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 보기★


#51

 

펭귄인 슈. 토끼인 테오.

다람쥐인 나와 도토리인 도리 씨.

이름과 본래의 모습을 공유한 뒤 우리는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물론, 테오라는 남성은 여전히 나를 못마땅해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터져버린 체르트 상공을 빙빙 돌던 투명한 버스는 점차 궤도를 벗어나, 서해 열차가 달리는 선로로 진입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슈가 말했다.

 

“아무래도 5행성으로 가는 건 어려울 것 같습디다. 내 생각엔, 흰다람쥐 선생과 도토리 씨는 7행성으로 가셔야 할 듯합니다요.”

“그렇다는 건…”

 

작은 다람쥐와 도리가 슈를 바라보았다.

슈가 말을 이었다.

 

“체르트가 터져 버리고, 그 파편들이 5행성과 6행성에 떨어졌을 겁디다. 폭발해 버린 뒤지만, 체르트에는 강력한 중력이 남아 있고요잉. 주변 행성은 점차 이쪽으로 빨려 들어갈 것입니다요.”

“슈우, 역시 똑똑해요. 우리 슈.”

 

슈의 말을 듣던 테오가 슈를 꼭 껴안는 장면을 뒤로, 우주의 빛깔처럼 검게 물든, 터져버린 체르트가 보였다. 슈는 그를 끌어안은 테오를 바라보다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흰다람쥐 선생. 7행성으로 가십시요오.”

“7행성으로요?”

“예에. 7행성으로 가서 의사를 만나십시다. 의사의 이름은…”


슈는 잠시 뜸을 들였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의사의 이름은 시온입니다. 다람쥐 선생이 인간 형상으로 돌아가도록 고쳐줄 것입디다.”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슈 씨.”

 

나는 도리의 손바닥에 올라 슈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빙긋 웃던 슈가 내 등을 솔솔 쓸어주었다. 나와 도리를 위험에 처하게 한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이었다니. 나는 슈를 바라보며 그처럼 미소 지었다.

 

“슈. 추우니까, 담요를 덮자.”


테오가 슈에게 크림색과 분홍색이 섞인 담요를 덮어 주고, 도리는 하얀 토끼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우주를 바라보며 더없이 아름다운 별들을 두 눈에 꼭꼭 담았다. 

언젠가 또다시 만나게 될, 한없이 팽창하는 거대한 우주를.

 

 

...

 

 

똑같은 크기의 행성 아홉 개 중, 4행성을 삼킨 체르트가 가장 비대해지자 우주 통합 관리국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체르트가 폭발하는 굉음이 9행성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위력이 어마어마했다는 것이다.

플로라는 책상 밑에서 덜덜 떨고 있는 시온의 팔을 끌어당겨 그를 소파에 앉혔다.

 

―시온, 여기 봐 봐. 그만 무서워하고.

“흐윽, 헉, 허어억…”

 

시온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겨우 플로라와 눈을 맞췄다. 플로라의 강인한 눈과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온의 눈이 마주치자, 시온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플로라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잘 들어. 알아본 결과, 체르트가 4행성을 삼켰고, 조금 전에 터져버렸어. 위성이 행성을 삼켰으니 위력을 견디지 못할 만도 하지. 아무래도 슈의 몸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 같아. 자세한 건 행성 분석 위원회에 자세히 들어 봐야 알겠지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무서워해.

“미, 미안, 죄, 죄송…”

―그래, 괜찮으니까 이제 진정해.

 

시온은 두 눈에 플로라 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플로라는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멋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용감하기까지……

플로라가 시온을 바라보며 옅게 웃는다. 저 아름다운 얼굴, 어여쁜 연보랏빛 머리……

시온은 저도 모르게,

 

“조, 좋, 좋아해…”

 

하고,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렸다.

그런데 그때 플로라의 집무실 문이 거의 부서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플로라! 시온! 오랜만이야!”

 

시끌시끌한 소리에 시온의 작은 목소리가 묻혀 버렸기에, 플로라는 다시 시온에게 물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조, 좋…좋아한…”

“얼굴들을 보니, 잘 지냈구나, 다들!”


이번에는, 집무실에 들어온 붉은 머리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플로라와 시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때문에, 또다시 시온의 고백이 묻히고 말았다. 환하게 웃는 붉은 머리 남성, 그리고 우물쭈물하는 시온의 모습. 플로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별안간 나타난 붉은 머리 남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너 때문에 시온이 말한 거 못 들었잖아.

 

생글생글 웃는 붉은 머리 남성의 옆에서 플로라는 시온에게 다시 물었다. 한껏 몸을 수그린 시온에게.

 

―뭐라고? 시온. 다시 말해 봐. 천천히. 이번에는 아무도 방해 안 할 테니까.


새빨개진 얼굴로 몸을 덜덜 떨던 시온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아, 아니야. 아무, 아무것, 아무것도. 미, 미안……”

 

 

...

 

 

7행성으로 향하던 중, 아침을 먹지 않아 허기가 졌다. 버스 공간의 9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하얀 토끼들도 배가 고픈지 ‘펭귄…펭귄.’하고 힘없이 펭귄을 외치기 시작했다.

슈는 테오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고, 테오는 슈를 끌어안고 색색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나는 그 둘을 바라보다가 도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리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내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어요, 다람 씨.”

“잊고 있던 사실이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귀여운 다람쥐 씨.”

 

도리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내 분홍색 코에 키스를 했다. 내가 붉어진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 도리는 뒤를 돌더니 자기 입속에 손을 넣는 것이 아닌가!

 

“도, 도리 씨……?”

 

1분도 안 되어, 도리는 입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데 성공했다. 도리는 활짝 웃으면서 뒤를 돌아,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도리의 손에 작은 상자가 얹어져 있었다.

하얀 토끼들과 내가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있던 차에, 작은 상자가 펑, 하고 소리를 내더니 커다래졌다.

도리가 웃으며 말했다.

 

“세라 씨와 마르크 씨를 만났을 때, 그들이 건네준 알약이요. 식량대체 알약. 이걸 잊고 있었어요. 이름이 뭐였더라, 체, 체르…”

“체르트! 맞아요. 체르트였어요!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4행성의 위성, 체르트와 이름이 같아요!”

“그러네요! 정말 신기해요.”

 

하얀 다람쥐는 도리의 손바닥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그 곁을 둘러싼 하얀 토끼들이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도리는 상자를 열어 알약을 꺼냈다. 옅은 분홍색 알약. 딸기 맛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는, 세라의 신약.

도리는 토끼들에게 체르트를 한 알씩 건네고서 자기 입안에도 쏙 넣었다. 나는 도리의 혀를 핥아 배를 채웠다.

우리는 체르트를 떠나면서 체르트를 먹었다.

저 멀리, 버스 정류소가 보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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