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관린! 당신 어떻게 나한테 말도없이 출국을 할 수가 있어?"

 

내 남친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만 보더니,

 

"내가 내 고향가는것도 너한테 허락맡고 가야돼? 그러는 너는 나한테 허락맡고 연락두절에 꽐라되서 황민현한테 업혀왔나?"

"그런말이 아니잖아! 그리고, 같이 간 여자는 누구야? 왜 둘이 같이 가? 자기 혼자 가면되지, 왜 그 여자랑 단 둘이 같이 가냐구!"

"내 약혼녀니까."

".....뭐?"

 

기가막히고 코가막혀서 멍 때리고 있자, 내 남친은 피식 웃었다.

입꼬리는 올라가있는데,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내 약혼녀라고. 너도 봐서 알겠지만, 외모는 물론이고, 능력이면 능력, 학력이면 학력, 뭐 하나 빠지는게 없어."

"자, 자기 지금 무슨..."

"나 그 사람이랑 결혼하기로 했어. 아버지도 허락하셨고. 그러니까 잘지내. 그동안 즐거웠어."

"다...!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미안, 미안. 늘 받기만 한 것 같아서. "

"놀구있네! 야 ! 너 지금 당장 날아와! 아니, 내가 갈테니까 가서 얘기해!!"

"미안 지훈아. 나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테니까, 너도 잘 살아. "

"라, 라이관린!! 가지마!"

 


 

"가, 가지마.. 가지마!! 가지말라구우!! 가지마아악! 억!"

 

쿵-

 

눈 떠보니  내가 방바닥과 딥키스 중이었다.

꿈이었구나...꿈 치고는 졸라 입체감과 현실감 쩌는 꿈이었다. 뭔 말이냐면, 깨고나서도 기분이 졸라 더러웠다고.

뭔 꿈을 꿔도 이딴 꿈을 꾼대?

 

"후으..."

 

휴대폰을 켜보니 새벽 한 시 였다.

그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깜빡 잠들었다. 그리고 깨어나서도 여전히 그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지금까지 연락을 안한다는건 나에게 화가 났음을 떠나서, 이제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아닐까.

꿈까지 졸라 병신같은 꿈을 꿔서 우울했다.

 

"흡, 흐으...나빠아..."

 

나한테 말도 없이 멀리 떠나버리고.

내가 밉더라고 그렇게 멀리 갈거면 나한테 말이라도 해 주고 가지. 기다리라던가, 기다리지 말라던가 말이라도 해주고 가지.

이러다가 영영 돌아오지않으면 어떡해.

 

'그냥 진작 미안했다고 사과할걸' 하는 후회와, '고작 직장동료랑 술 마셨다고 말도없이 연락두절? 해외도피?' 하는 빡침이 만나 눈물을 이루었다.

 

"흐어어어어어!! 흐어어어어.....흐읍, 흐어어어... 나빠아....나쁘다고오...! 아니야아...미아내...내가 미아내 자기야아아...흐어어..."

 

혼자 침대 매트리스를 팡팡 치며 꺼이꺼이 울어대는데,

 

'띵디딩딩- 띵디딩딩-띵-'

 

겁나 해맑은 벨소리가 울렸다.

내 남친에게서 걸려온 보이스톡 이었다. (이와중에 국제전화 안 써줘서 정말 감사해, 자기야.)

당장 통화연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뭐해"

".........."

"자?"

 

흡, 너같으면 잠이 오겠냐. 이 나쁜넘아.

낯선 타국땅에서 듣는 남친 목소리가 어찌그리 반가운지. 연락 끊긴지 아직 하루도 안 지났는데 마치 10년동안 연락이 끊긴 것 마냥 그립고 반가웠다.

 

뭐라고 말을 해야되는데 꺼이꺼이 있는 목청껏 울어재낀 바람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전화가 왔는데 왜 말을 하지를 못하니, 왜 목소리를 내지를 못하니!

 

"자는데 깨웠나보네. 미안. 다시 ㅈ..."

"흐읍, 너 나빠. 자기 나쁘다."

"......."

"왜 나한테 말도없이 갔어. 흐읍, 내가 그렇게 미워써? 흐으으... 그렇게 먼 곳에 갔으면서, 흐끕, 나한테, 흡, 말도,흡, 안하고오..."

"......"

"그리고, 흐읍, 그 여자는 누구야. 흐으... 바람피는거지이...그러치이..."

 

말하다보니 또 서러움에 복받쳐서 엉엉 울었다.

잠시 말 없던 상대방은 내 우는소리에 푸흡하고 풍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이쁘지?"

"....흡, 뭐?"

"능력있는 여자야. 얼굴도 괜찮고. 회장님이 신뢰하는 직원이야."

"......."


잠만, 아까 꾼 꿈이 예지몽인가.


"그, 그래서?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흡, 뭔데!"

"보고싶어."

"흡, 그 여자 지금 니 옆에 있잖아! 실컷 보면 되지 왜 나한테 그래! 흐어엉...!!"


내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상대방의 웃음소리도 점점 커졌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꺽꺽대며 웃어댔다. 개빡치게.


"흐읍, 흐으...헤어져. "

"응?"

"흡, 헤어지자구. 보내줄게. 더 이상 나쁜 꼴 보기전에, 내가 그냥 당신 차는거야. 흐읍, 그러니까 그 능력좋은 여자랑...흡, 대만에서 눌러살어."

"........."

"잘살아라,나쁜놈아! 흐어어어엉..!!!"


통화 끝.


그래, 애초에 나와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너무 과분한 사람이었지. 

아까 라이관린 옆에 있던 여자는 누가봐도 멋있는 여자였는데. 

라이관린 옆에는 나보다 그여자가 훨씬 잘 어울려보였다.


한참을 울다가 눈물을 닦고 침착하게 A4 용지를 꺼냈다.


'사직서 (궁서체)'


이름, 박지훈. 

퇴사사유, 남자친구와의 결별로 인한 퇴사입니다. 서로 얼굴보기 껄끄럽거든요.


띠바, 이래서 다들 사내연애를 비추하는구나.

오늘로서 절실히 깨달았다.


'담배피지 말랬더니 바람을피는 졸라 말 잘듣는 라이관린 이사,각성하라.'


퇴사할때 회사로비에 대문짝만하게 떡하니 붙혀놓고 나올계획까지 마쳤다.


졸라 짜증나네, 라이관린.

졸라 나쁜놈. 졸라 잘 먹고 잘 살아라.


.

.

.


".........."


잠이 덜깼나 싶어서 눈을 부벼봐도 내 눈에 보이는건 똑같았다.


"저기... 김 비서님... 아침일찍 웬일이세요...?"


사직서를 품에안고 비장하게 출근준비를 하고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보니 김비서님이었다.


"지훈씨, 아침일찍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내 입안에 있는 칫솔을 조심히 빼시더니,


"밖에 차가 대기하고있습니다. 마무리하시고 나오시죠."

"에...?"

"이사님께서 지훈씨 모시고 오라 연락오셨습니다. 같이 가시죠."

"어, 어딜...요? 회사요? 회사는 버스타고 가면 되는..."

"대만에 이사님이 묵고계시는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


아침부터 듣는 개소리는 다른때보다도 더 개소리스러웠다.


"아니,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대만으로 가자는거에요? 나 지금 짐도 안쌌고, 아직 아무준비도... 아, 아니! 그리고 내가 왜 거길 가요! 이미 끝난 사이...!"

"이사님께서 지훈씨 모시고 오라고 전용기를 보내셨습니다. 지금 공항에 도착했다니 서두르셔야합니다."

".........."



전용기래...와씨...졸라 클라스 오지고지리고레릿고....



"나, 나는 안갈..."


"이사님이 무조건 지훈씨 모시고 오라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사님의 지시를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

"계속 기다리고있겠습니다."


대문 앞에서 30분동안 썰전을 펼친 결과,


"우와아, 이거 다 먹어도 되는거에요...?"

"그럼요, 이사님께서 특별히 지훈씨 취향에 맞게 준비하신 간식거리들입니다."


전용기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들과 음료수로 가득했다.

그리고 앞에 걸어진 티비에는 내가 보고싶었던 영화가 방영되고있었다.


"도착할때까지 시간 좀 걸리니 눈 좀 붙히십시오."


갑자기 의자가 뒤로 젖혀지더니 은은한 조명으로 바꼈다.


진짜여기가 하늘위의 유토피아구나.


.

.

.


"이사님께서 잠시 회의가셨습니다. 곧 오실테니 지훈씨 오시면 룸으로 모시라 하셨습니다."

"아, 네..."




도착하자마자 안내받은 곳은 호텔의 꼭대기 층, VIP 스위트룸이었다.


들어오자마자 기겁할 뻔 했다.

내 방의 네 배? 아니다, 열 배 정도는 되는 크기였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방구경을 하다가 정돈안된 책상을 정리했다.

바쁘긴 바빴나보네. 정리정돈 잘하는 사람이 책상을 이모양으로 만들어놓고...


이것저것 치우다가 그의 다이어리에 끼워진 사진을 발견했다.

얼마전에 집에서 같이 찍은 폴라로이드 셀카사진이었다.


이걸 왜 들고다닌대 (흐뭇) 일에 집중할것이지 사진은 왜 보고있었대(뿌듯) 


책상에 걸어앉아 사진구경하고있는데, 갑자기 무거운 뭔가가 내 뒤를 확 덮쳤다.

그리고 코구녕에 훅 들어오는 익숙한 향수냄새. 그리고,


"용케도 잘 찾아왔네, 우리 박대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



.

.

.


"쌩깔땐 언제고, 날 왜 불렀대?"

"쌩깐건 박지훈이 먼저지. 내 연락 쌩까고 술퍼먹다가 잘나신 직장동료분 등에 업혀서 질질 끌려온게 누구더라."


뭐시여, 시방 타국에서 2차전 하자는겨...?

맘 같아서는 소리 빽 지르고싶은데, 평소 쿨한 성격인 사람이 오죽 화가 났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삐졌을까 싶기도 했다.


"하... 그래. 미안해. 이제 다시는 자기 연락 안 씹을게. 술 도 적당히 먹고."

"황민현이랑 단둘이서 술 안먹겠다고도 약속해."

"...아니, 팀장님한테 왜그래 진짜아...팀장님이 자기한테 돈 빌렸어? 좀 예뻐해줘어어... 팀장님 되게 좋은분..."

"그 사람이 너를 좋아한다해도 내가 그 사람을 예뻐해야되나?"

"....에?"

"쳐죽여도 모자랄판에?"


자기,드라마 그만 봐.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졌어.



"말이되는 소릴 해.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거야. 큰일 날 소릴 하구있어. 우린 그냥 직장동료..."

"넌 몰라. "

"...내가 뭘 몰라..."


어이가 없어서 그의 입술을 꾹 누르니, 라이관린은 내 손목을 잡고 자신의 입술에서 떼어냈다.


"너는 내가 너 좋아하는것도 몰랐었잖아."

".........."


"예쁘게 생긴게 순진하기까지해서 내가 더 애가타."

"........."


내 남친은 내 볼따구를 제 장난감마냥 조물딱대더니 입을 쪽 맞춰왔다.


"여행왔다 생각하고, 나랑 쉬다가 가자."

"...나 그럼 결근인데에..."

"누가 결근이래. 대표이사랑 출장온거야. "

"풉..."



날이갈수록 뻔뻔해지는 라이뻔뻔씨가 귀여워 그의 볼을 감싸고 쪽쪽 입 맞췄다.

한참을 쪽쪽대다보니 어느새 내가 그의 책상위에 엉덩이를 걸친채 앉아있었고, 라이뻔뻔씨는 내 다리사이에 자리를 잡은채 여전히 내 볼과 입술, 목덜미에 쪽쪽대고있었다.


갑자기 누가 들어오면 어쩌지, 싶어서 잠시 입술을 뗐는데 내 남친은 내 속도 모르고 다시 입을 맞춰왔다.

그리고는,


"아무도 안 들어와. 아니, 못 들어와."

"........"

"내가 연락하기전에는 들어오지말라했거든."

"........"

"하던거 마저 하시죠? 나, 이제 좀 힘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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