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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샹들리에를 악보 삼아 물이 흐르 듯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가 흘러 퍼지고 있는 무도회장에 누구나 한 번쯤 돌아 볼 법한 미모의 영애가 들어섰다. 그녀는 자신을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는 타인의 시선에 익숙하다는 듯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샴페인 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미소를 지었다.


지루하네…. 접어 올린 눈매의 힘을 빼며 카논은 생각했다. 귀족의 사교계라는 것은 대개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그다지 쓸모없는 내용으로 남을 떠보기나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고 싶어 하는 머저리들의 모임이었다. 멍한 눈으로 샴페인을 홀짝거리던 그녀는 굉장히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지만 상단의 일로 자리를 비우는 자신을 대신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라던 아버지의 명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 카논 영애! 오늘은 어쩐 일로 오래 남아 계시네요?"


카논이 자신에게 춤을 청하는 영식들을 발이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하며 정확히 4잔째의 샴페인을 들어 올릴 무렵 낯익은 얼굴의 영애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카논은 손에 쥔 샴페인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미소를 띠었다.


"슐라 영애! 오랜만이네요. 오늘은… 공작님의 대신이에요."


카논이 슐라라고 칭한 영애는 제법 귀여운 성격의 남작 영애로 카논에게 호감을 가지고 따라다니던 영애였는데,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워 몇 번인가 저택에 초대해 티타임을 가지기도 하고… 편지도 두어 번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는 관계였다. 아무튼 카논에게 있어 슐라는 시간을 때우기에 적합한 상대라는 뜻이다. 카논은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슐라에게 샴페인을 한잔 권하며 내려두었던 자신의 네 번째 샴페인을 손에 들었다.


"맞다! 그 사람 보셨어요??"


그동안 보지 못해 아쉬웠다며 카논의 팔에 팔짱을 끼고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던 슐라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자신의 입을 부채로 가리며 카논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요?"

"저쪽에… 처음 보는 얼굴의 영식이 있지 않나요?"


슐라가 슬쩍 고갯짓하며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돌리자, 그녀의 말대로 카논이 처음 보는 남자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카논은 그가 최근 주목받는 신예라며 앞으로의 사교계에 꽤 큰 이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말하는 슐라를 보며 그와 통성명 정도는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하에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저도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별로 재밌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곧 자리를 파할 예정이기도 했고요."


남자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카논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까이서 그를 보니 안색이 파란 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꽤나 고난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까지 얼굴에 자신의 기분이 티가 나면 사교계에서 물어뜯기기 십상인데…. 카논은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렇군요. 제가 너무 늦게 찾아온 모양이네요. 하지만 인사 정도는 할 시간이 남았겠죠? 쿠키 공작가의 쿠키 카논이에요."

"…남작가의 타케가하라 유이치 입니다."


카논은 유이치에게 다음번에는 꼭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인사치레를 건네고 몸을 돌려 슐라와 함께 원래 자신이 서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유이치는 어쩐지 멀어지는 카논에게서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 조금 덥네. 카논은 슐라에게 양해를 구한 뒤, 몸의 열을 식히기 위해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 난간에 기대 찬 바람을 맞으니 몸의 열기가 어느 정도 내려가는 것 같았다. 카논은 멍하니 난간에 기대어 눈을 감고 언제쯤 저택으로 돌아가면 좋을지 고민했다.


"그래도 한 곡 정도는 춰야 하려나?"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선 춤 한 곡 정도는 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카논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멍청한 영식들 중 누구랑 춤을 춰야 하지? 홀에 있는 누구던 카논이 넌지시 춤을 추겠다는 의사를 표하고 입꼬리를 올리면 자신과 춤을 추지 않겠냐고 나설 것이 분명하지만…. 멍하니 생각을 이어가던 카논은 테라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조금 전 인사를 나누었던 유이치였다. 그는 멍한 눈으로 테라스 문과 카논을 번갈아 쳐다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무방비한 모습을 보인 카논은 자기도 모르게 조금 날 선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숙녀가 혼자 있는 테라스에 함부로 들어오시다니요. 예의가 없으시네요."


카논은 입꼬리만 올린 채 웃으며 쏘아대듯 유이치에게 말했다. 그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유이치를 보며 카논은 속으로 픽 웃었다. 얼굴에 생각이 다 보이네. 카논은 그가 무언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분명 문고리에 손수건을 걸어뒀을 텐데요. 최근 사교계에 데뷔하셨다더니… 아직 그 정도의 상식은 없으신가 보네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없었…는데. 손수건? 없었습니다."


카논은 눈에 띄게 당황하는 그를 한차례 노려보다가 이내 크게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


"손수건이 떨어진 모양이네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 무도회장에선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은 보지 못할 수 있죠. 아까부터 너무 긴장하신 것 같기에?"

"아…"


유이치는 카논의 말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몇 초쯤 얼빠진 표정으로 서있다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는 문 앞으로 걸어가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 문에서 빠지지 않도록 문고리에 꼼꼼히 묶어두었다.


"…덕분에 꽤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혹시… 춤을 한곡 청해도 되겠습니까?"

"갑자기요?"

"사실은 아까부터…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발이 아프다며 모두를 거절하시기에."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남작 영식께선 저에게 꽤 관심이 많으셨나 보네요?"


카논은 몸을 일으켜 유이치의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주 작은 틈만을 남겨두고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게 보였다. 멀리서 보았을 땐 제법 사납게 생긴 인상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는 그는 생각보다 더 나쁘지 않았다.


"좋아요."


카논은 그녀의 말에 시시각각 변하는 유이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유이치는 자신의 요청이 승낙될 줄 몰랐는지 바보 같은 얼굴을 하며 얼른 손을 내밀었다. 카논은 그가 건네는 손을 거절하며 살짝 웃었다.


"미혼인 남녀 둘이 테라스에서 밀회를 즐기다 나가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실 생각이신가요?"

"귀족의 룰은 어렵군요."


유이치는 카논의 말에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듯 손을 들어 자신의 뒷머리를 헝클이며 사과했다. 그는 카논에게 밖에서 기다릴 테니 천천히 나오라 말한 뒤 문을 열어 주변을 한번 둘러 보고 도망치듯 움직였다. 그의 말대로 난간에 기대어 구겨진 자신의 드레스를 정돈하고 느긋하게 테라스 밖으로 나온 카논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유이치를 발견했다. 유이치에게 다가가니 그가 헛기침을 하며 카논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곡 추실까요. 영애님?"

"카논이라고 불러도 좋아요."


카논은 유이치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작게 웃었다. 두 사람은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홀의 중앙으로 걸어나가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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