소재가 되어 오제와 와카의 외전이 나오는 것까지 치요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인터뷰하며 소재를 얻는 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노자키는 수첩을 소중히 쥐고선 활기차게 말했다. 치요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노자키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내친 김에 좀 더 인터뷰해야겠어. 스즈키의 참고가 될만한 사람이 필요한데..."

 '그래도 미코시바는 인터뷰 안 하는구나...'

 "맞다, 미코시바도 빼놓을 수 없지! 제일 중요한 인물을 잊을 뻔했네!"


치요의 미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나? 어쩌지, 나는 에어팟 써."

 "에어팟?"

 "그거 있잖아. 줄 필요 없는 무선 이어폰."

 "아~"


 카시마는 주머니에서 에어팟을 꺼내 들며 말했다. 신문물엔 영 가깝지 않은 둘은 신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에어팟의 장점이... 뭐야?"


 노자키는 실망이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소재를 얻는 데 실패했다 생각해 '왜 (내 소재에) 좋을 것도 없는 에어팟을 쓰는 거야!'라는 섭섭함이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음... 글쎄. 일단 휴대성? 줄이 없으니까. 비싸다 보니 여러 기능도 있고. 그리고 이렇게..."


 카시마는 옆에 서 있던 팬의 턱을 지그시 쥐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카시마의 에어팟을 하나 끼워주고는 카시마도 자신의 에어팟을 하나 꼈다.


 "이렇게 공주님과 같이 껴도, 공주님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카시마...!"

 "오호. 그런 점이..."


 노자키는 눈 하나 끔벅이지 않고 마구 수첩을 끄적였다. 오늘은 일이 좀 풀린다고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가방이 날라왔다. 곁에 있던 공기가 시원해질 만큼 엄청난 속도였으나 얼마나 능숙한지 정확히 카시마의 뒤통수에 꽂혔다. 복도에는 순식간에 카시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오늘도 땡땡이냐, 카시마!!"


 호리가 잔뜩 성이 난 채로 외쳤다. 이쯤 되면 카시마의 땡땡이는 매일 학교에 나오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카시마의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가련하게 읊조렸다.


 "카시마, 괜찮아...?"

 "응. 공주님이 무사하다면야. 이렇게 나누어 낄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위험한 일이 생겨도... 공주님은 이렇게 안전할 수 있으니까."


 카시마는 그 말을 끝으로 정수리를 한 대 맞고는 질질 끌려갔다. 노자키는 신이 난 표정으로 마구 끄적였다. 치요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아니, 애초에 땡땡이를 안치면 되잖아..."


 치요는 가득 찬 노자키의 수첩과 겨우 뜯어말린 미코시바의 인터뷰를 뒤로 한 채 이어폰마냥 가느다란 카시마의 목숨줄이 붙어있길 기도했다.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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