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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 PENOMECO



블러디 헬 프렌드

01



정여주가 이동혁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 애의 플레이리스트에 몇달째 고정되어있는 노래와 자주 신는 컨버스의 색상, 툭하면 가는 김치찌개집 가는 길 따위야 이미 내 머릿 속에 입력되어 있다지만, 그 애에 관해 모르는 것은 꼽을 수 조차 없게 많으니까. 차라리 아예 모르면 좋으련만 모른다고 말할 수 없을만큼 안다. 애석하게도 그렇다.


이동혁은 웃을때 동그란 눈을 한껏 찡그리며 와하학 하고 웃는다. 특히 나 놀려먹을 때면 좋다고 고개까지 젖혀가며 웃는다. 평소에는 애같은 구석이 잘 없는데도 웃을때면 영락없는 아이만 같다. 그럼 난 나 놀려가며 포복절도하는 이동혁 앞에 두고 아주 짧게 눈을 흘기다 이내 따라 웃는다. 걔가 웃으면 얄미운 건 둘째치게 된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이 오늘의 날씨를 대체로 흐리다 설명하고 있다. 흐린 것뿐만 아니라 습하기까지해서 회색빛 물속에 뛰어든 것만 같다. 칠월의 장마 전선은 뭐가 문젠지 대찬 비 한 번 내리지 않고 어정쩡한 날을 며칠째 유지중이다. 꼭 금방이라도 비를 내릴듯 잔뜩 흐린 하늘은 이상하리만큼 잠잠하다. 덕분에 검은색 접이식 우산 하나를 며칠째 가방 한 구석에 넣고 외출 중이다. 내 몫도 아닌 우산 하나 때문에 가방이 두둑하다. 


이게 예고없이 비 내리는 날이면 생색내며 저 씌워줄 생각으로 들고다니는 우산이란 걸 이동혁이 알게되면 걔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도 동그란 눈 한껏 찡그리며 웃을 거다. 


그럼 난 아주 짧게 눈을 흘기다 이내 따라 웃을 수 밖에 없다. 빌어먹게도.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쉽게 숨길 수 없다는 말이 나온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가난과 기침과 사랑은 어렵더라도 숨기고 싶은 것들이라 그렇다.  

그리고 나는 3년째 묵묵히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어렵더라도 숨기고 싶기에.



고등학교 입학식날부터 이동혁 이름 석자는 여기저기서 툭하면 거론됐다. 이동혁 봤어? 어 이동혁이다. 아 쟤야 쟤, 그 이동혁. 아이들의 수군거림으로 복도에서 처음 마주한 이동혁을 본 내 소감은 이랬다. 아 쟤가 이동혁이구나. 근데 쟤가 뭐? 매점에서 산 쭈쭈바 빨아먹으면서 무심코 말했다가 이동혁 덕질 아닌 덕질하던 친구한테 욕 더럽게 많이 먹었다.


2학년, 같은반에 배정받고나서야 애들이 이동혁 이동혁 하던 이유를 알게 됐다. 이동혁은 붙임성이 좋아 반 애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건 물론이고 한 술 더 떠 복도를 지날때마다 3보에 1번씩 인사를 했다. 걔가 대화에 꼈다하면 갑갑했던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남자애들은 그런 이동혁을 필요로 할때가 많아 괜히 말 붙이고 친한척 하기 바빴고 여자애들은 아닌척 하면서 은근히 이동혁을 맘에 두곤 장난 빙자해 말 섞고서는 얼굴 자주 붉혔다. 


그런 이동혁과 나는 같은반임에도 별 다른 접점이 없어 반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관계로 여름방학을 맞았다. 그리고 이동혁과 내가 그놈의 빌어먹을 친구 이름 달게 된 건 여름방학이 시작 되고 며칠 안 가서다. 


그날은 방학했다고 맨날 누워서 빈둥대기나 한다고 엄마한테 잔소리 엄청 들었던 날이다. 방학인데 뭐 어떠냐는 내 투정에 엄마는 저녁거리 사러 마트 심부름이라도 다녀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 더워 죽겠는데 그냥 시켜먹자아. 응? 엄마는 말없이 나를 현관으로 밀어냈다.


군것질 거리는 사오지 말라던 엄마의 말에 조그마한 반항을 했다. 아이스크림 두 개나 샀지롱. 아스팔트 자비없이 데우던 땡볕 더위도 해가 지고는 한 풀 꺾여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이 퍽 선선하기까지 했다. 공원 한 바퀴만 돌고 들어갈 생각으로 찰찰대는 비닐봉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한적한 공원을 반쯤 돌았을까. 내 걸음은 훌쩍대는 소리를 내고있는 벤치 앞에서 멈췄다. 해봤자 여덟살쯤 될법한 남자애 하나가 벤치에 혼자 앉아 서글프게 훌쩍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딴 길로 새지말고 돌아오라던 엄마의 당부가 들려왔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가던 길이나 가야겠다 싶어 두 걸음 뗐다가 결국은 벤치로 돌아와 에라 모르겠다 남자애 옆자리에 엉덩이 붙였다.


"그.. 안녕."

"..누,구세여.."

"어? 난 정여주.. 아니,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데.."

"긍데,요.."

"아.. 그 왜 우나 해서."


여덟살 애치고 똑부러진 말투에 당황했다. 남자아이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별안간 내가 물고있는 아이스크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쭈뼛쭈뼛 봉투에서 하나 남은 내 아이스크림을 꺼내 건네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무지게 포장 뜯어 입에 물고는 인사했다. 누나 감사함미다.


먹을 게 입에 들어가자 경계심이 풀린 건지 왜 자기가 여기서 혼자 울고있었는지 설명해주면서 말문이 트였다. 아이 그니깐, 형아랑 산책하고 이썬는데에 내가 지나가던 멍멍이랑 놀고있던 새에 형아가 납치 됐다니깐여. 네가 멍멍이랑 놀다가 형아를 놓친 거 아니구..? 아 누나 지금까지 머 들어써요. 형아가 납치 됐다구요! ...그래 그거 큰일이네.. 여기서 좀만 더 형아 기다려보자.


납치된 형아가 돌아올리가 없다는 꼬맹이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나 곤란해하던 중에 뒷편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


"이동찬!!!"

"이동혁...?"

"머야, 누나 우리 형아 알아여?"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주한 이동혁의 얼굴은 땀에 푹 젖어있었다. 어째 익숙하다 했던 남자아이의 동글동글한 생김새의 배경지를 알아차렸다. 검은 반팔 펄럭이며 벤치 앞에 도달한 이동혁은 실소를 터트렸다.


"이게 무슨 우연이냐."


그러니까. 그때만해도 그 우연이 나를 끝없는 짝사랑 구렁텅이에 밀어넣고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다.


"형아! 이 누나 형아 친구야?"


납치당한줄로만 알고있던 형이 돌아와 신난 건지 제 옆에 앉아 멍때리는 누나와 제 형이 친구라는 상황에 들뜬 건지, 울상이었던 동찬이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


"어, 형아 친한 친구야."


그치 정여주. 그간 이동혁과 대화 몇번 나눠본적도 없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동혁이 내 눈을 보고 한번 씩 웃어주고선 곧 엄한 얼굴로 동찬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형아한테 말도없이 사라지면 안 된다 그랬지. 웅. 이번에는 형아 친구 덕분에 너 산 거야. 웅, 저 누나가 나한테 아이스크림도 줘써. 진짜야? 얼른 형아 친구한테 고맙습니다 인사해.


"고맙씀미다. 누나, 제가 본 형아 친구들중에 젤로 예뻐요."


동찬이가 내뱉은 말에 이동혁이 고개를 젖혀가며 웃어댔다. 얘 원래 잘 안 이러는데. 너가 맘에 드나봐. 시원하게 웃는 이동혁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나도 따라 웃었다.


지금의 나는 종종 이때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만다.


하지만 정확히 어느 순간을 후회해야 할 지는 감이 잘 안 잡힌다. 엄마 말 안 듣고 공원 한 바퀴 돌았던 일, 울고있던 동찬이를 지나치지 못한 일, 내가 제 친한 친구라는 이동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눈에 담은 일. 나는 어디서부터 후회해야 하는 걸까. 어디서부터가 빌어먹을 내 짝사랑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여름방학 중의 소소한 해프닝이라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다음날부터 이동혁으로부터의 카톡 알람음이 쏟아지듯 울렸다. 




- 정여주 맞지?

- 응 맞긴한데

- 이제 카톡 자주 해야겠다

- 왜..?

- ㅋㅋㅋㅋ왜긴 왜야

- 우리 친한 친구라며 고개 끄덕끄덕했잖아 너가



이제와서 발빼기야? 와 나 서운해질라하는데. 동찬이 찾아준 거 고맙다고 하고 끝내면 될 일을 이동혁은 그 사람 좋아하는 성정 어디갈까 제 수많은 친구 목록에 사람 하나 더 넣는 계기로써 사용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동혁은 자기의 진심을 어떻게 그런식으로 말하느냐며 성낼게 분명했지만 이날로부터 애써 이동혁과의 끈끈한 우정 운운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렇게 느껴졌다. 


최고로 늘어지는 방학을 보내겠다 다짐한 몇주전의 나와는 달리 이동혁 덕에 살면서 가장 여기저기 쏘다니는 방학을 보냈다. 작게는 저녁에 하는 공원 산책부터 크게는 번화가에 있는 이동혁 단골  LP 상점에 간 일까지. 친구도 많은게 의아할 정도로 툭하면 나를 불러냈다. 이동혁 말로는 친구는 많아도 가까이 사는 친구는 몇 없다나 뭐라나. 


그렇게 한달여 동안 의도치 않게 이동혁과 부쩍 가까워진 내가 알게된 이동혁의 새로운 면모들을 나열해보자면 첫째, 이동혁은 생각보다 세심했다. 활달하고 장난기만 많은줄 알았던 이동혁은 대뜸 오늘 만날 수 있냐고 물으면서도 천천히 준비하라면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기다리면서 재촉 한번 한적 없었고, 어쩌다 둘이 밥이라도 먹으러 갈 때는 내가 못 먹는게 있는지, 좋아하는 식사류는 뭔지, 매운 건 잘 먹는지 하나하나 물어가며 메뉴를 정하곤 했다. 웬만한 여자애들보다 세심한 거 같기도 했다. 낯가리는 내가 몇번만에 이동혁과의 만남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둘째, 이동혁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학교에서의 이동혁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는데, 여름방학동안의 이동혁은 학교에서의 모습을 중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산까지는 보낸 것 처럼 대체로 얌전히 굴곤 했다. 공원 산책하면서 별 거 아닌 일들을 내게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래도 원래 이동혁 어디 안 가는지 걔가 간간히 치는 장난들까지도 재밌었다. 그때도 난 걔가 장난 칠때마다 뒷골 당긴다며 열받아하는척 했지만 종국에 보면 둘 다 웃고있었다. 


셋째, 이동혁은 쓸데없이 다정했다. 잠깐 공원으로 나오라는 말에 모자 푹 눌러쓰고 털레털레 나간 날이면 전날 카톡하면서 먹고싶다고 했던 베라 한 통 쓱 내밀지를 않나, 길 걸을때는 무조건 지가 바깥쪽에서 걷질 않나, 딱밤 내기 같은 건 툭하면 했는데 세게 맞아본 기억같은건 있지도 않다. 


안타깝게도 위 문장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동혁이 내게 다정하게 굴었다는게 아니라 이동혁의 다정은 쥐뿔도 쓸데가 없었다는 데에 맞춰진다. 나는 그 다정이 쓸데 없다는 걸 애초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어디서부터의 일을 후회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의문 하나가 내 머릿속을 암전 시키고 만다.



동찬이를 지나쳤더라면, 이동혁 웃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카톡에 답장하지 않았더라면, 이동혁의 다정이 쓸데없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과연 그랬더라면 나는 네 옆에서 이 빌어먹을 친구 같은 건 안 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그것도 명백한 답이 정해져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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