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목동재] 이것이 바로?! 4-1


시목은 문득 근래 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서동재에 대해서 생각했다. 마구잡이로 이상한 이유를 만들어대며 제 인생에 침범한 서동재를. 이제껏 평온하기만 한 제 인생이 순식간에 다이내믹해졌다. 시목은 비가 오는 날이 좋았다. 아니 좋아졌다. 날씨가 좋은 날은 대부분 점심시간을 운동장에서 반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지냈지만, 운동장에 나갈 수 없게 된 날은 점심을 먹자마자 저를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딱히 특별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동재의 입에서 나오던 다른 친구들의 이름이 거슬리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동재가 어떤 말을 떠들던 그걸 듣는 건 별 무리가 없었다. 제 반에 절 찾아와서 언제 친해졌는지 모르게 익숙하게 반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안부를 주고받고, 그 감상을 늘어놓는 건 시목이 원치 않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절 보러 와서 다른 사람들만 신경 쓰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거였다. 시목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동재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입술을 비죽거리는 것까지 숨기진 못했다. 시목은 이상하게 그 반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입술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매일매일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재는 같은 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잠깐 만나는 것이 전부였다. 시목은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동재의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한 짝사랑이 끝나던 날 시목의 방에서 잠이 든 적이 있었는데 눈을 감고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동재를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이상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동재를 붙잡은 건 시목이었다. 그 선택의 결과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은 꿈까지 동재가 나타났다. 이후 시목이 동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과 실제 쏟고 있는 시간이 비례하게 늘었다는 건 사실이었다.


오늘은 날이 맑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엔 서동재가 운동장을 누비고 있을 터였다. 시목은 오늘도 시간에 맞추어 운동장으로 나왔다. 대부분 벤치에 앉아 축구를 하는 동재를 바라보다가 시간에 맞추어 매점에 갔다. 동재가 즐겨 먹는 음료는 저답지 않게 딸기 우유였는데 갈증을 없애기 위한 이온 음료, 속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탄산음료 여러 가지를 주었지만 가장 잘 먹었던 것이 이것이라 이제는 고민하지 않고 딸기 음료를 집어 계산했다. 매점 아주머니도 시목이 보이면 오늘은 딸기 우유가 빨리 빠져서 한 개를 빼뒀다며 슬쩍 건네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한 손엔 딸기 우유와 한 손엔 자신이 마실 비타민 음료 하나를 사 운동장으로 갔다. 오늘은 이상하게 축구를 하던 학생들이 유달리 한군데 모여있었는데 사고가 난 것 같았다. 시목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이 서동재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대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야, 괜찮아?’ 고개를 드는 동재의 손이 제 코와 입을 가리고 있었는데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시목은 그대로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동재의 나머지 손을 잡아챘다. 눈이 휘둥그레진 동재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시목은 둥그렇게 모여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양호실 쪽으로 걸어갔다. 양호실은 별관에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걸어가는 걸 본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치료 잘 받고 오라고 소리를 쳤다.


“야, 나 괜찮은데.”


손가락 사이로 피를 줄줄 흘리면서 동재가 말했다.


“다쳤으면 거기 서 있을 게 아니라 곧장 양호실로 갔었어야지.”

“이 정도는 휴지로 막고 있으면 되는데…. 이거 내 거지?”


동재는 시목이 잡고 있는 손을 빼고 다른 손에 쥐여 있는 딸기 우유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시목은 쉽게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치료 다 받고 나면 줄게.”

“체,”


동재는 양호실로 가 선생님을 찾았지만, 양호실엔 아무도 없었다. 시목은 동재를 앉혀두고 능숙하게 캐비넷을 열어 처치에 필요한 것을 꺼냈다. 동재는 그사이 코피로 시뻘게진 손과 코를 씻었다. 하는 김에 세수도 하고 목이며 팔이며 씻고 나니 한층 개운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혈이 잘 안된 것인지 다시 피가 주르르 흘렀다. 시목이 지혈한다며 콧등을 세게 잡았다. 그리고 잘 말아둔 탈지면을 동재의 코에 콱 쑤셔서 넣었다. 아야, 동재가 앓는 소리를 하니 동재를 잡고 있던 손이 움찔- 떨렸다. 단단히 코를 막고 나자 손이 떨어졌다. 금세 콧속에 넣어둔 솜이 빨갛게 물들었다. 시목의 한 손은 지혈하기 위해 계속 동재의 코를 잡고 있던 참이었다.


“코, 누르는 거 아픈데.”

“지혈하려면 조금 더 누르고 있어야 해.”


시목의 단호한 말에 동재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이리저리 벅벅 문질러 씻느라 온통 빨갛게 도톰해진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조금은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코를 잡고 있던 손을 떼고 얼굴을 내려 짧게 입술을 부딪쳤다. 동재의 큰 눈이 휘둥그레져 시선을 마주쳤다. 야! 동재가 놀라 팔을 휘두른다는 게 그대로 시목의 콧등 위를 정확하게 때려버렸다. 아! 시목의 놀란 목소리에 동재도 덩달아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목의 코에서도 주르륵 시뻘건 피가 흘러 내렸다.


“야! 피!”


저도 똑같이 축구공에 맞아 코피를 흘려 찾아왔으면서 시목의 코피에 온갖 호들갑을 떨어댔다. 지혈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탈지면을 벅벅 뜯어 그대로 시목의 코를 틀어막았다. 시목은 그대로 동재보단 많이 침착했다. 시목이 코를 잡고 지혈했고 동재는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미안해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제야 둘의 꼴이 서로 눈에 들어왔다. 동재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거의 양호실 침대 위를 뒹굴듯이 파안대소하던 동재가 웃음을 가득 담은 채 시목에게 말했다.


“야, 그러니까 거기서 그러면 어떡하냐? 놀랐잖아. 너나, 나나.”

“싫진 않았고?”

“어?”


시목의 물음에 그제야 동재는 웃음이 사라지고 얼이 빠진 얼굴을 했다. 동그란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목부터 귀까지 시뻘게지는 것이 보였다. 지난번처럼 조퇴하고 저의 집으로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에 솜을 틀어박은 조용한 얼굴의 서동재가 제 침대 위에 누워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는 모습을 상상했다. 순간 시목은 제가 서동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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