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량 잡다한 중고 거래를 하면서도 금전적 피해를 본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뭘 잘했다기보다는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지만 무사고 운전 경력도 운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니까 나쁘지 않은 전적이다. 그러나 사기를 당할 뻔했거나 아주 이상한 거래 상대를 만난 적도 몇 번은 있다.



1. 잘못된 서비스

일단 사기가 아니었나 싶었던 거래는 플레이스테이션 4 프로. 이건 중고는 아니고 새 물건을 정식 매장이 아니라 SNS에서 알게된 사람에게 주문한 경우였다. 게임기를 다루는 업체와 연줄이 있어서 ‘시간은 좀 걸리지만’ 약간 싸게 팔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주문한 것인데, 나도 정신머리가 전혀 없진 않아서 해당 계정의 주인이 활동한 사항이나 연락처, 계좌번호를 모두 조사하고 이만하면 문제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외적으로 이름을 걸어놔야 하는 일을 하는 데다, 예전에도 비슷한 거래를 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건은 원래 예정했던 한 달에서 약간 더 지나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사은품으로 받기로 했던 게임 대신 다른 게임이 왔다. 주문한 것은 물량이 없어서 나중에 보내주겠으며, 늦은 게 미안하니 다른 게임을 넣어줬다는 것이다. 원래 선택한 게임을 하루 빨리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텐데, 그때 나는 같이 산 게임을 밀봉으로 팔아버릴 작정이었으므로 그냥저냥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그런데 어째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게 아닌가. SNS를 보니 퍽치기를 당해서 병원에 갔다는 얘기가 올라와 있었고, 그 이후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정말 퍽치기를 당해서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타이밍이 너무 공교로웠고, 아주 심하게 다친 게 아니라면 사정이 이렇게 되어 일 처리가 더 늦어지겠다는 안내라도 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독촉하는 메시지를 보내보았으나 답이 돌아오진 않았다. 


이것은 사기인가 아닌가……. 판매자가 불성실한 거래를 했다는 건 확실했으나, 사은품으로 준다는 물건을 요구와 다르게 준 걸 사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오게 되었다고 서비스로 반찬 하나를 더 내줬는데, 그게 내가 달라던 게 아니라고 해서 불같이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결국 나는 그 선에서 거래를 완결지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겁도 없이 위험한 거래를 했구나 싶다. 짧은 기간에 물건을 여러 사람에게 판다고 해서 돈을 끌어모은 다음 사라지거나 도박 따위에 써버리는 경우가 있다는데 그런 것 비슷한 상황 아니었을까?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상대가 괜찮아보인다고 멋대로 판단하고 거래할 일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이나 네이버 밴드 같은 SNS에서도 물건 파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데 유명함이 신뢰도와 같을 순 없다.


2. 뜬금없는 환불

지금은 안드로이드로 통화 녹음하면서 사기 예방하라고 후배에게 남는 스마트폰을 빌려줄 정도로 안드로이드 전도사 같은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스마트폰 입문은 아이폰으로 했다. 그 뒤로 아이폰을 오래도록 쓰다가 안드로이드로 넘어와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글쓰기 앱으로 유명한 스크리브너를 대중교통에서도 쓰려고 아이폰 6s를 중고로 다시 산 적이 있다. 매물은 번개장터에서 찾았고, 시세에 비해 3만 원쯤 싸서 냅다 주문했다. 안전 거래가 아니라 계좌 이체로 7만원쯤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틀인가 지나서 판매자가 환불을 해주었다. 여기까진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때 판매자가 못 팔겠다고 댄 이유가 가관이었다. 포장하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화면이 다 깨졌다는 것이다. 있을 법은 한 일이다. 그러나 아이폰 6s처럼 가벼운 스마트폰은 책상 높이에서 장판이나 마루 표면에 떨어뜨린다 해도 좀처럼 깨지지 않는데, 배송이 좀 늦지 않나 싶은 시점에 공교롭게도 깨뜨리고 말았다는 게 수상쩍었다. 이것도 수십 명에게 돈을 받아서 급히 어디에 쓸 돈을 메꾼 다음 또 다른 건으로 돌려막기를 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역시 가급적 안전거래를 할 일이고, 특별한 사유 없이 시세보다 싼 물건은 주의해야 한다.


(상대가 성실한 거래자일지 확신할 방법은 없다)


3.내 시간을 낭비시키다니

2022년까지 샤오미 미밴드를 사용했다. 1이 나왔을 때부터 6까지 썼으니 애용하긴 했다. 3부터는 어머니도 드리고 나도 썼는데, 전면 카메라 말고 후면 카메라로 그룹 셀피를 찍고 싶다는 이상한 이유 때문에 스마트워치를 쓰게 되면서 당시 신형이던 미밴드를 어머니에게 드리고, 남는 것 한 대는 팔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아무 이상도 없었던 물건을 받아본 구매자가 안 켜진다는 문의를 보냈다. 혹시 모르니 충전을 다시 해보라고 권해봤지만 역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증명을 위해서 동영상까지 찍어 보냈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엄청나게 놀라진 않았다. 미밴드가 유명하기도 하고 제품의 품질도 좋은 편이지만 어쩐지 연결이 안 되어 오만가지 난리법석을 피운 경험이 몇 번이나 있기 때문이다. 뭐든 다 그렇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중국발 전자 제품에서 이런 원인 모를 문제가 일어날 때가 많은 편이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의 비밀에 품질 관리를 약간 널널하게 한다는 비결이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내가 판 물건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니 환불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구매자가 추가한 요구가 걸작이었다. 제품은 택배로 다시 보내주겠지만 택배비는 물론이고 우체국까지 가서 택배를 부치고 옴으로써 발생한 손해도 배상하라는 것이었다. 이건 어디서도 듣도보도 못한 요구였다. 정말 합리적으로 따지면 이치에 어긋난 말은 아니지만, 고작 15000원쯤에 거래한, 20그램도 안 되는 물건을 돌려보내는 일에 그렇게 심각한 배상을 요구하는 건 다소 과한 게 아닐까? 우체국이 멀다면 기사를 불러 접수할 수도 있을 텐데,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기껏 산 물건이 별 짓을 다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분통이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애초부터 물건을 다시 받을 생각이 없었다. 15만 원쯤 하는 물건이라면 받아서 다시 살펴봤겠지만, 내가 손볼 수 있을 부분도 없는 물건을 택배비와 배상금까지 내고 받아서 대체 뭘 어쩌겠는가. 그런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네가 고장낸 물건을 고스란히 내놓으라는 요구라도 들은 것처럼 반응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그냥 폐기해 달라고, 불편을 끼쳐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상대는 잠시 말문을 잃은 것 같았다가 그러겠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고장난 물건을 켜보려 하다 폐기까지 하게 되어 발생한 시간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금과, 쓰레기가 쓰레기 봉지에서 차지하는 용적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진 않았다. 아무튼 판매자 입장으로 문제를 유발한 경험은 거의 없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진귀한 경우였다. 


4. 내 삼촌은 경찰

상당히 오래된 일이라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이것도 내가 스마트폰인지 뭔지를 팔 때 일어난 일일 것이다. 상대가 은근히 깐깐해서 자잘한 정보를 전달하기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안 팔수는 없어서 거래를 꾸역꾸역 진행했는데, 거래가 입금만 남겨두고 있을 때, 구매자가 요즘 흉흉한 일이 많다는 식으로 운을 떼더니, ‘참고로’ 자기 삼촌이 어디 경찰서의 높은 사람이니 혹시라도 딴맘 먹지 않길 바란다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물건을 팔 때 조건을 따져보기보다는 먼저 연락한 사람에게 판매하는 것을 암묵적 규칙이자 미덕이라 생각해서 굳이 참고 거래를 하던 나는 대번에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중고 물품 거래를 제법 하니까 사기 걱정을 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무슨 실수를 했거나 의심스러운 정황을 유도한 것도 아닌데 대놓고 사기칠 생각 말라며 자신의 특별한 권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굳이 그런 짓을 하고 싶다면 아이디를 ‘우리 삼촌은 경찰’ 따위로 하든지 대화 초장부터 말할 일이지, 이런저런 확인으로 시간을 까먹어서 어떻게든 거래를 하는 게 나은 상황으로 몰아놓은 다음 ‘완장질’을 하는 건 상도덕이 아니다. 결국, 나는 기분 나쁘니까 딴 데 가서 사시오, 난 안 팔겠소, 하는 식으로 거절했다. 상대는 그제야 자기가 조심하느라 그랬다고 사과했지만, 나는 차단을 박았다.


그런데 돌아서서 나중에 생각해보니 더욱 화가 나는 게, 그 상대가 사기꾼을 사전에 걸러냈다고 뿌듯해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차단을 몇 번 더 당해보면 상도덕을 배울지 모르겠다.


(계속)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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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종이책:

밀리의 서재: 

밀리의 서재 요약본 오디오북: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카카오 페이지)을 썼습니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두서없는 잡상들을 올립니다. 간혹 게임이나 영화 얘기도 합니다. 트위터 @memocap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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