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시계는 오전 두 시 36분에서 37분으로 넘어갔다. 화면을 껐을 때 방은 고요한 어둠이 가득했다. 혼자였지만 괜히 어색한 기분이 들어 이불 스치는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아―하고 짧게 방을 울려 보기도 했다. 똑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장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밤눈이 어두워서 그런 걸까. 눈을 아무리 크게, 세게 떠 보아도 시선 끝에는 허공이 존재할 뿐, 보이는 건 어둠 밖에 없었다. 밖에선 동물 소리도 사람 소리다 나지 않았다. 외로이 흐르는 바람 소리만 적나라하게 들렸다. 바람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바람에게 물어보면 거친 소리로 긴 대답을 해 주겠지. 알아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손을 머리 위로 뻗어서 벽을 짚었다. 벽을 세게 밀면서 물구나무 서는 연기를 해 봤다. 팔에 일부러 힘을 주고 얼굴도 세게 구겨 봤다. 발을 버둥거리면 이불 차이는 소리가 강하게 들렸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참았다. 얼굴이 붉어지고 부어오르는 것을 상상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쯤, 벽에서 손을 뗐다. 숨을 내쉬고 힘든 척을 하며 빠르게 호흡했다. 뇌에 산소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가, 잠이 더 달아나 버렸다.

  낮잠을 잔 것도 아니고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자기 싫은 걸까 아니면 생각을 하고 싶어서 잠을 밀쳐내는 걸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치고 들어온다. 낮에는 학교 자판기가 돈을 먹었다. 반환 레버를 돌려도 내 천 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홧김에 자판기를 걷어찼더니 음료수 두 캔이 나왔다. 두 개를 가져가고 싶었지만 왠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자판기를 걷어 찬 게 미안하기도 해서 한 캔만 꺼냈다. 다른 한 캔은 누군가 들고 갔을까. 들고 갔다면 누구일까. 선생님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물구나무를 서면 힘들어서 잠이 오지 않을까. 바닥에 손을 짚고 엎드려서 몇 번 점프를 했다. 하지만 올라가는 건 한 쪽 다리 뿐이었다. 그리고 균형이 잡히지 않아서 금방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쉽게 하던데 말이다. 쉽게 하기 때문에 나오는 걸까. 잠을 자겠다는 욕심보다는 오기가 생겼다. 몇 번이나 발을 굴렸을까. 단 일 초도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벽에 기대서 하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해보면 쉽지 않을까. 닿는 부분이 세 곳이니까. 하지만 첫 시도에서 정수리 부분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을 받아 바로 포기했다.

  바닥에 몸을 다 펴고 누웠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 시원한 공기가 천천히 올라왔다. 눈 위에 천사 모양을 만들 듯이 팔다리를 흔들었다. 옷과 피부, 바닥이 스치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건조한 촉감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손톱으로 바닥을 톡톡 치면서 박자를 맞추기도 했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박자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낮에 기억이 나겠지. 눈을 다시 세게 떠 봤다. 아까와는 다르게 천장이 보였다. 천장 중앙에 붙어있는 하얀 형광등. 세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다란 형태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바닥에 돌았던 찬 공기는 어느새 따뜻하게 변했다.

  작년이었을까.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다. 놀이기구와 줄 서는 것에 지쳐 있을 때 거울의 방에서 쉬다 가기로 했다. 싸 보이는 재질로 만든 간단한 거울이 가득했다. 세게 누르면 휘어질 것 같았다. 친구들은 사방이 거울인 곳에서 사진을 찍거나 볼록 거울 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나는 오목거울이 마음에 들었다. 순간 키가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목 거울을 앞에 두고 계속 물러났다. 내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멀어져 갔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거꾸로 보일 때까지 뒤로 걸었다. 몇 걸음이나 움직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뒤집어졌을 땐 내가 천장을 밟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세를 하고 점프도 해 봤다. 나와 거울에 비친 내가 손이 맞닿을 때까지. 서로 물구나무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뛰고 뛰었다. 일 초도 안 되는 순간, 나와 내가 손이 닿아 서로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거울 속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다.

  물구나무 서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온갖 생각이 다 드는 밤은 3시 37분을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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