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현생으로 바빠서 너무 오랜만에 쓴 건데 그냥 완성된 데 의의를 두겠습니다. 글을 쓰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잘 안 써졌어요....^^;;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직 조조 캐해도 덜 정리가 되어서 너무 쓰기가 힘들었어요. 캐붕은 감안하고 봐주세요.



大叫(대규)    下

크게 울부짖다.


불교의 팔열지옥 가운데, 지독한 아픔을 못 이기고 절규하게 되는 대규환지옥.



목구멍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진다. 속에서부터 무언가가 역류하려는 듯했다. 역겨운 액체를 억지로 삼켜내며 그 감각에 저항한다. 그는 겨우 자제력을 발휘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진상된 상자를 들어 올렸다. 사람 머리가 딱 들어갈 만한 크기, 무게가…… 묵직하다. 끄응, 절로 앓는 소리가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왔다. 그 순간 그는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다들 물러가라고 말했다. 그의 수족이 되기 위해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방에서 나갔다. 썰물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들의 주인은 무서운 사람이었다. 변덕스럽고 예민하며 피를 아끼는 법이 없다. 지금 그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고 있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핏기없는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먹이를 찾는 뱀처럼 꿈틀거리는 격정을, 시퍼렇게 불똥이 튈 듯한 그 무서운 눈빛을. 눌러온 시간만큼 광증 같은 그 분노가 자신에게 뻗어오는 것을 원하는 자는 없었다.


이제 온전히 그 혼자였다. 그의 온 마음이 무릎 위 상자에 향해 있다. 우아한 하얀 비단이 그 상자를 감싸 봉하고 있었다. 붉은 노끈이 다시 그 주변을 둘러 곱게 매듭이 지어져 있다. 그 예우가 그를 당혹시키고 있었다. 그렇다, 조조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상자를 바라보는 그의 부릅뜬 눈동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느리지만 필사적인 동작으로 상자의 봉인을 풀어냈다. 뚜껑을 들어올리기 위해 손가락 끝에 힘을 줄 때, 그의 입가가 부들부들 경련했다.


숨을 부자연스럽게 들이킨다. 상자 속에 누군가의 수급이 있었다. 미친 듯 떨리는 손가락이 조심히, 아주 조심히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흡, 그는 굳어버린다. 이 촉감은, 진짜였다. 그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현실은 차가웠다. 힘을 줘 수급을 들어 올리며 그가 공허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자랑하시던 수염은 어떻게 된 겁니까, 관공…….”


부자연스럽게 뚝 잘린 수엽에는 피가 엉겨붙어 있다. 언제나 올려다보던 그 얼굴과 이렇게 수평을 이루고 있다. 닫힌 눈꺼풀 속 눈동자는 이제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없겠지. 누가 감히 그의 눈을 감겼단 말인가, 분명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을 사람인데. 당신은, 그를 두고 그럴 수 없었을 텐데.


‘이 얼마나 참혹한가…….’


만인지적이었던 위대한 영웅의 끝이라기에는 너무나 비참해 무서울 정도였다. 기억 속 관우에 대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하나, 그것은 예고 없이 다가온 운명과도 같은 것. 제후들에게 주제파악을 못한다고 비웃음당하던 한낱 마궁수의 얼굴에 튄 화웅의 피, 조조의 손에서 술잔을 빼앗듯 하던 그때의 그 소름끼치는 눈동자에 그는 사로잡힌 듯했다. 그를 가지고 싶었다. 조조라는 사내의 그릇에 관우를 품고 싶었다. 젊어서도 그리고 늙은 지금도 그렇다. 온갖 천하 인재를 제품에 끌어안았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 결핍의 이유가 이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낭만이겠지. 예술가적 성향이 만들어낸 몽상.


‘당신을 원했다, 가질 수 없었기에 더욱.’


아, 솔직해지자. 조조는 자신을 잘 안다. 그의 갈망은 관우를 가졌어도 완성되지 않았으리라. 고작 그 정도의 욕심으로 천하를 훔치려 들지 않았다. 자기성찰을 할 시간은 이미 충분히 있었다. 긴 소매 사이로 드러난 팔에 새겨진 세월의 진득한 흔적들. 관우는 짙은 어둠 속 별과 같이 찬란한 사람이어서 조조는 그를 알게 된 이후로 내내 그를 원해왔다. 하지만 어째서 그 사람을 그렇게 눈부시다고 생각하게 되었나? 인품? 강함? 그의 주변에 널린, 그따위에?


‘유현덕을 두고 그렇게 눈을 감으실 수 있겠습니까, 관공…….’


조조는 별안간 얼굴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경직된 마른 피부가 부자연스럽게 당겨지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관우의 수급을 만지던 손으로 거림낌 없이 뺨을 만지던 조조가 멈칫한다. 손끝 하나하나의 더듬거림으로 본심을 깨달았다. 아, 열린 입술 사이로 갸날픈 신음이 새어나온다. 이내 조조는 관우의 얼굴을 보며 억눌린 웃음을 터뜨렸다. 울먹거리는 듯 들리기도 했다. 그는 같잖은 애도를 버리기 했다. 마음을 따른다.


‘그래, 꼴 좋다 유현덕! 너는 네 사랑하는 아우의 시신도 온전히 건지지 못했구나!’


마지막으로 직접 보았던 건, 언제였나? 악몽과도 같은 그 밤이었나. 불어오는 동남풍에 활활 불타던 휘황찬란한 함선들, 어둠 속보다도 더욱 검게 피어오르던 매쾌한 연기, 방향 구분을 못할 정도로 도처에서 들리던 비명소리…… 아직도 그의 꿈에서 그 시간은 이어지며 괴롭히고 있다. 그 아비규환 속, 유현덕이 홀로 위풍당당하게 있다. 감히 그와 동등한 자격에 서서 그를 사냥하려 든다.


‘역적 조조를 처단해라!’


운명이었다. 운명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 없었다. 천한 내시의 자손이라 비웃음당하던 그가 한 나라의 지존인 승상이 되었다. 천하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벗이자 숙적이었던 원소도 저에게 진로가 막혀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다. 정점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형주를 차지하고 마지막 남은 걸림돌을 기꺼이 처리하며 조조라는 위인을 완성하려던 그 순간, 모든 것이 이렇게 거짓말처럼 불타버렸다니! 정신없이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달아나며 조조는 자신의 실책을 그제야 깨달았다. 너무 늦게 알았다. 유현덕이 그의 대극이라는 사실을. 그 원소도 아닌 유현덕이 바로 조조의 운명이었다. 이름만 황손이었던, 19번째 제후가.


직물은 씨줄과 날줄을 차례로 엮어 촘촘히 완성되는 법, 운명이란 게 정말 있다면 그 역시도 그렇게 만들어졌을 터다. 처음부터 정해져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 교차하던 수많은 인연을 생각한다. 그들은 같은 운명을 걸을 수도 있었다. 유현덕이 조조를 배신하지만 않았다면. 조조는 자신의 그릇에 기꺼이 그를 품고자 했었다. 조롱을 기꺼이 감수하며 제후의 말석을 흔쾌히 차지하고 웃던 그를 본 순간부터 마음이 끌렸다. 연기일 게 뻔했지만, 연기더라도 그런 위장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지나고 보니 유현덕을 제거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였다. 왜 그것을 몰랐단 말인가…….


‘그렇군요.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이 유비,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르신은 영웅도…… 악당도 아니시군요! 당신은…… 괴물이야!’


어느새 아득한 기억이 된 서주 땅. 그에게 맞서는 척 시간을 끌고 뒤로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기습하며, 그사이 벌레 같은 백성들을 피난시키던 유현덕.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조조로부터 달아나야 하는 상황에서, 형주의 십만 백성을 애달프게 챙기던 유현덕은 어찌 그리 예나 제나 일관되었단 말인가. 죽은 옛 친구의 말은 그 뒤로 기억 속에 되살아나 조조를 괴롭힌다.


‘대중은 눈에 보이는 걸 믿어. 잘 생각하면 합리적이지 않아도, 선하고 고귀해보이면 기꺼이 사랑하지.’


목숨을 걸고 하는 쇼는 더는 쇼가 아니었다. 명분이 있었다, 유현덕에게는. 바로 괴물인 조조와 맞섬으로써. 아, 그래서 유현덕은 그의 대극이었다. 그것을 서주 시절 이미 깨달았다면 오늘의 이런 괴로움은 없었을 터다. 어리석은 조조는 바보같이 그저 그때와 지금은 서로 처한 입장이 달라서인 것 뿐이라며 유현덕을 욕심냈다. 감히 자신을 괴물이라고 불렀던 그에게 관용을 베풀어 좌장군을 제수함으로써 충성을 사고자 했다. 유현덕이 누구 밑에 있을 수 없다는 걸, 이미 그가 섬겼던 여타 인물들을 보고도 조조는 알지 못했다. 그만은 다를 줄 알았다. 오직 자신만이 유현덕라는 사내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렇다.


‘무엇을 위한 삶이었나…….’


이제와서 다시 운명을 개척하기에는 조조는 너무 늙었다. 늙었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욱 강하게 실감한 적이 없다. 내내 변덕스러웠던 조조의 영혼은 관우의 죽음이라는 이 엄청난 사건 앞에 망가진 것 같았다. 조조는 분노도, 흥분도, 즐거움도, 좌절도 무엇 하나 구별해낼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이 광증으로 똘똘 뭉쳐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나 강하던 관우도 이렇게 처참히 죽었다. 그들의 청춘은 끝나가는데 강물만은 무한히 계속 흐르겠지. 하늘은 무엇을 위해 그라는 사람을 내고 그리 채찍질해대었나. 한때 조조는 자신이 그 답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르겠다. 관우의 수급을 보며 조조는 자신에게로 천천히 오고 있는 죽음을 실감했다.


‘그저 원통하다.’


흔히 죽음에 이르면 초연해진다고 하던데, 왜 그는 이리 분한가. 못다한 패왕의 업에 대한 미련인가? 그 꿈을 이루기에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조조는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지 오래였다. 천하의 주인된 자리는 그의 다음 세대에게 기약해야 한다. 위왕, 여기까지도 그에게 많은 역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만족을 모르는 이유는 아마도.


‘유현덕, 너와는 끝을 내야 했는데…….’


그때, 그때, 그때, 죽였더라면. 계속 그런 후회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유현덕. 이 얼마나 미운가. 이제야 조조는 유현덕을 바로 안다. 선한 인격자의 얼굴을 한 유현덕은 조조보다 훨씬 뱃속이 시꺼매서, 고작 한중왕에서 멈추지 않을 터였다. 조조와 동급에서 멈추지 않겠지. 언젠가 유현덕은 칭제하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조조가 과연 그런 유현덕을 볼 날이 있을까? 조조와 유현덕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조조가 죽는다면, 유현덕은 그가 원소에게 그랬듯 기꺼이 조조를 과거로 추억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지. 그 사실이 너무 밉다. 유현덕은 그렇게 후련히 자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관공, 이번에는 돌아가실 수 없습니다.”


조조가 찡그린 눈으로 관우를 보며 말했다. 돌려주지 않을 테다. 유현덕이 가장 사랑하던 동생의 목을. 아, 유현덕의 괴로워하는 표정은 어떨까. 얼굴도 모르던 백성들을 위해서도 그런 쇼를 감수하던 사람이니, 제 동생이라고 목숨같이 아껴왔던 관우를 위해서는 어떨까. 시신조차 온전히 거두지 못할 동생 앞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신을 괴물이라 일갈하던 유현덕이 얼마나 망가지게 될지 궁금하다. 유현덕과 자신이 정말 운명이라면, 모르지 유현덕도 하나의 괴물이 될지. 평생을 백성을 위한다 위선에 떨던 유현덕이 광증에 활활 불타 죽었으면 좋겠다. 더는 자신을 돋보일 조조가 없는 그 세상에서, 그렇게 자멸했으면. 일그러진 흥분감이 몸을 채우는 동시에 조조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대신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다시는 채워지지 않을 듯했다. 순간 관우의 목을 품에 끌어안은 조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관우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위한 애도였다.


“내가 졌다, 유현덕…….”


남들에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스스로는 자신이 누구보다 솔직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은……. 평생 존경해왔다고 생각한 영웅을 위한 순수조차도 없는, 이 악의는.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유비는 자신을 훔쳤다. 끔찍한 고통, 하지만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법을 조조는 알지 못했다. 유현덕을 잊는다는 것이 그에게는 불가능했기에.






‘아마도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나서도 모두 기억한 거겠지…….’


‘조조’로서의 숨을 거두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유현덕을 생각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유현덕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했다. 살아서도 유현덕에게 집착했고, 죽어서도 끝내 놓지 못한 그는 다시 태어나도 안식을 허락받지 못했다. 아니, 그가 그런 삶을 선택했다. 그는 전생을 망각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도 모든 것이 연속될 뿐이었다. ‘조조’의 삶을 ‘조조’가 아닌 이로 태어나서도 계속한다.


“네가…… 나빠……. 네가 모두 잊고…… 호, 혼자…… 편해지려 하잖아…….”


헐떡이며 ‘조조’가 말했다. 강화유리 너머로 피해자의 아들이, ‘유현덕’이 울며 바라보고 있다. 조조도 왠지 울컥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떻게 네가 나를 부정하려 들 수 있나,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너만 그렇게 편해지려고 하면 안 되잖아…….


한때 그도 잊을 수 있었다. 아주 어리던 어린 시절, 안락한 부모의 품에 안겨 있던 시절. 자신을 감싼 아늑한 주변 환경과 보살핌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잊을 뻔했었다. 전생의 치열한 기억들은 모두 꿈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지금 그를 안아주는 따뜻한 품이 훨씬 생동감 있었다. 이쪽이 진짜라고 그 아늑함이 설득한다. 그렇게 형체조차 사라질 정도로 느스해져있던 조조의 자아는 갑자기 퍼뜩하고 떠오르는 끔찍한 기억 속에 선명해진다. 여긴 어디지? 난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그는 오열했다. 그는 전쟁통에 있었다. 사방에서 죽음이 급습한다. 왜 그의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지? 저기 모든 게 불타고 있다……. 그의 군사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이 작은 육체에 묶여있는 거지?


잊어버릴 수 없어, 그 치열했던 기억들을 그렇게 보내버릴 수 없다. ‘조조’의 삶이었다. 그 고통과 아픔은 모두 그가 살았었다는 증거였다. 망각을 거부한다. ‘조조’의 삶에서 느껴지는 후회가, 더욱 그를 잊지 못하게 했다. 그 고통이 너무 생생했다. 안식을 바랐지만 이런 끝은 아니었다! ‘조조’가 ‘조조’를 버리고 편해질 수가.


“어떻게 감히…… 너 혼자 편해질 수 있단…… 말이냐…….”


‘조조’가 분노를 쏟아내었다. ‘유현덕’은 조용히 울며 듣고 있었다. 분명 모습은 다르지만 그는 분명히 ‘유현덕’이었다. ‘조조’는 파도처럼 자신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새로운 삶의 모든 자극과 싸워왔다. 그는 그 난세에 대한 그림을 그려대며 ‘조조’의 자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가끔은 외부의 환경에 길들여져 ‘조조’를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순수한 어린아이로 단순히 사고하던 자신을 깨달을 때면 그는 ‘유현덕’을 떠올렸다. 그러자 마음속에서부터 뜨거운 분노가 일면서 다시 ‘조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켜왔던 ‘조조’니 ‘유현덕’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그의 운명이었던 ‘유현덕’을.


길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던 그 고등학생의 모습이 눈을 사로잡았다. 속마음을 숨기고 태연히 짓는 조숙한 학생의 얼굴이 너무나 익숙했다. 겉껍데기가 달라졌어도 ‘조조’를 속일 수는 없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 검은 눈동자에 피어오르던 의혹을 분명히 ‘조조’는 알아보았다. 곧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피하며 스쳐갔지만, 그 순간 느낀 이상한 감정은 그를 강하게 현혹시켰다. 그런 이상한 느낌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를 불편하게 여기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했던 ‘조조’였기에 더욱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상한 이끌림에 그는 ‘유현덕’이라 이름을 붙였다. 이번엔 분명히 알아보았다고 확신했다.


“네가 다 나를…… 잊으려고 해서 이,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유현덕’이 나쁘다. 만약 그가 ‘조조’를 잊었다면 더 죄질이 나쁘다. 그를 이렇게나 괴롭혀놓고, 혼자 편해져서는 안 된다. 환생한 그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는 새로운 종류의 분노가 그를 괴롭히는 걸 느꼈다. 영혼에서 알아보는 것처럼 계속 그에게 이끌리게 되는데, 정작 ‘유현덕’은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것처럼 평범한 학생의 삶을 누리고 있다. ‘조조’가 그가 가는 길목을 막자 아무렇지도 않게 피하며 스쳐지나갔다. 알아보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잊어버린 걸까? 그가 자신을 알아보았다고 했던 건 모두 망상이었을까? ‘조조’는 견딜 수 없어졌다. 어느 쪽도 참을 수 없었다. ‘조조’가 죽어서도 가지지 못한 안락함을 감히 ‘유현덕’이 누려서는 안 된다. 망각했다면 다시 되새겨 주겠다. ‘유현덕’도 그만큼 괴로움에 차야만 했다. 자신으로 인해 고통에 가득 찼으면 좋겠다. 그래서 죽였다, ‘유현덕’의 아버지를.


“내가 밉지, 유현덕?”


이번에는 ‘조조’가 그를 훔쳐가버리고 말 거다. ‘조조’는 기대감에 차서 말했다. ‘유현덕’은 기도하듯 두 손을 꽉 깍지끼며 들어올렸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숨소리만을 내었다. 괴로워하는 ‘유현덕’의 모습에 ‘조조’는 희열에 가득 찼다. 하지만, ‘유현덕’은 전생에도 그랬듯 다시 그를 비참하게 만든다.


“제 업보로 생각하겠습니다…….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내겠습니다.”


탁 하고 목 아래까지 물이 들이차는 것 같았다. ‘조조’는 숨을 쉬지 못한 채 ‘유현덕’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강화 유리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짓이야!”


‘유현덕’이 ‘조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슬픔과 고통을 초월한 이상한 감정이 그 눈동자 안에 있었다. ‘유현덕’이었던 자가 메인 목을 애써 삼키며 말을 잊는다.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을 용서해서가 아닙니다.”


“너 이 자식!”


‘조조’는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유현덕’의 눈에서 하나만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비참할수록 더욱 빛을 바라는, 그 ‘유현덕’ 특유의 생명력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사라지지 않는, 바로 그 의지. 젖은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유현덕’이 말했다.


“그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예요.”


“미래?”


‘조조’가 황당해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마치 처음 들어보듯, 그 단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미래라니? 그들에게? ‘조조’는 문득 자신의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간지럽게 느껴졌다. 온 몸의 감각들이 다 예민해지면서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앞의 ‘유현덕’이 갑자기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청각만은 선명하다.


“저는 남은 생 동안…… 아빠의 일을 후회하며 살겠지요. 제게 부친의 정이 처음이었던 만큼. 지금도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잊으세요, 조공. 당신도 어떻게 보면…… 운명의 피해자니까요…….”


‘조조’는 헛구역질하려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유현덕’을 바라보았다. 그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 모르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정말 모르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학생이 서러운 표정으로 울며 말했다.


“잊으세요.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애절히 흐느꼈다.


“제발, 제발 잊자…….”


아, 소년은 그 순간 바닥에 토해버렸다. ‘조조’를 뱉어내듯이. 피해자의 아들이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서럽게 울었다. 둘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정말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생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소년은 다시 구치소로 돌아와 처음으로 부모님이 보내주신 편지를 뜯어보았다. 자식에 대한 남은 사랑과 의무로 쓰인 편지지와 함께 세 가족이 찍힌 가족자신이 있었다. 친밀감이 없이 전혀 어색한 그 사진을 보던 소년이 갑자기 크게 짐승처럼 소리내며 울었다. 모두 그가 가졌고 망쳐버린 기회들이었다. 괴로워 가슴을 뜯는 그의 귓가에 피해자 아들 목소리가 다시 환청처럼 울려 펴졌다.


‘모두 잊자, ○○야…….’







작업 브금 Joe Brooks - Green Eyes

삼톡 유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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