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남수]One's youth

W. 와니


06






 "입에 맞니?"

 "네, 맛있어요."

 "더 먹고싶으면 편하게 말해도 된단다."

 식탁에 어색한 긴장감이 흘렀다. 남수는 천천히 꼭꼭 씹으면서 명료하게 어머니 말씀에 답했다. 강세한테 많이 들었어.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면서? 남수가 그 말에 나를 한 번 흘깃 보았다. 아.. 아니에요. 어머니는 조용히 흐뭇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움직였다. 아니야. 남수 진짜로 공부 잘해. 나도 가르쳐 줬어. 아까도 선생님이 올림피아드 나가라고 말씀하셨대. 끼어들자 남수가 말리듯 볼을 붉히며 입을 벌렸다. 귀는 이미 새빨갛게 타오를듯 했다. 왜, 맞잖아. 입만 벙긋거리는데 맞은편에서 오~ 그럼 우리 막내, 다음엔 올백 맞는 거야? 하며 나설이 놀리는 톤으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말없이 째려보는데 가소롭다는 듯 픽 웃어보이고는 남수에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강세가 괴롭히면 누나한테 말해. 상냥한 척 하기는. 자기도 겨우 중3이면서. 그러자 옆에 있는 나솔현도 입을 뗐다. 아, 언니 왜 그래. 얼굴 밖에 없는 우리 강세, 얼굴도 사라지게 생겼잖아. 강세야. 웃어. …아. 진짜 짜증나.

 "나강세."

 식사가 끝이 나고 일어나 남수와 방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설이 누나가 팔짱을 낀 채로 내 이름을 불렀다. 솔현 누나는 먼저 방에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얘기 좀 하고 갈게. 먼저 씻고 있어. 남수는 슬그머니 누나를 한 번 보고는 허리를 슬쩍 꾸벅이며 인사를 하고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에서 남수가 보이지 않자 누나가 코너 쪽으로 걸어가 아버지의 와인 창고 앞에 섰다.

 "미쳤냐?"

 누나 말에 가만히 나무 바닥만 내려보았다. 뭔 갑자기 친구를 데리고 와. 누나의 화난 음성에 아무 말을 않고 있었다. 이럴 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도 맞았으니까. 아니, 근데 평소에는 남친 만난다고, 친구랑 논다고, 뭐한다고 금요일엔 다들 늦게 들어오더니 오늘은 왜 이렇게 다 있는 거야.. 어머니께서 네 연락받고 얼마나 놀라셨겠어. 둘째 누나의 말이 이어졌고 나는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정적이 잠시 이어졌고 곧 누나가 한 마디 더 할 듯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이번만 넘어간다. 친구랑 잘 놀아. 너무 늦게 자진 말고. 응.. 미안.. 슬쩍 고개를 올려 눈치를 보며 조그맣게 말하자 미소지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어 좌우로 털털하게 쓰다듬었다.

 "들고 온 케이크 내 거다?"

 "뭐? 안 돼. 남수 거야. 생일이란 말이야."

 고개를 바짝 쳐들자 눈썹 한 쪽이 한 번 까닥이더니 큭 하며 웃음이 터지고는 아이구, 귀여운 내 동생. 친구도 사귀고 말이야. 하며 양볼을 꼬집어 흔들었다. 아, 놔..! 누나 손목을 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몇 번을 손가락을 돌리며 살을 비틀고 나서야 풀어줬다. 얼얼한 두 볼에 손을 대며 말했다. 나 친구 많아!

 문을 여니 서있는 남수가 보였다. 괜찮아? 성큼 다가와 앞에 섰고 걱정 어린 눈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별 일 없었어.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는데 남수가 내 볼을 검지로 살짝 짚었다.

 "너 여기 빨개.."

 "…씻고 있으라니까."

 고개를 확 뒤로 뺐다. 네가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씻어..…들었어? 아니. 엿듣는 건 실례니까 바로 방으로 들어왔어. 잘했어. 빨리 씻어. 남수는 걱정이 다 가시지 않는 듯 내 볼을 한 번 더 슬쩍 보고는 마지못해 몸을 돌렸다. 시무룩해 축 처진 어깨로 두 걸음 정도 뗐다가 도로 얼굴을 내 쪽으로 향했다. …나 때문이지..? 조심스러운 물음이었다. 아니. 고개를 저었다. 누나가 잘 놀으라고 했어. 단호하게 답했지만 여전한 표정에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너무 늦게 자지 말라고도 했어. 그니까 빨리 씻고 나와. 활짝 웃어보였고 그다지 위안이 된 것 같지는 않지만 남수는 비죽 나온 아랫입술로 끄덕이고 욕실로 다시 걸어갔다.

 "강세야."

 "응?"

 "나 칫솔 없는데.."

 털썩 이불 위에 대충 앉았다가 문 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말하는 남수에 아.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가방만 대충 내려놓고 바로 1층으로 내려갔었지. 씻으려고 했어도 어차피 못 씻었겠구나. 좀 바보같았던 실수에 미안. 사과하며 곧장 걸어가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을 왼쪽으로 밀었다. 서랍에서 새 칫솔과 치약을 빼주고 옆에 있는 거울을 오른쪽으로 밀어 수건을 건넸다. 이어 잠시 나가 옷가지들도 들고 왔다. 새 거니까 안심하고 입어도 돼. 응. 고마워. 말하는 남수에 문을 탁 닫고 나왔다.

 물소리가 쏴아- 들리기 시작했고 발은 바닥에 둔 채로 이불 위에 털썩 누워 핸드폰을 톡톡 두들겼다. 몇 분이 지났을까 중간에 소리가 몇 번 끊기더니 곧 다 씻은 남수가 따끈한 공기와 함께 수건을 머리에 덮은 채로 나왔다. 코 밑으로 수건 양쪽을 한꺼번에 모아 잡고 있어 얼굴은 다 가려져 있었다. 톡. 톡. 축축한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져 나온 물방울이 흰 티셔츠와 갈색 바닥을 젖게 했다. 옆에 준비해뒀던 옷을 들고 일어나 화장대를 가리켰다. 헤어드라이어 꺼내 놨어. 로션도 써도 돼. 남수는 그 상태로 나에게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고 위잉- 드라이어 소리에 맞춰 문을 열었다. 열린 샤워부스에 새어나온 김이 거울에 서려있었다.

 씻고 나오니 남수는 발장난을 하고 있었는지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침대에 걸터 앉아 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다 씻었어? 반색하며 묻는 남수에 응. 말하고 화장대 앞에 앉아 물기를 털어내며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뒷머리부터 세로로 손을 몇 번 흔들고 앞머리로 옮겨 손가락으로 가로로 가볍게 저었다. 이어 빗질을 하며 그 결대로 드라이어를 움직여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로션을 짜내 얼굴에 발랐다. 거울 왼쪽 모서리에는 내내 내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남수가 보였다.

 "남수야. 배고파?"

 "아니."

 사실 그게 궁금한 건 아니었다. 나도 배고픈 것도 아니었고. 우리 아까 사온 케이크 있잖아. 초 불래? 남수가 눈을 한 번 떼굴 돌리더니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이제 막 9시가 되어가는 시간. 아직 남수의 생일은 많이 남아있었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상자 위에 케이크를 올려놓았다. 두꺼운 초를 중심에 꼽고 그 주변에 얇은 일반 초들로 둘러쌌다. 멀찍이 팔을 뻗어 동봉해준 성냥을 칙, 칙, 어설프게 사포에 긁었다. 첫 번째에는 소리만 나더니 힘을 더 줬더니 두 번째엔 순간 불이 확 피어올라서 우리 둘 다 헉. 어깨를 들썩이며 놀랐다. 괜찮아?! 손 안 뎄어?! 남수가 크게 말하며 몸을 가까이 붙였다. 괜찮아. 안 다쳤어. 숨을 내쉬고는 초에 하나씩 다 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냥에 입바람을 훅 불었다. ...는 꺼지는 듯 싶더니 불씨가 다시 살아올라서 한 번 더 불고 마지막으로 손을 재빠르게 털어내 꺼트렸다. 잠시 검게 그을려 연기만 피어오르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을 하고 전등을 껐다.

 방에 불을 끄니 정말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노란 빛 너머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가 씩 웃음을 짓고 손을 들어 탁. 조용히 손뼉을 쳤다. 생일 축하~ 멜로디를 실으며 노래를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민망함이 몸을 애워싸서 멈췄다. …별론가? 그냥 불을래? 어색하게 웃어보이자 남수가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에 더 밝은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아니. 해줘. …응. 답하고 흠, 흠. 긴장감에 목을 풀고 다시 축하를 시작했다. 쑥쓰러워 괜히 몸을 오른쪽으로, 또 왼쪽으로 흔들흔들하며. 그렇게 노래와 함께 박수도 끝이 나자 남수가 눈을 내리깔며 호오- 입바람을 불었고 한순간에 방이 암흑이 되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아른거리는 얼굴에 와-! 짝짝짝 크게 박수를 쳤다. 일어나 불을 켜고 소원은 뭘 빌었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라 답했다. 맞아. 말하면 안 이루어진대. 미소지으며 초를 뽑아냈다.

 생일이라고 특별할 건 없었다. 그 동안은 바닥에 앉아있었지만 지금은 이불 속에 누워있는 것 정도? 밤까지 같이 보내게 되었지만 우리는 평소처럼 사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재밌었다. 언제나와 같이 큭큭 웃으며 유투브를 보고 있는데 남수가 몸을 슬쩍슬쩍 비틀었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남수는 아니.. 작게 답했는데 잠시 나를 따라서 영상을 보다가 또 불편해 보이는 기색으로 뒤척였다. 홀드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왜 그러는데? 그러자 남수가 흘깃 눈을 옆으로 돌려 피했다. 그 눈을 따라 고개를 기울여 다시 물었다. 응? 뭔데. 말해봐.

 "아니.. 속옷이.. 좀 어색해서…."

 "속옷?"

 "응.. 나는 그냥 사각 입거든.. 딱 붙는 건 처음 입어봐서.. 좀 낯설어."

 아.. 그 헐렁헐렁한 거? 남수가 끄덕거렸다. 어쩌지. 나는 그거 없는데. 괜찮아. 있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남수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한 번 더 골반쪽을 잡아 내리고 계속 보자는 듯 액정에 시선을 두었다.

 15분 정도 되는 짧다면 짧은, 또 길다면 긴 영상이 재생되고 남수는 푹신한 헤개에 머리를 묻고 집중한 듯 나른한 눈으로 느리게 껌뻑이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졸려? 약간.. 넌지시 묻자 두 눈을 꾸욱 누르며 비비는 남수에 그만 잘까? 또 한 번 물었다. 아니.. 조금 더 있다가 잘래. 너랑 있는데 벌써 자는 건 아쉬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했다. 눈은 계속 핸드폰을 향하고 있었다. 5분쯤 지나자 검은 화면이 뜨며 다음 재생할 영상을 띄웠고 남수는 졸음이 가득 담긴 눈으로 머엉 화면인지 허공인지 모를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볼까? 점점 낮아지는 눈꺼풀만큼 소리를 죽여 소근거리니 응.. 그보다 더 작은 소리가 돌아왔다. 핸드폰을 꺼 베개 옆에 두고 불까지 소등하고 나자 정말 방 안을 어두운 남색이 가득 채웠다. 잘 자. 침대에 누워 말하자 …너도. 한 박자 느리게 끝인사를 했다.

 그렇게 잠드는 줄 알았는데 부스럭부스럭 스윽, 스윽, 천 스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눈을 떠보니 정면을 향하고 있던 몸이 웅크려져 얼굴만 내밀고 있는 채로 내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는데 남수가 훌쩍이듯 일정박자로 콧숨을 들이마시는 게 들렸다. 간질거리는 숨결에 목덜미에 긴장이 올랐다.

 "…뭐해?"

 "…냄새.. 좋아서.."

 남수는 눈도 뜨지 않고 중얼거렸다. …냄새? 응. 향기 나.. 노곤한 목소리로 이어 말하며 보드랍게 미소를 띄웠다. 눈을 한 번 껌뻑이곤 입을 열었다. …아까 코롱 뿌려서 그런가 봐. ..향 다 날아갔을 텐데? 말하다 고개를 기울이는데 살짝 얼굴을 더 가까이 붙였다. 그래..? 몰라.. 어쨌든 좋아. 아까부터 좋았어. 입매를 더 올려 웃고는 이불 속에 포옥 코를 묻었다. 그렇게 짓고 있던 눈웃음도 풀리고 이제 잠들었나 싶었는데 이불 밑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아버지는..?"

 "응?"

 "아까 식사 자리에 안 계셨잖아."

 "아버지는 일 가셨어. 밤에 바쁘셔."

 그렇구나.. 남수가 살풋 주억였다. 그렇게 다시 대화가 끊겼다가 문득 떠오른 중요한 일에 몸을 돌렸다.

 "근데 너 집에 연락 안 해도 돼? 핸드폰 빌려줄게."

 남수는 미동이 없었다. 그새 잠 들었나? 눈을 굴리고 손을 빼들어 남수 앞에 휘저었다. 그래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방금까지 말했는데 이렇게 잠든다고? 신기하기도 하고 혼자 말하고 있었다는 게 살짝 멋쩍기도 해서 잠시 더 바라보다 콧숨을 내쉬며 제대로 누우려고 눈을 뗐다.

 "사실.."
 몸을 움직이려다 말고 다시 남수 쪽으로 돌렸다. 남수 눈은 여전히 감겨있었다. 입도 잠깐 말을 떼더니 내가 바라볼 적에는 닫혀있었다. 평소와 같은 무심한 표정인데 어딘가 달라보였다. 나는 뭐냐며 채근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입이 조심히 열렸다.

 "난 부모님이 안 계셔."

 몸이 다른 의미로 굳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말을 한 남수의 얼굴은 무거워 보이기도 했고 평온해 보이기도 했다. 눈을 보지 못해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예상한 반응이었다는 표정인 것도 같았다. 난 입술만 움찔했다가 결국 떼지 못하고 닫았다. 왜인지 미안했다.

 "너무 그렇게 안 봐도 돼. 너는 말해도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말한 거야."

 주변에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에 대한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남수의 말에 움찔거렸지만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눈을 굴려도 지금 내 눈이 어떤 상태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네가 지금 눈을 감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맨발로 욕실로 달려나가 속을 게워내고 싶었다. 어금니에 힘을 줘 깨물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남수는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잘 자. 나긋하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한 칸 떨어진 자리, 그 등을 바라보다 목을 틔웠다.

 "…이제부터 내가 네 가족이 되어줄게."
 그 말에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눈은 떠져있었고 그 눈 속엔 의문이 보였다.

 "…가족?"

 "응. 형. 형이 되어줄게."

 남수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익숙해진 어둠 속에 옅게 흔들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얼핏 들어오는 달빛에 등을 지고 있었지만 울멍임이 섬세하게 반짝였다.

 "…내가 더 생일 빠른데."

 "…싸, 쌍둥이.."

 목이 메인 게 언뜻 느껴졌지만 여느때처럼 무심한 목소리였다. 그 떳떳한 태도에 순간 뒤로 물러났는데 그러자 남수가 피식 눈을 접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속눈썹이 맞붙었다 떼어지면서 아래에 있던 물기가 위로 옮겨가 눈 주변이 촉촉해졌다. 새끼 손가락을 세워 팔을 내밀자 잠시 눈을 마주하더니 응. 눈을 접으며 미소를 짓고 눈을 돌려 내 손끝을 바라보곤 나처럼 팔을 뻗어 새끼 손가락을 세우고 내 손가락에 걸었다.

와니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