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은 자신이 어쩌다 남의 우주선에 타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안 그래도 그의 기억은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람을 납치했다며 황당해하는 몇몇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는 기억나지 않는 것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그와 한선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교통체증 속에서 몇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영양가 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놀리고, 다른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하고, 하다 못해 새벽 거리에서나 하는 진지한 얘기까지 다 늘어놓았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우주선 내에 갇혀 있었다. 기다리다 지친 유진이 처음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 거야?”

의자에 거의 파묻힌 채로 태블릿을 만지작대던 한선이 웅얼웅얼 답했다.

“앞에서 사고가 난 모양이야.”

“빨리 도착했으면 좋겠다. 그걸 보면 너도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걸……”

곧이어 누군가의 울부짖음이 귀를 강하게 때렸다. 깜짝 놀라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유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조명이 잘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던 것이 어느새 눈이 시릴 만큼 밝아져 있었다. 유진은 어리둥절한 채로 나무 그림이 잔뜩 그려진 벽면과 반짝반짝 빛나는 별 장식들을 살폈다. 우주선에서의 1년이 다 마무리되어가는 것을 기념하는 몇몇 문구들은 유진도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대문짝만하게 쓰인 ‘연말 기념 파티’ 홀로그램을 보고 나서야 그는 뒤늦게 자기가 다른 우주선 안에 들어와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제자리로 돌리니 검은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람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했더라? 유진이 멍하니 생각했다.

‘우리, 벌받는 걸지도 몰라.’

이제 와서는 그게 자신이 한 말인지 다른 사람이 한 말인지 명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벌을 받는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유진은 눈앞에서 흔들리는 손바닥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기요. 제 말 들려요?”

“그렇게 무섭게 말하지마. 장청 네가 말하면 꼭 취조하는 것 같잖아.”

“내가 뭐.”

장청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얌전히 입을 다무는 것이 금발머리의 말에 동의한 듯했다. 한선과 대화하던 것이 아주 지나버린 일임을 그제야 떠올린 유진은 그새 주저앉고 싶어졌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앉아서 얘기할까요? 그래요. 그냥 앉아도 돼요.”

금발머리가 말했다. 배실배실 웃는 것이 마냥 순수한 인상은 아니었다. 장청보다 둥그렇고 커다란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고 지금도 이 상황이 재미있을 뿐 유진을 전혀 궁금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유진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털썩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바닥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건 아니고,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금발머리는 마치 유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첫 질문을 던졌다. 합의된 사항은 아닌지 장청이 인상을 구기는 것이 보였다. 유진은 저도 모르게 그렇다고 답했다.

“맞아요.”

“그래. 그렇다니까. 이 사람 멀쩡하다고.”

금발머리가 말했다. 장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가 그런다고 해서 이 모든 상황이 설명될 것 같아?”

“홍진의 말이 마냥 틀린 건 아니잖아.”

새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믿을 수 없을 만큼 잘생긴 사람이 테이블에 기대어 서 있었다. 유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렇게 생긴 사람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홍진이 밝은 금발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멀쩡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김 교수님도 데려와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난 교수님이 이 사람을 몰래 데려왔다는 말도 안 믿어져.”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교수님이 사월에 쉽게 사람 들이는 거 봤어?”

홍진의 말에 동의한 남자는 천천히 유진에게 다가오며 무언가를 살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는지, 순간 반짝이던 눈이 금방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장청이 눈을 흘겼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네 생일 선물을 들고 있겠어? 교수님이 그 정도로 대단한 이벤트를 하실 분은 아니잖아.”

“제가 제 이름을 모른다고 말했던가요?”

유진이 처음으로 자기 의지를 가지고 물었다. 장청이 눈을 끔벅거렸다.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되짚는 모양이었다. 성이 장청의 옆에 붙어 앉아 되물었다.

“말한 게 기억이 안 나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진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도 상황이 어지러웠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때 거의 반쯤 기절한 상태였잖아.”

“제 이름은 유진이에요.”

유진이 중얼거렸다. 홍진은 장청과 눈을 마주치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홍진이에요. 얘는 장청, 쟤는 성이에요. 우리 다 여기 연구원이고요.”

홍진은 또박또박 아주 침착하게 유진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당신은 우리 상사인 김 교수님이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그때 당신은 김 교수님 옆에 아주 얌전히 서 있었고요. 약물이나 어떠한 세뇌에 대한 반응도 없었어요. 그냥 넋이 나가서 서 있었던 것뿐이에요. 김 교수님이 말만 이상하게 안 했어도 그냥 어디 아픈 사람을 데려온 줄로만 알았을 거예요.”

그런데 김 교수가 황당해하는 연구원들과 직원들에게 해명이랍시고 한 말이 기가 막혔다. 몰래 데려왔다니, 어느 바보 멍청이도 그렇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납치당한 건가요?”

설명을 듣던 유진이 물었다. 자기 일이 아닌 듯 말투가 여상했다. 성이 대답했다.

“저희야 모르죠.”

“정황은 그래요.”

장청이 덧붙였다. 사실은 김 교수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게 장청과 두 연구원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지구-50에 정박할 때까지만 해도 별 다른 언급이 없더니, 갑자기 사람을 데려와놓고선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우겼다. 김 교수가 강경하게 나오니 아무리 규율을 따지는 장청이어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에게 말 못할 이유가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있으니 유진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알아보아야 했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유진을 보니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지만.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듯한 유진은 굉장히 쭈뼛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니 일어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태연하게 우주선을 구경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장청은 터져나오는 한숨을 꾹 참으며 유진을 향해 말했다.

“일단 자리를 옮길까요? 여기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어서 불편할 거예요.”

“바닥도 차고.”

성이 생글생글 웃었다. 유진은 사람이 자주 드나든다는 말보다 바닥이 차다는 성의 말이 좀 더 크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엉덩이가 조금 시린 것 같기도 했다. 일어나려고 고개를 드니 불쑥 내밀어진 손이 보였다. 장청은 더 묻지도 않고 비틀거리는 유진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웠다. 순식간에 떨어져나갔지만 팔뚝에 남은 온기가 찌릿찌릿했다. 유진은 괜히 팔을 쓸어내리며 돌아선 장청의 뒤를 따라갔다. 홍진과 성이 느린 걸음으로 두 사람을 따라왔다.



어떤 난제들



사월의 연구원들이 지구-25에 들른 건 올가가 부탁한 사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구-25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서 가끔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탐사가들이 내부를 조사하다가 내는 소리인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지구-25의 구멍 속 알 수 없는 소리는 홍진이 구독하는 ‘지구촌 미스터리 소식’의 단골 손님이었고 홍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제 나름대로 해석하는 헛소리들을 꽤 좋아했다. 그런데 올가가, 이번에는 구멍 속에 진짜 생명체가 있는 것 같다며 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홍진은 지구-25를 둘러싼 여러 음모를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지구-25에 들를 때마다 그런 얘기를 했지만 실제로 허가를 받아 구멍 근처에 가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 더 그런 듯했다. 

유진은 그 일에 동행하게 되었다. 꺼림칙한 기분으로 유진의 출입등록을 하려 했던 장청은 홍진이 이미 그 절차까지 마쳤다는 얘기에 몹시 불편해했다. 퉁명스러운 얼굴을 마주한 홍진이 눈을 찡긋거리며 엄지 손가락을 척 치켜들었다. 이동하는 동안 뜨개질을 하겠다며 주머니 가득 실을 쑤셔넣던 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허가가 금방 나네?”

“교수님이 데리고 가라고 한 거잖아. 그래서 출입 허가를 바로 신청했지.”

유진은 묻는 말마다 모른다고만 답했다. 표정을 보면 정말 몰라서 하는 말 같았다. 김 교수는 유진이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가 전혀 말귀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일부러 세 연구원 옆에 붙였다. 장청이 벌벌 떨며 유진에게 지구-25로의 동행을 요청하고, 유진이 떨떠름하게 그러마 답변했던 게 떠오른 홍진이 웃음을 꾹 눌러참았다. 역시나 같은 때를 떠올린 장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그렇게 긴장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동안 홍진은 차나 마시고 성은 뜨개질이나 하며 즐겁게 그 상황을 관찰하고 있던 것이다. 홍진이 서둘러 장청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교수님도 생각이 다 있으시겠지. 우리가 뭘 어쩌겠어?”

“내가 뭘.”

장청이 투덜거렸다. 결과적으로는 장청이 내부적으로, 홍진이 외부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 덕에 수월하게 지구-25의 거대한 구멍을 보러갈 수 있게 되었지만 어쩐지 장청은 혼자만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억울했다. 그는 이미 유진을 위해 준비된 연구복이나 짐들을 유진이 머무는 방에 가져다 주었고 어두컴컴한 방에 가만히 누워있는 유진에게 몇 번 말을 걸기도 했다. 그 마음을 금세 알아차린 홍진이 물었다.

“너 그 사람이랑 아는 사이야?”

“아니.”

“그럼 뭐가 문제야?”

“그냥……”

장청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이 모른다고 하니 그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도 없다. 어쭙잖은 위로도 아는 체도 모두 건방진 시도일 뿐이었다.

“몰라 나도.”

장청이 한숨 쉬듯 말했다. 홍진과 성이 서로를 쳐다보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멀리서 김 교수와 짧은 면담을 마친 유진이 흰 이름표를 목에 걸고 어색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장청이 중얼거렸다.

“이러다 큰일나는 거 아냐?”

“어쩌겠어. 그러면 뭐…… 최선을 다해봐야지.”

“난 평소에도 최선을 다해본 적이 없는데 어떡하지.”

“넌 제정신만 유지하고 있으면 돼.”

“내가 뭐!”

홍진과 성이 헛소리를 하며 맥을 깨자 장청도 더 어쩌지 못하고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유진은 얼떨결에 동행하게 된 장소가 지구-25의 명소이자 탐험가들의 성지 ‘쓰레기 왕국’임을 알게 되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냥 지구-25를 돌아보는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진 유진은 슬쩍 말을 걸어오는 장청에게도 답할 힘이 나지 않아 그저 앉은 상태 그대로 늘어졌다. 장청은 머쓱하게 눈을 깜빡이다 자기의 일에 집중했고 이동하는 기차칸 안에는 홍진의 흥얼거림만 작게 울려퍼졌다.

“쓰레기 왕국에서는 다양한 쓰레기들을 만나볼 수 있대.”

“쌀로 밥 짓는 소리를 정말 중요한 것처럼 하는구나.”

관광지 소개 책자를 읽던 성이 말하자 홍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트집을 잡았다. 성은 홍진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다시 책자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뜻이 아니야. 내 말은 그 안에서 보물 같은 걸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싶은 거지. ‘쓰레기 왕국’은 구멍의 별칭일 뿐이지 진짜 쓰레기장이라는 게 아니잖아.”

“그래. 그렇지만 거기에 지구-1의 보물은 없을 거야.”

성의 생각을 정확히 간파한 홍진의 말에 성은 음, 하고 고개만 잠깐 끄덕였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듯했다.

“근데 그거 알아? 쓰레기 왕국에도 재미있는 소문이 하나 있어.”

성의 주의를 돌리려는지 홍진이 화제를 바꾸었다.

“쓰레기 왕국에 머물 수 있는 건 진짜 쓰레기들 뿐이래. 어때, 재미있지?”

“내가 버려야겠다고 생각해서 버리면 그게 쓰레기인 거지.”

장청이 툭 끼어들었다. 홍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구멍은 처음부터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어. 어느날부터 하나둘 씩 생활쓰레기며 대형 폐기물들이 관찰되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구멍 안으로 쓰레기를 던져넣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고.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죽고 싶은 사람들?”

홍진은 장청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이나 생명체들은 애초에 못 들어가긴 해. 근데 고장난 줄 알고 버려진 물건들이 고쳐진 채로 구멍 밖에 놓여있기도 했대. 신기하지 않아? 솔직히 이쯤 되었으면 구멍에 생명이 깃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 알고보니 구멍 속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바로 그 지구-25 영혼의 목소리인 거지!”

홍진이 눈을 빛냈다. 장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서운 건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어쩜 이런 건 좋아해?”

“그거랑 이거랑 완전히 다른 거야.”

홍진이 실실 웃으며 대꾸했다. 두 친구가 무엇을 얘기하고 있든 관심이 없던 성은 말이 없는 유진을 쳐다보았다. 유진의 시선은 창밖을 향하고 있었지만 실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은 듯 공허했다. 성은 여태 알게 된 여러 사실을 종합하여 실은 영혼이 빠져나간 몸뚱이가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한들 아는 것도 그다지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금방 흥미가 식었다. 그는 꽁꽁 싸맨 친구들에 비해 유진의 목이 훤한 것을 보고는 묵묵히 주머니에서 실뭉치와 편물을 꺼냈다.

‘쓰레기 왕국’ 관리구역은 출입시간과 인원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사람이 적었다. 사람의 온기도 없으니 쌀쌀한 기운이 물씬 풍기는 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네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꼭 붙었다. 그만큼 차갑고 기묘한 느낌이 가득했다. 유진은 두 팔로 몸을 끌어안고 눈을 꼭 감았다. 귀를 스치는 바람이 꼭 비명처럼 느껴졌다. 

“춥지 않아요?”

성이 수줍게 웃으며 목도리를 내밀었다. 기차로 이동하는 동안 굵은 실과 바늘로 거침없이 떠내려간 편물은 의외로 고른 땀을 가지고 있었고 예쁘게 배색까지 들어가 있었다. 유진은 고개를 들어 장청과 홍진의 목에 칭칭 감겨 있는 다른 색 목소리들을 보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목도리를 들어 제 어깨에 둘렀다. 성이 무척이나 좋아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정작 받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무엇이 고마운지 알 수 없었다.

“원래는 김 교수님 거였는데 교수님 주기 싫어요.”

뭐하러 그런 얘기를 하지. 유진의 표정이 묘해졌다. 뚱한 얼굴을 면전에서 보면서도 성은 생글생글 잘만 웃었다. 마치 유진이 목도리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처럼. 유진은 성이 참 제멋대로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하고 싶은대로 하고는 더 신경 쓰지도 않는 사람. 알 수 없는 화가 솟구친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멀찍이 가버렸다. 성이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문 앞에 서서 몇 분을 기다리니 관리자가 나와 그들을 안내했다. 정식 의뢰를 받아 기현상을 확인하러 왔기 때문에 불필요한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유진은 세 덩치 사이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어차피 배지에 신상정보가 등록되어 있어 관리자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내부로 이동하며 관리자는 쓰레기 왕국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설명을 들으며 한참 어딘론가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상황실에 도착해 있었다. 관리자가 벽의 스위치를 누르자 벽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걷히며 거대한 구멍이 드러났다. 위에서는 딱히 보이는 게 없었다. 네 사람은 칠흑같은 어둠 속을 내려다보았다. 뒤통수만으로도 어리둥절해하는 것이 보였는지 관리자가 중앙의 커다란 화면을 가리켰다. 내부로 내려보낸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관찰 중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장청과 홍진, 성은 눈앞에 펼쳐진 기묘한 광경에 입을 작게 벌렸다. 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쓰레기들이 묘하게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마냥 쌓여 있는 게 아닌 것이다. 흙먼지가 쌓인 탓에 화면이 뿌얬지만 구멍 내부의 장엄한 광경은 고스란히 바깥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쓰레기 왕국은 꼭 오래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유적 같기도 했다. 물론 지구 개척 시절 처음 관찰했을 때는 이런 모양이 아니었다. 그리고 누가 이걸 만들었는지 여전히 알아내지 못했다. 

괜히 소름이 끼쳐 팔뚝을 쓸어내리던 장청은 문득 사람들과 기계들이 만드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상황실이 아주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네요.”

“괜히 직원들 공포심만 자극할까봐 그런 소음을 차단해놓았어요. 어차피 구멍 내에서 들리는 소음들은 모두 녹음되기 때문에 분석만 하면 됩니다.”

관리자는 분석된 소리를 먼저 들을 것을 제안했다. 구멍 속에서 울리는 기묘한 소리를 듣는 것이 생각보다 정신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직원은 과도한 긴장 속에서 업무를 수행하다가 기절까지 했다고 했다. 관리자는 몇 번이고 주의를 준 뒤 녹음본을 틀었다. 세 연구원은 제법 긴장한 채로 소리를 들었다. 홍진은 아닌 척하면서 뒤로 장청의 옷깃을 구겨져라 붙들고 있었다. 관리자와 더불어 다른 직원들까지도 잔뜩 굳은 반면 유진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는 성이 준 목도리를 괜히 만지작거리면서 멀뚱히 서 있었다.

처음 몇 분은 끽끽대는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관리자는 나서서 설명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청이 태블릿을 꺼내 들리는 소리를 전부 받아적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홍진과 성에게도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분 아무 상관관계도 찾을 수 없는 말의 나열이었다. 의미야 듣는 사람이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정말인지도 알 수 없을만큼 쓸모없는 내용들에 불과했다.

일정시간이 지나자 재생을 멈춘 관리자는 세 연구원의 답을 기다렸다. 둥글게 모여 선 연구원들은 장청의 태블릿을 내려다보았다.

“노랫말에 가깝지 않아?”

“시 같기도 하고.”

홍진과 성이 호기롭게 몇 마디를 던졌다가 금세 수그러들었다. 장청도 무섭게 인상을 찡그린 채 여러 번 전사한 내용을 읽었으나 도무지 뜻을 알아낼 길이 없었다. 그럴듯한 말들이지만 맥락을 읽을 수 없는 탓이었다.

“의미가 없지 않아?”

“해석하기 나름이지. 시 해석은 지구-1 때부터 있던 거잖아.”

“말이 쉽지. 이거 우리가 아니라 다른 계열에서 처리해야 하는 거 아냐?”

장처의 말에 유진이 눈을 깜빡거렸다. 다른 계열이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힘’을 통해 알아보고 해결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중앙 정부에 소속된 단체도 있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무리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구촌 네트워크를 통해 찾아보고 의뢰할 수 있었다. 유진도 만나본 적이 있다. 그가 집에만 누워 있는 것이 어떤 악한 힘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던 할머니가 직접 의뢰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유진은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장청이 몸을 돌려 관리자에게 물었다.

“쓰레기는 어떻게 모이는 거예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카메라 상으로는 외부에 있던 쓰레기들이 한 순간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생명체가 산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어요. 그렇지만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여기의 기술로 최대한 미세한 움직임을 잡아내려고 해도 잡히지 않으니 생명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정말 아주아주 작은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해도 놀라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그들이 바깥으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여기 주민들은 그게 걱정이죠. 생명체가 없고, 구멍에 쓰레기 일부를 끌어들이는 어떠한 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우세한 편이에요.”

관리자는 이미 다른 계열에 문의를 해보았다고 밝혔다. 한 차례 와서 살핀 결과 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우주의 힘이나 누군가의 원한, 악한 망령이 깃들어 생기는 소리가 아니며 우주 괴물 연구소에 의뢰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우주의 알 수 없는 현상을 연구하고 파헤치는 연구소와 ‘다른 계열’에서 하는 일들이 흑과 백처럼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각자 전문 분야가 있으니 더 나은 쪽을 추천해준 것이다.

장청은 고심하다 결국 들어가 직접 파헤쳐보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실제로 보아야 해결책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쓰레기 왕국으로 진입하는 것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관리자도 별 다른 의견 없이 준비해놓겠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세 연구원과 유진은 구멍이 가까이 보이는 창가로 다가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구멍 속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거대한 구멍이 고작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있다니.”

홍진이 중얼거렸다. 왜 하필 쓰레기들만 모이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어떤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나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쓰레기만 가져가는 이유가 있겠지.”

장청이 차분하게 답했다. 그는 홍진이 기차에서 언급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명확한 기준이 있다는 것,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 머물 수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다.

“그러고보니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으면서 악취가 안 나네.”

홍진도 성도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지 눈을 둥그렇게 떴다.

“깨끗한 쓰레기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게 이 쓰레기 왕국의 특징이지요.”

장비를 들고 불쑥 나타난 관리자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쓰레기가 모이다 보면 냄새가 올라오기 마련인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탐사가들도 그런 얘기를 자주 하더라고요. 저 아래는 무취의 공간이에요. 그리고 또 신기한 게 있다는데, 아래로 내려가보면 온통 하얗대요. 눈이 온 것처럼. 그렇지만 그게 뭐가 특별한지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냄새를 싫어하나?”

성이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장청과 홍진은 그 소리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세 분은 저 안에 미지의 생명체가 있다고 확신하십니까?”

“괴물 연구소에서 의뢰할 정도면 뭔가 진짜로 있지 않을까요? 저 해괴한 소리들을 내뱉는 주체가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세 연구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장청과 홍진이 관리자와 심각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이 집중력이 흐트러진 성은 어느새 창가에 가까이 붙어있는 유진을 발견했다. 무얼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유진의 입술이 달싹였다. 성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바라보고 있자 장청과 홍진도 유진을 쳐다보았다. 장청의 눈에는 유진의 측면이 선명히 보였다. 유진은 표정이 없었다. 꼭 죽은 사람 같았다. 괜히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그때 별안간 유진 앞에 있던 창만 사라진 것처럼 유진의 몸이 창밖으로 넘어갔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청이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 홍진과 성 또한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요란한 경보음이 상황실에 울려퍼졌다.

갑자기 구멍 안으로 빨려들어간 방문자에 관리자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색이 되어 유진이 있던 자리로 뛰어간 세 연구원은 동시에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뒤로 물러섰다.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청은 빨리 밑으로 구조대를 보내야 한다며  성화를 부렸다. 하지만 구멍은 크고 넓었다. 누가 창밖으로 떨어지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탓에 관리자도 겨우 인명 구조용 로봇만 몇 대 내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사람이 구멍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지 관리자를 비롯한 직원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관리자는 금방 울상이 되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저희도 그걸 알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장청과 홍진이 관리자를 상대하는 동안 성은 창가에 붙어 쓰레기 왕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까마득한 탓에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꼭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정신이 멍해진 성이 재빨리 고개를 흔들었다.


*


유진은 어디도 다치지 않았지만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정쩡하게 엎어진 그 곳이 안락한 침대라도 되는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멍하니 엎드려 있자 시야가 점점 밝아지며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어둡다고 여겼지만 온통 흰 세상이었다. 쓰레기를 비롯해 모든 곳에 흰 먼지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유진은 온몸에 힘이 빠져 다시 드러누웠다. 짜증이 치솟았다. 감정이 이리저리 요동치는 것을 제어할 수 없었다. 불쑥 떠오른 목소리가 가만히 침잠해있던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용서할 수 없었다. 무얼 용서할 수 없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생각하기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지만 그게 본인이었는지, 아니면 친구였는지, 부모님이었는지 상담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진은 흙바닥 위에 엎어져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영원히 돌이 되고만 싶었다. 유진은 가만히 숨만 쉬었다. 왜인지 코끝이 시큰해졌다. 한줄기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어디선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쓰레기 왕국에 사는 미지의 생명체가 침입자를 잡아먹으러 온 것일까? 그게 정답이라면 조금은 기다려주기를 바랐다. 그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유진을 어떻게 해서든 쓰레기 왕국에서 꺼내와야만 하는 세 연구원은 대단히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아래로 내려간 구조용 로봇이 금세 돌아와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 것이다. 사람이 구멍으로 진입하는 방법은 구멍 위를 감싸는 보호장치를 걷어내고 장비를 착용한 채 하강하는 것뿐이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무리 해도 보호장치가 걷어지지 않는 것이다. 유리벽이 유진만을 통과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무도 구멍 내부로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장청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자 점점 낯빛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관리자와 직원들이 기를 쓰며 어떻게든 보호장치를 걷으려고 하는 동안에도 의미없이 시간이 흘렀다. 두 친구를 바라보니 홍진과 성도 막다른 벽에 부딪친 듯 하나같이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아예 맛이 간 거래?”

홍진이 물었다. 장청이 머리를 흔들었다.

“멀쩡한데 갑자기 안 된대. 지금 시스템 상으로는 보호장치가 걷어진 상태라고 나오나봐.”

직원 중 하나는 구멍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나와 출입을 막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냥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헛소리로 치부할 말도 아니었다.

“탐사도 많이 하고 주기적으로도 내려가서 살피는데 갑자기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했어. 사람을 잡아먹는 경우는……”

장청은 유진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죽지는 않았을 거야.”

성이 갑자기 말했다. 그는 여전히 단단히 유지되고 있는 보호장치에 손을 대고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홍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유진 씨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거든. 순간이동하듯이 사라졌지.”

성의 말에 홍진이 손을 팔랑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맞아. 왕국에 모이는 쓰레기들이 꼭 순간이동하듯이 사라졌다고 했잖아. 유진 씨도 쓰레기로 분류된 거야. 그래서 저 구멍에서 데려간 거지.”

장청은 유진이 쓰레기로 보였다는 사실을 전혀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왕국에 모인 쓰레기들은 그 형태가 다 온전했었으니까. 저기서 유진 씨를 데려간 게 맞으면 크게 다치지는 않았을 거야……”

성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나 지금 좀 멋있지 않았어?”

장청이 떨떠름하게 답했다.

“그래……”

그러던 순간 보호장치에 손을 대고 있던 성의 눈이 돌연 커졌다. 그가 막 장청을 쳐다보았을 때였다. 엇, 하는 짤막한 탄성과 함께 성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두 친구의 얼빠진 표정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성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남은 두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성의 빈 자리를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장청이 허공을 더듬거렸다. 그에게는 여전히 투명한 보호벽이 느껴졌다. 홍진도 마찬가지인지 그가 가볍게 벽을 때리자 치자 퉁,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한참 후에야, 홍진이 장청을 향해 물었다.

“죽은 건 아니겠지?”

“……설마.”

홍진은 장청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음을 알고 불쑥 그의 팔을 잡았다. 그 또한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누구 한 명이라도 정신을 바짝 잡고 있어야 했다. 장청은 눈을 질끈 감으며 스스로 괜찮다 다독이려 했지만 그러면 머리 한구석에서 미쳤냐며 현실을 보라고 반박했다. 커다란 충격이 두 번이나 닥친 탓에 눈앞이 어지러웠다. 장청은 많은 말을 삼키고 겨우 한 마디를 꺼냈다.

“돌아가자.”

홍진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김교수님한테 연락을 하고……”

다시 상황실로 돌아간 두 연구원은 큰 화면에 사월과의 연결을 요청한 후 십여 분을 기다렸다.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관리자와 직원들을 진정시키며 애써 부산스럽게 구는 동안 마음도 점차 가라앉는 듯했다. 곧이어 나타난 김 교수는 장청의 개인 메시지와 관리소의 연락을 확인했음에도 그다지 나빠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모두 잘못되지는 않았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간단하게 장청을 달랬다.

—구할 방법이 있을 거다. 어때, 소리는 들어봤니?

“들어보기는 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장청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를 못하겠다는 말이야, 아니면 우리 언어가 아니라는 말이야?

“이해를 못하겠어요. 의미없는 말의 나열이에요.”

홍진이 얼른 답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랑 딱히 관련은 없는 것 같아요. 유진 씨랑 성이 사라진 건 정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에요, 교수님.”

김 교수가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작게 흘러나왔다.

—정말 모르겠네…… 성이야 그럴 수 있다 해도 그 여자애가……

두 연구원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김 교수 쪽의 화면에서 댕댕거리는 짧은 알림음이 울렸다. 김 교수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별 수 없지.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

김 교수는 허공을 향해 고맙다고 말하더니 곧장 장청의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전송했다. 장청은 태블릿에서 유진의 사진과 짧은 편지를 발견했다. 부모가 김 교수에게 유진을 맡기며 남긴 것이었다. 장청이 충격에 휩싸였다.

“몰래 데려왔다면서요!”

—얘, 내가 진짜로 그랬으면 범죄자지. 부모에게 부탁 받았고, 정확한 사연은 모른다만 어쨌든 그쪽 지구에서는 몰래 데려온 게 맞아. 보는 눈이 많은지 그 부모가 최대한 조심하더라.

김 교수는 사실 부모도 유진의 증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아닌 것 같더라는 말을 했다. 그러므로 김 교수도 크게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3년 동안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고 하더라고. 집밖으로도 나가지 않고 방안에서만 두문불출하니 이유를 모르는 부모로서는 미칠 것 같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라도 알면 해결책이라도 있을 거 아냐? 그런데 가끔 웅얼거리는 걸 들어보면 웬 곰인형 얘기를 하고 있더래. 그게 가지고 싶은가 싶어서 백방으로 알아보니 이미 단종된 제품이어서인지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다고 하고. 그런데 잘못 소문이 퍼져서 동네에서는 그 애가 무언가 잘못을 해서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상담 프로그램을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침묵은 계속되었고 부모는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만 딸이 진짜로 벌레가 되는 꼴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김 교수가 초록빛깔 주스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의 것은 특별히 따끈하게 데워져 있었고 고약한 냄새가 컵 너머로 스멀스멀 올라왔다. 화면 너머로도 끔찍한 냄새가 풍기는 듯해 장청과 홍진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서 집에만 두고 애지중지 살폈대. 밖에 나가기라도 하면 수군대는 말들을 듣게 되니까 억지로 끌어냈다가 잘못될지도 모르겠어서 불안하기도 했고. 마음 고생이 심했나보더라고. 아무리 고민해봐도 딸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고 하던 걸.

“교수님은 그게 유진 씨가 구멍 속으로 끌려들어간 거랑 뭔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일단 우리가 아는 게 그뿐이니 그렇게라도 이해해봐야지. 어머, 내 정신 좀 봐. 몇 시지?

무어라 더 말하려던 김 교수는 시계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회의에 늦었다며 요란하게 사라져버렸다. 조금 후 사월 운영 회의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장청도, 그 사실을 모르던 홍진도 얼이 빠진 채 덩그러니 남겨졌다. 성이 왜 구멍 안으로 끌려들어갔는가 하는 부분은 아무것도 얘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지만 김 교수에게 다시 연락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허탈한 마음을 안고 화면을 등졌다. 편지에 쓰인 건 김 교수의 말과 거의 동일했고 결론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일단 단서가 될 만한 말들 몇 가지는 건졌으니까 그걸로 뭐라도 찾아보자.”

장청이 제안했다. 홍진도 별 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아 동의했다. 두 사람은 다시 창가로 다가가 까마득히 깊은 쓰레기 왕국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기에 성과 유진 두 사람만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여태 다른 생명체가 발견된 적은 없었나요? 단 한 번도?”

장청이 줄곧 뒤에 서 있던 관리자에게 묻자 관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든 확정적으로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일단 그렇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번 검사를 해도 생명체에 대한 반응은 보이지 않거든요. 무언가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지만 말이에요. 보세요, 지금은 생명체가 있다고 나오잖아요? 전 저 분들을 구조하기 전까지 신호가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대강 납득한 두 사람이 똑같은 모양새로 창가에 이마를 기댔다. 어두컴컴한 곳에 기묘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알아낼 만한 게 없었다.

“아까 교수님이 뭐라고 하셨었지? 곰돌이 인형?”

“단종된 거?”

“그거랑은 또 무슨 관련이 있으려나…… 단종된 거면 쓰레기로 들어와 있나?”

관리자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연관성이 있다면 좋겠는데, 탐사에서 발견된 쓰레기 목록을 한 번 살펴보시겠어요? 그게 단서가 된다면요.”

다시 돌아선 장청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좋아요. 뭐라도 해야죠.”


*


“여기 계셨네요!”

유진은 머리를 시끄럽게 울리는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세 찾아내니 왠지 신경질이 났다. 그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이곳에 떨어진 건 조금 억울하고 비참한 일이었지만 견딜 만했다. 죽고 사는 일이 눈앞에 닥쳐온 듯한 느낌도 없었다. 유진은 이런 자신이라도, 당장 위험한 일이 눈앞에 닥쳐오면 살기 위해 발버둥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쓰레기 왕국에 추락한 지금은 딱히 위협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그는 조금만 더 이렇게 누워 있다가 일어나야지, 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눈물이 자꾸 나왔지만 그건 생리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여겼다. 성이 갑자기 나타나 모든 걸 방해할 때까지는 그렇게 평화로웠던 것이다.

성은 엎드려 가만히 누워있는 유진을 보고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몸이 안 움직여져요?”

“네.”

유진이 새된 목소리로 답했다. 빨리 성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성은 이미 큰 오해를 해버린 뒤였다.

“추락하면서 크게 다친 것 같은데……”

성이 안절부절 못하며 조심스럽게 유진에게 다가왔다. 자신은 낙법을 배웠기 때문에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는 쓸데없는 말도 덧붙였다. 유진은 눈을 감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성이 뭐라고 하든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설명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성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유진은 성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들러붙은 먼지들을 툭툭 털어냈지만 관심도 두지 않았다. 성이 자신을 업는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성은 사람을 많이 업어보지 않았는지 조금 어설펐고 그런 그의 등에 업힌 유진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매달려 있었다. 성은 유진이 듣든 말든 자기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일단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봐요. 근데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어요. 저도 여기가 궁금했는데 친구들이 저희를 찾으러 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 움직이면 서로 길이 엇갈릴지도 모르고……”

등에서 미끄러질 뻔한 유진은 저도 모르게 성의 목을 조이듯이 팔뚝에 힘을 주었다. 그제야 성이 몸을 좀 더 앞으로 숙이고 유진의 다리를 팔에 제대로 감았다. 듣고 싶지 않아도 흘러들어오는 말을 정리해보면 결국 성은 여길 구경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제가 아까 오면서 신기한 걸 봤거든요? 그게 좀 안쪽으로 묻혀 있어서 다시 확인해봐야 하는데 그것만 잠깐 확인하고 가요.”

“그럼 전 여기에 두고 가면 안 될까요?”

유진이 처음으로 자기 의지를 드러냈다. 성은 들은 체도 안 했다.

“몸에 감각이 없어도 계속 감각이 느껴지는 것처럼 생각해야 해요. 몸을 속여야 나중에 치료하기도 쉬워지거든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여기는 온 지구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잖아요. 어떻게 이 구멍 전체를 울리는 소리가 날 수 있을까요? 잘 찾아보면 쓸만한 게 있을지도 모르는데 홍진은 여기가 진짜 쓰레기장이라서 그런 건 없을 거라고 하더군요.”

성의 말은 두서가 없었고 제멋대로였다. 유진은 몸에 힘을 쭉 빼고 성에게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성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몸을 아예 뒤로 꺾어야 할 듯했다. 그럴 용기는 없었다. 유진은 기분이 나빠졌다. 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걸 성에게 표현하려면 또 그만큼의 힘이 필요했다. 유진에게는 그럴 만한 힘도 없었다. 그는 그 사실도 짜증이 나서 속이 몹시 답답해졌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유진이 숨을 꾹 참고 말했다.

“내려주세요.”

“—그래서 그 안드로이드가…… 네?”

“내려달라고요.”

성은 유진이 아픈 줄 알고 서둘러 그의 몸을 내렸다. 제대로 앉혔다고 생각했는데 유진은 철퍼덕 엎어졌다. 곧장 몸을 옆으로 웅크린 유진이 헐떡였다.

“괜찮아요?”

“전 못 갈 것 같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제가 그렇다고요.”

“여긴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했잖아요.”

“살아있는 우리가 여태 나가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잖아요. 그럼 여기에 있어도 된다는 거 아니에요?”

“그건 그렇네요. 왜지? 유진 씨 알고보니까 유령이고 그런 건 아니죠? 영혼은 실체가 없다고 했는데.”

유진은 그 순간 그가 자신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다. 관심이 없으니까 이럴 수 있는 것이다. 유령이고 뭐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쨌든 다쳤으니까 두고 갈 수는 없어요. 여기에서 산다고 해도 금방 죽지 않으려면 치료는 받아야 하잖아요.”

무슨 논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성은 유진을 데리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 다치지 않았어요. 스스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요.”

유진이 몸을 일으켰다. 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자.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난 안 갈래요.”

“어어……”

멍청한 소리를 내던 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뜩치 않은 목소리였다.

“알겠어요.”

그러더니 유진을 내버려두고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진짜로 그를 두고 갈 수는 없으니 괜히 눈치를 보면서도 은근슬쩍 근처의 쓰레기에 눈길을 주는 것이다. 유진은 성이 무엇을 하든 드디어 자유로워졌음에 만족하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눈을 뜨고 가만히 깜빡거렸다. 문득 왜 여기 오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은 쓰레기들 사이를 뒤지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저렇게 열심히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는 걸 보면 본인이 간절히 원해서 문이 열렸을지도 모른다. 유진은 성처럼 이곳에 오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곳과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딱히 우울하다거나 좌절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납득이 되었다. 대단한 의지가 있고 뭐고 상관 없는 일이다. 그냥 이 자체가 자연스럽기만 했다. 유진은 불현듯 깨달아버렸다. 그가 모르는 새에 손끝과 발끝으로 무엇인가 희끄무레한 먼지들이 쌓이고 있었다.

“아, 이건 어릴 적에 좋아하던 건데.”

그때 유진의 눈앞에 어느 정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곰인형 하나가 툭 떨어졌다. 성이 꺼내 놓은 것이었다. 유진은 곰인형의 새까만 눈을 마주보았다. 돌연 곰인형에게서 눈물이 흘렸다.



목록을 살피기 시작한 지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장청은 마침내 유진이 흘렸던 말에 부합하는 쓰레기들을 찾아냈다.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모두 한 덩어리로 묶인 물품들이었다. 홍진이 물었다.

“우주 쓰레기 괴물의 잔해가 여기로 온 적이 있나요?”

“예전에요. 그렇게 큰 덩어리가 한 번에 들어온 적은 없어서 다들 걱정했었어요. 한 5년 전인가, 이 근처에서 우주 쓰레기 괴물이 시위를 했었거든요. 사실 아시잖아요. 우주 쓰레기 괴물이 하는 일은 정말 쓸모가 없죠. 정말로 자아가 생겨서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뭉치다 보니 거기에 남은 관념들이 소음을 내는 것뿐이죠. 근데 그 크기가 꽤 컸어요. 진로를 방해할 정도였거든요. 그것 때문에 사고가 있었어요. 다행히 근처에 우주괴물관리부서 사람들이 와 있어서 죽은 사람은 없었는데……  어쨌든 이곳으로 인도되어 해체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사라지더니 여기에 와 있었습니다. 그게 이것과 연관성이 있나요?”

“어떤 사고가 있었는데요?”

“우주 쓰레기 괴물 내부에서 폭발이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주변이 초토화되었는데, 하필이면 우리 지구로 관광을 오던 우주선이 있어서 피해가 더 컸어요.”

“우주 쓰레기 괴물 폭발 사건에 대해 찾아봐.”

장청이 지시하자 홍진이 곧장 태블릿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 명단에서 유진인 것 같은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홍진은 유진과 우주 쓰레기 괴물 폭발 사건을 키워드로 여러 자료를 뒤졌다. 그동안 장청은 우주 쓰레기 괴물의 구성품을 일일이 조회했다.

“……여기 곰인형이 있긴 해. 이게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인 걸까?”

무엇인가를 가만히 읽고 있던 홍진이 장청을 불렀다.

“음…… 장청, 이것 봐. 우주 쓰레기 괴물이 요구한 건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거였어.”

우주 쓰레기 괴물 폭발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한 기사였다. 홍진이 주목한 건 우주 쓰레기 괴물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본인도 정확히 뭘 요구하고 싶은지 설명을 못했대. 이게 무슨 말일까?”

장청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간단히 대답했다.

“우리도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거나 화가 날 때가 있잖아. 나중에 알고 보니 배가 고팠다거나 너무 지쳐 있었다거나. 그렇지만 그 순간에는 모르는 거지. 그런 거 아냐?”

홍진이 납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괴물도 그랬나보네.”

“문제는 답을 찾아주기도 전에 괴물이 터져버린 거야. 거기서 발견된 게 이 곰인형. 여기서는 이 곰인형이 괴물의 정서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고 있어.”

장청은 홍진이 읽던 기사에서 곰인형에 대한 언급을 찾아냈다. 곰인형은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지구-11에서 개발해낸 심리 치료용 인형이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돌보아주다가 크게 지쳐버렸다는 것이다. 어느덧 버려진 인형은 우주를 떠돌다가 우주 쓰레기 괴물의 한 부품이 되었고 그게 어쩌다보니 이런 대참사를 만들고 말았다. 곰인형 제품은 정서불안정을 이유로 곧 단종되었다.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을 읽자니 다소 허무한 사건이었다. 우주 쓰레기 괴물이 갑자기 터져버리지만 않았다면 일이 잘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독한 교통체증이 생겼고 우주 쓰레기 괴물이 터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잘 마무리되었다. 유진이 이 광경을 목격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장청과 홍진은 어느새 김 교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도 명확한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유진 씨가 자꾸 모른다고 말했던 거 생각나?”

장청의 물음에 홍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유진조차도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니 저주니 뭐니 하는 말들이 슬그머니 기어올랐을 테다. 거기에 어떠한 사건이 더 있었다면 확신할 수 있었겠지만 그 다음은 찾지 못했다.

“모르는 것투성이인데 여기서 더 뭘 찾지?”

잠깐의 침묵 끝에 두 사람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오갈 데 없이 앞뒤양옆이 모두 막혀버리니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는 관리자가 두고 간 생명반응장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텅 비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두 개의 점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장청의 시선을 따라 화면을 내려다보던 홍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성이 쓰레기로 분류되다니.”

“사람도 쓰레기로 보는 게 맞다면 저긴 이미 사람들이 왕창 거주하고 있어야 할 텐데. 생명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왜……”

장청이 반사적으로 대꾸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시간이나 죽이고 있는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장청의 어깨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는 힘없이 흐느적대던 유진의 몸짓을 떠올리고는 뒤늦게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기운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그때 장청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머릿속으로 벼락처럼 어떠한 광경이 스쳐지나갔다. 정물화처럼 가만히 멈추어있던 유진의 옆모습이었다. 만일 이게 의도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고에 불과하다면……


*


성이 천진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울어요?”

“우는 건 저예요.”

대답한 건 곰인형이었다. 유진은 말없이 곰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멈칫한 성이 유진과 곰인형을 번갈아보았다. 그가 다시 물었다.

“왜 울어요?”

곰인형이 머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눈물이 나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 우는지 모르는 거예요?”

“글쎄요. 이렇게 된지 꽤 되었거든요.”

“계속 울게되는 병이 있는 거 아닐까요? 진료 받아본 적 있어요?”

성이 이렇게 물은 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병이 퍼졌던 한 행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곰인형에게는 전혀 다른 말로 들린 모양이었다.

“내가 걸린 게 병인가요? 내가 병자인 거예요?”

“아니에요. 그런 말이 아니었어요.”

곰인형이 더욱 울상을 짓자 당황한 성은 다정하게 곰인형을 달래려고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진의 입이 작게 열렸다.

“저기요.”

곰인형과 성이 동시에 유진을 쳐다보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눈물이 나는 병이 있는 건가요?”

유진은 곰인형을 보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 날은 지독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자에 파묻혀 웅얼거리던 그의 친구는 기억 속에서 울고 있기도 했고 그저 멍하기도 했다. 성이 뺨을 긁적이며 멋쩍게 답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때는 연구소에서 어떤 실험을 하다가 바이러스가 퍼졌던 거라……”

“아아…… 그렇군요.”

유진이 맥없이 고개를 돌리려 하자 다급해진 성이 말을 걸었다.

“유진 씨도 그런 걸 본 적이 있는 거예요?”

유진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냥 눈물이 나는 건 아니었어요. 기억이 잘 안 나요.”

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유진을 여기서 놓치면 큰일난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초조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다.

“왜요, 증상이 어땠는데요? 잘……”

성은 잘 떠올려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게 유진을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 여긴 모양이었다. 유진은 이미 뒷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챘지만 성의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이 우스워 모르는 척했다.

“처음에는 한숨을 자주 쉬어요. 속에서부터 깊은 숨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까 막 횡설수설하더니 울더라구요.”

유진은 대답을 거부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묻는 게 싫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늘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모두 대답하기 어려운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물음은 답을 알고 있었다.

“눈물이 난대요. 정확한 이유를 말해준 적은 없어요. 뭐가…… 많아보였어요.”

“나도 그래요.”

곰인형이 끼어들었다. 그것은 유진이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짚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냥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아무리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해도 말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힘들다. 지쳤다. 유진이 곰인형을 쳐다보았다.

“맞아요. 그 애도 그러더라고요.”

“……이유를 알면, 눈물을 멈출 수 있을까요?”

성이 물었다. 유진이 이번에는 성을 쳐다보았다. 성은 유진의 눈이 마치 구멍 위에서 내려다 보았던 것과 같은 빛을 띄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어…… 어떻게 했는데요?”

“애썼어요. 나름대로 잘 해보려고 했어요. 울지 않았으면 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옆에도 있어주고…… 그런데 잘 안 됐어요.”

“계속 울던가요?”

유진은 그 말에 대답을 하려다가 숨을 들이키며 입을 다물었다. 티켓을 내밀었던 손과 귀찮아하는 듯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얼굴은 금세 은근한 기쁨이 묻어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다시 울고 있었다.

“괜찮았는데……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다 망쳤어요.”

유진이 곰인형을 보았다. 곰인형의 눈물은 어느새 멈추어 있었다. 매순간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속에서는 배터리가 다 닳아버릴 때까지 계속 울고 있을 것이다. 속을 직접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른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저 곰인형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배터리는 결국 닳아 사라질 테다. 유진은 왜 자신이 술술 대답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 애를 떠올리면 답을 모를 수 없었다. 남의 얘기라서 잘 알았다.

“……어떻게 망쳤는데요?”

유진은 성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눈을 감아버렸다. 모든 게 그의 잘못이었다. 그걸 입밖으로 꺼내려니 가슴 깊은 곳에서 반발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냥…… 같이 가고 싶었던 데가 있었어요. 가는 도중에 사고가 나서 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해서…… 꼭 그 때문이 아니라고 해도 제가 그런 일을 겪게 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대명사뿐인 답변이었지만 성은 더 깊이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말은 잘만 했다.

“그게 왜 유진 씨 잘못이에요? 좋은 뜻으로 한 거잖아요.”

유진이 울적하게 답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제가 잘못한 게 맞겠죠. 그래서 그래요.”

눈물이 그치지 않으면 잠겨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그게 납득이 되지 않아서 유진은 오랫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여전히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문제의 주체가 자신으로 바뀌니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유진은 입을 닫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때 곰인형이 물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나요?”

유진은 곰곰이 생각했다.

“모르겠어요.”

눈을 계속 감고 있으니 앞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성이 곰인형을 들고 유진의 가까이로 온 것이다. 곰인형은 유진의 옆에 누워 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곰인형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힘들었나요?”

유진이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앞에 잘 정돈된 쓰레기들이 보였다. 유진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힘들었어요. 제가 모든 걸 망쳐버린 것 같아서요.”

“힘들었군요.”

단순히 ‘힘들다’가 답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안다는 게 아마 다른 ‘힘들다’와의 차이점일 것이다. 유진이 속삭였다.

“돌이킬 방법이 없었어요. 정말로……”

답을 하고 나니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뒤늦게 팔다리가 저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아마 잠시 동안은 아파서 쩔쩔 맬 것이다. 곰인형이 다시 흐느꼈다. 성이 곰인형을 달래주다가 유진의 어깨도 두어번 토닥였다. 어느새 유진의 어깨 위까지 쌓여있던 흰먼지들이 성의 손짓에 가볍게 털렸다.



관리자는 구멍 속 쓰레기를 수집하는 무언가가 유진과 성을 쓰레기로 착각했다는 장청의 주장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홍진도 장청의 결론을 뒤따라가지 못해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 여러 다른 이유들이 있겠죠. 그건 저 구멍의 비밀을 모두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당장 설명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 이유라면 나름 그럴듯하지 않나요? 유진 씨는 정말…… 죽은 사람 같을 때가 있으니까.”

“그럼 성은? 성은 왜 착각했는데?”

장청은 홍진의 물음에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그건 성의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 건 김 교수와 자신뿐이었고 마음대로 이야기해줄 수는 없었다.

“예전에 기생형 외계인을 잡으러 갔을 때 교수님이 성은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했던 거 생각나?”

홍진은 갑자기 과거의 얘기를 꺼내는 장청에 더욱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왜?”

“나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데, 그게 성의 특징이래. 성은 우리랑 좀 다르다고 교수님이 그랬었어. 그런 게 무언가 영향을 줬을 것 같아.”

정말 애매모호한 말이었지만 홍진은 우선 납득했다. 그 이유를 파헤치며 시간을 더 끌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두 사람은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에 저 안쪽에서 두 사람을 내보낼 거란 말이지?”

“맞아.”

장청이 관리인을 보았다.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

“쓰레기만 가져간다면, 쓰레기가 아닌 건 분명히 내보내줄 거예요.”

장청은 쓰레기인 줄 알았던 것이 되돌아오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관리인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으나 어쨌든 두 사람이 돌아온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상황실 옆 공터를 가리켰다.

“갑자기 나타나니까 여기서 보고 계세요.”

“……아니요. 가서 기다릴게요.”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금방 나와요. 그리고……”

장청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구멍 위를 둥글게 덮고 있는 보호장치와 유리벽을 뚫어져라 보았다.

“스스로 나올 거예요.”

뭐가 어쨌든 큰 일을 겪었으니 바로 눈앞에 있어주어야 돌아왔음을 알고 안심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홍진이 관리자를 향해 눈을 찡긋해보였다.

“어차피 살아있을 텐데. 바로 내보내주지 않을까요?”

말은 그렇게 호기롭게 했지만 정작 유리벽 앞에 서서 기다리자니 긴장이 되었다. 홍진이 바짝 굳은 장청의 어깨를 주물렀다.

“나올 거야.”

“맞아. 분명 나올 거야.”


*


“우리 이제 나갈까요?”

한참이 흐르고 성이 침묵을 깼을 때, 유진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성이 내미는 손을 잡아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없어 성에게 바짝 붙어 걸어야 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움직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유진은 거침없이 걸음을 내딛는 성에 그가 길을 아는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여긴 깊은 구멍 속이 아닌가.

“길을 알아요?”

“잘 몰라요. 근데 제가 길은 잘 찾거든요. 가다보면 나가는 곳이 있을 거예요.”

성은 다소 허풍쟁이처럼 얘기했다. 유진은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그의 어깨에 소복이 쌓인 흰먼지를 발견했다. 무심결에 털어냈으나 털어낸 것이 무색하게 금방 도로 쌓였다.

“먼지가 잘 붙는 옷인가봐요.”

유진이 중얼거렸다. 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가요?”

“털어내도 자꾸 쌓여요.”

성이 유진을 쳐다보았다.

“유진 씨한테는 먼지가 없어요.”

성은 그게 꽤나 흥미로운 듯했다.

“신기하다. 여긴 하얗잖아요. 근데 유진 씨는 안 하얘요.”

“……그렇군요.”

“장청은 머리가 검잖아요. 여기에 왔으면 눈에 띄었을 거예요.”

성은 제멋대로 말을 이어나갔다. 유진은 그 목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가끔 성의 어깨나 팔에 먼지가 가득 쌓이면 털어내주었다.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더 이상 먼지가 오르지 않았다. 꼭 성에게도 먼지가 붙으면 안 된다는 걸 그 먼지들이 깨달은 것처럼.

“……더 먼지가 안 붙어요.”

“그래요?”

성의 눈이 갑자기 반짝였다. 그가 우뚝 걸음을 멈추자 유진도 멈추어섰다.

“모든 것에 먼지가 붙는데 우리에게는 붙지 않는군요.”

유진은 성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 사실을 종합하여 간단한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이 먼지가 구멍 속의 생명체라고 생각하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성이 유쾌한 어조로 답했다. 한 몸을 이루는 유기체들을 다시 잘게 쪼개어 그것들을 각자 자유 의지를 가진 무언가로 상정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경험한 후에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는 법이었다. 그들이 살아있는 것에는 붙지 않는 탓이었다.

“그렇지만 이건 알아요.”

“뭐를요?”

“우린 이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성이 유진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잡아당긴 것 같았다. 예기치 않은 순간 혼자 남게 된 유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나도 내보내줘!”

유진이 일부러 힘을 내어 소리쳤다. 구멍 속은 어둡지 않았지만 혼자임을 자각하자 불쑥 설움이 치밀어올랐다. 방금 전까지는 혼자가 좋았는데 왜 이제는 그렇지 않은 걸까. 그는 혼자 떠난 사람을 생각했다. 그때 한선이 왜 떠나버렸는지 이제는 알겠다. 그러나 유진은 더 이상은 혼자 있을 수 없었다. 그 애는 왜 그걸 몰랐을까. 아마도 그것을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유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내보내줘. 난…… 미안하지만……”

어떠한 힘이 기다렸다는 듯 유진을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눈을 질끈 감았다 뜨니, 그는 이미 쓰레기 왕국 밖으로 나와 있었다. 손을 털며 물러선 장청이 무어라 말하기 힘든 얼굴로 유진을 살폈다. 홍진은 비틀거리는 유진을 바로 세워주었다. 유진은 따뜻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두 사람을 마주하자 왜인지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진은 그 기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꾹 참았던 긴 숨이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유진은 양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뺨으로 푸른색 눈물이 뚝뚝 흘러떨어졌다. 성과 장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홍진이 황급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세 연구원이 허둥대며 유진의 주위를 빙빙 도는 동안, 유진은 그렇게 고집 피우는 아이처럼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


유진은 아주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등 뒤를 장승처럼 지키는 세 연구원도 더 신경쓰이지 않았다. 김 교수는 지구-25에서 복귀한 후 유진을 따로 불러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유진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부탁을 받았으니 책임지고 도움을 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진은 사월 내의 여러 업무 중 하나인 물건 분류 작업에 잠시 참여하게 되었다. 일이 잘 맞으면 수습 과정을 거쳐 사월 소속이 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있게끔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유진에게 그 모든 말이 다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김 교수에게 짧게 감사를 표하며 엷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김 교수가 말을 하다말고 멈추어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빤한 시선이 느껴지니 괜히 입꼬리가 신경이 쓰였다. 유진은 고개를 숙이고 땅을 쳐다보았다. 김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뭘 하든 괜찮을 겁니다. 다들 도와줄 거예요. 너무 무서워하지도 말고.”

괜찮다는 말이 전부 와닿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 도와준다고는 하나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진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고개를 들고 난 후에는 또 한 번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짧은 회상을 마친 유진이 돌아섰다. 장청이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었고 홍진은 유진의 진짜 사원증을 손에 매달고 흔들었다. 성은 늘 그랬듯이 손에 쥔 태블릿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유진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없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설화 <거짓장례로 개가시킨 딸>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퇴고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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