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뒤, 봄. 새해가 밝았다. 추웠던 겨울이 가고 한창 벚꽃이 피어나는 봄날이 찾아왔다.

 

챙-!

 

“어이쿠, 폐하..오늘도 힘이 넘치시는군요. 여전 하십니다?”

“눈도 깜짝 안 하면서 농담하기는. 오라버니야말로 여전한 것 같은데, 딴청 피우지 말고 얼른 다시 덤벼.”

 

챙-! 챙-!

 

황제궁의 수련장.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화소리가 묻힐 정도로 살벌한 소음과 분위기가 이어지는 그곳에는 스물두 살의 젊은 황제, 샤를 루이 월프와 그녀의 오라버니. 스물네 살의 장군, 카일러 제이블 월프가 대련 중에 있었다.

 

“아이쿠, 이런..! 역시 폐하이십니다. 얕보면 안 되겠군요? 하하..”

“당연한 것을. 짐이 여자라고 얕보면 안 되지. 완력이나 힘은 그대가 강할지 몰라도 결국 가장 강한 건 짐이다.”

“하하..”

“왜 웃는 거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결하였을 때도 짐이 오라버니를 이겼고, 결국은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까. 설마 그새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그러니, 한눈팔지 마라.”

 

샤를은 사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다만 사년 전에는 어깨를 조금 넘는 정도였던 머리카락이 등을 넘어서까지 자라있었고, 혈색과 표정 모두 사년 전보다 더 좋아졌다.

 

또한 홀로 하던 수련을 다른 이들과 함께할 만큼 성격도 유하게 변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반려인 그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아는 카일러가 연신 싱글벙글거리며 대꾸했다.

 

“기억하지 못하면 어찌하실 겁니까? 기억이야 당연히 하고 있지요. 그렇기는 해도..”

“응..?”

사년 전과 정말 많이 달라지셨군요. 보기 좋습니다. 뭘 어찌하신 겁니까?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니, 놀랍군요.”

“..그래. 짐이 봐도 많이 변하기는 했군. 이렇게 다른 이와 대련도 하는 걸 보면. 그나저나 한눈팔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하하, 폐하. 저 이래봬도 장군입니다? 폐하만큼 강하다고요. 제가 아무리 작위를 받은 공작이래도 장군은 장군입니다. 그리고 장군하면, 결투지요.”

“시끄럽다. 이그니스 공작.”

 

챙-!

 

아무리 샤를이 강해도 여자와 남자의 완력차이가 있으니 카일러 쪽이 더 편하고, 여유로웠다. 

 

샤를에게 말까지 걸어가며 여유롭게 그녀를 상대하던 카일러가 잠시 틈을 보인 그때, 샤를이 정확하게 그 빈틈을 노렸다. 날카로운 샤를의 공격에 당황한 얼굴의 카일러의 손에서 검이 빠져나갔다.

 

등 뒤로 날아가, 땅에 팍 꽂힌 검을 본 카일러가 졌다는 듯 웃었다.

 

“역시 폐하이시군요. 실력이 나날이 상승하시는 것 같습니다. 말하신 대로 저보다 강하셨군요.”

“뭐, 그래.”

“제가 졌습니다. 오늘 대련 감사합니다. 하하, 오랜만에 몸 좀 풀었군요.”

“음..”

황성 내에 대련할 사람이 있어야지요. 아내는 육아로 바쁘고, 카인 녀석도 형님과 대련하면 어디 하나 부러질 테니 안 합니다. 라면서 거절하고, 어린 아들놈에게 대련을 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부하 놈들은 하나 같이 약해빠졌으니 남는 사람이 폐하밖에 없더군요.”

 

대련할 상대가 없어 좀이 쑤셨다며 툴툴거리는 카일러를 바라보는 샤를의 눈에 다정함이 서렸다. 지난 사년 간 변함없이 저와 황후 곁을 지킨 사람. 오라비로서도 장군으로서도 함께 하면 좋은 사람이었다.

 

“오늘 대련, 무척 즐거웠습니다. 비록, 바쁘신 폐하의 시간을 뺏은 것 같아 죄송하지만요.”

“짐도 즐거웠으니 됐다. 종종 이렇게 대련하는 것도 좋겠어. 나도 대련할 상대가 없어서 심심하던 차였으니..짐은 괜찮으니까 앞으로도 가끔 대련하지.”

“폐하께서 그러시다면. 기꺼이 상대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샤를에게 허리 숙여 예를 표한 카일러가 고개를 들며 씨익, 웃어 보였다. 샤를 또한 흙먼지가 묻은 검을 닦으며 이번 대련이 즐거웠다면서 고개를 살짝 숙여, 열심히 대련을 해준 상대에게 예를 표했다.

 

“그나저나, 포르티스는 잘 지내나? 올해 네 살이라고 들었는데.”

“물론입니다. 절 닮아 아주 건강한 사내놈이죠. 아내가 놀아주다가 힘들어서 죽고 싶다 할 정도로요.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활달합니다. 폐하께서 아명을 참, 기가 막히게 지어주신 덕분에 말이죠.”

“그런가? 짐이 아명을 잘못 지어 소피아를 힘들게 했군. 좀 얌전한 이름으로 지을 것 그랬어.”

“하하..

그래서 이름은 다른 뜻으로 지어주지 않았나. 이름을 따라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첫아들의 이름은 직접 지으라던 내게 이름과 아명을 지어달라 부탁한 것은 그대들이야.”

“알고 있습니다. 저로선 무척 마음에 드니 상관없습니다. 이름도 물론이고요. 그나저나 폐하와 황후폐하께서도 별 탈 없으시고 강건하십니까? 황성에 자주 들르기는 하지만 매번 확인할 수가 없으니 염려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리야, 뭐..늘 황성 안에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건강하다 못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아서 지루할 정도니까.”

 

그때였다. 카일러와 샤를이 가벼운 안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시녀 한명이 정신없이 달려와서는 샤를에게 무릎을 꿇고 말을 전했다. 그이는 수정궁에서 온 시녀였다.

 

“화,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수정궁에서 온 시녀로구나. 잠깐..수정궁에는 황후가..”

 

수정궁에는 샤를의 하나뿐인 반려이자 제국의 황후인 레시안 카를로나 월프. 올해로 열여덟이 된 황후가 있었다. 원래 이름은 주영. 샤를의 일 순위이자 제일로 소중한 반려인 사람이었다. 

 

수정궁에 있던 시녀가 이렇게 급히 달려온 것이라면 분명 수정궁에 있는 황후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잠깐, 황후폐하께서 수정궁에 계신다고요? 그렇다면..황후폐하께 무슨 문제가 생긴 거 아닙니까?”

 

샤를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본 카일러도 진지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물론 시녀가 아니라 샤를에게.

 

두 사람의 표정을 본 시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그것이..황후폐하께서 다치셨습니다. 지금 다른 아이가 의원을 부르러 갔고, 저는 유모님께서 얼른 폐하를 모셔오라 하셔서 말을 전하러 온 겁니다.

 

“*레일런.”*(레일런: 황제궁 시종장.(보좌관인 에일런의 조카이기도 하다.))

“예, 폐하.”

 

시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들고 있던 검을 제 옆에 서있던 시종장, 레일런에게 넘긴 샤를이 미처 대화를 이어나갈 새도 없이 날쌘 움직임으로 황후궁과 황제궁 사이에 위치한 수정궁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레일런과 시녀들도 정신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지금 당장, 수정궁으로 간다.”

“아, 예! 자, 잠시만..폐, 폐하!”

 

그 모습에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건만 피식, 웃음을 흘린 카일러가 못 말리는 사랑꾼이라고 중얼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자신도 그 뒤를 따라 날쌔게 몸을 움직였다.

 

“하하..못 말리는 사랑꾼이셔..우리 황제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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